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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31화 (231/300)

[231화] 어제의 동료가 이젠 적

“이런 일이 가능한 건가요?”

우해수도 사방에서 느껴지는 던전 핵의 존재감에 어리둥절했다.

“와, 형님, 이번 던전은 정말 스펙터클 한데요. 이런 던전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요. 지금까지 만난 몬스터만 해도 최악이었는데, 마지막에도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이야.”

이세준은 신기한 듯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근데… 형님, 이제 우리는 어떡해야 하는 거죠?”

이세준의 물음에 우해수도 경일의 대답이 궁금한지 다음 말을 기다렸다.

“글쎄다.”

경일은 자신들을 가두고 있는 벽을 날카롭게 주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벽을 부수는 방법밖에 없을 거 같은데.”

“형님, 벽을 뚫고 가다가 거대 거미를 만날 수도 있잖아요. 우리만으로는 거대 거미를 상대하기 힘들 거 같은데, 차라리 다른 헌터들을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음…….”

경일의 실력을 모르는 이세준의 말은 타당했다.

‘거대 거미와 싸우는 건 문제가 없는데, 내가 싸우는 도중에 다른 거미가 이들을 공격하면 위험해질 거야. 우해수도 있으니 지지는 않겠지만, 그 사이 몇 명은 죽을 수밖에 없겠지.’

막상 뚫고 가자니 다른 이들의 안전이 걸렸다.

경일은 일단 이곳에서 다른 헌터들을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들과 합류하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으로 보였다.

“일단 다른 헌터들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걸로 하자고.”

우해수도 경일의 말을 듣고는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강상우는 약이 바짝 올랐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팀원 세 명과 함께 방에 고립되었다.

“이건 또 뭐야?”

강상우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짜증이 치솟았다.

“팀장님, 이거 이상한데요. 던전 핵의 존재감이 온 사방에서 느껴집니다.”

팀원의 말에 강상우의 얼굴이 더욱 찌푸려졌다.

지금 상황도 짜증이 나 미쳐 버리겠는데,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알 수가 없다니.

“일단 아무 벽이 뚫고 나가자. 지금은 그 수밖에 없어.”

“알겠습니다.”

꽝, 꽝, 꽝!

강상우는 자신의 검으로 힘껏 벽을 내려쳤다.

사방이 박힌 공간이라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고막을 강타했다.

하지만 소리만 컸지, 벽은 생각보다 잘 부서지지 않았다.

“뭐가 이리 단단해?”

“나머지는 제가 부수겠습니다.”

그의 팀원 하주원이 강상우가 찌증 내는 모습을 보곤 재빨리 자리를 잡고 벽을 내려쳤다.

벽은 한참을 때리고서야 뚫렸다.

“씨발, 뭐 이리 두꺼워.”

강상우는 거의 1미터에 육박하는 벽의 두께를 보자 머리가 아파 왔다.

이런 두꺼운 벽을 앞으로 얼마나 부서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구멍을 넘어 다음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던 존재는 여러 마리의 거대 거미였다.

거대 거미가 천장과 벽을 타고 헌터들에게 덤벼들었다.

“조심해!”

생각지도 못한 기습에 강상우가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달려들던 거대 거미의 다리가 잘려 나갔다.

“아아악!”

하지만 모두가 거미의 공격을 막은 건 아니었다.

조금 전 벽을 뚫다 지쳐 버린 하주원의 반응이 그만 늦어 버린 것이다.

그의 옆구리에 창과 같은 거대 거미의 다리가 스치고 지나갔다.

거리의 다리는 가볍게 갑옷을 찢어발기고 갑옷 속 꽁꽁 숨겨둔 연한 피부까지 거침없이 찢어 놓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피부 사이로 붉은 액체가 쏟아졌다.

“주원아!”

급히 그의 동료가 달려들어 거대 거미를 상대했다.

“무리하게 공격하지 마! 버티기만 해. 나머지는 내가 모두 처리할 테니.”

강상우는 재빨리 작전 지시를 내리고 자신의 앞에 있는 거대 거미의 머리를 베어 냈다.

그의 눈부신 활약으로 방에 있던 거대 거미를 모두 잡아낼 수 있었다.

“괜찮아?”

“네. 다행히 내장은 상하지 않았습니다.”

“얼른 치료해.”

강상우의 말에 팀원들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이런…….”

팀원들의 표정을 보고 강상우는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자기 가방뿐만 아니라 팀원들의 가방 모두를 인벤토리 스킬을 가진 헌터들에게 맡겨 버렸다는 것을.

가방에는 포션뿐만 아니라 식량, 물까지 던전에서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이제부터 적은 거대 거미뿐만이 아니었다.

굶주림과 목마름, 그리고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강상우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이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벤토리 스킬을 가진 헌터를 깔보고 자신의 짐을 모두 맡겨 버린 모든 헌터들에게 일어난 문제였다.

미로로 바뀐 이곳을 탈출하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몰랐다.

그런 와중에 식량과 물이 없다는 건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이었다.

무리하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는 것.

수십 명의 헌터가 현실을 깨달은 듯 동시에 벽을 부수기 시작하자 미로가 소란스러워졌다.

서로가 가까이 있다는 걸 확인한 헌터들은 거대 거미와 싸우면 열심히 벽을 뚫고 나갔다.

아무리 강한 헌터라도 단단하고 두꺼운 벽을 뚫으면서 거대 거미까지 상대하는 건 쉽지 않았다.

금세 피로가 쌓이고 하나둘 상처가 늘어났다.

상처를 입어도 치료할 수 없었고, 목이 말라도 물 한 방울 마실 수 없었다.

결국 개인 짐을 인벤토리 스킬을 가진 헌터들에게 맡기지 않은 헌터들이나, 자신의 짐을 가지고 있는 인벤토리 스킬을 가진 헌터들을 만나길 기대하며 두껍고 단단한 벽을 깨부숴야 했다.

“됐다!”

운이 좋았든지 고립되었던 한 팀이 가방을 멘 다른 팀을 만났다.

동료를 만나자 그들은 환호했다.

겨우 하루 떨어져 있었지만, 첫사랑을 다시 만난 거처럼 기뻐했다.

“일단 물, 물 좀 줘! 한숨도 자지 못하고 24시간을 움직였더니 죽겠어.”

“나도 물 좀 줘.”

헌터들은 일단 물부터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되돌아온 건 경계하는 시선뿐이었다.

“뭐 하는 거야? 물 좀 달라고.”

목이 타는 듯한 고통에 헌터가 버럭 화를 냈다.

“내가 왜 너에게 물을 줘야 하지?”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물이 아니라 냉랭한 거절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동료끼리 그까짓 물 가지고 왜 이러는 거야?”

헌터가 어이없다는 듯이 오히려 상대 헌터에게 역정을 냈다.

“그까짓 물? 흥! 너희들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네. 이곳을 탈출하는데 얼마나 걸릴 줄 알고 생명과 같은 물을 준단 말이야?”

“무슨 소리야? 같이 힘을 합치면 금방 탈출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말고, 물을 좀 줘.”

목이 마른 헌터가 최대한 좋은 말로 그들을 달래 봤지만, 돌아온 건 조소였다.

헌터의 비웃음에 목이 마른 헌터가 발끈했다.

“씨발, 그래, 더러워서 안 먹는다. 여기에 너희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아는 척하지 말자고.”

이들은 몸을 돌려 자신이 왔던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다시 목마름을 참아 가며 또다시 벽을 뚫어야 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여기서 하루가 더 지나자 굶주림과 목마름에 지쳐 가던 헌터들은 거의 돌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중 목마름은 참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미로에 갇힌 지 이틀도 되지 않았는데, 물이 없는 헌터들은 자신의 오줌을 마시며 겨우 견뎠다.

절반이 넘는 헌터들이 인벤토리 스킬을 가진 헌터에게 개인 짐을 맡겼다.

그들은 단 일 분도 쉬지 않고 벽을 뚫었다.

시간이 그들의 편이 아닌 이상, 살아남으려면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무조건 움직여야 했다.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이 바로 자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확실히 알고 있었다.

“제기랄, 거대 거미다.”

그들을 막아서는 거대 거미를 만날 때마다 그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싸워서 이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안 그래도 부족한 그들의 체력을 급속도로 뺏어 갔다.

그들이 바란 것은 짐을 가지고 있는 동료였는데, 1미터나 되는 두꺼운 벽을 힘들게 뚫은 자신들을 맞아 주는 것이 거대 거미였을 때 오는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혹시 상처라도 입으면 더욱 힘들어질 건 뻔했다.

“아아악!”

지친 헌터의 몸을 거대 거미의 다리가 뚫고 들어갔다.

헌터는 뚫린 배를 안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몸속에 수분이라고는 단 일도 못 느낄 만큼 목이 말라 피도 말라 버린 줄 알았다.

그런 그의 생각을 비웃듯 상처에서는 많은 피가 흘러내렸다.

싸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하지만 다친 헌터는 이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동료들의 싸늘한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니야, 조금만 시간을 줘. 나도 싸울 수 있어. 그러니 버리지 마.”

다친 헌터는 동료에게 애원해 보지만, 그들은 그런 그를 외면했다.

그들이라고 마음이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었지만, 자신들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 와중에 짐이 될 게 뻔한 동료까지 데리고 갈 자신이 없었다.

벽을 뚫는 건 어쩐다고 쳐도 거대 거미와의 싸움에서 그를 지킬 자신이 없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금 외면하는 게 나았다.

쾅, 쾅, 쾅!

부상을 입은 헌터를 이대로 버리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괴로워 그들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벽에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다음 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몇 개의 방을 더 뚫고 그들은 그토록 원하는 개인 짐을 가진 헌터를 만날 수 있었다.

“조져!”

그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이미 짐을 가진 헌터들에게 거절을 당한 터였다.

그런 그들이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건.

바로 약탈이었다.

서로의 무기를 들고 헌터들에게 덤벼들었다.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는 순간이었다.

살기 위해 그들은 동료의 목숨을 취했다.

이제 미로 속에 적은 거대 거미만이 아니었다.

살기 위해 그들은 동료를 죽여 나갔다.

처참한 광경일 수밖에 없었다.

.

.

.

“형님, 언제까지 이 방에 있어야 할까요?”

이세준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전투식량을 입안 가득 씹으며 물었다.

“글세, 나도 모르겠다. 미로가 생겨날 때 바닥이 움직인 속도랑 시간을 보면 꽤 큰 미로가 만들어졌을 거야. 그래도 헌터들이 많으니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경일은 이 순간에도 헌터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음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이 방에 갇힌 지 벌써 오 일째였다.

갑갑한 마음에 벽을 뚫고 진출해 볼까 생각했지만, 인벤토리 스킬을 가진 헌터들의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식량과 물은 충분했기에 그다지 큰 걱정은 없었다.

만약 지금 먹고 있는 식량이 떨어진다고 해도 자신의 인벤토리 안에는 이들이 일 년은 먹고도 남을 식량이 존재했다.

이들이 머무는 방의 한쪽 벽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한쪽 벽을 뚫은 건 화장실 때문이었다.

우해수와 같이 지내고 있으니 최소한 화장실은 따로 만들어야 했다.

그녀와 일주일을 같이 지냈지만, 특별히 친해지고 그런 건 아니었다.

이번에 겪어 본 그녀는 조용한 성격이었다.

방의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그녀는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가장 많이 떠드는 이는 역시 이세준이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힘든 일이 있어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낙천적인 성격이었지만 그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성격 탓에 기가 빨리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그도 시간이 흐를수록 말수가 줄어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던전에 들어와 헌터들에게 갖은 무시를 당할 때는 꼴도 보기 싫었지만, 지금은 다들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빨리 자신들을 둘러싼 벽이 뚫리기를 기대했다.

간간이 저 멀리서 누군가가 벽을 뚫는 소리가 들리면 이곳으로 오기를 기도했다.

우해수는 이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이렇게 가만히 기다리는 건 그녀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우성범을 제치고 해성 그룹의 후계자로 낙점될 만큼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왔다.

만약 이곳에 경일이 없었으면 혼자서라도 탈출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녀가 이상함을 감지한 건, 방에 갇힌 지 일주일째 되던 날이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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