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이렇게 아픈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살, 살려 줘! 살려만 주면 내가 아는 모든 정보를 제공하겠어. 그러니 제발!”
스벤슨은 무릎을 꿇은 채로 두 손을 발이 되도록 빌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자포리자의 명이 떨어진 이상, 무슨 짓을 하든 그는 죽은 목숨이었다.
칼튼의 검이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추한 얼굴로 죽었다.
사절단과의 전투는 전투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싱겁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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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뒤, 스벤슨의 목과 영지전을 받아들인다는 편지가 든 단단히 밀봉된 상자가 패드래건에게 전달되었다.
“이게 뭔가?”
패드래건의 질문에 집사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영주님께 꼭 전달해 달라고 어떤 남자가 경비에게 주고 갔습니다.”
“그래?”
패드래건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열었고, 이내 확 풍기는 피비린내에 얼굴을 찌푸렸다.
“윽.”
그리고 피비린내에 주인공이 사절단으로 보낸 스벤슨 자작의 목임을 알아차렸다.
“이런 미친 새끼가!”
패드래건의 얼굴에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지고 딱딱하게 굳어졌다.
숨길 수 없는 당황이 묻어 나던 그의 두 눈이 곧 분노로 불타올랐다.
그리고 스벤슨의 목 옆에 있는 단단히 밀봉된 편지를 꺼냈다.
편지를 따라 스벤슨의 검붉은 피가 치즈처럼 늘어났다.
“제기랄.”
손에 피가 묻자 그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는 피 묻은 편지를 뜯어 편지지를 꺼내 읽었다.
와락!
이윽고 편지가 패드래건의 손에서 거칠게 구겨졌다.
그는 손에 피가 묻었지만, 그걸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흥분했다.
“감히, 감히, 나를 이렇게까지 무시한다 이거지. 내 네놈을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사지를 뜯어 개의 먹이로 던져 주고 보일이라는 성을 쓰는 모든 인간의 씨를 말려 주겠다.”
패드래건은 얼마나 화가 났던지 볼살을 푸들푸들 떨렸다.
“지금 당장 게렉스 백작에게 만나자고 연락해라.”
“네, 영주님.”
이곳에 있기가 부담스러웠던 집사는 얼른 대답을 하곤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프라인과 아드리온의 연합군과 스탄다비아와의 영지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던전을 나온 경일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우성범의 별장이었다.
스킬을 이용해 그가 있는 곳을 파악하고, 그는 곧바로 차를 몰았다.
차는 도시를 빠져나가 한참을 달려 나갔다.
“이 새끼, 깊게도 숨었네. 네가 어디에 있던 내가 못 찾을 거 같아? 시끄러워 질까 봐 한 번 더 기회를 준 게 실수였어. 인간 같지도 않은 놈은 곧바로 광산으로 보냈어야 했는데.”
햇볕에 단단하게 마른 길을 따라 가던 그가 도착한 곳은 경치 좋은 숲을 끼고 지어진 별장이었다.
주위 경관을 헤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지어진 별장은 누구라도 쉬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끔 멋지게 지어져 있었다.
“돈 많은 새끼들은 숨어도 이런 멋진 곳을 이용하는군. 이건 숨는 게 아니라 휴가잖아.”
경일은 우성범이 경치 좋은 곳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을 걸 생각하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누구는 던전 속에서 온갖 개고생을 했는데.
별장을 중심으로 담이 높게 둘러쳐져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담으로는 경일의 발걸음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
경일은 가볍게 담장을 뛰어넘어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기감에 몇 명의 사람이 느껴졌으나, 무시하고 곧바로 우성범에게 향했다.
몇 번 우성범을 감시한 적이 있어 그의 기감을 구분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성범은 2층 안쪽 방에 있었다.
“씨발, 씨발, 그년이랑 그 새끼는 불사신이라도 되는 거야? 남들은 다 죽었는데 왜 그 연놈들이 살아나오는 거냐고. 강상우, 이 병신 같은 새끼. 전국구 헌터라고 큰 소리 칠 때는 언제고 그딴 새끼 하나 제대로 처리 못 하냐고. 안 되면 그년이라도 제대로 처리해야지. 그것 하나 제대로 못 하고 뒤져 버리다니, 병신, 개병신새끼.”
얼마나 술에 취했는지 혀가 꼬부라진 채로 우성범은 오만 악담을 내뱉고 있었다.
“씨발 새끼야. 이대로 끝일 거 같지. 아니, 넌 내가 꼭 죽이고 만다. 감히 산동네 분식점이나 하는 새끼가 말이지.”
경일이 귀신처럼 소리 소문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 생각에는 네놈이 먼저 죽을 거 같은데 말이지.”
“누, 누구야? 누가 방에 들어오라고 했… 허억!”
우성범은 갑작스럽게 들리는 말소리에 화를 내다 경일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말문을 잃은 그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어, 어, 어떻게 여, 여, 여기를…….”
우성범은 경일이 이곳에 있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무등급 거대 던전 폐쇄가 끝나고 곧바로 강상우가 죽었고, 우해수가 중상으로 실려 나온 것과 경일이 살아 나왔다는 보고받았다.
그리고 그는 보고를 받자마자 도망치다시피 이곳으로 숨어들었다.
느낌이 좋지 않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은밀히 이곳으로 왔는데, 경일이 어떻게 이곳에 나타날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뭐, 내가 여길 어떻게 알고 왔는지 설명할 필요는 없을 거 같고, 일단 네 선물은 잘 받았어. 이번에는 제법 강한 놈을 보냈더라. 그래도 나에겐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경일이 한숨을 쉬며 다음 말을 이었다.
“휴~ 뭐, 나에게 자객을 보낸 건 어느 정도 이해를 한다고 치자. 그런데 말이야… 여동생을 죽이려고 한 것은 좀 아니지 않냐? 네가 아무리 인간 말종 새끼라도 말이야. 무슨 조선시대 왕위를 놓고 다투는 것도 아니고. 나 원 참. 도대체 뇌 속이 어떻게 생겨 먹어야 그런 짓이 가능한 거지? 내가 강상우처럼 너도 그냥 죽여 버릴까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
경일은 마음속에 살의가 들끓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은 채 오히려 가벼운 미소까지 띠고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그런 모습이 마치 영화 속 웃으며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 같아 우성범에게는 더욱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우성범은 땀을 비가 오듯 흘리며 경일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잠, 잠깐만. 오해야. 내가 보낸 게 아니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요즘 사업도 정리하고 그냥 쥐 죽은 듯 지냈을 뿐이야. 이곳에 온 것도 조용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라고.”
우성범이 선택한 것은 발뺌이었다.
강상우는 이미 죽었고, 자신이 지시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경일은 그의 거짓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말 억울한 듯 말하는 그의 모습에 구역질이 솟구쳤다.
“하~ 이 새끼, 끝까지 잔머리를 굴리네. 왜, 오길석과 그 패거리가 나를 노린 것도 네 지시가 아니라고 하지?”
우성범의 동공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오길석의 이야기가 나오자 마음의 동요를 숨기지 못했다.
안 그래도 경일을 잡으러 간 뒤로 마치 유령처럼 사라져 버려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도 미치도록 궁금했다.
결국 그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그들을 모두 어떻게 했지? 어떻게 했길래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가 있는 거지? 내가 백방으로 수소문하면서 찾아봤는데 머리카락 하나 찾을 수가 없었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오길석을 보낸 게 자신이라고 인정한 순간부터 그는 원래의 시건방진 모습으로 돌아와 경일을 향해 따지듯이 물었다.
“너 태세 전환이 너무 빠른 거 아냐? 그리고 지금 네가 나에게 따질 일이 아닌 거 같은데. 이거 어이없는 새끼네. 넌 양심이란 게 없냐?”
경일이 황당해하며 물었다.
“씨발, 너 같은 새끼 하나 죽이는데 무슨 양심이 필요해. 내 질문에 답이나 해.”
“하~ 도대체 뭘 믿고 이리 자신만만하지? 네가 무슨 특별한 사람 같아? 네놈이 싸는 똥은 황금이냐? 뭐, 이런 거지 같은 새끼가 다 있어? 그냥 그때 처리했으면 이런 더러운 꼴을 겪지 않았어도 됐는데.”
말을 할수록 나오는 우성범의 선민의식에 경일은 질려 갔다.
아무리 금수저를 입어 물고 태어났다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일은 사회에 일도 도움이 되지 않을 해충을 아예 박멸할까 하는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험악해진 경일의 분위기를 읽지 못한 우성범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했다.
경일로서는 우성범의 어이없는 태도에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건방진 새끼가 어디서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거야? 내 질문에 답이나 하라고!”
경일은 완전히 질려 버렸다.
똑같은 사람인데 어떤 환경에서 자라면 저렇게 독선적이고, 이기적으로 될 수 있을까 신기하기까지 했다.
“되게 궁금한 모양이네. 걱정하지 마. 내가 네 궁금증을 무조건 풀어 줄 테니까. 그건 그렇고, 나를 두 번이나 죽이려 했으니 일단 그 벌부터 받자.”
경일의 오른손을 들자 마술처럼 그의 손에 보기만 해도 아파 보이는 몽둥이가 나타났다.
“씨, 씨발, 너 정체가 뭐야? 인벤토리 스킬을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그렇게 빨리 물건을 빼낼 수 있는 거지?”
우성범은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하~ 이 새끼는 어떻게 살아왔길래 이렇게 싸가지가 없을 수가 있는 거지? 돌아 버리겠네 진짜. 너 지금까지 한 대도 안 맞아 봤지? 하긴, 대기업 자제가 갑질하기도 바빴을 텐데 맞을 일이 어디 있겠어.”
우드득!
경일이 목을 좌우로 돌리면 몸을 풀었다.
“몽둥이찜질을 당하면서도 그렇게 당당한 태도를 보이면 내가 인정해 주겠어.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넌 제대로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경일은 말을 끝냄과 동시에 둔탁한 미스릴 몽둥이를 내려쳤다.
쩌억!
미스릴 몽둥이에 맞은 우성범의 허벅지가 아주 찰진 소리를 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그와 함께 목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미 마나의 장막을 친 터라 그의 비명은 밖으로 새 나가지 않았다.
그동안 미스릴 몽둥이로 여러 망나니를 교육한 적이 있어 나름 노하우가 생긴 경일이었다.
적은 힘으로도 어디를 어떻게 때리면 상대가 더욱 아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우성범은 허벅지를 두 손으로 감싸며 방을 떼구루루 굴렸다.
얼마나 아픈지 목부터 이마 끝까지 벌겋게 달아올라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우성범은 너무 아프면 오히려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렇게 아픈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재벌 2세로 태어난 그는 육체적인 고통을 겪어 본 일이 없었다.
기껏해야 몸이 아파서 병원을 가는 정도였다.
그것도 건강을 타고났는지 가벼운 감기를 제외하고는 병원 신세를 져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이런 끔찍한 고통이라니.
그의 눈에 핏발이 서고, 깊은 원한이 맺혔다.
“이런 개새끼! 죽여 버리겠어!”
바닥을 뒹굴면서도 그는 섬뜩한 목소리로 경일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하~ 제법이네. 한 대면 개처럼 꼬리를 말거라 생각했는데, 꼴에 자존심은 있다는 거지? 하긴, 나도 한 대로 꼬리를 말까 봐 걱정하긴 했어. 보통 평균적으로 세 대는 버티던데, 한 대로 끝나 버리면 내가 너무 섭섭하잖아.”
경일의 얼굴에 악마 같은 웃음이 걸렸다.
그 모습이 너무 비열하고 섬뜩해서 우성범은 조금 전 자신이 한 말을 최소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해성 그룹의 황태자다.
그런 그가 저런 놈에게 굴복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감히! 네가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수 있을 거 같아? 지금이라도 당장 몽둥이를 내려놓고 비는 게 좋을 거야. 네가 아무리 강해도 몬스터나 잡는 일개 헌터일 뿐이야. 너 같은 놈 매장하는 건 일도 아니라고!”
우성범은 나름 결연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해 보지만, 허벅지가 욱신거리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그의 눈망울에 커다란 눈물이 고였다.
경일의 눈에는 그런 그의 모습이 그저 웃길뿐이었다.
“너, 가만 보니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는 거 같은데…….”
웃음기를 머금고 있던 우성벌의 얼굴이 경일의 말을 들을수록 급격하게 굳어져 갔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