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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47화 (247/300)

[247화] 소드마스터의 위상

창을 피해 멈춘다고 해도 뒤에서 달려오는 병사들에 의해 앞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경우 진열의 맨 앞줄은 창에 찔려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런 위험한 자리를 자포리자가 맡았다.

이미 몇 차례 이런 상황을 경험해 본 자포리자의 눈에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었다.

그의 키만큼 거대한 롱소드가 마나를 받아들여 찬란한 오러의 빛을 내뿜었다.

그 빛은 프라인과 아드리온 연합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순간이었다.

연합군이 세운 방패 벽 뒤에서 한 사내가 날듯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번쩍 든 사내의 두 손에는 불타는 커다란 구체가 들려 있었다.

전투 마법사의 등장이었다.

순간, 자포리자의 눈에 이채가 실리고 병사들의 당황스러운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자포리자는 물론 스탄다비아 병사들은 아직 전투 마법사의 실체를 경험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이 쓰는 마법을 소문으로 들었고, 소문은 당연하게도 구르는 눈덩이처럼 그 살을 불려서 전달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미 병사들의 마음에는 전투 마법사에 대한 거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전투 마법사는 정체는 바로 패드래건 아들 리암 로우 였다.

그가 어려서부터 마법의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서는 패드래건은 곧바로 마탑으로 보내 그를 마법사로 키웠다.

패드래건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그는 남들보다 빠른 성장을 보여 20대의 나이에 무려 5써클의 전투 마법사가 될 수 있었다.

패드래건이 중앙 정계로 나가려고 노력한 이유도 리암 때문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고 해도 변방의 백작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재능이 넘치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정계 진출을 택했다.

20대에 5써클의 전투 마법사로 오른 아들이기에, 이대로만 성장해 준다면 왕국 역사에 남을 대마법사도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패드래건은 자신의 인생을 아들에게 걸었다.

자신의 아들이 왕국의 변방에서 잊혀 가는 보잘것없는 로우 가문을 일으킬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 귀한 아들을 영지전에 참여시킬 만큼 패드래건은 절박한 상황이었다.

이미 프라인 영지는 재기 불능의 상태였고, 스탄다비아를 먹지 못하면 이대로 무너질 판이었다.

지금 자신이 무너진다면 천재 마법사인 아들의 미래도 사라질 게 뻔했기에 그는 필사적으로 영지전을 준비했다.

리암의 손에 들린 불의 구체가 점점 크기를 더해 갔다.

크기가 커질수록 주변의 공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고, 불의 구체를 바라보는 스탄다비아 병사들의 눈 또한 커졌다.

“헬파이어.”

리암의 입에서 시동어가 나오고, 더 이상 컨트롤 하는 것이 힘들 만큼 커져 버린 이글거리는 불덩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 자포리자에게 쏘아져 갔다.

헬파이어는 단 한 방에 스탄다비아 군대를 모두 삼켜 버릴 수 있을 거 같은 엄청난 힘을 발산했다.

리암은 자신이 쓴 마법이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채 헬파이어가 펼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헬파이어를 본 순간, 자포리자의 눈에서 강렬한 빛이 쏘아져 나왔다.

그는 강하게 땅을 박차며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본대와 거리를 벌렸고, 뜨거워진 공기가 그의 얼굴을 자극했으나 달리는 속도는 오히려 더 빨라졌다.

자포리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뜨거운 헬파이어 향해 날듯이 뛰어올랐다.

그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마나가 검에 유입되고, 그의 갑옷에 깃들어 뜨거운 열기로부터 그를 보호했다.

그리고 오러는 롱소드를 덮는 것은 물론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검 끝을 뚫고 나와 순수 오러로만 이루어진 형상을 만들어 냈다.

안 그래도 긴 그의 롱소드가 더욱 길어졌다.

“소, 소, 소드마스터.”

패드래건은 온몸이 떨려 왔고, 알사탕처럼 커진 눈에는 커다란 불신이 어렸다.

아무리 그가 기사가 아니라도 지금 자포리자가 보여 준 무위가 무엇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믿고 싶지 않았다.

자포리자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헬파이어를 향해 롱소드를 내리그었다.

그와 함께 지름 2미터의 거대한 헬파이어가 그대로 갈라져 풍선의 바람이 빠지듯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헉!”

리암의 얼굴이 순식간에 경악으로 바뀌었다.

설마 자신의 마법을 벨 수 있는 기사가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너무 완벽히 파훼당해서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였다.

벌떡!

패드래건은 사색이 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들이 마법사인 만큼 그도 마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고, 지금 자포리자가 펼친 무위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았다.

그리고 뭔가가 크게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게렉스 역시 사색이 된 건 마찬가지였다.

설마 천재 마법사로 알려진 패드래건의 아들까지 동원됐는데, 자포리자가 이를 무력화시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자포리자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헬파이어를 쪼개 버린 그는 프라인과 아드리온 연합군이 새운 방패 벽을 향해 달렸다.

“모두 영주님의 뒤를 따라라!”

등 뒤로 들려오는 칼튼의 목소리에 살짝 미소를 지은 자포리자는 자신을 향해 뻗어 오는 수많은 장창을 향해 롱소드를 휘둘렀다.

일반적인 롱소드보다 훨씬 큰 그의 롱소드가 너무도 가볍게 움직였다.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검술을 닦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간결한 동작이었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그와 함께 수많은 창대가 잘려 나갔다.

장창을 내지르던 병사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갔다.

적으로 만난 자포리자는 그야 말로 괴물이었다.

이건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겁을 먹은 방패병들이 떨기 시작하자, 견고하게 세워져 있던 방패 벽 역시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적은 혼자다! 모두 힘을 합치면 가볍게 죽일 수 있다. 물러서지 말라! 기사들은 모두 나와 자포리자를 공격하라!”

연합군의 지휘를 맡은 제스턴이 병사들의 동요를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그의 명령에 두 영지의 기사들이 자포리자의 앞으로 집결했다.

거의 200명이 넘어가는 기사들이 자포리자의 앞을 막았다.

“네놈이 강한 건 인정하지만 이 모든 기사를 이길 수는 없을 터. 여기서 네 놈의 목을 끊어 주마.”

제스턴이 자포리자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와 함께 스탄다비아의 기사들도 도착해 자포리자의 뒤를 바쳤다.

50명이 넘어가는 기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빼 들고 자포리자를 중심으로 옆으로 길게 늘어섰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전투 마법사와 제스턴의 빠른 판단에 스탄다비아 군대의 돌격이 멈췄다.

“좋아. 제스턴, 저놈들의 목을 모두 베어 버려.”

계속 밀리다 처음으로 유리한 위치를 잡자 패드래건은 귀족의 체통도 잊고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다.

200명의 기사와 50명의 기사가 서로의 기세를 올리며 대치에 들어갔다.

이건 일기토와 같은 고상한 싸움이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 검이 날아올지 모르는, 한꺼번에 수십 개의 검이 자신을 노릴 수도 있는 난전이었다.

실력이 있으면 유리하긴 하겠지만 난전에서 절대적인 우위는 역시 숫자였다.

프라인과 아드리온 연합군 기사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고,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런 그들의 신경을 묘하게 긁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스탄다비아 기사들에게서 풍기는 여유였다.

‘뭐지? 저놈들은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유리했던 전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우리에게 넘어온 것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건가? 단체로 미쳐 버리기라도 한 건가?’

그 모습은 연합군 기사들을 은근히 신경 쓰이게 했다.

“칼튼.”

“네, 영주님.”

“조금 전 격렬하게 싸웠는데, 또 싸울 수 있겠나? 무리하지 말고 쉬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아닙니다, 영주님. 선인님이 보내 주신 마나 포션을 몇 병 마셨더니 벌써 마나가 차오르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싸울 수 있습니다.”

“괜히 무리하지 말게. 우리는 누구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보아하니 강자는 모두 제거된 듯한데, 남은 오합지졸 정도에 당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 믿겠네!”

칼튼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나 포션을 한 병 더 마셨다.

배 속이 마나 포션으로 출렁거릴 정도였다.

금보다 비싼 포션을 이렇게 물처럼 마실 수 있을 거라고는 평생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더 대단한 건,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효능이었다.

자신도 기사인 이상 마나 포션의 효능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건 기존의 마나 포션 100병을 합쳐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대단했다.

뱃속에서 마나 포션이 출렁이는 느낌에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열이 갖춰지고 두 세력이 부딪치기 전, 먼저 공격을 시도한 건 의외로 스탄다비아의 기사들이었다.

자포리자의 명령이 떨어지자 한 명도 남김없이 연합군의 기사 무리에 뛰어들었다.

“이런 미친!”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스탄다비아 기사들의 모습에 연합군 기사들은 혀를 찼으나, 이것이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장 먼저 연합군 기사에 뛰어든 건, 강해지는 것만이 일생의 목표인 탄두스였다.

일기토의 첫 상대에게서 자신의 열망을 다 풀지 못한 것인지, 그는 겁도 없이 높이 뛰어올라 연합군 기사의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말도 안 되는 의외의 행동에 연합군 기사가 공격을 잠시 머뭇거렸고, 그 짧은 순간 그의 운명이 결정이 났다.

탄두스는 자신을 둘러싼 모두가 적이라 검을 휘두르는데 거침이 없었다.

“으아아아악!”

“아악!”

“이런!”

“물러서!”

“제길!”

탄두스 주위의 기사들에게서 곤란한 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마치 뒤통수에도 눈이라도 있는지 사각에서 날아든 공격은 피하면서 기사들의 몸을 유린했다.

그 모습은 마침 한 마리 사자가 늑대 떼에 뛰어든 듯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였다.

애초에 병사였던 탄두스보다 강한 기사가 스탄다비아에는 많았고, 스탄다비아 기사들은 순식간에 연합군의 기사들을 죽여 나갔다.

자포리자의 롱소드가 휘둘러질 때마다 롱소드를 막은 검뿐만 아니라 기사들의 몸까지 잘려 나갔다.

이건 도저히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소드마스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소드마스터를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아아아악!”

“크윽.”

“살려 줘!”

“허억!”

들리는 모든 비명의 주인공은 연합군의 기사들이었다.

연합군 기사가 아무리 많을지라도 스탄다비아 기사들을 상대하기엔 그들의 경지는 너무 낮았다.

아무리 숫자가 많은 쪽이 유리하다곤 하지만, 이건 호랑이와 들개의 싸움이라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200명의 기사가 모두 죽어 나가는 데에는 단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피를 뒤집어쓴 스탄다비아 기사들이 미소 짓자 연합군의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의외로 가장 먼저 도망친 건 패드래건의 아들 리암이었다.

영지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곧바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다.

아버지의 부탁으로 이곳으로 올 때만 해도 가벼운 마음이었다.

스탄다비아 같은 작은 영지에 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공격 마법을 사람에게 직접 시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을 정도였다.

하지만 영지전의 결과가 자신의 예상과 정반대로 흐르자, 그는 자신의 아버지도 벼려 둔 채 곧바로 도망을 선택했다.

자신 같은 천재 마법사가 이런 허접한 곳에서 죽을 수는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자포리자가 땅바닥에 버려져 있는 주인 없는 창을 주워 던졌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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