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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33화 (233/300)

[233화] 싸움의 변수

“너, 너, 너는 누구지? 어떻게 너 같은 놈이 알려지지 않은 거지?”

눈이 휘둥그레진 강상우가 얼마나 놀랐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지금 길 가다 누군가에게 야구방망이로 뒤통수를 맞은 거처럼 머릿속이 얼얼했다.

단 한 수를 경험했을 뿐인데, 거기에 담긴 위력이 엄청났다.

검을 휘두르는 속도, 그리고 그 속에 담긴 힘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저 새끼가 지금까지 나를 가지고 놀았구나!’

이제야 경일의 운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암살하라고 시킨 서동우도 거대 거미가 아니라 경일에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득, 샌드웜을 몰고 갔을 때, 자신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씨발!’

경일에게 당한 모욕에 이가 으드득 깔렸다.

그리고 또 한 명 우성범에게도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유는 말해 주지 않고 신신당부한 이유가 이거였어. 우성범은 분명 저 새끼가 강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만약 그걸 이야기해 주면 내가 이 일을 수락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나에게 당근만 제시한 거였어. 난 그것도 모르고 눈앞에 미끼를 덥석 문 거고. 이 새끼는 만약 내가 성공하면 재수고, 실패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게 틀림없어.’

어금니를 부러질 듯이 악문 강상우의 두 눈에 진득한 살기가 떠올랐다.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 우성범, 네놈이 오판한 게 하나 있지. 난 네놈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거든. 반드시 여기서 살아 나가 너를 갈기갈기 찢어 그 잘난 피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짜내 주마. 그렇게 잘난 핏줄은 남들과 얼마나 다른지 꼭 확인하겠어.’

분노가 한계점을 돌파하면 오히려 머리가 차가워지는 걸 강상우는 오늘 처음 경험할 수 있었다.

냉담하리만큼 비정하게 보이는 눈동자의 중심에는 압축된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강상우는 우성범의 심복인 오길호보다 한 단계 위의 강자였다.

경일이 오길호보다 강하긴 했지만, 압도적으로 그를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실력으로 보자면 경일이 강상우보다 아래인 게 맞았다.

그런데 지금은 경일이 강상우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건 그사이 한 가지 변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건 모두 스탄다비아가 폭풍 같은 속도 발전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선조의 땅에 자리 잡은 스탄다비아는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동안 주변의 상황에 따라 억눌러지던 압박이 사라지자, 한계치까지 눌러졌던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스탄다비아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 경일의 스탯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속도로 늘어났고, 레벨 또한 빠르게 올랐다.

너무 빠른 성장으로 찾아온 새로운 신체 감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몸이 붕 떠 있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스탄다비아에서 검술까지 익힌 그는 이제 그 어떤 헌터도 얕볼 수 없는 진정한 강자의 반열에 들어선 것이다.

우해수는 얼음 동상처럼 얼어 있었다.

방금 자신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요단강을 건너는 자신을 경일이 억지로 이승으로 데려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죽음의 공포에 이어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경일의 놀라운 실력에 웬만한 일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거 같은 그녀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사, 사장님… 이, 이렇게 강한 헌터였어요?”

우해수는 질문을 하면서도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뭐, 제가 조금 강하긴 합니다.”

경일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신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며 우해수와 대화를 나누는 경일을 본 강상우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생각지도 못한 경일의 등장에 팀원들이 모두 당하고 자신만 홀로 남았다.

출세의 발판이라고 생각한 곳이 순식간에 자신의 무덤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강상우는 크게 심호흡하며 격동되었던 가슴을 빠르게 가라앉혔다.

경일의 정체가 궁금하긴 했지만, 머리를 한 번 흔들어 궁금증을 날려 버렸다.

당장은 싸워 이기는 것에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그만큼 어려운 상대라고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빠르게 생각해 내야 했다.

최대한 빨리 둘 중 한 명을 제거해 1대1의 상황으로 만들어야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을 듯했다.

우해수를 노리는 게 이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방법인데, 경일이 서 있는 위치가 애매했다.

마치 우해수를 노리라고 일부러 길을 열어 놓은 느낌이랄까.

‘저년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린 지금 공격해야 하는데… 느낌이 분명 함정 같단 말이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아니면 인질을 잡고 농성을 해 볼까?’

강상우의 눈이 인벤토리 스킬을 가진 헌터들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그들에게 가려면 경일을 통과해야 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경일이 자신이 하려는 짓을 순순히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강상우는 자신의 본능을 믿고 우해수와 인벤토리 헌터들을 노릴 계획을 포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경일이 자기 생각을 모를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거기다 그의 실력을 확실히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이대로 도망쳐? 안 돼. 목격자가 너무 많아.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통하지 않을 거야. 특히 해성 길드 부길드장인 우해수, 저년의 말이라면 모든 게 탄로 나고 말 거야. 무조건 여기서 승부를 봐야 해.’

강상우도 전국구 헌터로 이름을 날릴 정도의 강자인 만큼, 그의 결정은 빨랐다.

지금 상황에서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건 자신이었다.

짧은 시간에 생각을 정리하고 먼저 공격에 나섰다.

만약 우해수가 정신을 차리고 둘이 같이 공격해 들어오면, 마지막 기회마저 사라지고 만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강하게 바닥을 박차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꽝!

발바닥에 닿은 땅이 움푹 패이는 걸 넘어 쩍 하고 갈라졌다.

강상우가 전심전력을 다했다.

그는 총알처럼 경일을 향해 덤벼들었다.

단단히 움켜쥔 검으로 가장 빠른 공격인 찌르기를 시도했다.

순식간에 검 끝이 경일의 심장 앞에 도달했다.

그런데 검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순간, 진행 방향이 바뀌었다.

밑에서 올라온 검을 맞고 위로 튕겨져 버린 것이다.

“제길!”

강상우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이번 기습은 최선을 다하다시피 한 공격이었고, 가장 자신 있는 수였다.

그런 공격이 허무하게 막혀 버렸다.

강상우는 포기한 듯 튕겨 나가는 검을 회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겸이 튕긴 방향으로 몸까지 날렸다.

그 방향에는 우해수가 있었다.

“조심해!”

여유롭던 경일의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우해수는 경일의 목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해성 길드의 부길장인 만큼, 그녀도 절대로 약하지 않았다.

우해수는 자신을 향해 오는 공격을 막기 위해 검을 세차게 그어 올렸다.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다행히 우해수의 방어는 완벽했다.

강상우의 검을 막아 낸 것이었다.

두 개의 검이 부딪치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강상수의 검이 두부 자르듯 우해수의 검을 자르고 나아간 것이었다.

“허억!”

놀란 그녀가 급하게 뒤로 몸을 날려 보지만, 검보다는 빠를 수는 없었다.

강상우의 검이 우해수의 옆구리를 긁고 지나갔다.

피잇!

갑옷이 갈라지고 그 안에 있던 가냘픈 피부가 갈라지며 피가 뿜어져 나았다.

“하하하하하!”

강상우는 만족한 듯 크게 웃으며 달려드는 경일을 피해 곧바로 뒤로 빠졌다.

“이런 여우같은 새끼가!”

공격이 막혀 당황했던 모습은 모두 그의 연기였다.

그 짧은 순간, 강상우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경일의 공격을 끌어냈으며, 그 즉시 몸을 날려 우해수를 전투 불능의 상태로 만들었다.

여기에는 놀라운 사실이 하나 숨어 있었다.

우해수의 검과 강상우의 검은 모두 경일이 공급한 미스릴로 만든 것이었다.

그녀가 강상우보다 실력이 낮은 헌터이긴 하지만, 그 차이가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해수의 검을 단숨에 잘랐다니, 이건 뭔가가 있다는 말이었다.

“세준아.”

“네, 형님.”

자유로운 영혼이던 이세준이 경일을 실력을 보고 각 잡힌 모습으로 대답했다.

“이거, 부길드장님 먹이고 상처에 발라 줘. 난 저 새끼 아작을 내야 하거든.”

경일이 힐링 포션을 던지자 이세준이 공손히 두 손으로 받았다.

“하하하하, 그 상처가 힐링 포션으로 될 거 같냐? 힐링 포션 할아비가 와도 안 돼. 내가 그 정도도 생각 안 했겠어?”

강상우가 창백해진 얼굴로 기절하다시피 누워 있는 우해수를 보고 즐거운 듯 웃었다.

“세준아, 저 새끼 말 신경 쓰지 말고 빨리 힐링 포션 먹여.”

“네, 형님.”

경일의 말을 들은 이세준이 우해수의 입에 힐링 포션을 조심히 부었다.

우해수는 얼마 되지 않는 힐링 포션을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반은 입 밖으로 쏟아 냈다.

나머지 한 병은 상처에 부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온갖 더러운 짓은 다 하는 쓰레기 새끼군.”

“아니지. 이건 내 자리를 찾아가면서 생긴 어쩔 수 없는 트러블 같은 거야. 오히려 저년이 욕심을 부리다 천벌을 받은 거지.”

“하~ 이거, 어이없는 새끼. 네 몸에 묻어 있는 그 많은 피는 어떻게 설명할 건데?”

“이거?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지. 여기서 굶어 죽을 순 없잖아. 그리고 그놈들이 덤비지 않고 순순히 짐을 내놓았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모든 건 정당방위였을 뿐이지.”

“이곳의 책임자라는 놈이 뚫린 입으로 잘도 씨불이는구나. 어려운 상황일수록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 네놈에게 주어진 역할이거늘… 넌 갱생이 안 되겠다. 여기가 네놈 무덤이라고 생각해라.”

“하하하하! 기껏 내 공격을 한 번 막았다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모양이군.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이 나타나서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군. 오늘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걸 보여 주지.”

강상우는 조금 전과 다르게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해수를 기습하는 것이 성공했으니 이제 두려울 게 없었다.

조금 전 나눈 한 수로 경일의 실력이 확실히 강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자신보다 강한 이는 손꼽힐 정도였고, 지금껏 쌓아 온 실력에 절대적인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몇 배로 올려 줄 비장의 한 수도 있었다.

싸움은 경일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

바닥을 박차고 오른 경일이 온몸의 힘을 실어 검을 내리그었다.

쾅!

포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귀를 막았다.

소리가 빠져나갈 곳이 없는 사방이 막힌 공간이라 소리의 파동으로 피부가 떨릴 정도였다.

“제법인데?”

경일이 서로의 검을 맞댄 상태에게 씨익 하고 웃어 보였다.

단 한 수가 얽혔을 뿐인데, 강상우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여유가 사라져 버렸다.

강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 그 이상이었다.

아까 우해수를 노리던 자신의 검을 막던 순간 보여 준 실력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런 급박한 순간에 펼친 공격이 가진 실력의 일부분이었다고? 도대체 어디서 이런 놈이 튀어나온 거지?’

서로 검을 맞대고 힘을 겨루는 상황에서 경일은 입 밖으로 말을 뱉었지만, 강상우는 그러지 못했다.

이것만 봐도 강상우가 확실히 밀린다는 뜻이었다.

강상우는 바닥을 차며 재빨리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이제 현실이 파악되지?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 죽더라도 덜 억울할 테니 말이야.”

“싸움은 이제 시작했을 뿐이야. 싸움은 육체가 강한 사람이 꼭 이기는 게 아니지. 네놈이 생각지 못한 의외의 변수가 무한정 많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바로 이런 거.”

강상우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벽을 깨고 나온 잔돌 무더기를 경일의 눈앞으로 차올렸다.

수십 개의 잔돌이 경일의 몸을 때리고 공기 중에 뿌옇게 퍼진 먼지는 순간, 그의 눈앞을 가렸다.

모래가 눈 안에 들어갔는지 따끔거렸다.

눈이 감기려는 것을 억지로 참다 보니 핏발이 섰고, 눈물이 차올랐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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