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11화 (211/300)

[211화] 싫은데

“완전 돌아이 새끼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거래하는 액수가 상당하다던데, 뭐 이런 거지같은 동네에 살아? 이거 어째, 내 주위에 제대로 맛 간 새끼들만 꼬이는 것 같은데? 우성범만 해도 벅찬데, 설마 이 새끼도 미친놈은 아니겠지?”

우성범의 약속을 깨고 전화까지 씹은 걸 보니, 이놈도 만만치 않을 거 같은 예감이 머릿속으로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당장 차가 다치지 않게 운전하는 데에만 신경이 쏠린 그는 곧바로 잊었다.

거북이 같이 느리게 운전하던 오길석의 눈에 드디어 목적지의 간판이 들어왔다.

매대 앞에는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한창 튀김을 튀기고 있는 경일의 앞에 커다란 세단이 멈춰 섰다.

아이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다 갑자기 등장한 차를 피하기 위해 황급히 움직였다.

“이봐요, 남의 영업집 앞에 주차하면 어떡합니까? 차 빼세요.”

경일이 화를 삭이고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차는 움직이는 대신 운전석에서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내리더니, 경일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경일은 그가 인사하는 자세를 보자마자 얼굴이 굳었다.

인사하는 자세만 봐도 저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짐작이 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두 번 이런 사람들과 얽혀 본 것도 아니고, 그때마다 짜증이 나는 일의 연속이었다.

“김경일 씨, 되시죠?”

“그런데요?”

경일의 말투가 곱지 않았지만, 오길석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정중하게 말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범성 기업과 길드를 대표하는 오길석입니다. 우성범 회장님의 명을 받아 제가 직접 김경일 씨를 모시러 왔습니다. 차에 타시지요.”

자기 딴에는 정중하게 말을 한다곤 했지만, 경일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아무런 약속도 없이 무작정 찾아온 것도, 이런 대단한 사람이 직접 왔으니 군말 말고 같이 가자는 태도도 짜증이 났다.

그리고 역시 가장 화가 나는 건, 아이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한 것이 가장 컸다.

하지만 경일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차에 탈 수밖에 없었다.

동네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보기 힘든 고급 차가 나타나 자기랑 친한 아저씨를 모시러 왔다는 말에 잔뜩 흥분한 얼굴이었다.

경일은 아이들의 얼굴에 서린 기대감을 실망으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호연 누나, 저 일이 생겨서 먼저 퇴근해야 할 거 같아요.”

“사장님,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네, 그럼 수고 좀 해 주시고요. 내일 봬요.”

경일은 앞치마를 벗어 두고 차에 올랐다.

세단은 동네에 올 때처럼 조심스럽게 빠져나갔다.

“휴~ 이제야 살 거 같네. 뭐, 저런 거지같은 동네가 다 있어? 저런 곳에선 어떻게 사는지 몰라.”

좁은 골목길을 지나 큰길로 나오자, 오길석은 답답했는지 상위 단추를 풀어 헤쳤다.

벌어진 셔츠 깃 사이로 천연색의 문신이 꿈틀거렸다.

그는 혼잣말인지 아니면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한 말인지 구별이 되지 않게 말했지만, 어쨌든 경일은 안 그래도 나빴던 기분이 더욱 더러워졌다.

차가 달려 멈춘 곳은 시내의 유명 클럽 입구였다.

오길석이 차에서 내리자 경일도 따라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었다.

“이쪽입니다.”

오길석의 안내로 곧바로 클럽에 들어가니, 경일은 뒤통수가 따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클럽에 어울리지 않은 허름한 복장을 한 그가 줄도 서지 않고 들어가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짜증 어린 시선을 보냈다.

네까짓 게 이런 곳에 어울리냐?

그러니 알아서 나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오고 싶어서 온 곳이 아닌데,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인 적개심이 담긴 시선을 받으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뭐, 이런 곳을 약속 장소로 잡아서 사람 기분을 잡치게 만들어. 부재중 전화를 300이나 하는 놈이니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막상 겪어 보니 생각 그 이상인 놈이었네.’

오길석을 따라 VIP 룸으로 통하는 클럽 안의 계단을 올라가니, 사람들의 시선으로 인해 뒤통수가 불이 붙은 듯 뜨거워졌다.

‘내가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다들 왜 이러는 거야?’

마음 같아서는 모두 광산으로 보내 정신 개조를 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문 앞에 도착하자 VIP 룸을 지키고 있는 큰 덩치의 가드가 문을 열어 주었다.

경일이 들어가니 우성범이 상석에 앉아 있었다.

“내 전화를 씹길래 잘난 놈인 줄 알았더니, 졸라 후줄근한 새끼였네.”

우성범은 깔보는 듯한 눈빛을 띠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조심성 없이 뱉은 혼잣말이 경일의 귀엔 똑똑히 들렸다.

고위급 헌터가 작게 말했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 소리를 못 들을 리가 없었다.

안 그래도 부글부글 끓고 있는 속이 뒤집히려고 했다.

문을 박차고 나가 버릴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보니, 문 입구는 오길석이 단단히 틀어막고 있었다.

‘이것들이!’

‘빠직’하고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우성범은 경일의 기분을 눈치채지 못하고, 아니, 정확히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느글거리는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확 뒤집어 버릴까 하는 마음이 일었지만, 우해수의 얼굴을 봐서 참았다.

일단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자신을 찾은 용건을 듣고 결정하기로 하고, 자리에 앉았다.

“반가워. 난 우해수 오빠인 우성범이야. 이거 참, 얼굴 보기 힘들어. 대한민국에서 내가 이렇게 만나기 힘든 사람이 있을 줄 몰랐어.”

우성범이 농담처럼 던진 이야기에는 뼈가 담겨 있었다.

그의 눈엔 경일을 향한 경멸과 짜증, 여러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경일은 상대의 인사를 무시했다.

인사 같지도 인사에 응해 줄 만큼, 그는 호인이 아니었다.

“나를 만나고자 한 용건이 뭐지?”

경일은 곧바로 용건부터 꺼냈다.

“지금 나에게 반말을 한 거야? 허~ 이거 참.”

안 그래도 경일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데다가 나이까지 어린 그가 초면에 반말까지 하니,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그는 열이 뻗치는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나름 참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참을성이라고는 평생 가져 보지 못한 그가 참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을 보고 돌아이 새끼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건 뭐 상상을 초월하네. 산동네에서 분식점이나 하던 새끼가 어디서 운 좋게 던전 자원 좀 얻었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보지? 이거 요즘 일진이 왜 이래? 이런 거지같은 새끼도 기어오르고? 너 우해수, 그년 믿고 까부는 모양인데, 잘못하다가 죽는 수가 있어. 내 앞에서는 그년의 힘 따윈 통하지 않아.”

볼이 푸들거릴 만큼 화가 난 우성범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경일을 쏘아봤다.

“이 새끼가, 죽고 싶어? 감히 회장님께 반말을 한 거야? 이분은 너 같은 놈은 평생 가도 만나기 힘든 분이야. 내가 살다 살다 별 미친놈을 다 만나 봤지만, 이런 놈은 또 처음이네. 내가 미리 말해 두는데, 이번만 참는다. 분위기 파악 잘하고, 회장님이 하시는 말씀 잘 새겨듣고. 무조건 회장님 뜻을 따르는 게 네 신상에 좋을 거야. 산동네에서 분식점이나 하고 살아서 세상을 잘 모르나 본데, 너 같은 거 하나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야.”

우성범은 푹신한 소파에 등을 기대 챈 팔짱을 낀 채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마치 더 하라는 듯이.

오길석은 재빠르게 우성범의 기분을 파악하곤 기세를 드러내 경일을 압박했다.

제법 레벨이 높은지 그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일반인이라면 사지를 떨고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개가 너무 짖으면 주인의 얼굴에 똥칠하는 것과 같지. 사람끼리 하는 대화에 개는 조용히 구석에 찌그리고 있는 거야. 알아들었으면 아까처럼 문이나 지켜.”

“뭐? 개? 이 새끼가! 죽고 싶어?”

경일의 말에 오길석이 버럭 화를 내며 주먹을 쥐었다.

막 그의 주먹이 뻗으려는 순간, 우성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그와 동시에 오길석의 주먹이 중간에서 멈췄다.

“역시 잘 훈련된 개새끼네.”

경일이 오길석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오길석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타올랐다.

쥐고 있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무척이나 분해 보였다.

“너 그러다 한 대 치겠다? 개가 사람을 물면 주인이 곤란해지지 않겠냐?”

“뭐? 이런 개새끼가…….”

“이 새끼야, 그만하라고!”

우성범의 고함에 오길석은 붉게 물든 얼굴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곤 뒤로 물러났다.

그의 입술이 작게 오물거리는 것이 무슨 말을 짓씹고 있는지 듣지 않아도 알 정도였다.

“하~ 이 새끼, 뭘 믿고 까부나 했더니 헌터였네. 보고받기론 헌터라는 말은 없었는데 말이야. 하긴 일반인이 던전 자원을 그만큼 판다는 것이 오히려 말이 안 되지. 꼴에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거지? 그래, 뭐, 아쉬운 건 우리니 이만 넘어가지.”

우성범이 마치 큰 선심을 쓰듯 말했다.

헌터라는 사실이 경일의 신분을 아주 약간 격상시킨 듯했다.

“뭐, 헌터든 아니든 이 자리에서 중요한 건 아니고. 이제부터 어른답게 사업 이야기를 해 보자고. 듣기로 네가 우해수, 그년에게 미스릴과 커미네스를 공급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간단하게 이야기하지. 그년과 얼마에 계약했든 간에 내가 10퍼센트 더 주지.”

그는 굉장히 선심 쓴다는 듯이 자신감이 넘쳤다.

마치 넌 이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듯이.

“아, 그리고 혹시 위약금 이런 게 걸려 있다면 그것도 모두 해결해 주지.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할 거야. 다음 달부터는 오 길드장이랑 상의해서 우리 쪽으로 던전 자원을 납품하면 돼. 보통 이런 자리에 내가 나올 일이 없는데, 내가 나온 것 자체가 앞으로 널 밀어주겠다는 의미야. 너도 냄새나는 산동네에서 분식점 그만하고, 앞으로 큰물에서 놀아야 하지 않겠어?”

우성범은 다리를 꼰 채 소파에 등을 기대며 두 팔을 벌렸다.

마치 자신의 세계에 경일을 넣어 주겠다는 듯이

한껏 거만한 그의 태도를 경일은 무신경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할 말 다했지? 그럼 나도 대답해 줘야지. 내 대답은 No야. 그러니 앞으로 날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경일이 우성범을 한심한 듯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설마 제안이 거절당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무려 자신의 성질까지 죽이고 이런 자리를 만들었는데, 아무것도 아니 분식점 사장 놈의 거절이 그에게 커다란 치욕으로 다가왔다.

“이 새끼가 미쳤나? 내가 오늘 네 그 건방진 혀를 뽑아 주지!”

오길석은 경일에게 무시당해 안 그래도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판에, 복수할 기회가 생기자 망설이지 않고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우성범도 말리지 않았다.

이러면 오길석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상대가 말을 못 알아들으면 억지로라도 알아듣게 만들면 됐다.

그리고 그는 이 방법에 특히 자신이 있었다.

경일이 헌터임을 드러내긴 했으나, 자신은 나름 전국에서 이름만 대면 알아 줄 정도의 강자.

우성범 같은 인간이 실력도 없는 뜨내기를 자신의 밑에 둘 리가 없었다.

오길석의 주먹이 경일의 입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자신이 한 말을 지키려는 듯이 정직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주먹에 담긴 힘은 적지 않았다.

경일이 일반인이라 생각했을 때도 인정사정없이 강한 살기를 쏘아 내지 않았는가.

그는 애초에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잔인무도한 성격이었다.

퍼억!

엄청난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소리는 VIP 룸을 벗어나지 못했다.

방의 방음이 잘된 것도 있었지만, 클럽의 시끄러운 음악이 소리를 삼켜 버린 것이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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