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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42화 (242/300)

[242화] 기적의 음료

“이런, 썅! 감히 어떤 새끼가……?”

이곳에서 고참 격인 성경호는 손윤찬을 빼고 두려울 존재가 없었다.

아니, 손윤차도 호구로 보고 있었으니 이곳에서 그가 두려워할 존재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의 안하무인격 행동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수밖에.

“나다, 씹새끼야..”

성경호의 뒤통수를 때린 건 경일이었다.

손주아가 큰소리를 칠 수 있던 이유이기도 했고.

경일은 손주아와 같이 연구소로 왔고, 잠시 전화를 받는다고 그녀보다 조금 늦게 들어온 것이었다.

그녀는 경일을 믿고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고 신랄하게 따지고 든 것이었다.

“헉!”

성경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경일의 일그러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가 매우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 절로 느껴질 정도였다.

성경호는 가슴이 써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손윤찬의 뒤에는 경일이 있다는 것을 자신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주 가끔 경일이 이곳에 찾아온 적도 있었고, 손윤찬이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감히, 어디서 큰소리야! 은혜도 모르는 새끼가 말이야. 네놈이 낸 성과는 법적으로도 당연히 연구소의 소유야. 그런데 넌 사익을 위해 연구 성과를 숨겼지. 우리가 그걸 모를 줄 알았어, 이 범죄자 새끼야? 그런 놈이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다시 찾아와?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어?”

경일이 성경호의 뒷덜미를 잡고 연구소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성경호는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 했지만, 마치 쇠사슬에 묶인 듯 꼼작도 하기 힘들었다.

“꺼져!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면 가만두지 않을 테다.”

경일은 성경호를 땅바닥을 패대기쳐 버렸다.

"죄, 죄, 죄송합니다."

새파랗게 질린 성경호는 기다시피해서 연구소를 떠났다.

그는 연구소가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자 분노를 한껏 표출했다.

“개 썅! 감히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해? 너희는 사람 잘못 건드렸어. 어차피 난 인생 끝났어. 인생 막장인 놈이 눈이 돌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주지. 특히 손주아, 네년은 내가 절대 가만히 두지 않겠어!”

거친 숨결을 내뱉는 성경호의 눈이 지독한 살기를 담은 채 번뜩였다.

막대한 빚을 진 그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었다.

손윤찬의 포션 연구소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상, 다시 재기할 방법 따윈 없었다.

“하여간, 어떻게 쓰레기들은 다들 이렇게 이기적인 건지. 잘못한 게 누군데. 하~ 진짜 짜증 나는 놈이네.”

갑작스레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성경호가 화들짝 놀라 뒤돌아보자, 그곳에는 경일이 서 있었다.

가만 먼저 든 생각은 ‘어떻게?’였다.

분명 포션 .연구소에서 다시 들어가고 나오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아무런 기척도 없이 귀신처럼 나타났다.

“혹시나 해서 와 봤더니 잘했네. 내가 너 같은 놈들을 많이 겪어서 말이야. 아주 감이 좋아.”

경일이 성경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나직이 경고하듯 내뱉은 목소리는 그의 분노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했고, 그래서 더 소름이 돋았다.

“잠깐, 잠깐만요.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잠시만 제 말을 들어주세요.”

성경호는 겁을 먹은 듯 눈을 질끈 감고는 애원하듯 말했다.

조금 전 뒷덜미를 잡혔을 때 간접적이나마 경일의 강함을 느낀 터라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 쓰레기 새끼는 비겁하기까지 하네. 조금 전에 자기 입으로 한 말을 불리할 거 같으니 곧바로 뒤집고 말이야. 어휴, 나 같으면 쪽팔려서 얼굴도 못 들겠다.”

경멸이 가득한 경일의 말에 참지 못한 성경호가 발끈했다.

“난 이제 포션 연구소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 나한테 이럴 순 없어.”

“하, 웃기는 놈이네. 넌 연구소 사람이 아니라서 다른 사람을 테러하려고 했냐?”

“내가 실제로 한 건 아니잖아! 생각만 했을 뿐이야. 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서, 짜증이 나서 그냥 나온 말이야. 그건 죄가 되지 않아. 그러니 이러지 말자고.”

“흥! 입만 산 새끼. 상황에 따라 요리조리 말은 잘하는군. 뻔히 네놈이 할 짓이 보이는데 부정하다니, 스스로에게 창피하지도 않아? 아니지, 부끄러운 걸 아는 놈이면 애초에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

경일이 정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좋아. 네 말대로 아직 실행을 안 했으니 죄가 없다고 치고, 연구소 레시피를 빼돌린 건 벌을 받아야지.”

“개 썅,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야? 다 지나간 일을 지금 꺼내는 거야? 말을 하려면 내가 나갈 때 이야기했어야지.”

“하~ 이거 도저히 대화가 안 되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그냥 꺼…….”

경일이 폭력을 쓰지 않고 계속 대화를 이어가자 기가 산 성경호는 조금 전과 다르게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그의 큰소리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경일이 그의 허벅지를 사정없이 걷어차 버린 것이다.

“허~억!”

허벅지에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성경호는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의 공격이라 그 고통은 배가 됐다.

그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허벅지를 감싸 안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눈물과 콧물에 이어 벌어진 입에서 침이 질질 흘러 나왔다.

“으으으으으…….”

너무 아파 신음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너 계속 엄살떨면 한 대 더 맞는다.”

“엄, 엄살이 아니야.”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와 함께 성경호의 몸이 옅어졌다.

경일은 다른 때와 달리 광산으로 사라져 가는 성경호를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봤다.

호의를 배신으로 갚고, 가족 같은 손주아를 노린 점은 쉽게 용서가 되지 않았다.

.

.

.

손윤찬의 공방은 돈이 되는 포션만을 연구하지 않았다.

경일의 지시로 기존의 연금술사들이 연구하지 않은 던전병 치료 포션도 꾸준히 개발하고 있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던전병을 치료할 때 드는 기존의 식물 양보다 훨씬 더 적은 양으로 몇 배나 뛰어난 약성을 가진 던전병 치료 포션을 개발하는 데에 성공했다.

경일은 즉시 인터넷으로 믿기 힘들 정도로 싼 가격에 판매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너무 싼 가격에 효과는 몇 배나 더 높으니 사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정이 급한 누군가가 구매해 효과를 보았고, 급속도로 입소문이 퍼져 나갔다.

이건 던전병 환자에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던전병 치료 포션이 개발된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이익을 전혀 추구하지 않고 나누어 준 누군가를 가슴 깊이 칭송했다.

경일이 던전의 주인이 되고, 여러 사람과 좋은 인연을 맺고, 그 선순환으로 많은 사람이 던전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던전의 영향력이 처음으로 지구에 발휘된 일이기도 했다.

암던보다 활동이 늦었지만, 경일은 이번에 확실한 한 발짝을 뗐다.

경일은 무엇보다도 여러 사람의 힘이 합쳐진 결과라는 것이 기뻤다.

혼자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던전 치료 포션 못지않게 화제를 끌고 있는 또 다른 게 있었으니.

기적의 음료라고 불리는 마운틴 펀치의 등장이었다.

TV는 순식간에 마운틴 펀치의 광고로 점령당했다.

기존의 음료수에선 볼 수 없는 새로운 맛의 등장과 더불어 이 음료는 효능까지 뛰어났다.

각성 효과가 있어 피로를 덜어 주고 집중력이 좋아져 학생들에겐 공부를, 직장인들에게 작업 능률을 증가시켜 주었다.

그 흔한 부작용까지 없어 사람들은 마운틴 펀치를 물처럼 마셔 댔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 부동의 1위인 커피를 단기간에 제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기 일보 직전인 것이다.

오늘도 분식점 앞은 시끌벅적했다.

떡볶이를 먹으러 아이들과 네로와 놀기 위해 온 아이들까지 합쳐져 시장바닥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네로야, 손 줘 봐.”

아이 한 명이 네로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네로는 시큰둥하게 쳐다보고는 곧 고개를 돌려 버렸다.

하지만 이 모습이 익숙한 듯 아이는 실망하지 않았다.

“네로야~ 이것 봐라. 아빠가 나 먹으라고 준 과자야. 손 주면 이거 줄게.”

그제야 네로가 느릿하게 움직이더니, 아이의 손바닥에 손을 살포시 올렸다 뗐다.

짧은 터치였지만, 아이의 얼굴엔 커다란 웃음이 걸렸다.

“우와! 봤어? 봤어? 네로가 방금 한 거?”

아이의 우쭐거림에 다른 아이들이 부러운 듯 바라봤다.

그러자 또 다른 아이 한 명이 캔 음료를 하나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아이들의 입에서 ‘와!’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던 네로도 아이들의 함성에 호기심이 생긴 듯 아이가 들고 있는 캔을 쳐다보았다.

요쯤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음료인 마운틴 펀치였다.

“와! 마운틴 펀치다! 저거 구하기 정말 힘들다던데.”

“맞아. 나도 아침 일찍 슈퍼에 갔는데도 다 팔리고 없었어.”

“정말 부럽다. 나도 한 번 마셔 보고 싶은데….살 수가 없어.”

대한민국은 한마디로 마운틴 펀치 붐이었다.

얼마나 잘 팔리는지 공급량이 수요를 못 따라잡고 있었다.

“네로야, 이거 정말 구하기 힘든 거야. 한 번만 안게 해 주면 이거 줄게.”

네로가 호기심에 느릿하게 일어나 아이에게 다가갔다.

이건 허락의 표시였다.

아이의 얼굴에 커다란 웃음이 걸렸다.

어떻게 동네 아이들을 이렇게 교육시킨 건지, 참으로 던전 수호신다운 모습이었다.

아이가 조심히 네로를 들어 안자, 다른 아이들이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와! 네로는 냄새도 너무 좋아.”

아이는 즐거운 듯 함박웃음을 지으며 볼을 네로의 몸에 비볐다.

네로는 처음 한두 번은 받아 주다가 시간이 다 됐다는 듯이 아이의 품을 빠져나와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 시간이 너무 짧아.”

아이는 아쉬운 듯 네로를 한 번 보고는 물그릇의 물을 버리고 마운틴 펀치를 부었다.

네로가 천천히 일어나 마운틴 펀치를 맛봤다.

그 순간, 네로의 귀여운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 * *

며칠간 내린 비는 거짓말처럼 그쳤다.

비 때문에 축축해진 바닥에서 흙냄새가 올라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바닥에 달라붙는 진흙에 다리가 무거웠다.

쨍한 햇빛에 노출된 피부는 뜨거웠으며, 몹시 덥고 습한 날씨였다.

아침이 조금 지난 시간, 알리사의 우르비노 언덕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자포리자를 위시한 스탄다비아의 군대였다.

완전 무장을 갖춘 그들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반대편에 프라인과 아드리온 연합군이 나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언덕의 양쪽 끝을 차지하고, 서로의 군대가 대열을 맞춰 대치했다.

스탄다비아의 군대는 400명 정도인 반면, 프라인과 아드리온 연합군은 못 해도 이천은 넘어 보였다.

프라인과 아드리온 연합군의 중간 지점에 쳐진 천막에는 웃음소리로 떠들썩했다.

“하하하하하하!”

패드래건 백작이 스탄다비아 군대를 보고선 폭소를 터뜨렸다.

“이거 완전 미친놈이군. 스벤슨 자작의 목을 베고 역으로 영지전을 신청하길래 뭔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고작 저 정도 병력으로 싸움을 걸어왔단 말이지.”

“그러게요. 저도 자포리자가 대단한 수를 숨겨 놓은 줄 알았습니다만, 겨우 저런 놈한테 조금이나마 마음을 졸이다니. 이거, 스스로가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게렉스 백작도 어이가 없는 얼굴이었다.

“그러게 말이야. 이거, 착실하게 준비한 우리를 우습게 만드는군. 괜히 돈만 날렸어. 하여간 정말 짜증 나는 놈이라니까. 또 질기기는 얼마나 질긴지. 영지만 옮기지 않았어도 벌써 목을 벴을 텐데. 영지를 옮기는 걸 마을 옮기듯이 해버리니, 나 원 참.”

“오늘로써 이제 더 이상 저놈 얼굴을 안 봐도 되니 그나마 다행이지 않겠습니까? 이제 백작님이나, 저나 두 발 뻗고 잘 일만 남았습니다. 앞으로 비누와 염색 기술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일지 벌써 기분이 좋아집니다. 듣자 하니 저놈이 벌어들인 수익이 계산이 안 될 정도랍니다. 스탄다비아는 개도 골드를 물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패드래건은 게렉스의 말에 순간, 골드 속에서 헤엄 치는 자신을 상상하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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