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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23화 (223/300)

[223화] 늑대들

“그리고 말입니다, 우리만 스탄다비아를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잊으셨습니까?”

자포리자가 가우스 교를 몰아내고 가우스 교가 스탄다비아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는 건, 워낙 큰 사건이라 왕국 전체에 소문이 났었다.

가우스 교는 한참 스탄다비아를 치려고 준비 중에 그들이 몬스터 숲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허탈해 했다.

가우스 교도 게렉스와 패드래건과 같이 스탄다비아가 멸망했다고 단정 지었고, 스탄다비아를 치려는 계획 역시 중단되었다.

하지만 이번에 스탄다비아가 더욱 먹음직스럽게 나타난 이상, 욕심 많은 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영지 상황이 안 좋아 영지전을 망설였는데… 그래, 자네 말이 많군.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스탄다비아는 우리의 먹인데, 절대 뺏길 수 없지.”

“그럼요. 다행히 우리가 훨씬 유리한 상황입니다. 거리뿐만 아니라 종교 군은 덩치가 큰 만큼, 준비가 오래 걸릴 겁니다. 그 사이 우리가 스탄다비아를 먹는다면, 그들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 지금 당장 준비를 시작하지.”

사실 프라인이나, 아드리온은 영지전을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들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동원해 영지전 준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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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침 일찍 웬일이십니까?”

가우스교의 대신관 이데카른이 급하게 방 안으로 들어오는 두 명의 남자를 향해 눈을 흘겼다.

“이러면 곤란하지요. 다 같이 하자고 해 놓고 이렇게 뒤통수를 치면 안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명색이 신을 모시고 있는 사람이 너무 큰 욕심을 부리는 건 보기 안 좋습니다만.”

이들은 베르아스 왕국의 가우스 교와 함께 3대 종교로 알려진 타르다스 교 대신관 쉐올과 엘리시움 교의 대신관 켈레우스였다.

“아니, 제가 무슨 뒤통수를 치고 욕심을 부렸다고 그러는 겁니까? 저의 요청에 탐탁지 않아 하신 건, 바로 여기 계신 두 분이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의 짐을 덜어 드린 것밖에 없습니다.”

그들을 향한 이데카른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는 이들에게 섭섭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자포리자에게 교인들이 불타 죽었다는 소식이 가우스 교단으로 전해졌을 때, 이데카른의 분노는 폭발했다.

그는 곧바로 이 일을 공론화시켰다.

그의 예상대로 이 사건으로 종교계가 느끼는 공분은 상상을 초월했다.

처음 종교가 자리 잡기 전까지 그들은 많은 탄압을 받았다.

귀족들은 자신들 이외의 새로운 세력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을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 종교를 철저하게 탄압하고 말살하려 했다.

많은 종교인들이 박해받으며 고통 속에 죽어 갔다.

이에 종교들은 모시는 신들은 달랐지만, 살아남기 위해 뭉쳤다.

똘똘 뭉친 종교의 힘은 적지 않았다.

더욱이 시국이 혼탁해지고 종교를 믿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그들의 힘은 나날이 커졌다.

귀족들과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졌고, 이러다가 두 세력이 공멸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그들은 싸움을 멈췄다.

귀족들은 일정 부분 자신들의 권리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아픈 역사가 있던 만큼, 종교인들은 자신들을 해하려는 세력이 있으면 똘똘 뭉쳐 대항했다.

하지만 종교의 세력이 커지면서 이들의 단합에도 금이 가지 시작했다.

종교를 위협하는 세력이 나타나면 이전과 같이 무조건 적으로 뭉쳐 대항하기보다는 각자의 이해관계를 따지기 시작했다.

이번 스탄다비아의 징벌에서도 이런 경향은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가우스 교의 교단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각 종교의 대표자들이 모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의제는 당연히 스탄다비아의 징벌이었다.

신의 이름으로 스탄다비아를 벌하는 것은 만장일치로 정해졌으나, 문제는 그 전쟁에 들어갈 비용이었다.

가우스 교는 관례에 따라 N분의 1을 요구했으나, 다른 종교들은 이를 탐탁지 않아 했다.

가우스 교가 직접적인 당사자인 만큼 더 많은 비용을 낼 것을 요구했다.

회의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지리멸렬한 상태로 흘러갔다.

자포리자가 가우스 교의 사제들을 처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당장이라도 스탄다비아를 쓸어버리자고 모두 소리쳤지만, 이런 이유로 실제 종교 군의 진격은 발이 묶였다.

그러던 중 스탄다비아가 몬스터 숲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회의는 자연스럽게 해산되었다.

하지만 스탄다비아가 화려한 부활을 알리면서 가우스 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가우스 교는 다시 한번 종교 군을 모집하려다 생각을 바꾸었다.

바로 염색된 천의 등장 때문이었다.

가우스 교도 처음에는 다른 종교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단독으로 스탄다비아를 징벌하려 했다.

스탄다비아의 생산품은 그만큼 매력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가우스 교가 탄탄해도 몇만의 군대를 일으키는 비용은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가우스 교는 어쩔 수 없이 타 종교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다른 종교들의 비협조와 함께 스탄다비아가 몬스터 숲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지리멸렬하게 끝나고 말았지만.

하지만 이번에 염색된 천이 등장하면서 그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비누와 염색 기술이라면 군대에 들어간 비용을 제하고도 큰돈이 남을 것이라 예상되었다.

이에 가우스 교는 무리가 되더라도 단독으로 군대를 일으키기로 결정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돈이 된다는 사실을 들은 다른 종교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가장 기민하게 움직인 게 바로 타르다스 교와 엘리시움 교였다.

두 종교의 대신관이 가우스 교를 급하게 찾아온 것이었다.

“이번 스탄다비아의 징벌에 우리 타르다스 교도 참석할 겁입니다. 그리고 이번 징벌에 들어가는 비용도 가우스 교의 요청대로 정확하게 N분의 1을 낼 것입니다. 이건 같은 종교인으로 당연한 것이니, 이데카른 대신관도 이의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우리 엘리시움 교 역시 같은 의견입니다.”

이데카른의 이들의 뻔뻔한 모습에 어이가 없어 거머쥔 두 주먹이 바르르 떨릴 정도였다.

“아니, 두 분께서는 저번에 분명 비용 문제로 우리와 이견이 있지 않았습니까? 제 기억으로는 N분의 1이 불합리하다고 말씀하신 거 같은데요?”

그들을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는 이데카른의 입가에 맺혀 있는 건 분명 조소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 가우스 교 자체에서 징벌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만 물러가시지요.”

이데카른의 단호한 말에도 이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돈이 된다면 얼마든지 뻔뻔해질 수 있는 자들이었다.

이 정도에 민망해하고 머리를 숙였다면 대신관이라는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니, 이데카른 대신관께서는 무슨 말을 그리 섭섭하게 하십니까? 지난번에는 타르다스 교의 재정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런 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으시는 건, 신을 모시는 자의 태도로는 무척이나 마음이 좁고 부적격해 보입니다.”

쉐울은 아예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이야기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불리해질 게 빤하니, 아예 뻔뻔하게 나가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이건 엘리시움 대신과 켈레우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지금 그 말을 저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지금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저의 신심까지 모독하다니요. 저는 절대 이번 징벌에 다른 종교를 받아들일 수 없으니, 이만 돌아가십시오.”

이데카른 역시 한 발짝도 물러날 수 없다는 듯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들은 절대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이익에 관한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신을 믿는 자의 종교인으로서 절대 이런 세속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 이들은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이건 지금까지의 관례를 깨는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가우스 교가 지금부터 독자 노선을 걷는 거라고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이데카른의 강경한 태도에 쉐올이 더 강하게 치고 나왔다.

이건 이번 일에 자신들을 끼워 주지 않으면 공식적으로 가우스 교를 종교계에서 고립시키겠다는 이야기였다.

이것은 절대 입 밖으로 함부로 꺼낼 이야기가 아니었다.

가우스 교가 작지 않은 규모의 세를 가진 종교라 해도, 귀족과 다른 종교의 견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스탄다비아를 먹으면 그 이득이 큰 만큼, 다른 종교와 귀족들은 똘똘 뭉쳐 필사적으로 가우스 교를 물어뜯으려고 할 것이었다.

이데카른은 분한지 이를 악물고는 쉐울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지만 쉐울도 지지 않고 이데카른을 노려봤다.

둘의 눈빛이 공중에서 만나 불꽃이 튀었다.

“잠깐만요. 우리끼리 싸우면 안 됩니다. 우리의 처절했던 지난 역사를 잊었습니까? 그러니 두 분은 여기까지만 하시지요. 절대 분열은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켈레우스의 말에 이데카른과 쉐울이 동시에 서로를 노려보는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은 아직 분이 가시지 않는지 씩씩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데카른 대신관님. 스탄다비아를 혼자서 먹는 것은 지나친 욕심입니다. 솔직히 말해 군대를 일으키는 비용 때문에 문제가 있었지만, 그때 스탄다비아를 징벌하는 것에서는 우리도 참가한다고 분명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비용 때문에 이데카른 님이 섭섭하신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에게도 분명 명분이 있다는 겁니다. 대신 이렇게 합시다. 다른 종교도 분명 참석을 요구할 텐데, 그들의 참여는 거절하는 걸로 합시다.”

험악해져 가는 분위기에 켈레우스가 급하게 중재에 들어갔다.

이데카른은 켈레우스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건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가우스 교 혼자 스탄다비아를 먹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 둘을 적으로 돌리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이들의 견제에 아무것도 못 하고 그대로 무너질 수도 있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억지로 삼키려다 입이 찢어져 죽은 뱀이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종교들의 참석을 거부할 명분이 없을 텐데요.”

쉐울도 켈레우스의 말에 동의의 뜻을 내비치며 그의 의견에 의문을 표시했다.

“스탄다비아를 치는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사실은 두 분 모두 동의하실 겁니다.”

켈레우스의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이 무조건 빠르게 진행되어야 했다.

괜히 시간을 끌었다가는 냄새를 맡고 온갖 세력이 달라붙을 것이었다.

“명분은 주되 참석하기 힘들게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스탄다비아가 아무리 탐나는 먹이라도 우리가 모두 나누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뭉쳐 다른 곳에서 참여 요청이 들어오기 전에 왕국의 견제가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규모로 군대를 미리 조직하는 겁니다. 만약 다른 곳에서도 참여를 요구하면 군대의 규모가 더욱 커질 건데, 그럼 왕국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핑계를 대는 겁니다. 그럼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들이 우리의 병력을 줄이라고 요구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쉐울이 먼저 얼굴에 쓴 가면을 벗어던지고 탐욕스러운 민낯을 드러내자, 가만히 있던 이데카른도 본격적으로 논의에 뛰어들었다.

이왕 이 둘의 참여를 막을 수 없게 된 거, 다른 종교의 참여라도 막아야 만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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