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연구소의 바퀴벌레
대한민국 처음으로 도제식이 아닌 협력을 모토로 하는 포션 연구소.
연금술사들의 노동을 착취하지 않고, 능력에 맞는 합리적인 대우를 하는 포션 연구소.
고가의 재료로도 자유롭게 포션의 연구가 가능한 포션 연구소.
연금술사들은 누구나 손윤찬의 포션 연구소에 들어오고 싶어 했다.
손윤찬은 자신이 겪은 악습을 계승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로지 포션 연구소의 주인만을 살찌우고, 포션 개발의 저하를 가져오는 지금의 시스템을 깨고 싶었다.
경일은 당연히 손윤찬의 의견을 존중했고, 그에게 전권을 위임함으로써 날개를 달아 주었다.
손윤찬은 말 그대로 날아올랐다.
경일의 레시피를 받아 연구를 시작한 만큼, 자신의 레시피를 공방의 연금술사들에게 아낌없이 풀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었다.
다른 포션 공방에서 허드렛일만 하던 이들인 만큼, 누구보다 연구에 목말라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손윤찬의 공방은 천국이었다.
그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밤낮을가리지 않고 연구했다.
연구 재료를 쓰는 것에 대한 제한이 없다 보니 평소 생각했던 모든 것을 시도할 수 있었다.
손윤찬은 손주아가 다른 연금술사들에게 한눈에 팔린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그녀를 두고 곧바로 자신의 연구실로 들어가 버렸다.
손주아가 황급히 손윤찬을 따라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그녀의 발걸음을 막았다.
손윤찬이 가장 먼저 뽑은 연금술사 중 한 명인 성경호였다.
“수아 씨, 차 한잔하세요.”
부드러운 성경호의 말과 달리 손주아의 얼굴엔 싫은 티가 역력했다.
그녀는 예전의 순진하던 손주아가 아니었다.
동네 분식에 취직한 뒤로 참 많은 일을 겪었다.
끊임없이 오는 손님들, 동네 아이들 경일을 노리고 오는 조폭, 그리고 헌터, 별별 사람을 다 겪은 터라 손주아도 많이 성장했고, 사람을 보는 눈이 생겼다.
그녀가 보기에 성경호는 그리 느낌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 참, 그리고 제가 밥 한 번 먹자고 했잖아요. 왜 자꾸 전화를 안 받아요.”
손주아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쯤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계속 치근덕거렸다.
손주아는 그의 눈에 떠올라 있는 우월감을 보았다.
자신은 그보다 못한 존재였고, 가볍게 가지고 놀 수 있다는 느낌을 풀풀 풍겼다.
성경호가 처음부터 손주아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다.
그도 손윤찬과 같이 기존 연금술사들 밑에서 영혼을 갈리고 있었다.
언젠가는 레시피를 알려 주고 독립시켜 주겠다는 달콤한 말에 속아 하인처럼 부림을 당했다.
하지만 그건 기약 없는 기다림이고,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와중에 운 좋게 손윤찬의 포션 연구소에 들어올 수 있었다.
성경호와 같이 기존의 카르텔에 속하지 못한 연금술사에게 이곳은 천국이었다.
손윤찬은 자신이 연구한 것을 모든 이에게 공유했고, 그 비싼 던전 고유 식물까지 마음껏 받아 연구할 수 있었다.
포션 연구는 최적의 재료와 조합을 찾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던전 고유 식물을 단독으로 쓸 때보다 다른 어떤 것을 섞음으로써 그 효능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마나 포션의 주재료인 커미네스만 먹었을 때보다 커미네스와 다른 재료를 섞어 포션으로 만들었을 때, 그 효과가 배가 되었다.
더군다나 지구의 재료뿐만 아니라 던전의 재료까지 이용할 수 있으니, 그 효과는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중 가장 백미는 기존의 마나 포션의 주재료인 커미네스보다 마나 공급량이 두 배나 많은 키아노티의 출현이었다.
키아노티로 만든 마나 포션은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연금술사가 만든 마나 포션보다 몇 배나 더 뛰어난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성경호는 손윤찬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빠르게 발전해 나갔다.
그럴수록 그는 올챙이 때의 모습을 잃어 갔다.
마치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처럼 달라진 모습이었다.
성경호는 자신의 연구 실적은 숨긴 채 포션 연구소의 혜택을 이용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앞날에는 꽃길만이 펼쳐져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그런 만큼 처음과 다르게 이제 손윤찬의 딸도 하찮게 보인 것이다.
그에게 손주아는 기껏해야 얼굴이 반반한 분식점 직원일 뿐이었다.
“그쪽이랑 밥 먹을 생각 없거든요. 그러니 전화하지 마세요.”
손주아는 쌀쌀맞게 말하곤 곧바로 그에게 등을 돌려 손윤찬의 연구실로 들어가 버렸다.
‘아 씨, 기분 나빠. 처음에는 안 그러더니 요즘 들어 부쩍 수작을 부리네. 아빠나 사장님한테 일러 버릴까 보다. 어휴~’
처음 포션 연구소가 생기고 가장 기뻐한 게 손주아였다.
순윤찬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포션 연구에 매진하는 그를 챙기기 위해 매일 포션 연구소에 드나들었다.
그런 손주아의 발걸음이 멀어지게 한 게 성경호였다.
성경호는 손주아가 들어간 손윤찬의 연구실을 노려봤다.
“썅, 기껏해야 반반한 거 빼곤 아무것도 없는 년이 나를 이런 식으로 무시했다는 거지? 후회하게 해 주겠어.”
그의 눈빛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다음 날, 성경호는 손윤찬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하얀 봉투에 쌓인 사표를 받아 들고도 손윤찬은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성경호는 의아했다.
공방의 여러 레시피를 알고 있는 자신을 분명 잡을 거라 생각했는데, 손윤찬은 오히려 곧바로 사표를 수리했다.
‘뭐, 깔끔히 놓아준다면 나야 좋지. 크크크크, 바보 같은 당신 덕분에 내 인생에 꽃길이 깔린 건 감사하지. 덕분에 나도 남은 인생은 큰소리치고 살 수 있게 됐다고.’
성경호는 곧바로 개인 짐을 챙겨 나가 버렸다.
그는 곧바로 큰 빚을 내 자신만의 포션 연구소를 차렸다.
공방의 여러 레시피를 이용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낸 그는 거칠 게 없었다.
포션 연구소를 차리는 동안, 하루하루가 행복해 미칠 지경이었다.
‘살다 살다 그런 호구 놈은 처음 봤어. 내가 크게 성공한 모습을 보면 배가 많이 아플 거야. 특히, 그년은 나에게 쌀쌀맞게 대한 걸 크게 후회하겠지.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다고. 킥킥킥.’
손윤찬의 포션 연구소에 들어올 때는 누구보다도 기존의 연금술사 사회의 불합리에 그토록 성토하던 이가 뒤에서는 똑같이 행동했다.
사실 경일과 손윤찬은 이런 일이 있을 거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 예상 못 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세 살짜리 아이도 성경호와 같은 행동을 하는 이가 분명 나올 거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경호를 한심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성경호는 쫄딱 망했다.
분명 뛰어난 레시피를 알고 있는 것은 맞으나, 그가 만든 포션은 형편없는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오히려 던전 고유 식물을 직접 먹는 거보다 못한 효능이었다.
금을 가지고 똥으로 만든 것과도 같았다.
그는 미칠 거 같았다.
거액의 빚을 내서 포션 연구소를 차렸는데, 성과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포션을 만들 때마다 빛이 쌓여 갔다.
하지만 성경호는 포기가 되지 않았다.
분명 손윤찬의 포션 연구소에서는 몇 번을 만들어도 모두 성공하지 않았는가.
눈앞에 달콤한 성공의 과실이 있는데, 이게 잡히지 않으니 더욱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포기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더 이상 포션을 만들 재료를 수급할 돈이 없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몰랐지만, 손윤찬이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포션 레시피에는 경일의 던전에서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하나 이상 꼭 들어가 있었다.
그런 만큼, 그 레시피는 손윤찬 공방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니 성경호의 실패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그런 그가 다시 찾은 곳은 바로 손윤찬의 포션 연구소였다.
“수석 연구원님,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하.”
성경호는 비굴하게 웃으며 가지고 온 음료수를 내밀었다.
지금까지 높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동료들에게 커피 한잔 산 적이 없던 그였다.
손윤찬의 얼굴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래, 무슨 일이야?”
손윤찬의 말에 날이 서 있었다.
늘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그의 모습만 봐 왔던 터라, 성경호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아, 네. 다시 출근하려고요.”
그는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지만, 손윤찬이 당연히 자신을 받아 줄 거라 생각했다.
그의 뇌리에 손윤찬은 호구라고 단단히 박혀 있었으니.
이래서 선입견이 무서운 거였다.
손윤찬의 얼굴에 쓴웃음이 더 진해졌다.
성경호의 당당한 행동에 자신의 삶이 부정당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겨우 이런 꼴을 당하자고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한 게 아닌데.
남에게 싫은 소리 안 하고 진심으로 대하려고 노력했는데,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자신을 너무 쉽게 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곧 그 생각을 떨쳐 버렸다.
자신의 진심 덕에 좋은 사람을 훨씬 더 많이 만났다.
경일이 자신을 믿어 준 것도 바로 이런 모습 때문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성경호 같은 벌레 한 마리 때문에 자신이 변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꼴 보기 싫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왜? 누가 다시 받아 준대?”
손윤찬의 굳은 표정만큼, 그의 대답은 쌀쌀맞았다.
아무리 바보라도 손윤찬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을 만큼, 그의 말은 서늘했다.
“…네?”
자신의 생각과 너무 다른 손윤찬의 태도에 성경호가 당황했다.
“아니, 그게… 제가 누구보다 여기서 열심히 일했고, 실력도 뛰어나지 않습니까?”
손윤찬의 성경호의 말에 짜증이 확 솟구쳤다.
경일이 자신의 은인이듯 성경호의 은인은 자신이었다.
지금까지 성경호처럼 독립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있었다.
손윤찬은 굳이 그들을 잡지 않았다.
그들 중 손윤찬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계속 인연을 이어 가려는 이들에게는 조건 없이 도와주었다.
이건 경일의 뜻이기도 했다.
좋은 포션이 시중에 깔리는 것은, 크게 보면 헌터들의 전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성경호와 같이 자신의 영달만을 생각하는 이는 한 번도 도와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가장 황당한 건, 뻔뻔하게 다시 받아 달라는 성경호의 태도였다.
모두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다시 받아 달라고 찾아온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얼마나 얼굴이 두꺼우면 저런 짓이 가능한지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흥! 여기가 당신 마음대로 나갔다 들어올 수 있는 곳인 줄 알아요? 그리고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를 거라 생각했어요? 정말 뻔뻔하네. 여기서 연구한 성과를 빼돌린 것도 모자라 다시 찾아오다니. 그러니 쫄딱 망하지.”
성경호는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가시 돋친 말에 깜짝 놀랐다.
그의 뒤에는 언제 왔는지 모를 손주아가 서 있었다.
성경호가 나가고 가장 기뻐한 게 바로 그녀였다.
그가 나간 뒤, 손주아는 편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챙기러 매일 이곳에 들를 수 있었다.
오늘도 그렇게 분식점에서 만든 음식을 가지고 왔는데 성경호와 마주친 것이었다.
연금술사의 사회는 좁았다.
성경호가 밖에서 따로 자신의 연구소를 차린 것이 소문이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쫄딱 망한 것도.
이곳의 있는 연금술사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무 상관이 없는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이야기에 끼어드는 거야?”
손주아의 가시 돋친 말에 무안해진 성경호가 택한 방법은 더욱 큰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방귀 뀐 이가 화낸다더니, 지금이 딱 그 짝이었다.
성경호도 헌터인 만큼, 그가 내뿜는 살기를 일반인이, 그것도 여자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퍼억!
그 순간, 성경호는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강한 충격에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순간 골이 흔들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