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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27화 (227/300)

[227화] 미끼

인벤토리 헌터들이 정리를 끝내자, 강상우는 그들에게 잠시의 휴식도 주지 않고 일행을 출발시켰다.

태양은 한낮을 달려가며 더욱 뜨거워졌고, 모래가 이글이글 타오르며 열기를 뿜어냈다.

메마른 입안에 퍼석거리며 씹히는 모래에 혀가 쓸렸다.

“퉷!”

헌터 한 명이 입속을 씻은 물을 뱉어 냈다.

이런 이들을 맞이한 것은 거대한 협곡이었다.

양옆으로 바람에 풍화된 암반층이 일렬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자연이 빚은 엄청난 신비였지만, 이들의 눈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협곡으로 들어서자 지금까지 한 번도 불어오지 않았던 사막바람이 불어왔다.

건조하고 많은 먼지가 포함된 바람은 안 그래도 힘든 호흡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헌터들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좋지 않았던 예감은 곧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협곡으로 들어선 지 두 시간이 지난 시점, 사막바람은 태풍으로 변해 갔다.

모래가 바람에 날리며 회오리 형태의 모래바람을 만들어 냈다.

눈을 뜨기가 힘들고 몸이 바람에 휘청였다.

그때였다.

“조심해.”

헌터 중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헌터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그와 함께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이 돌아갔고,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거대한 샌드웜이었다.

샌드웜은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최악의 몬스터 중의 하나였다.

주로 B급 던전에 나타나는 몬스터로, 땅속에 잠들어 있다 진동을 느낀 순간 깨어나 먹이 활동을 했다.

10미터에 육박하는 몸길이에 온몸에 진동을 느끼는 잔털과 입에는 먹이를 갈아 버리는 톱니 같은 이빨이 여러 겹 나 있었다.

“이런 제기랄!”

“도망쳐!”

“거기 피해. 이쪽으로 뛰어!”

헌터들의 당황해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태풍 같은 모래바람을 뚫고 땅속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온 샌드웜이 보였다.

이미 놈의 입에는 몸이 반쯤 입안으로 삼켜진 헌터가 보였다.

“으아아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헌터는 순식간에 샌드웜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누군가가 재빨리 샌드웜을 향해 창을 던져 보지만, 이미 땅속으로 사라진 이후였다.

“모두 움직이지 마.”

누군가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몸에 난 수없이 많은 잔털로 진동을 감지하는 샌드웜을 피하는 방법은 단 하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 원망스러웠던 태풍 같은 모래바람이 지금은 그 누구보다 반가웠다.

모래바람이 일으킨 진동이 헌터들의 움직임을 가려 주었다.

헌터들은 모래바람이 계속되기를 원했으나, 마치 던전은 이런 그들의 바람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태풍 같던 모래바람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완전히 멈춰 버렸다.

“제기랄!”

누군가의 입에서 답답한 마음을 담은 욕이 튀어나왔다.

바람이 멈추자 헌터들은 약속이나 한 듯 움직임을 멈추고,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문제는 계속해서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근처에 단단한 땅이라도 있으면 도망을 시도해 볼 수라도 있겠지만, 사방 어디를 봐도 모래만 존재하는 사막이었다.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샌드웜을 사냥하는 수밖에 없었다.

헌터들의 시선이 이곳에서 가장 강한 강상우에게 몰렸다.

이미 인벤토리 스킬을 가진 헌터들의 일로 믿음을 끌어낸 터라, 이번에도 그를 향해 간절한 눈길을 보냈다.

강상우가 이 분위기를 모를 리가 없었다.

이건 자신이 가장 위험한 미끼를 자청해 달라는 의미였다.

‘빌어먹을…….’

그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평상시라면 절대 이런 위험한 일에 자신이 나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팀원을 미끼로 던지고, 가장 강한 자신이 공격하는 방법으로 처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긴 자신의 팀원들만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들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유인할 테니 모습을 드러내면 모두 공격하도록.”

말이 끝나자마자 강상우가 뛰었다.

굳게 다문 입 뒤로 땅속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샌드웜이 강상우의 움직임을 느끼고 모래 속을 빠르게 헤엄치며 움직였다.

헌터들이 긴장한 채 자신의 무기를 움켜쥐고 샌드웜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노렸다.

푸악!

거대한 샌드윔이 커다란 입을 벌리고 모래 속에서 튀어 올랐다.

조금 전 삼켰던 헌터의 피비린내가 입에서 확 풍겨 나왔다.

강상우는 재빨리 몸을 날렸다.

그가 있던 자리를 샌드웜의 거대한 입이 스치고 지나갔다.

퍽퍽퍽퍽퍽!

그와 함께 헌터들이 던진 무기가 샌드웜의 몸을 때렸다.

“크엉엉엉엉엉엉엉!”

샌드웜의 쩌렁쩌렁한 비명에 공기의 파동이 일어날 정도였다.

몸의 수십 군데에 공격을 허용한 녀석은 붉은 피를 흘리며 모래 속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자신들의 공격에 괴로워하는 샌드웜을 보자 헌터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곳에 있는 헌터들은 실제로 샌드웜을 본 적이 없었지만,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지구에 몇 번 등장한 적이 없는 샌드웜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건, 그만큼 악명이 높은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헌터들의 생명을 앗아 가는 최악의 몬스터에게 공격을 성공시켰다는 자부심이 헌터들에게서 느껴졌다.

싸늘하게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다시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강상우는 미칠 지경이었다.

‘씨발, 조금만 늦었어도 죽을 뻔했잖아.”

그는 정말 아슬아슬하게 샌드웜의 공격을 피했다.

땅속을 볼 수 없는 이상, 강상우는 오로지 육감에 의존한 채 공격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등을 가로지르는 섬찟한 느낌에 급하게 몸을 날려 피하긴 했지만, 다음 공격도 피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강상우는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단 한 발짝도 떼기 싫었다.

하지만 그의 등을 계속 미는 존재가 있었다.

이곳에 있는 헌터들의 기대 섞인 시선이었다.

‘빌어먹을.’

강상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시 한번 미끼가 되어 달릴 준비를 하는데, 그의 눈에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헌터들이 들어왔다.

‘그래, 굳이 내가 미끼가 될 필요는 없지.’

강상우는 비릿한 웃음을 짓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땅속에서 무시무시한 진동이 일어났다.

화가 난 샌드웜은 더욱 빠른 속도로 모래 속을 헤엄치듯 달려왔다.

모두 다시 한번 공격하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헌터 한 명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뭐지? 왜 이쪽으로 오는 거지? 설마… 아니겠지?’

강상우가 달려오는 방향의 끝에 자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왔다.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자위해 보지만,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강상우의 모습이 점점 동공에 크게 각인되어 갔다.

그리고 그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챘다.

강상우가 자신에게 강렬한 살기를 쏘아 내며 자신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샌드웜이 모랫바닥을 파도처럼 춤을 추며 뒤쫓는 모습이 보였다.

‘안 돼!’

비명을 질러 보려 하지만, 하얗게 질린 그는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다.

‘떨지 마. 가만히 서 있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냥 이곳을 지나가는 것일 뿐이야.’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 보려 했지만, 강상우가 자신을 향해 쏘아 대는 살기를 보면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저 새끼는 분명 나를 미끼로 쓸려고 하고 있어. 틀림없어. 이대로 있다가는 내가 당하고 말 거야.’

그는 결국 밀려드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등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강상우의 서늘한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자신의 의도대로 된 것에 대한 기쁨의 표현이었다.

헌터가 아무리 빨리 달린다고 해도 이곳에서 가장 강한 강상우보다 빠를 수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강상우에게 따라잡혔다.

그리고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샌드웜이 모래 속에서 거대한 입을 벌리고 튀어 올랐다.

“아아아아아악!”

샌드윔의 이빨에 몸이 갈려 나가는 고통에 헌터가 비명을 질렀다.

그와 함께 헌터들의 공격이 샌드웜에게 쏟아졌다.

“크앙앙앙앙앙앙!”

샌드웜은 비명을 지르고 급히 모래 속으로 들어갔다.

동료의 죽음에 헌터들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누군가는 이 일이 우연이라 생각했고, 누군가는 강상우가 의도적으로 헌터를 미끼로 삼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강상우가 의도했든 말든 이건 본인만이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자신의 목숨을 미끼로 내던진 강상우에게 누구도 따져 묻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애초에 샌드웜을 아무런 희생 없이 잡아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고.

한 명의 희생에 비해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수십 번의 공격을 두 번이나 성공시킨 덕에 샌드웜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강상우는 또다시 뛰었다.

그 뒤를 상처로 인해 약이 바짝 오른 샌드웜이 쫓았다.

‘응? 저놈 뭐야? 지금 나에게 오는 거야?”

놀랍게도 이번에 자신의 희생양으로 삼은 건 경일이었다.

그는 경일을 향해 직선거리로 달려갔다.

파파파파팟!

강상우의 뒤로 모래가 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모래 먼지가 쫓아왔다.

거대한 모래가 샌드웜의 움직임에 따라 꿈틀거렸다.

경일과의 거리가 20미터도 남지 않았을 때, 그는 또다시 강렬한 살기를 쏘아 보냈다.

무형의 살기가 경일을 옭아맸다.

하지만 강상우의 의도와 다르게 경일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창백해진 얼굴로 떨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실수다. 저놈의 레벨을 생각했어야 하는데, 기세를 너무 세게 올리는 바람에 쫄아서 아예 움직이질 못하잖아. 제길, 어쩔 수 없지.’

알아서 도망가 주면 좋겠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강상우는 경일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를 몰래 밀 생각이었다.

그럼 경일이 넘어지면서 일어나는 진동에 샌드웜이 곧바로 반응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경일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강상우의 얼굴이 일그러져 갔다.

반면 경일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서 있기만 했다.

강상우와 모래 먼지가 점점 가까워져 갔다.

‘빌어먹을!’

미간을 잔득 찡그린 강상우가 경일을 미끼로 세우는 것을 포기하고 방향을 바꾸어 달렸다.

누군가를 대신 미끼로 세우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이번에는 오로지 자신의 감각을 믿고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샌드웜이 거대한 입을 벌린 채 모래 속에서 튀어나와 강상우를 덮쳤다.

그는 재빨리 몸을 날려 피해 보지만, 허벅지에 뜨끔한 느낌이 들었다.

샌드웜의 날카로운 이빨이 그의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뜨끔한 느낌은 불에 타는 듯한 뜨거움으로 변해 갔다.

그 순간, 헌터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샌드웜은 강상우를 삼키는데 실패하고, 다시 모래 속을 파고들었다.

‘큰일 났다.’

강상우는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길게 찢긴 갑옷 사이로 샌드웜의 이빨에 갈려 나가 벌어진 피부가 보였다.

상처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모랫바닥으로 떨어졌다.

순간, 그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피가 모래에 떨어지는 그 작은 진동에 샌드웜이 반응한 것이다.

원래라면 아무리 샌드웜이라도 이 정도로 작은 진동을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강상우와의 거리가 워낙 가까웠고, 많은 상처를 입어 극도로 예민해진 탓에 알아차린 것이다.

팟팟팟팟!

자욱한 모래 먼지와 함께 샌드웜이 강상우를 향해 나아갔다.

강상우는 겁에 질려 곧바로 다친 다리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다친 다리로는 아까와 같은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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