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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39화 (239/300)

[239화] 난 너랑 보는 세계 자체가 틀려

“내가 널 못 죽일 거라 생각하는 거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거 착각이야. 너 같은 벌레 새끼 한 마리 죽이는 건 일도 아니거든.”

경일의 싸늘한 시선을 받은 우성범의 가슴이 뜨끔했다.

그의 지적은 우성범의 폐부를 깊숙이 찔러 왔다.

사실 재벌 2세인 자신이 죽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어느 누가 감히 해성 그룹을 건들 수 있겠는가.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 파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정부든 기업이든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었다.

실제로 경일을 잡기 위해 보낸 헌터들이 사라졌지만, 자신은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말짱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도 자신의 목숨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그가 이렇게 경일에게 큰소리를 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기도 했다.

경일이 같잖다는 듯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는 순간, 우성범의 눈이 커다래지고 얼굴에선 핏기가 사라졌다.

창백해진 그는 경일의 손을 바라보며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경일의 손에는 어느새 미스릴 몽둥이가 사라지고, 시리도록 날카로운 예기를 뿌리는 검이 쥐어져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잘 생각해. 네가 이런 짓을 하고 살 수 있을 거 같아? 너뿐만 아니라, 너의 가족, 친구, 너랑 관계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옥으로 떨어…….”

휘익!

우성범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목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감촉 때문이었다.

경일이 휘두른 검이 우성범의 목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설마…….”

우성범이 급하게 손바닥으로 목을 감쌌다.

그와 함께 손에 축축한 느낌이 배어들었다.

“이런 미친 개새…….”

쿠킹 포일처럼 얼굴이 구겨진 우성범이 경일을 향해 욕을 하려다 다급하게 입을 닫았다.

그의 몸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살기를 본 것이었다.

조금만 더 경일을 자극하다가는 진짜 자신의 목이 달아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제아무리 재벌 2세라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 그를 자극하는 건 바보짓이었다.

“잠, 잠깐만!”

“…….”

우성범이 얼른 표정을 바꾸고 남은 한 손을 앞으로 내밀며 경일을 말렸다.

“우리가 이럴 필요 없잖아. 이게 사소한 오해가 쌓인 거 같아. 그래서 김 사장이 흥분한 모양인데, 좋게 말로 풀자고. 내 잘못도 있으니 충분히 보상하도록 하겠어. 아니, 보상을 넘어 나와 동업을 맺는 건 어때?”

그는 은근한 목소리로 경일에게 수작을 걸어왔다.

“단순히 물건만 넘기는 것이 아니라 김 사장이 직접 회사를 운영해 보는 거지. 이미 회사도 차려져 있으니, 김 사장은 내일이라도 출근하기만 하면 돼. 산동네의 분식점 사장보다는 큰 회사 사장님이 훨씬 괜찮지 않겠어?”

경일의 생각은 묻지도 않은 채 자기 할 말만 내뱉는 우성범이었다.

하지만 경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차가운 눈동자로.

이에 우성범은 다급히 말을 이었다.

“김 사장은 그저 지시만 내리면 돼. 그럼 아랫것들이 다 알아서 할 거야. 김 사장처럼 능력 있는 사람이 이런 삶을 살면 안 되지. 그러니 그 칼은 내려놓고 앞으로 서로 좋은 관계를 이어 가자고. 내가 뒤에 있으면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김 사장을 건들지 못할 거야. 대한민국은 돈만 있으면 정말 살기 좋은 나라거든.”

우성범은 목이 타는지 입술을 한 차례 혀로 핥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헌터? 좋지. 하지만 아무리 고렙 헌터라고 해도 대한민국을 꽉 잡은 권력자들에겐 무리일 수밖에 없어. 이제부턴 더러운 몬스터랑 싸울 필요도 없이 돈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을 거라고.”

사실 경일은 좀 어안이 벙벙해 잠깐 머리가 멍해진 것이었다.

우성범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길래 이런 분위기에서도 이런 말을 이리도 쉽게 뱉을 수 있는지.

지금까지 얼마나 세상을 쉽게 살아왔으면 이런 같잖은 말에 상대가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이거, 왠지 갈수록 기분이 나빠지는데.’

경일의 눈초리가 싸늘하게 굳어 갔다.

이런 그의 분위기도 눈치채지 못하고 우성범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의 상류층으로 입성하는 거지. 우리에겐 법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해. 죄를 지어도 기소조차 되지 않는다고. 내가 보통에 경우에는 절대 이런 조건으로 거래를 하지 않아. 하지만 김 사장도 고생을 많이 했으니 이번에만 특별히 이런 조건을 내미는 거야. 그러니 김 사장은 내 손만 잡으면 돼. 그럼 또 다른 세상이 열리는 거야!”

개소리도 한계를 넘으니 새롭고 놀라울 지경이었다.

어이가 없어 가만히 있던 경일의 모습을 긍정의 신호로 생각한 우성범은 자신감을 얻은 듯 그의 목소리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김 사장은 물건만 공급하면 돼. 김 사장의 물건이야 이미 증명이 된 거고. 그럼 우리는 순식간에 대한민국 포션과 무기 시장을 정복할 수 있을 거야. 생각해 봐. 얼마나 큰돈이 들어올지. 가만히 앉아서 떼돈을 버는 거야. 내 말은 충분히 알아들었겠지? 그러니 그 칼은 그만 치우고 앞으로 서로 친하게 지내자고. 날 믿고 따라오면 내가 천국을 보여 주지.”

우성범은 열렬한 연설을 끝낸 듯한 뿌듯한 얼굴이었다.

이 정도 조건이면 당연히 경일이 넘어오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경일의 태도는 처음과 같이 전혀 변화가 없었다.

“어, 어, 어…….”

우성범은 당황한 듯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하하하! 이거 내가 너무 내 말만 했군. 김 사장 의견도 들어야 하는데 말이야. 무슨 조건이든 다 들어줄 테니 편하게 얘기해 봐.”

우성범은 당장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갖은 수작을 다 부리고 있었다.

경일을 바라보는 자신감 넘치던 그의 두 눈은 하소연으로 바뀌어 있을 정도였다.

애초에 경일은 우성범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아니, 우성범이라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조금도 없었다.

이기적이고 다른 사람을 깔아뭉개고 자신이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그 모습이 너무 꼴 보기 싫었다.

뭐, 어찌 보면 어렵게 살아온 것에 대한 자격지심일 수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우성범은 양쪽 입꼬리를 올려 사람 웃는 표정의 좋은 인상을 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떨리는 눈과 상반되는 입꼬리 덕분에 더욱 기괴하게 보일 뿐이었다.

벌어진 입 사이론 전등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이빨이 보였다.

그 교활한 표정을 보자 경일은 속에서 구역질이 치솟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사회를 이끌어 가는 기득권 인사 중에는 이런 자가 득실득실할 것이다.

“이제 개소리 다 씨불였나? 우리라고?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개새끼가 사람 보고 못 하는 말이 없어. 그리고 넌 내가 바보로 보이냐? 내가 미쳤다고 너 같은 놈이랑 동업을 하겠어? 그리고 난 너 같은 게 없어도 이 세상을 다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어. 그리고 네가 아는 세상 따위는 내가 아는 세상에 비하면 발가락의 때만도 못해. 너 같은 건 내 눈에는 한낮 먼지보다 못한 놈이라고. 알겠어?”

이미 손윤찬이 최고의 재료로 최고의 포션을 만들고 있었다.

비록 지구에 유통이 되고 있지 않을 뿐, 경일이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대한민국 포션 시장, 아니, 전 세계 포션 시장을 평정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인류의 운명을 걸고 싸우고 있는 경일에게 우성범의 제의는 지나가는 개가 짖는 소리보다 못할 수밖에 없었다.

“내, 내가 한 말을 잘 생각해 봐. 이건 엄청난 기회야. 넌 정말 운이 좋아 이런 기회를 맞은 거야. 네가 기분 나쁜 건 이해를 하지만, 순간의 감정에 빠져 일을 그르치지 말고 이제 그만 내 손을 잡으라고. 이건 내가 주는 마지막 기회야.”

우성범이 경일을 미친놈 보듯 바라봤다.

그의 말을 이해 못 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는 얼른 표정을 바꾸고 검을 들고 있는 경일을 달랬다.

“미친놈. 부모 잘 만난 거 빼고 아무것도 없는 놈이, 주제도 모르고 더럽게 설쳐 대네. 하도 어이없는 새끼라 내가 예전 기사를 한 번 찾아봤지. 이거, 개차반이 따로 없더군. 공부도 못해. 부모 돈으로 기부 입학한 것도 모자라 유학 가서 졸업도 제대로 못 했다면서?”

경일이 어이없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술에, 약에 그것도 모자라 상습 음주 운전에. 맡은 일은 전부 말아먹고 그러다 동생한테 후계자 자리 뺏기고. 나 같은면 쪽팔려서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었어. 그런 놈이 나를 죽이려는 것도 모자라 동생까지 죽이려 하고. 사회의 해충 같은 새끼가 주둥이만 살아가지고.”

“뭐라고? 이런 개새끼가!”

경일이 아예 대놓고 신랄하게 비난하자 우성범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어느새 그를 꼬실 때의 사람 좋은 얼굴은 사라지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경일의 말 중에는 그의 부모가 늘 자신을 책망하며 하는 말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성범은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후벼 파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는 결국 치밀어 오르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눈이 뒤집혀 경일에게 달려들었다.

“흥!”

경일은 비웃음을 흘리며 그의 주먹을 가볍게 피하며 가슴을 손으로 밀어 버렸다.

가벼운 동작이었지만 우성범은 날듯이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내가 네놈을 가만히 둘 거 같냐?”

우성범이 바닥에서 일어서며 악이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 같이 정신 못 차리는 놈은 몽둥이가 약이지.”

경일은 바람같이 움직여 매타작을 시작했다.

퍽, 퍽, 퍽, 퍽, 퍽!

“아아악!”

“악!”

“살려 줘. 살려 줘. 내가 잘못했어!”

우성범은 경일의 매질에 한심하리만큼 너무 싶게 꼬리를 말았다.

조금 전 미친놈처럼 분해서 소리치던 놈이 맞는지 순간 헷갈릴 정도였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아, 정말 피곤한 새끼네.”

경일이 징그러운 것을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먹고 살려고 이런 놈에게 머리를 숙여야 했을 사람들이 불쌍할 지경이네.”

경일은 우성범이 기절하지 않게 적당히 힘 조절을 하며 계속해서 때렸다.

“형님, 엉엉, 그만 때려요. 내가 돈으로 보상할게요. 잘못했어요.”

급기야 형님 소리까지 하면 비는 우성범이었다.

경일은 그런 우성범의 모습이 더 역겨웠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우성범의 타고난 운은 이제 끝이 났다.

그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 그리고 핏물로 범벅이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한없이 올라갔던 눈초리는 울상이 되어 있었고, 몽둥이를 보고서 무섭도록 떨어 댔다.

“너 같은 놈은 앞으로의 싸움에 전혀 도움이 될 거 같지 않으니, 내가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정말 열심히 일해서 지구가 몬스터를 몰아내는데 밀알이 되도록. 그럼 잘 가라.”

우성범은 몸이 너무 아파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경일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저게 무슨 개소리야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의 몸이 사라져 갔다.

“이, 이게 뭐야? 살, 살려 줘!”

그는 다급하게 경일을 향해 빌었다.

하지만 경일은 그런 그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지구에서 떠나가는 우성범에게 보인 경일의 저 표정은 어떤 의미로든 오랜 기간 그의 뇌리에 남을 것이다.

.

.

.

우해수가 정신을 차린 건, 던전을 나오고 사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상처가 워낙 심해 그녀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던전을 나왔다.

그녀는 병실의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던전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 자신을 찌른 강상우였다.

“개새끼.”

그녀와 어울리지 않은 단어가 튀어나왔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눈이 새파랗게 불이 나고 살갗이 파르르 떨렸다.

“해성 길드가 지금껏 얼마나 잘해 줬는데, 은혜도 모르고 그딴 짓을 벌이다니.”

해성 그룹의 전폭적인 지지로 성장한 해성 길드는 규모는 컸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규모에 비해 내세울 만한 헌터가 없던 것이다.

기존의 고레벨 헌터들은 자신이 직접 길드를 세우거나, 다른 곳과 계약이 되어 있어 빼내 오는 게 쉽지 않았다.

헌터 한 명 스카우트해 오는 거야 해성 길드의 규모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헌터가 속해 있는 길드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다른 대형 길드에 비해 역사가 짧은 해성 길드가 다른 길드와 척을 지면서까지 헌터를 스카우트해 오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해성 길드가 선택한 건 육성이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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