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무등급 거대 던전
“사장님, 먼저 도착해 계셨군요.”
“네.”
우해수가 반갑게 인사를 하는 반면, 경일을 보는 눈초리가 사나운 남자도 있었다.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와 우해수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굽니까?”
남자가 기분 나쁜 눈초리로 경일을 아래위로 한 번 훑어보더니, 못마땅하다는 분위기를 팍팍 피워 댔다.
“이분은 이번 던전 폐쇄에 참여하실 인벤토리 스킬을 가진 헌터분이세요.”
“그래요?”
경일을 소개받은 1팀장 강상우은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이거 개판이구먼.”
강상우가 경일을 한심하다는 듯이 노려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아무리 몬스터 사냥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곤 하지만, 기본적인 무장은 하고 와야지. 스킬 하나 있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군.”
“1팀장님.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겁니까? 이분의 갑옷과 무장은 우리 쪽에서 제공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힘들게 데려온 분에게 이게 무슨 실례입니까?”
강상우의 무례한 말에 경일보다 우해수가 먼저 발끈하며 화를 냈다.
“아, 네네. 제가 모르고 실례했군요.”
말과 달리 그의 태도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비꼬듯이 말하고는 몸을 돌려 버렸다.
“이거 참, 그깟 인벤토리 스킬 하나 있다고 가장 앞장서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동료를 무시하고… 길드 꼴 참 잘 돌아간다.”
그는 혼잣말을 빙자해 우해수와 함께 경일을 싸잡아 비난하고서는 곧 자리를 떴다.
“이런 모습을 보여 죄송해요.”
우해수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귓불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자신의 치부를 들킨 기분이었다.
거기다 혹시라도 경일이 기분이 나빠 돌아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던전 폐쇄를 미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일이 있고 없고에 따라 이번 일에 성패가 좌우될 수도 있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저 정도로 무례한 사람은 아닌데… 아마 이번 던전 폐쇄에 스트레스가 쌓였나 봐요. 1팀장이 실제로 파티원을 이끌어 가야 해서 책임감이 좀 무거운가 봐요.”
경일은 이 상황이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었다.
어느 조직에나 있는 알력 싸움일 것이다.
그리고 1팀장이 파티를 이끌어 간다는 것은 해성 길드에서 가장 강한 헌터일거라 이야기이고.
자신보다 실력이 약한 사람이 오로지 핏줄 하나로 자신보다 위에 있으니 배알이 꼴렸을 것이다.
하지만 경일은 굳이 이들의 내밀한 일까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네로의 말대로라면 앞으로 이런 던전이 계속해서 생길 것인데, 미리 경험해 두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득이었다.
“네, 괜찮습니다. 큰일을 앞두고 있으니 예민할 수도 있겠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당황했는지 평소라면 절대 보지 못했을 다채로운 표정이 우해수에게서 보였다.
그만큼 이 일이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잠시만요.”
우해수가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곧 큰 가방 두 개를 가지고 왔다.
“하나는 던전에서 먹을 기본 식량과 물, 포션 등 필요 물품이 들어 있고요. 하나는 갑옷이랑 무기예요.”
“네, 감사합니다.”
경일은 가방을 받아 들고 옷을 갈아입으려 자리를 떴다.
옷을 갈아입고 대기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출정을 알리는 헌터 협회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던전의 위험성은 누구보다도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던전의 핵을 깨서 던전 폐쇄가 목표이지만, 가는 도중 최대한 몬스터를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 주시고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직원의 말을 들은 헌터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가는 동안 최대한 몬스터를 잡아 달라는 말은, 혹시 모를 실패에 대비해 몬스터의 포화량을 낮추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수도 있는 시간을 벌라는 의미였다.
던전에서의 실패는 죽음이었다.
자신들의 죽음에 대해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헌터 협회 직원의 말에 감정이 상했으나,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럼 마지막 장비 점검을 한 뒤, 30분 후에 던전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직원의 말을 끝으로 헌터들은 다시 한번 자신의 장비와 짐을 점검했다.
해성 길드를 주축으로 네 개의 길드에서 파견 나온 헌터까지 무려 100명이 게이트에 들어갔다.
경일과 같은 인벤토리 스킬을 가진 이들은 모두 열 명이었다.
처음으로 사람들과 함께하는 던전 공략에 경일은 살짝 기대에 부풀었다.
일행의 가장 뒤를 따라 들어선 던전은 사막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바라봐도 끝없이 펼쳐진 사막만이 보일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 도시에 있다 단 몇 초 만에 거대한 사막에 갇혀 버리자 감정의 괴리가 엄청났다.
넓게 펼쳐진 모래밭과 바위들이 보였고, 군데군데 자란 선인장들도 보였다.
지구에서 알던 선인장과 달리, 그 크기나 색깔이 모두 달랐다.
선인장에 삐죽삐죽 튀어나온 날카로운 가시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호기심이라도 아예 만질 생각이 나질 않을 정도로 위험해 보였다.
“이런, 빌어먹을!”
“하필 그 많은 것 중에 사막이라니. 이거, 처음부터 조짐이 별로 안 좋은걸.”
던전에 들어온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헌터들의 얼굴의 굳어졌다.
뜨거운 공기에 벌써부터 숨이 턱턱 막혀 왔다.
내리쬐는 햇빛을 손으로 가리며 주위를 탐색했다.
“뭘 이 정도 가지고 소란을 피우나. 나름 이 던전에 들어올 정도면 어느 정도 실력이 있다는 소리인데. 호들갑을 떨지 말고 출발하자고.”
강상우가 일행의 가장 앞에 서서 분위기를 잡았다.
해성 길드가 주체가 되어 공략하는 던전인 만큼, 그가 이 파티를 이끄는 파티장이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을 헌터들이 걸어갔다.
뜨거운 햇빛에 헌터들의 얼굴에 땀이 어렸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헌터들이 더울 정도면, 기존의 사막보다 몇 배는 더 뜨겁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땀을 흘리지 않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경일이었다.
“와, 안 더우세요?”
“덥습니다.”
“보기에는 하나도 안 더워 보여요.”
“하하하, 체질상 땀을 잘 안 흘립니다.”
경일이 대충 핑계를 대고 넘겼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인사나 하죠. 저는 이세준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26살이고요. 저보다 나이가 많은 거 같으니, 말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이세준은 귀엽게 생긴 얼굴에 성격이 서글서글해 보여 첫인상이 좋았다.
얼굴에 그늘이 없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격의 없이 다가오는 것이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럴까? 난 김경일이고, 만나서 반가워.”
경일은 적당히 인사했다.
안 그래도 얼마나 던전에 있어야 할지 모르는데, 좋은 말동무가 생긴 거 같았다.
강상우가 앞장서고 100명이 넘는 헌터들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걸을 때마다 발이 모래에 쑥쑥 들어가 순간순간 사라졌다.
바람 한 점 안 부는 날씨로 인해 이들이 남긴 발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뜨거운 사막을 걸어가는 이들을 첫 번째로 막아선 것은 오크였다.
“쿠워어어어.”
“그르륵.”
헌터들을 발견한 오크들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이 냄새 나는 몬스터 새끼.”
강상우가 가장 먼저 오크에게 달려가 검을 휘둘러 한 방에 오크를 두 동강 냈다.
붉은 피가 허공을 수놓으며 두 동강이 난 오크의 몸이 모래 위로 떨어졌다.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화려한 퍼포먼스였다.
그와 함께 헌터들이 달려들었다.
피잇!
헌터의 검이 움직이자 오크의 팔이 잘려 나갔다.
“끄아아아아!”
팔이 잘린 오크가 괴성을 질렀다.
“시끄러워.”
콰직!
둔기를 가진 헌터가 그런 오크의 머리를 내려쳤다.
둔기에 눌린 머리가 압축되면서 눈알이 돌출되며 터져 버렸다.
헌터와 오크 무리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던전에 들어와서 하는 첫 전투지만, 실력 있는 헌터들이 들어온 만큼 이들은 당황하지 않고 오크에 맞섰다.
“죽어!”
누군가의 기합과 함께 내지른 창이 오크의 심장을 그대로 관통했다.
다섯 개의 길드의 정예가 모인 만큼 헌터들은 강했다.
2미터에 육박하는 키에 200키로는 족히 넘어갈 거 같은 거대한 오크가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헌터들의 공격에 갈려 나갔다.
사막의 누런 모래밭이 오크의 붉은 피와 검붉은 내장으로 뒤덮여 갔다.
“와우, 역시 레벨 높은 헌터들이라 그런지 끝내주네요. 저 강한 오크가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것 좀 보세요.”
눈을 반짝이며 헌터들의 싸움을 구경하는 이세준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너도 신기하긴 하다. 고레벨 헌터들이 싸우는 걸 구경하려고 이 위험한 던전에 들어왔다니.”
어느새 친해진 경일이 그런 이세준을 한심한 듯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
“에잇. 형님, 솔직히 여기 아니면 어디서 이런 싸움을 구경해요. 맨날 낮은 등급의 던전에만 다니니 재미도 없고. 한 번씩 이런 멋진 싸움을 보면 스트레스가 확 날아간다니까요.”
“그래, 많이 봐라.”
경일이 포기한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순간.
“크아아아아아아아!”
전장에서 엄청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다른 오크보다 머리 두 개는 커 보이는 오크가 썰려 나가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고는 가슴을 세게 치며 울부짖었다.
이 무리의 대장인 오크 전사였다.
오크 전사가 강하게 모래를 박차고 날듯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비켜라. 저놈은 내 거다.”
오크 전사를 본 강상우가 호승심에 눈을 빛내며 마주 달려갔다.
꽝!
강상우의 검과 오크의 거대한 검이 충돌했다.
강렬한 충격파에 순간 공기가 일그러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고, 두 다리를 큰 나무의 뿌리처럼 모랫바닥에 박은 채로 서로를 죽이기 위해 공격했다.
두 개의 검이 수도 없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피어난 붉은 불꽃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꽝, 꽝, 꽝, 꽝, 꽝!
연신 폭음이 터져 나왔다.
“우와, 죽인다.”
둘의 전투에 시선을 뺏긴 이세준의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내리쬐는 햇볕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지 못할 만큼, 그는 전투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형님, 끝내주지 않아요? 이것 봐요. 닭살 돋은 거.”
경일이 당연히 이런 싸움을 보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 이세준이 신나 하며 자신의 팔뚝을 내밀었다.
하지만 경일은 강상우와 오크 전사의 전투보다는 이세준을 오히려 신기한 동물 바라보듯 쳐다봤다.
먼저 물러난 건 오크 전사였다.
강상우보다 세 배는 더 커 보이는 오크 전사가 무지막지한 강상우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에는 뒤로 물러났다.
“푸하하하하하, 덩칫값도 못하는 몬스터 새끼가 말이야.”
강상우가 즐거운 듯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역시 대단하네요. 전국에서 손꼽히는 헌터라더니, 오늘 보니 그 말이 허언이 아니었네요. 오크 전사가 만만한 몬스터가 아닌데 오히려 가지고 놀아 버리네요. 정말 멋있다.”
이세준의 말대로 경일이 보기에도 뛰어난 실력이었다.
지금까지 본 헌터 중에 가장 강해 보였다.
한 가지 특이한 건, 그의 검에 약하게나마 마나가 흐른다는 것이었다.
‘마나를 깨우친 것도 아닌데 검에 마나가 전이되다니. 몸속에 깃든 마나의 양이 엄청난 모양이군.’
한 번 뒤로 밀린 오크 전사는 그 뒤로 한 번도 우위를 잡지 못하고 목이 잘려 죽었다.
“죽인다! 박력이 그냥 터져 나오는구나. 아주 상남자네, 상남자.”
강상우의 싸우는 모습에 반한 이세준은 연신 그를 칭찬했다.
하지만 경일은 그와는 다르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가볍게 혀를 찼다.
‘쯧쯧,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싸움을 길게 가져가다니.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여 할 이곳의 책임자가 겉멋만 잔뜩 들어서는…….’
강상우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그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한 경일은 이번 원정이 그리 매끄럽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헌터들은 오크들의 가죽을 벗겨 냈고, 벗겨 낸 가죽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오크와의 싸움을 시작으로 무등급 거대 던전에서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