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21화 (221/300)

[221화] 도전장

“사실 게이트가 보이는 조건을 잘못 알고 있어서 그 누구에게도 게이트가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젯밤에 주아 씨가 우연히 게이트를 본 거예요.”

“아, 그래서 사장님이 그렇게 당황하셨구나.”

손주아는 그제야 어젯밤 경일의 행동이 이해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어쨌든 그래서 형님 부부도 보일 거란 생각이 들어서 이 자리를 마련한 거예요. 그리고 제가 여러분께 부탁드릴 것도 있고요.”

“부탁이라뇨. 사장님은 저희 부부에게 요청만 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그 요청이 무엇이든 간에 무조건 응할 겁니다.”

“맞아요, 사장님.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부담 없이 언제든지 이야기해 주세요.”

이길호의 말에 고개를 끄떡인 손호연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나도 언니 오빠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손주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게이트는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데도 자신을 믿어 주는 모습에 경일은 가슴 한편이 감동으로 뻐근해져 왔다.

“저를 이렇게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부탁을 말하기 전에 이 게이트와 연결된 던전에 대해 설명해 드릴게요. 이 던전에는 몬스터가 없습니다.”

경일의 말에 이길호는 경악으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말이 나오지 않는 모습이었다.

만약 경일이 아닌 다른 이가 이런 말을 했으면, 이길호는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하냐면서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그런 던전도 있어요?”

일반인인 선호연는 이길호와 다르게 호기심을 먼저 드러냈다.

“그럼, 우리도 던전을 구경할 수 있다는 이야기잖아요.”

눈을 반짝이며 두 손을 맞잡은 손주아가 갈망하는 듯한 눈으로 경일을 바라봤다.

“그럼요. 게이트를 볼 수 있는 여러분은 던전을 보실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제 부탁도 던전에서의 일이니까요. 그럼,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던전으로 들어가시죠.”

경일의 말에 가장 먼저 선호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 따라오시죠.”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경일이 게이트에 들어갔다.

순식간에 경일이 사라진 모습에 당황했으나, 선호연이 가장 먼저 게이트에 몸을 집어넣었다.

그 뒤로 이길호와 손주아 순으로 게이트에 들어갔다.

“우와!”

가장 먼저 던전을 본 선호연은 곧바로 경탄성을 내질렀다.

하긴, 던전을 처음 본 이라면 이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경일은 그녀의 반응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믿을 수가 없네요. 던전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무슨 동화 속에 들어온 거 같아요.”

그 뒤로 들어온 이길호와 손주아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길호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던전을 본 그는 이곳의 광경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장님, 여기 너무 좋아요. 공기도 상쾌하고. 미순이한테 막 자랑하고 싶은데 비밀을 지켜야겠죠?”

“여러분 이외에는 게이트가 안 보일 거예요. 그러니 말해도 다들 안 믿겠죠. 그래도 이왕이면 비밀을 지켜 주시는 데 좋겠죠.”

경일이 웃으며 그들을 안내했다.

그는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특히 손주아는 던전병으로 몇 년을 누워서 지낸 터라 누구보다 신나 했다.

“흡~햣.”

던전의 신선한 공기를 가슴속 깊숙이 마시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여기 공기가 너무 싱그러워요. 은은히 풍기는 숲의 향기도 너무 좋고요.”

그녀는 최대한 눈에 많이 담으려는 듯 여기저기 둘러보기 바빴다.

이길호는 그런 아내가 혹시 넘어질까 봐 옆에 바짝 붙어 신경을 쓰고 있었다.

잠시 후, 경일의 거처에 도착하자 그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 사장님, 이 많은 걸 혼자 다 하신 거예요?”

넓게 펼쳐진 농경지를 보고 손주아가 놀라워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먹었던 게 그 귀하다는 던전 작물이었다니…….”

이길호는 경일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자신이 아는 부분은 아주 작은 일부분이었고, 그는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귀중한 걸 아무런 대가도 없이 동네 사람들에게 제공하다니.

만약 시중에 팔았으면 경일은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길호는 경일의 몸에서 찬란한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이거, 다들 너무 놀라시니 민망할 정도네요. 아직 중요한 건 보여 드리지도 않았는데.”

“여기보다 더 대단한 곳이 있다는 이야기예요?”

“하하, 그럼요.”

선호연의 질문에 경일이 웃어 보였다.

경일은 이들을 데리고 던전 고유 식물을 재배하고 있는 비닐하우스로 안내했다.

첫 번째 비닐하우스를 들어가자 헌터의 마의 구간을 깨 준다는 영인초가 자라고 있었다.

이길호는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귀하다는 영인초가 자신의 눈에 비친 모든 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손등으로 눈을 문질러 보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한 겁니까?”

“저도 최근에 재배에 성공했습니다.”

“그럼, 밖에 펼쳐진 비닐하우스가 전부 던전 고유 식물이 자라고 있다는…….”

이길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인초보다 못한 비후초를 구하다가도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있었다.

더군다나 발밑의 한 줌이면 그가 몇 년을 고생해서 채집한 던전 고유 식물보다 더 많았다.

그만큼 귀한 던전 고유 식물이 축구장에 깔린 잔디처럼 자라고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경일이 잠시 몸을 돌려 인벤토리에서 차가운 물을 꺼냈다.

안 그래도 충격을 받은 사람 앞에서 인벤토리 스킬까지 보여 주면 기절이라도 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형님, 일단 물 좀 드세요.”

이길호는 멍한 눈을 한 채 기계적으로 물을 받아 마셨다.

“앗, 차거.”

얼음물처럼 차가운 물에 정신이 돌아왔다.

“너무 놀란 거 같으니까, 조금 쉬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경일은 붕어처럼 입만 벌리고 있는 놀란 일행들을 집으로 안내했다.

그들은 집으로 들어가 한참을 쉬어야 했다.

창을 통해 들어온 던전의 따사로운 햇볕이 이길호의 얼굴을 비추었다.

부드럽고 따뜻하게 감싸 주는 햇빛에 빠르게 뛰던 가슴이 조금씩 진정이 되어 갔다.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이거 뭐, 내가 재단하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었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을 만난 것, 자체만으로 난 누구보다 큰 행운을 만난 거였구나.’

이길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이제 진정이 좀 되셨어요?”

“네. 살면서 오늘이 가장 놀란 날이네요.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 요청할 게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형님도 참, 너무 그렇게 격식 차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부탁드릴 건 다름이 아니라, 제 일 좀 도와주십사 하는 겁니다. 형님도 보다시피 혼자서 하기에 너무 벅찬 상태라.”

“네, 알겠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이길호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예 던전에 살면서 일할 거 같은 태도였다.

“아니, 형님 일도 하시면서 남는 시간에 도와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아직 한 가지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는데, 여기 시간이랑 지구의 시간의 흐름이 다릅니다. 지구의 1일이 여기서는 3일입니다. 그러니 남는 시간에만 도와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이길호의 다리에 다시 한번 힘이 빠졌다.

이제는 더 이상 놀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의 흐름도 다르다니.

휘청거리는 그를 경일이 재빨리 잡았다.

“괜찮으세요? 아무래도 다시 쉬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경일은 이길호를 다시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렇게 던전의 식구가 늘어났다.

늘 조용했던 던전이 새롭게 늘어난 사람들로 떠들썩했다.

“그러니까 네로가 이곳의 수호신이라는 거죠?”

손주아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네.”

경일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정말 고양이가 아니라고요?”

“그렇다니까요.”

손주아는 네로와 경일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 다시 한번 물었다.

네로가 떡하니 던전에 있으니 설명하지 않을 수가 없어 솔직하게 말했다.

“아닌데… 분명 고양이가 맞는데.”

“아니라니까.”

손주아의 말에 네로가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말했다.

“딸꾹!”

갑자기 네로에게 터져 나온 말에 놀란 손주아의 눈이 커지더니, 딸꾹질을 시작했다.

“네로님, 갑자기 그렇게 큰소리를 지르면 어떡합니다. 주아 씨가 놀랐잖아요.”

“한 번 아니라고 하면 믿어야지, 도대체 몇 번을 물어보는 거야. 나도 웬만해서는 너 말고는 말하기 싫었다고. 그게 수호신으로서 맞는 행동이기도 하고.”

네로는 고양식 사료가 얼마나 싫었는지, 수호자의 처신을 잊고 말았다.

“어휴.”

경일은 네로를 향해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놀란 손주아를 정자에 앉히고 물을 주었다.

“히끗.”

딸꾹질하는 손주아의 손에 물병을 쥐여 주었다.

네로가 그 모습을 보고 ‘흥’하고 도도하게 고개를 돌려 버렸다.

경일의 집 옆에 새로운 집이 지어졌다.

하나는 이길호 부부가 살 집이고, 하나는 손주아의 집이었다.

벽돌과 시멘트가 있고, 경일과 이길호가 헌터다 보니 순식간에 두 채의 집이 완성되었다.

이길호 부부는 지구보다 이곳을 더 좋아했다.

특히 선호연의 만족도가 특히 컸는데, 수한이를 돌보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던전에서 살다시피 했다.

아들도 같이 이곳에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녀는 욕심내지 않았다.

그만큼 범상치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경일이 앞으로 큰일을 할 사람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만큼 최대한 경일이 신경 쓰이는 일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가장 바쁜 건, 이길호였다.

이길호는 정말 열정적으로 일했다.

시골 출신이라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했고, 경일보다 일머리가 훨씬 좋았다.

혼자서 하던 일을 둘이서 손을 맞춰서 하니 그 효율이 몇 배로 높아졌다.

그가 바쁜 또 하나의 이유는 마나 연공법이었다.

경일은 이길호가 던전으로 들어오고 나서부터 마나 연공법을 전수했다.

오랜 기간 스캐빈저로 살아왔던 그는 강해지는 것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경일은 기존의 마나 포션보다 몇 배로 뛰어난 새로운 마나 포션을 제공했고, 이길호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수련했다.

마나 연공법은 노력하는 이를 배반하지 않았고,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강해졌다.

* * *

강가에 지어진 선착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자포리자를 위시해 성의 주요 인사들은 물론, 구경 나온 영지민들도 많았다.

오늘은 배가 처음으로 출항하는 날이었다.

이건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단순히 비누와 염색된 천을 파는 일이 아니었다.

이건 스탄다비아가 건재하다는 걸 베르아스 왕국에 알리는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적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일과도 같았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로, 적에게 자포리자가 던지는 도전장과도 같았다.

“충!”

탄두스가 도열한 선원들을 대표해 큰 소리로 자포리자에게 경례했다.

알리사의 병사였던 탄두스는 강철의 강함에 빠져 스탄다비아에 투항한 병사였다.

오랜 용병 경험이 있는 그가 이번 상행에 대표자로 선발되었다.

여러 도시를 돌아본 그의 능력을 높게 산 결정이었다.

“탄두스, 자네만 믿겠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만 출발하지.”

“충!”

자포리자의 일행이 배에서 내리자, 거대한 배가 유유히 강을 따라 유유히 나아갔다.

넓게 펼쳐진 돛은 바람을 품고 거대한 배를 빠르게 이동시켜 주었다.

“장관이군요.”

카스만이 나이도 잊고 감탄했다.

“요 몇 년간에 겪었던 일이 평생 동안 겪은 일을 합쳐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슴이 뛰어 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입니다. 설마 이 나이에 다시 가슴이 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오래도록 살면서 수많은 경험을 한 카스만의 가슴이 뛸 정도인데, 영지민들은 어떻겠는가.

그들의 사기는 가히 하늘을 찔렀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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