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이럴 수가
“그래. 희수가 원한다면 해 줘야지. 이제 그 정도는 푼돈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야. 이왕 해 주는 거, 이번 드라마 협찬 전부를 책임져 주지.”
“오빠는 역시 멋있어. 정말 고마워.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 내가 아무리 중요한 약속이 있어도 오빠가 부름 무조건 달려올게! 자~ 약속.”
이희수는 새끼손가락을 거는 것이 아니라 우성범의 손을 양손으로 쥐고 자신의 가슴골에 가져다 댔다.
VIP 룸을 지키고 있던 가드는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입구를 막아섰다.
우성범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이희수의 커다란 가슴을 거머쥐었다.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는 우성범의 귀에 대고 ‘아앙~’ 콧소리를 냈고, 그녀의 뜨거운 입김이 우성범의 귀를 자극시켰다.
이희수가 입은 손바닥만 한 옷이 벗겨지고 그녀의 하얀 나신이 그대로 드러난다.
우성범은 거칠게 그녀를 리드했고, 이희수는 그런 그의 요구를 최선을 다해 맞춰줬다.
그들의 격정적인 신음이 클럽의 음악 소리에 묻혔다.
“오빠, 더울 텐데 한잔 마셔.”
정사를 끝낸 이희수가 자신의 옷을 추스르기도 전에 시원한 샴페인을 따라 우성범에게 건넸다.
그녀의 하얀 나신이 군데군데 벌겋게 쓸려 있고, 기껏 꾸민 눈 화장이 눈물에 번진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이희수는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우성범은 그런 그녀를 기분 좋게 바라보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소파에 온몸을 기댄 채 샴페인 잔을 받아 마셨다.
‘그동안 제법 콧대를 세우길래 대단한 줄 알았더니, 겨우 이 정도에 바지를 내리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별거 없네. 그나마 몸은 괜찮으니 몇 번 데리고 놀다가 버려야겠어.’
물건처럼 이희수의 품평을 끝낸 우성범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피크 타입으로 치달은 클럽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가만히 있어도 몸이 후끈거릴 정도였다.
우성범은 잠시 VIP 룸을 나와 1층 스테이지를 내려다봤다.
웨이터들이 부지런히 술을 나르고 남자들은 여자를 꼬시기 바빴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를 뚫고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서로의 귀에 고함을 치듯이 대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성범은 그런 그들을 모습을 하찮아 하면서도 즐거운 듯 바라봤다.
가끔 그를 발견한 여자들이 추파를 던졌다.
그런 그녀들을 우성범은 감평 하듯 바라봤다.
이희수만 없으면 몇 명 불러다 즐겼을 것이다.
이게 바로 룸살롱보다 클럽을 더 좋아하는 이유였다.
이곳에 오면 자신의 신분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가장 좋은 곳은 역시 해성 그룹의 본사인데, 우해수에게 후계자 자리를 뺏기고 난 뒤부턴 갈 일이 없으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클럽을 자주 다녔다.
싸구려 술 냄새와 사람들의 시큼한 체취가 느껴지자, 그는 인상을 찡그리고는 다시 VIP 룸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룸에 혼자 내버려 뒀지만, 이희수는 아무런 티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보고서 웃어 보였다.
‘하하하, 우해수, 이년 거를 뺏어서 그런지 더 기분이 좋네. 타격을 입힌 것도 모자라 그 이득을 그대로 내가 가져왔으니, 일 하나로 두 배의 효과를 얻었군. 이거, 앞으로 얼마나 돈을 벌지 상상이 안 가네. 이건 한강 물을 돈 받고 파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것도 엄청나게 비싼 값에. 내 회사가 승승장구하면 아버지도 나를 다시 봐주겠지? 네놈의 명복은 내가 특별히 빌어 주마.’
기대에 들뜬 심장이 뛰는 박자에 맞춰 커다란 우퍼에서 더욱 강력한 비트를 뿜어냈다.
그는 이 기분을 더 즐기기 위해 마시던 하얀 가루를 술잔에 탔다.
술과 함께 체내에 들어온 하얀 가루가 그의 뇌를 자극해 아드레날린을 폭발시킨다.
그와 함께 올라온 취기에 그의 기분은 배가 됐다.
이희수의 격렬한 정사도 끝났고 기분도 최고조로 올랐으니 이제 우성범은 오길호의 결과 보고만 받으면 됐다.
‘이제 슬슬 전화가 올 시간이 된 거 같은데…….’
경일을 창고로 유인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핸드폰은 잠잠하기만 했다.
먼저 전화를 해 보려 핸드폰을 들었다가 테이블에 다시 내려놓았다.
모양 빠지게 먼저 전화를 거는 건,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오빠, 왜 그래? 아까보다 분위기가 좀 다운된 거 같은데.”
우성범이 달라졌다는 걸 그의 품에 안겨 있던 이희수가 눈치를 챘다.
“아니야. 넌 신경을 쓸 거 없어. 더우니깐 좀 떨어져.”
품에 안겨 있던 이희수가 눈치 빠르게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녀는 새 잔에 시원한 샴페인을 부어 우성범의 앞에 놓았다.
목이 타는지 우성범은 한 번에 샴페인을 들이마셨다.
이희수는 재빨리 안주를 집어 그의 입으로 가져다주었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댄 그는 입만 벌려 그녀가 주는 안주를 받아먹었다.
시끄럽게 울리던 음악이 잦아들고, 새롭게 투입된 DJ가 다음 타임에 틀 음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희수는 점점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미친 듯이 웃던 우성범이 지금은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가끔 인상을 찡그리는 것으로 봐서는 기분 나쁜 것이 떠오른 듯했다.
‘무슨 조울증 환자도 아니고, 또 뭐가 꼬여서 저러는 거야? 설마 할 거 다 하고 입 닦으려고 저러는 건 아니지? 설마, 해성 그룹 아들이 그런 양아치 짓을 하는 건 아니겠지? 이거 괜히 한 건가?’
워낙 우성범의 소문이 좋지 않아 그녀는 슬슬 걱정이 됐다.
“야.”
소파에 몸을 묻은 채 심각한 표정을 짓던 우성범이 이희수를 불렀다.
이름도 아니고 동네 똥개 부르듯 예의 없는 모습에 기분이 나빠졌지만, 그녀는 얼른 표정을 풀었다.
“어, 오빠. 뭐 필요한 거라도 있어?”
“아니, 너 이제 가라.”
“오빠, 그게 무슨 말이야?”
우성범의 무례한 말에 이희수가 참지 못하고 벌꺽 화를 냈다.
그 모습에 안 그래도 안 좋던 우성범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씨발년아, 꺼지라고. 사람 말 못 알아들어? 한 번 알아듣게 해 줄까?”
우성범이 테이블의 술병을 집어 들었다.
뒤집힌 술병에서 꿀렁꿀렁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술이 흘러내렸고, 바닥을 맞고 튄 술의 차가운 감촉에 이희수는 정신을 차렸다.
“아냐, 오빠. 내가 미안해.”
이희수는 겉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부랴부랴 룸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모멸감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룸 앞을 지키고 있던 가드의 존재를 눈치챈 이희수는 얼른 표정을 정리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선글라스를 쓰고는 도도하게 걸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이 새끼들, 단체로 미친 거 아냐? 아무리 바빠도 중간보고라도 해야지. 내가 가만히 두나 봐라.”
우성범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오길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음만 들리고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이런 개새끼가 감히 내 전화를 씹어?”
그는 참지 못하고 연달아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신호음만 들릴 뿐이었다.
“설마?”
우성범은 전화를 받지 않자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혹시 오길호가 혼자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등 뒤에 칼을 꽂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애써 그 생각을 날려 버렸다.
감히 자신이 누구인데,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리가 없다고 애써 자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한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결국, 그는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진 걸 인정해야 했다.
“이런 미친! 감히 기르는 개새끼 따위가 주인의 발목을 물어?”
마음속에서 용광로 같은 뜨거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와 함께 등이 식은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와장창창창!
테이블 위의 1억짜리 샴페인 세트가 우성범의 팔에 밀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오늘을 즐기기 위해 시킨 샴페인이 깨지며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놀란 가드가 문을 열고 들어오려다가 미친개처럼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우성범을 보고는 곧바로 뒤로 물러나 문을 닫았다.
“설마… 아닐 거야.”
우성범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애써 자신을 위로하며 다시 전화를 걸어 보지만, 여전히 신호음만 들릴 뿐이었다.
그는 곧바로 클럽을 빠져나왔다.
클럽 앞에 세워 둔 스포츠카가 빠르게 도로를 질주했다.
오길석이 함정을 판 창고에 도착한 그는 급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우성범을 기다리는 건 썰렁한 공기뿐이었다.
“이런 개 같은! 오길석, 이 새끼 죽여 버리겠어! 감히 내 뒤통수를 쳐? 개가 주인을 물면 어떻게 되는지 내가 단단히 보여 주지. 으아아아아아!”
우성범이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분을 참지 못하고 한참을 발광하던 그는 결국 지쳐 창고의 바닥에 큰 대자로 뻗었다.
“아니야, 이건 말도 안 돼. 씨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이게 말이 되냐고.”
아무리 현실을 부정하려 외쳐 보지만, 지금 보고 있는 현실이 바뀔 리 없었다.
다음 날, 그는 오길석을 찾기 위해 사람을 풀었다.
우성범은 오길석을 찾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오길석과 같이 행방을 감춘 이가 스무 명 정도이다 보니, 그중 한 명을 잡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을 걸라 판단했다.
촘촘한 그물을 쳐 놨으니 조심성 없는 누군가는 분명 걸려들 터.
한 명만 잡으면 나머지를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줄줄이 비엔나처럼 나머지를 전부 엮어 낼 생각이었다.
일주일 뒤, 조사를 맡은 김행우가 중간보고를 하기 위해 우성범을 찾아왔다.
“어떻게 됐어? 지금쯤이면 나에게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겠지?”
우성범은 김행우를 압박하며 물었다.
“저기, 그게…….”
망설이는 김행우를 보자 우성범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병신 같은 새끼야! 스무 명이나 되는데, 그중 한 명을 찾는 것도 못 해?”
우성범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까만 명패를 쥐었다.
그 모습에 놀란 김행우가 급하게 입을 열었다.
“회장님, 고정하십시오. 조사 중에 이상한 사실이 하나 발견됐습니다.”
“이상한 사실?”
한껏 치켜 올린 명패를 내리며 우성범이 물었다.
“네. 통신사를 조회해 봤는데, 스무 명의 마지막 위치가 회장님이 말한 그 창고였습니다.”
“이런 병신이! 지금 그걸 보고라고 하는 거야? 그놈들이 잠수를 탔으니 당연히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부수든지 했겠지! 지금 나랑 장난해?”
“회장님, 고정하시고 제발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김행우의 필사적인 말에 우성범이 다시 들어 올린 명패를 내리고는 사나운 눈초리로 그를 노려봤다.
김행우는 단단해 보이는 명패에 자신의 머리가 깨질 수도 있을 거라는 두려움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는 가슴이 조여 오는 아픔을 참으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은행과 카드사까지 모두 조회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 한 명도 카드를 사용한 기록이 없었습니다. 보통의 경우 스무 명 중 누군가는 실수하기 마련인데, 흔적이 완벽하게 없는 겁니다. 그래서 가족들의 통화 기록까지 모두 조회했습니다. 그런데 통화 기록을 모조리 조사했음에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말을 한 번 끊고는 우성범을 눈치를 살폈다.
우성범은 다행히 그의 이야기에 집중한 모습이었다.
“회장님,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도망자 생활을 해 본 것도 아닐 텐데, 이건 너무 완벽하게 흔적을 숨겼습니다. 이 정도면 땅으로 꺼졌거나, 사건 당일 밀입국을 하지 않고서는 이렇게까지 흔적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밀입국했어도 누군가는 분명 가족에게 전화했을 겁니다. 하지만 통화 기록에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우성범은 김행우의 말을 듣자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