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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14화 (214/300)

[214화] 어디서 이런 괴물이…

비록 던전에서 그들을 부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지금과 같이 자신이 위험할 때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할 순 있었다.

그렇다고 이들을 무조건 부를 수 있는 건 또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 이들도 몬스터와 같은 이 세계에서 왔고, 이 세계의 공포가 뿌리 깊게 박힌 지구의 사람들은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경일 또한 이들을 지구의 사람들에게 보여 줄 생각이 없기도 했고.

굳이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목격자가 생길 수 없는 환경이면, 언제든지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것만 해도 경일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감히 선인을 핍박하다니! 이놈들을 모두 죽여라!”

자포리자의 묵직한 음성이 창고를 가득 채우는 순간, 그의 기사단이 움직였다.

“어, 어, 어어어!”

헌터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가장 먼저 기사단장인 칼튼의 검이 춤을 췄다.

칼튼의 목표가 된 헌터는 당황하며 본능적으로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서걱!

“…어?”

헌터의 발아래로 검을 쥔 손이 떨어졌다.

그제야 헌터는 자신의 손목이 잘렸음을 인지했다.

스탄다비아의 2인자답게 칼튼의 공격은 예리했고, 목표물을 놓치지 않았다.

헌터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이들이 다짜고짜 자신들을 노렸다.

더군다나 아무리 당황했다고는 하지만, 검을 휘두르는 걸 보지도 못했다.

“아아아악!”

뒤늦게 고통을 느낀 헌터가 자신의 잘린 손목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고통과 함께 손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그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건 예고편에 불과했다.

칼튼의 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헌터의 목을 베었다.

헌터는 세상이 도는 것을 느꼈다.

분명 잘린 손목을 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창고의 벽을 지나 천장을 보고 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는 그렇게 자신이 죽는지도 모른 채 의아한 표정으로 죽었다.

“허억!”

헌터들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만큼 칼튼의 첫 공격은 강렬했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겁을 먹은 헌터들은 눈꺼풀조차 깜빡일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저런 말도 안 되는 공격이 자신을 향할지 몰랐다.

겁을 먹은 헌터들이 자신도 모르게 똘똘 뭉쳤다.

칼튼이 헌터를 공격하는 동안 기사들은 재빨리 헌터들을 둘러쌌다.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됐다.

그제야 헌터들은 자신의 처지를 눈치챘다.

“제기랄! 이게 뭐야?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야!”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지 헌터 한 명이 참지 못하고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질렀다.

자신을 포위한 기사들이 조금씩 대형을 좁혀 왔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특이한 디자인의 갑옷을 입은 그들은 맹수와 같은 살기 가득한 안광을 흩뿌리고 있었다.

헌터들은 그 눈빛에 겁을 먹고 급속도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으아아아아!”

공포를 이기지 못한 헌터 한 명이 창고 입구를 향해 달려 나갔다.

하지만 그 결과는 먼지 가득한 바닥을 구르는 몸과 분리된 머리뿐이었다.

“제길, 정신 차려!”

헌터 한 명이 나름 고함을 치며 다른 이들을 독려해 보지만, 고작 그 정도론 기사들의 강한 살기를 이겨 내긴 역부족이었다.

“모두 죽여라.”

자포리자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헌터들의 귀에 천둥처럼 파고들었다.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무기를 든 기사들이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 왔다.

헌터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뒷걸음질 쳐 보지만, 서로의 등이 더욱 가깝게 붙을 뿐이었다.

실력을 모두 드러내도 살아남기 힘든 상황에서 약간의 머뭇거림은 그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헌터들의 머리가 몸과 분리되어 하늘을 날았다.

조금 전까지 살아 있던 이들이 목 없는 시체로 바뀌는 건 찰나에 불과했다.

“지, 지, 지, 지금 무, 무, 무슨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허공에서 기사들이 나타나고 순식간에 길드 정예의 목을 날려 버리다니.

유일하게 살아남은 오길수는 이 상황이 꿈만 같았다.

아니, 꿈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의 의식을 깨운 건 새빨갛고 따뜻한 피였다.

스무 명의 헌터들이 목이 잘리는 순간 뿜어져 나온 피가 그의 발을 적셨다.

바닥의 피를 피하고자 발을 드는 순간, 피의 끈적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비릿한 피 냄새가 이것이 분명 현실이라고 그의 귀에 대고 고함을 치는 것 같았다.

“힘 좋지. 나도 힘 엄청나게 좋아하거든. 지금껏 핍박을 많이 받아서 말이야. 내가 가진 힘이 어때? 괜찮았어?”

경일이 오길석의 면전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질문했다.

“이런 게 진정한 힘이야. 한 번 당해 보니 정신이 번쩍 들지? 웬만하면 나도 갱생의 기회를 주는데, 너희는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해라. 아무리 나라도 내 목숨을 노리는 놈에게 갱생의 기회를 주는 것은 무리거든.”

“무, 무, 무슨 소, 소, 소리를 하, 하는 거냐?”

오길호는 몸의 떨림을 주체하지 못했다.

손부터 시작된 떨림이 번져 나가더니 종국에는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도망쳐야 한다고 마음의 목소리가 죽어라 소리치는데 몸이 굳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는 경일에게서 느껴지는 공포에 완전히 잠식당했다.

“명색이 길드장인데 부하들만 보내는 건 말이 안 되겠지. 궁금한 건 저승에서 물어봐라.”

“잠, 잠깐만 기…….”

오길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경일의 검이 번쩍이는 순간 그의 머리는 이미 몸과 분리되었고, 그의 말은 뜨거운 물이 내뿜는 하얀 수증기처럼 곧바로 공기 중에 흩어져 버렸다.

“선인을 뵙습니다.”

경일을 위협하던 적들이 모두 사라지자, 자포리자가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러지 마시라니까요. 어서 일어나세요.”

경일이 민망해하며 자포리자를 일으켰다.

“이곳이 선인이 사는 세계입니까? 지금까지 읽은 역사의 종착점이군요. 아무리 세계가 발전한다고 해도 인간이란 존재의 이기심과 탐욕은 그대로군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만큼 사회가 발전하고 유지되는 것은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많아서가 아닐까요?”

“선인의 말씀을 들으니 이해가 되는군요. 아직 제 공부가 많이 부족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자포리자가 경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와 함께 그의 기사단 역시 경일을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이러지 마세요. 저는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런 과분한 예의를 갖추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스탄다비아의 모든 이들이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모두 선인님의 은혜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저의 작은 힘이나마 선인님께 도움이 될 수 있어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도움을 준 자포리자가 오히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경일이 곤란해하며 열이 오르는 뺨을 손으로 눌렀다.

“칼튼.”

“네, 영주님.”

“선인님이 불편하지 않게 이곳의 흔적을 모두 치우도록.”

“알겠습니다.”

자포리자가 눈치 빠르게 뒷정리까지 책임져 주었다.

기사들이 게이트를 몇 번 왕복하더니, 창고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안 그래도 뒤처리를 어떻게 할까 곤란했는데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선인님은 스탄다비아의 희망이고, 미래입니다. 선인님을 위협하는 것은 스탄다비아, 그 자체를 위협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앞으로의 싸움은 모두 제가 하겠습니다. 언제든지 불러만 주십시오.”

자포리자의 힘 있는 목소리에서 경일을 그가 진정으로 자신을 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서른 명의 기사단이 자포리자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경일을 향해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

.

.

.

시내의 한 클럽 안, 커다란 스피커가 터질 듯이 토해 낸 음악과 춤을 추는 사람들의 열기와 섞여 격정과 환의에 들뜬 광란의 도가니가 펼쳐지고 있었다.

후끈 달아오른 공기는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온몸을 맡겼다.

우성범은 이 클럽의 VIP 룸에서 한 세트에 일억이나 하는 샴페인을 물처럼 마시고 있었다.

상기된 그의 얼굴에서는 억누를 수 없는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요즘 한창 인기몰이 중인 여배우 이희수가 그에게 달라붙어 아양을 떨고 있었다.

“오빠앙~ 오늘 좋은 일 있어?”

그녀가 우성범의 옆으로 바짝 붙으며 생끗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몸에 비해 과하게 큰 가슴이 우성범의 팔뚝을 자극했다.

“그럼~ 있지, 아주 좋은 일.”

우성범은 그런 그녀의 적극적인 모습이 싫지 않은지 팔을 가슴에 더욱 밀착시켰다.

“어쩐지~ 오빠 얼굴이 오늘따라 유달리 밝더라. 무슨 일인지 물어도 돼?”

“하하하하! 오늘 월척을 하나 낚았거든. 아니, 월척이 아니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았지. 이제 드디어 내 자리로 돌아갈 때가 됐어.”

“어머, 그럼 오빠가 해성 그룹을 물려받는 거야?”

“그래.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그렇게 될 거야. 이제부터 내가 만든 헌터 물품 회사가 대한민국 탑이 될 거거든. 아니지, 그 정도 품질이면 해외에서도 이름을 날릴 수 있을 거야. 그럼 당연히 해성 그룹의 후계자 자리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거지.”

“축하해, 오빠. 난 오빠가 언젠가는 후계자 자리로 돌아갈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 이렇게 능력 있는 오빤데, 당연하지.”

이희수가 과장된 목소리와 행동으로 우성범의 기분을 한껏 띄웠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럼 오빠, 헌터 용품 회사 CF는 나를 줘야 해.”

“그럼 당연히 수아가 우리 회사 전속 모델이지.”

헌터 용품 회사의 모델은 대부분 상위급 헌터가 맡았으나, 지금 당장은 그 어떤 것도 좋았다.

“역시 오빠가 최고!”

이희수가 커다란 가슴을 앞세우고 우성범의 품으로 깊숙이 안겨 들었다.

“하하하하하하!”

가만히 있는데도 억제되지 않은 웃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이 미꾸라지 새끼. 네가 언제까지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지금쯤 한창 얻어터지고 있겠지? 오 길드장이 약이 바짝 올랐으니, 살아남기는 힘들겠지. 뭐, 나야 그놈이 가진 던전이 어디 있는지만 알아내면 되니까. 오히려 죽는 게 내 속이 더 시원하겠어. 버러지 같은 게 감히 어디서 까불어.’

우성범은 오길석에게 경일을 죽이라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이건 나중에라도 문제가 될 소지가 컸다.

그는 단지 꼴 보기 싫다든지, 혼잣말로 그 새끼가 없으면 좋게 다든지 등 분위기만 잡았을 뿐이었다.

심장을 자극하는 강력한 비트와 미녀, 그리고 최고급 샴페인이 그의 기분을 더욱 끌어 올렸다.

앞으로 펼쳐질 꽃길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오빠, 이번에 내가 하고 싶은 배역이 있는데, 거기에 좀 넣어 주면 안 돼? 오빠가 그 드라마에 협찬 좀 해 주면 충분히 가능할 거 같은데…….”

우성범이 기분이 좋은 걸 보고 이희수는 그를 살살 꼬셨다.

근래에 이렇게 기분 좋은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기에, 그녀는 이번 기회에 최대한 뜯어내려 온갖 아양을 부렸다.

“앙, 오빠~ 이번에만 좀 해 줘. 이번 역할이 너무 괜찮아서 그래.”

이희수는 우성범의 팔을 끼고 가슴을 비볐다.

탱크탑을 뚫고 나온 맨가슴이 우성범의 팔을 자극했고, 팔에서 느껴지는 풍만함에 우성범의 기분이 한참 올라갔다.

그는 특히 이런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온갖 아양을 떠는 이희수를 거만하게 내려다봤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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