[206화] 내가 도둑이라고
“신기하네. 몸의 한 부분을 강화할 수 있는 스킬이 있다고 들어 보긴 했는데, 직접 겪어 보니 생각보다 더 대단한데? 제법 단단하긴 했어. 뭐, 이제 알았으니 내가 더 강하게 때려 주지. 스킬이 깨질지 내 주먹이 깨질지 한 번 보자고.”
문근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경일이 아픈 손목을 반대쪽 손으로 쥐고 이리저리 돌리며 오히려 자신을 칭찬했기 때문이다.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보아 큰 타격을 입진 않은 듯했다.
‘제기랄.’
그러고 싶지 않은데, 몸이 자연스레 움츠러든다.
비장의 한 수인 스킬을 써야 했을 만큼, 분명 자신이 밀렸던 것이다.
경일이 싸울수록 강해진 이유는 마나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헌터들은 가진 마나를 백 퍼센트 사용하지 못했다.
단지, 몸속에 깃든 마나가 몸을 강하게 만들었을 뿐.
문근철처럼 스킬을 가진 헌터들은 마나를 운영하긴 했지만, 정확히 어떤 원리인지는 그들도 알지 못했다.
호흡하듯이 스킬을 쓰는 순간 자연스럽게 마나가 움직였고, 스킬을 쓸수록 마나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 뿐이었다.
첫 격돌 이후, 경일은 문근철이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헌터란 걸 알았다.
그런데도 자신이 진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 세계의 여타 다른 헌터들과 같았다면 분명 문근철이 이겼겠지만, 경일은 두 세계를 오갈 수 있는 헌터였다.
그는 스탄다비아에서 익힌 마나 연공법으로 천천히 마나를 운영했다.
이렇게 강한 헌터와 싸울 기회가 많이 없는 이상, 최대한 이 기회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단전의 마나가 온몸에 퍼져 나가며 그의 신체 능력을 조금씩 끌어 올렸다.
어느 순간, 문근철은 이상한 위하감을 느꼈다.
계속해서 강해지는 경일의 기세에 그의 본능이 강하게 위험을 경고한 것이다.
문근철의 판단은 빨랐다.
그는 곧바로 차로 달려가 트렁크를 부수듯이 열었다.
그러고는 커다란 가방에서 창 자루와 창날을 꺼냈다.
둘을 결합시키자 한 자루의 기다란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총 길이 3미터에, 창끝엔 1미터 정도의 날카로운 창날이 달려 있었다.
문근철은 팔 길이와 합쳐진 기다란 창을 경일을 향해 겨누었다.
창을 든 그는 무시무시했다.
더군다나 상대는 무기가 없으니 더욱 자신만만해했다.
“마지막으로 묻지. 우리를 노린 이유가 뭐지? 그 신출귀몰한 도둑은 또 누구고? 죽기 싫으면 네놈의 정체를 밝혀라.”
무기를 잡은 문근철은 처음과 같이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돌아왔다.
“그래, 많이 궁금해하는 거 같으니 이야기해 주지. 내 얼굴이 낯이 익지 않아? 분명 너도 한 번은 날 봤을 거 같은데. 아, 어두워서 내 얼굴이 제대로 안 보이려나?”
“내가 너를 본 적이 있다고?”
문근철은 경일의 얼굴을 노려보면서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경일은 문근철이 전혀 모르는 것 같아 다시 입을 열었다.
“김형성이 분명 보고를 했을 텐데. 너희가 보낸 헌터들이 나를 알아본 걸 보면, 분명 내 얼굴이 사진으로 돌았을 거 같은데 말이야.”
“그래! 맞아! 네놈은 바로 그 동네 분식 사장이구나! 일반인인 줄 알았는데, 헌터였다는 거야? 지금까지 우리를 속이고 있었다니! 이런 개잡놈의 새끼가 ”
문근철이 분한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이를 악물었다.
“이런 미친놈, 지금 누구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거야. 가만히 있는 나를 협박한 놈들이 말이야.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남의 것을 힘으로 뺏는 쓰레기 새끼들은 왜 하나같이 이 모양, 이 꼴일까? 너 유치원은 나왔어? 최소한 유치원만 나왔어도 네 말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건지 잘 알 텐데 말이야.”
“어디서 입을 함부로 놀리는 거야. 죽고 싶어?”
말문이 막힌 문근철은 창을 찌를 것처럼 앞으로 뻗으며 경일을 위협했다.
“일개 분식점 사장놈이 감히 이런 짓을 벌인다고? 그렇구나. 네가 던전 자원 거래를 미끼로 해성 길드에게 도움을 요청했군.”
이 말도 되지 않는 상황에 문근철은 대형 길드인 해성 길드를 떠올렸다.
1팀장이 말했을 땐, 해성 길드는 절대 이런 일을 꾸밀 이유가 없다고 자신이 확실히 선을 그었지만, 막상 경일을 만나 보니 해성 길드가 배후에 있지 않고서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 맞아. 이 정도로 치밀하게 일을 꾸밀 정도면 해성 길드밖에 없어. 해성 길드가 나를 노리다니. 그들과는 아무런 원한이 없거늘! 이런 비열한 놈들. 명색이 대형 길드라는 놈들이 이렇게 치사하게 나오다니. 내가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거 같아? 적을 알았으니, 이제라도 절대 가만있지 않겠다!”
문근철이 부모를 죽인 원수의 정체를 오늘에서야 알았다는 듯이 흥분하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경일은 문근철의 그런 모습이 황당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헛소리야? 해성 길드가 왜 너희를 쳐?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이미 다 들통이 났는데, 어디서 오리발이냐! 넌 도둑이 누군지도 알고 있지? 네놈이랑 도둑놈을 잡아 해성 길드가 한 짓거리를 모두 폭로하고 말 테다! 언론이 등을 돌리면 그 새끼들도 꽤 골치가 아플 거야. 씨발, 너흰 사람 잘못 봤어. 내가 얼마나 지독한 놈인지 똑똑히 보여 주마!”
“이건 뭐, 벽 보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할 말이 없네. 그래야 네 마음이 편하다면 마음대로 생각해. 참, 도박장을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궁금하지 않아? 그것도 꽤 타격이 컸을 텐데.”
“이런 개자식이!”
문근철이 눈을 부릅떴다.
얼마나 분한지, 격정으로 인해 그의 창끝이 떨려 왔다.
“하하하하, 흥분하지 말라고.”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도둑이 누군지나 말해.”
문근철은 무엇보다 신출귀몰한 도둑의 정체를 가장 궁금해했다.
모든 루트를 동원해 알아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던 만큼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 말해 주지. 한동안 날 위해 열심히 일할 사람인데, 사실을 말해 주는 게 최소한의 도리 아니겠어?”
안 그래도 열이 받아 미쳐 버리기 일보 직전인데, 경일의 조롱하는 듯한 말투에 더욱 화가 솟구쳤다.
저 얄미운 입에 창을 박아 넣고 싶었지만, 도둑의 정체가 너무 궁금해 참을 수밖에 없었다.
경일이 부들부들 떨면서도 겨우 참고 있는 문근철의 모습에 즐거운 듯 ‘피식’ 한 번 웃어 주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선 내 뒤에 있는 세력은 해성 길드가 아니라, 네로님이라는 귀여운 고양이야. 그리고 네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도둑의 정체는 바로 나고. 그리고 말이야, 3팀장이 관리하던 도박장도 모두 내가 신고했어. 어때 궁금증이 풀리니 속이 좀 시원해? 아 참, 나를 잡으러 보낸 헌터들도 모두 내가 잡아서 벌을 줬어. 지금은 건전하게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지.”
“무슨 개소리야? 귀여운 고양이 네로라니, 장난해? 이게 끝까지 사람을 가지고 놀다니. 죽고 싶어? 그리고 도둑이 너라고? 도둑질에 신고까지 모든 걸 너 혼자 했다고? 어디서 개소리야?”
문근철의 커진 콧구멍이 벌름거리고, 성난 황소처럼 거친 숨이 뿜어져 나왔다.
살기등등한 눈이 지금 당장 창질을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은 분위기였다.
“하긴, 나라도 믿기 힘들긴 하겠다. 그나저나 방금 네놈이 보낸 헌터들이 벌 받고 있다고 얘기해 줬는데도 아예 관심이 없구나? 길드장이면 네놈 밑에 있는 헌터들의 안부부터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 하여간 양아치 새끼들은 어찌 이리 한결같은지, 쯧쯧쯧. 어쨌거나 나는 답을 해 줬고. 네가 믿을지 말진 그건 알아서 해. 모든 궁금증은 풀어 줬고, 이제 내가 한마디 해도 되겠지?”
유들거리며 말하던 경일이 분위기가 대번에 차갑게 내려앉았다.
차갑게 식은 두 눈에선 독 오른 독사 같은 독기가 일렁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얼어 붙을 거 같은 차가운 경고.
“지금이라도 창을 버리면, 내가 적당히 정상참작을 해 줄 수도 있어. 이건 네 인생의 마지막 기회가 될 거야.”
“이 미친놈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씨불이고 있어? 어디서 감히 말장난이야? 어찌 됐건 끝까지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는 거지? 그 태도 끝까지 유지해라. 내 발밑에서 덜덜 떨며 살려 달라고 빌어도 용서는 없을 테니까.”
경일의 서늘한 기세에 밀린 문근철은 가슴이 뜨끔해 왔지만, 창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곧 자신감을 얻고는, 곧 그의 말을 맞받아쳤다.
그리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곧바로 공격을 시도했다.
문근철의 창이 밤공기를 가르며 경일을 노리고 찔러 갔다.
최단 거리로 경일의 몸통을 노렸으나, 경일은 빠르게 몸을 틀어 피했다.
“이야압!”
문근철이 기합과 함께 힘으로 창의 궤도를 수정하자, 창날이 유도미사일처럼 급히 방향을 바꿔 경일을 향해 쫓아갔다.
급하게 허리를 뒤로 꺾자, 시린 듯이 날카로운 창날이 경일의 코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창은 계속해서 경일을 노렸지만, 그는 믿기 힘들 정도로 재빠른 몸놀림으로 창을 피해 냈다.
“헉헉헉,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강해질 수가 있는 거지?”
한순간 모든 힘을 쏟아 부은 문근철이 거친 숨을 내뱉었다.
경일이 자신의 창을 피해 내는 모습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하하하하!”
그런 문근철의 태도에 경일은 기분이 좋은 듯 웃음을 터트렸다.
문근철과 겨루어 본 결과, 자신이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수 헌터로서의 싸움이었으면 자신이 졌을 테지만, 자신에겐 스탄다비아가 전해 준 마나 연공법이 있었다.
마나 연공법이 대단한 기술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문근철과의 싸움에서 이 기술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단전에서 마나가 뿜어져 나와 온몸을 강화시켰고, 몸놀림 또한 더욱 빨라졌다.
얼마나 빨랐으면 그의 잔상이 문근철의 눈에 남을 정도였다.
경일의 웃음소리에 물을 뒤집어쓴 고양이처럼 약이 바짝 오른 문근철은 더욱 거칠게 몰아붙였다.
윙잉! 팟!
창이 섬뜩한 소리를 뿌리며 경일의 목숨을 앗아 가려 했다.
창의 연격에 볼에서 따끔거리는 감촉이 느껴짐과 동시에 옷과 함께 베어진 피부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
제아무리 경일이 빨라도 문근철의 실력이 만만치 않은 만큼, 계속해서 창을 피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창 질 한 번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만큼, 피하는 데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경일의 체력을 빠르게 갉아먹었다.
이런 와중에 계속해서 그런 집중력을 발휘하는 건 불가능했다.
“됐다.”
문근철은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피하는 경일을 드디어 잡았다 생각했다.
이제 조금만 더하면 피부가 아닌 내장을 갈라놓을 수 있을 터.
넘쳐나는 자신감을 실은 창이 거침없이 경일의 복부를 향해 찔러 갔다.
챙!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문근철의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그의 눈에 어느새 경일의 손엔 쥐어져 있는 검이 들어왔다.
“이, 이럴 수가…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도대체 네놈은 뭐냐?”
눈이 튀어나올 만큼 깜짝 놀란 문근철이 공격을 멈추고 경일을 노려봤다.
그와 동시에 그의 이마에서 나온 굵은 땀이 볼을 타고 흘러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맨손으로도 자신과 맞설 정도인데, 그런 그의 손에 갑자기 검이 쥐어졌으니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 동네 분식 사장인데.”
“이런 개자식이, 끝까지 말장난을!”
“허, 이거 참. 진실을 말해도 믿지를 않으니. 그리고 말이야, 스킬을 네놈만 가지고 있으란 법은 없잖아. 나도 있어, 스킬. 인벤토리라고. 너도 잘 아는 스킬이지?”
“이런 미친놈! 또, 또, 말장난. 내가 네 입을 반드시 찢어 놓고야 말겠다! 아무리 인벤토리라고 해도 그렇게 빠르게 무기를 꺼낼 수는 없어, 이 개자식아!”
“그렇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어쩌나. 나는 그게 처음부터 되더라고.”
경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잘 봐.”
경일의 손에서 순식간에 검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검이 파란빛에 휩싸여 갔다.
“설마… 그건 검기?”
“어라, 검기를 어떻게 알았어?”
“믿을 수가 없어. 어, 어떻게 최상위 헌터들 중에서도 소수만이 가지고 있다는 스킬을… 이럴 수가, 네놈이 다중 스킬 능력자라고?”
문근철은 숨이 턱 막히고 입술과 턱이 덜덜 떨려 왔다.
안색은 잿빛으로 변하다 못해 하얗게 질려 갔다.
이건 분명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