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암습
깡깡깡깡깡!
하지만 무등급 거대 던전에 들어올 정도의 실력을 갖춘 헌터들인 만큼, 그들도 만만치 않았다.
수십 개의 거미 다리를 검으로 쳐 내고, 피하고, 막으며 거미와의 거리를 좁혀 유일한 약점인 거미의 입안으로 무기를 쑤셔 넣었다.
“끼이이이이익!”
검에 찔린 거대 거미가 죽어 나가자 그 시체를 밟고서 또 다른 거대 거미가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난전이었다.
헌터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5미터의 높이의 천장에서 거꾸로 매달려 공격을 퍼붓는 거대 거미의 존재였다.
“씨발,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머리 위에서 내려찍듯이 공격하는 거미 다리를 피해 공격을 성공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대 거미의 관절 가동 범위는 헌터들이 알고 있는 상식이랑은 맞지 않았다.
장난감 로봇 팔처럼 관절이 움직일 수 없는 각도까지 돌아가 공격을 퍼부었다.
거대 거미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공중으로 점프해 입을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찰나지만 공중에 떠 있는 순간이 가장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거대 거미는 거꾸로 매달린 상태라 공격 목표인 입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헌터들이 거대 거미와 난전을 벌이고 있을 때, 해성 길드 서동하만은 딴짓을 하고 있었다.
그는 헌터들의 눈을 피해 뒤쪽으로 물러나며 슬쩍 경일의 위치를 확인했다.
경일을 쳐다볼 때 그의 눈에 스쳤던 빛은 분명 살기였다.
건물에 들어오기 직전 강상우는 서동하를 불렀다.
강상우는 경일과 우해수를 죽이려고 계속해서 기회를 엿봤으나, 파티를 이끌어가는 위치상 잠시라도 헌터들의 눈을 벗어나는 것이 힘들었다.
샌드웜을 이용해 겨우 기회를 잡았지만, 하필 경일이 단단한 땅에 서 있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 덕에 오히려 자신이 샌드웜에게 죽을 뻔한 위기를 겪지 않았는가.
그 뒤로도 경일은 물론이고 우해수까지 여러 번 노렸지만, 이상하게 기회가 나지 않았다.
경일과 우해수는 어느 순간부터 딱 붙어 있었다.
그들은 몬스터와 싸울 때나, 휴식을 취할 때나 심지어 불침번을 설 때도 떨어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들은 헌터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 근처에 늘 절묘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도저히 죽일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할 수 없으면 다른 이를 시키면 됐다.
서동하는 강상우의 숨겨진 칼이었다.
이번 던전행에 혹시 몰라 데리고 온 것이었다.
“내가 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기회가 안 날 거 같아 안 되겠다. 다음 몬스터와 싸울 때 기회를 봐서 저 새끼와 우해수 년을 죽여 버려.”
“알겠습니다. 팀장님.”
명령을 받은 서동하는 건물에 들어선 순간부터 경일과 우해수를 노렸다.
그리고 지금 수많은 거미와 헌터들의 전투 중인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였다.
‘우선 나랑 가까운 저놈부터 죽이고, 그 옆에서 거미와 싸우고 있는 우해수에게 칼침을 한 번 먹이면 끝나겠군.’
서동하는 우선 경일부터 노리기로 했다.
그가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복도는 헌터들의 외침과 거대 거미의 울음소리가 사방팔방에서 들려와 정신이 없었다.
거대 거미와 싸우느라 바쁜 헌터들은 단 한 명도 서동하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몸이 서서히 옅어졌다.
완벽히 주변의 환경과 동화된 서동하가 조용히 경일의 등 뒤로 다가갔다.
‘크크크크, 간단하네.’
서동하는 암살에 특화된 헌터였다.
그는 카멜레온과 같이 주위 환경과 동화되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고, 이 스킬은 오직 사람을 죽일 때만 써 왔다.
그가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강상우는 물론, 그 누구도 몰랐다.
‘잘 가라.’
서동우는 경일을 향해 날카로운 단검을 내질렀다.
그 순간이었다.
경일이 미끄러진 듯 크게 앞으로 넘어졌다.
단검이 그의 허공을 스쳐 지나갔다.
‘이 새끼 뭐야? 왜 하필 지금 넘어지고 지랄이야.’
서동우는 앞으로 내지르던 단검의 방향을 바꾸어 넘어진 경일을 향해 내리찍었다.
“헉!”
그때, 서동우의 입에서 경악에 가까운 신음이 튀어나왔다.
바닥에서 몸을 뒤집은 경일이 자신의 두 눈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눈치를 챈 거지?’
강렬한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경일의 가슴을 향해 단검을 내리찍었다.
하지만 그의 단검은 허무하게 막혔다.
존재가 들킨 서동우는 경일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던 경일의 손에서 생겨난 단창이 단검을 쳐서 날려 버렸다.
단검이 쥐고 있던 손에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의 가슴에서 화끈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어느새 단창이 그의 가슴을 깊숙이 찌르고 빠져나간 것이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서동우는 의문이 가득 찬 눈을 한 채 죽었다.
단창에 찔린 상처는 거대 거미의 다리에 찔린 상처와 똑같았다.
아마 어느 누구도 서동우가 경일에게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었다.
만약 경일이 서동우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으면, 당하는 건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서동우의 스킬은 은밀했다.
서동우가 죽은 건 어찌 보면 모두 강상우의 책임이었다.
강상우는 누구보다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 그에게 경일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보였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경일에게 적의를 한껏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이 경일의 경계심을 자극시켰고, 강상우가 은밀히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경일은 혹시 모를 그의 공격을 대비했고, 예상대로 강상우가 샌드웜을 끌고 왔을 때 그의 의도를 완전히 알아차렸다.
그때부터 경일은 강상우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강상우와 서동우가 은밀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 뒤로 둘의 모습에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언제 습격할지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헌터들의 시선이 있는데 무턱대고 습격하지는 않을 테고, 그럼 가장 유력한 순간이 몬스터와 치열한 접전 중일 게 뻔했다.
강상우가 거대 거미를 맞아 앞으로 달려 나갔고, 남은 건 서동우 뿐이었다.
역시 그의 생각대로 서동우가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자신의 쪽으로 왔다.
‘헉! 저게 뭐야?’
그리고 그의 모습이 주변 환경과 동화되는 모습에 매우 깜짝 놀랐다.
경일은 처음 보는 스킬에 놀라긴 했지만, 서동우의 기척은 놓치진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미끄러져 우연처럼 그의 공격을 피하는 모습을 보여 방심을 유도하고 반격을 가했던 것이다.
‘하여간 우성범, 이 새끼는 던전에서 나가서 보자. 아주 평생 광산에 처박아 줄 테니까. 넌 남들보다 두 배로 일해야 남들과 똑같은 양의 밥을 먹을 수 있을 거야. 그동안 편하게 살아왔으니 이제 힘들 때도 됐지.’
경일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와 상관없이 거대 거미와 헌터들의 싸움은 한창이었다.
그 누구도 서동우가 경일을 습격한 것을 모르듯이 죽은 것을 신경을 쓰고 있는 헌터는 없었다.
그건 일을 맡긴 강상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밀려드는 거대 거미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던전에 들어와서 계속 손발을 맞춰 싸워 온 터라, 헌터들은 빠르게 자신들이 유리한 진영을 짰다.
천장을 통해 오는 거대 거미는 갑각을 벨 수 있는 헌터들이 상대했고,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헌터들은 복도와 벽을 타고 오는 거대 거미들을 상대했다.
그리고 강상우가 가장 앞에 서서 밀려드는 거대 거미의 숫자를 줄였다.
그의 거대한 검이 거대 거미의 다리를 잘라 냈다.
그리고 곧바로 거대 거미의 품으로 파고들어 머리를 베어 버렸다.
C급 던전에서 나타나는 거대 거미지만, 강상우을 뚫는 건 불가능했다.
‘전국에서 알아 주는 헌터라더니, 실력이 대단하긴 하네. 하긴, 저 정도 실력 있는 헌터들이 있으니 암던의 활약에도 지금까지 몬스터를 막을 수 있었겠지.’
계속해서 몰려드는 거대 거미의 물결이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시작이 있으면 그 끝도 있는 법.
드디어 싸움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걱!
마지막 거대 거미를 강상우가 베어 냈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열심히 싸운 터라 그에게서 헉헉 대는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복도는 거대 거미의 사체가 쌓여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서로가 흘린 피로 바닥은 흥건히 젖어 있었다.
싸움은 끝이 났지만 헌터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번 싸움으로 제법 많은 헌터가 죽은 탓이다.
거대 거미에게 죽은 헌터도 있지만, 싸우는 도중 발생한 트랩으로 허무하게 죽은 헌터도 많았다.
건물 안이라 죽은 헌터들을 묻어 둘 곳이 없었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차디찬 복도에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싸움을 끝낸 강상우는 서동우부터 찾았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경일을 보고는 코에서 화가 뻗쳐 뜨거운 숨이 뿜어져 나왔다.
‘어떻게 된 거지? 저놈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서동우는 왜 안 보이고? 설마… 이 병신 같은 놈이 저놈에게 가지도 못하고 거대 거미에게 죽은 거야?’
그의 불길한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한쪽 구석에 가슴에 구멍이 뚫려 죽어 널브러져 있는 서동우가 보였다.
누가 봐도 거미의 다리에 당한 상처로 보였다.
‘샌드웜 때도 그렇고 더럽게 운이 좋은 놈이네. 이러다가 실패하는 거 아냐? 우해수는 그렇다고 쳐도 저 새끼만이라도 처리해야 변명이라도 하지. 이미 큰 소리는 다 쳐 놨는데… 빌어먹을.’
강상우는 경일을 한 번 노려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흔들고는 곧 몸을 돌려 버렸다.
헌터들은 동료의 시체를 뒤로하고 앞으로 전진했다.
간간이 트랩이 발동해 헌터들을 노렸으나, 이미 대비하고 있던 그들에겐 더 이상 위험이 되지 않았다.
가끔 거대 거미가 달려들었으나, 처음과 같이 많은 수의 거대 거미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헌터들은 무난히 거대 거미를 사냥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 왔어. 힘내.”
이들은 이제 이 여정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던전 핵이 내뿜는 강렬한 존재감을 모두가 느낄 수 있던 것이다.
강상우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묻어났다.
다들 이 지긋지긋한 던전을 벗어나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을 떠올렸다.
누구는 뜨거운 욕조에 몸부터 담그고 싶었고, 누구는 제대로 된 음식이 먹고 싶었다.
그 순간이었다.
쿠쿠쿠쿵!
엄청난 소리와 함께 지진이라도 난 듯 바닥이 흔들렸다.
“이게 뭐야?”
“또 무슨 일이야?”
“모두 자세를 낮춰!”
헌터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복도가 변형을 일으키고 있었다.
바닥에서 벽이 솟구쳐 올라 헌터들을 갈라놓았다.
“이건 또 뭐야?”
“트랩에 이어 복도에 벽이 생기다니, 이게 말이 돼?”
“어떻게 된 거야?”
“제기랄.”
헌터들이 새롭게 생긴 벽을 더듬고 있을 때, 벽에서 또 다른 벽이 튀어나왔다.
던전의 핵을 눈앞에 두고 설마 이런 기관이 작동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헌터들은 최대한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지만, 더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바닥이 마치 무빙워크처럼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벽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바닥이 움직여 헌터들을 갈라놓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기관 작동이 끝이 났을 때, 헌터들은 잘게 쪼개져 고립되어 있었다.
경일은 몇 명의 인벤토리 스킬을 가진 헌터와 우해수와 같이 있었다.
우해수는 경일을 몬스터로부터 지키기 위해 복도가 변형을 일으키기 전부터 바짝 붙어 있던 터라 그와 같이 있을 수 있었다.
‘복도가 방으로 바뀌었어.’
사방이 보기만 해도 튼튼해 보이는 벽으로 막혀 있었다.
경일은 벽을 만지고 두드려도 보았다.
엄청난 두께의 벽이란 사실을 두드리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동을 하려면 이 두꺼운 벽을 부수는 방법밖에 없어 보였다.
하지만 경일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어디로 움직일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까지 느껴졌던 던전의 핵이 내뿜는 존재감이 사방에서 느껴졌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