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시작된 암던의 활동
세액!
창은 파공음을 내며 빠르게 날아가 리암의 오른쪽 허벅지 한가운데를 정확히 뚫고 지나갔다.
“으아아아악!”
뜨끔한 고통과 함께 리암은 도망가던 자세 그대로 허물어졌다.
“안 돼!”
패드래건이 비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사랑하는 아들이자, 로우 가문이 시작된 이후로 가장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리암이 창에 맞아 쓰러졌다.
“이런 찢어 죽일 놈! 뭣들 하느냐? 당장 저놈을 죽여라! 저놈의 목을 내게 가지고 오란 말이다! 내 아들에게 상처 입힌 저놈을 당장 죽이라고!”
패드래건이 애통함을 이기지 목하고 목이 터져라 병사들에게 고함을 질러 보지만 움직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무려 200명의 기사가 일방적으로 죽어 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봤는데 일개 병사가 어떻게 덤비겠는가.
말도 되지 않는 명령이었다.
“무기를 버려라! 무기를 버리는 자는 목숨을 살려 주겠다. 우리의 목표는 간악한 패드래건과 게렉스의 일족뿐이다. 모두 무릎을 꿇어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프라인과 아드리온 병사들에게 자포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터져 나온 자포리자의 말에 병사들이 서로를 보며 웅성거렸다.
“영주님이 항복하는 자의 목숨은 보장하셨다. 뭣들 하는 거냐? 지금 당장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이 영지전은 스탄다비아의 승리다!”
칼튼의 승리 선언에 병사들은 자신들이 졌다는 걸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병사 중 누군가의 손에서 미끄러지듯 무기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병사들은 한 명, 두 명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
영지전은 생각 외로 싱겁게 승부가 났다.
병사들은 무기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한 채 승부가 결정이 났다.
“아아아악! 뭣들 하는 거야? 모두 일어서서 싸워! 싸우라고! 헉, 헉, 헉.”
패드래건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의 실핏줄이 모두 터져 몬스터의 눈처럼 빨겠으며, 호흡이 잘 되지 않는지 거친 숨소리를 내뱉었다.
아들이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뒤로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더러운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게렉스는 패드래건이 미쳐 날뛰는 모습을 넋 나간 듯이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가 받은 충격도 적지 않았다.
‘뭐가 잘못된 거지? 어떻게 용병에 전투 마법사까지 동원한 영지전에서 이렇게 말도 되지 않게 패할 수 있는 거지? 원래 스탄다비아는 찢어지게 가난한 영지였어. 비누로 돈을 좀 만지긴 했지만, 겨우 그까짓 것으로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다고?’
그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자신이 졌다는 것이었다.
그는 영지전을 즐기려고 가져다 놓은 의자 위에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 * *
“암던의 새로운 활동이 시작된 거 같아.”
“네?”
네로의 말에 놀란 경일이 되물었다.
“오늘 낮에 아이들이 가져온 음료수를 먹고 알았어.”
“음료수라니요?”
경일은 음료수와 암던의 활동이랑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도 처음엔 긴가민가했어. 음료수라니. 이런 건 지금까지 역사상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 하긴, 이렇게 문명이 발전한 사회는 나도 처음이긴 하니까, 못 본 게 당연하긴 하네.”
경일은 네로의 혼잣말 같은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경일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네로가 자세히 설명했다.
“마운틴 펀치라는 음료수 알아?”
“네. 요즘 가장 핫한 음료예요. 하도 주위에서 난리라 한 번 먹어 볼까 했는데, 슈퍼에 갈 때마다 다 팔려서 먹어 본 적은 없어요. 먹어 본 사람들 말로는 이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맛에다가 마시면 몸이 이완되고, 기분도 살짝 업 돼는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마셔서 공급량이 수요를 못 쫓아간다고 하던데요? 이게 공급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커피보다 더 많이 마시는 음료수가 될 거란 말이 있어요.”
“뭐야? 벌써 그 정도로 퍼졌다고? 큰일 났네, 큰일 났어. 하긴, 암던의 주인이 한 일인데 그 정도는 되겠지. 어쨌든 그거 마시지 마. 음료수에 독이 들었어.”
“네? 독이요?”
경일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이 되물었다.
‘지금 같은 세상에 대중에게 팔리는 음료수에 독이 들어간다는 것이 가능한가?’
경일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네로가 한심한 눈길을 보냈다.
“쯧쯧, 네가 팔고 있는 던전병 치료 포션을 생각해 봐.”
그러고 보니 던전병 치료 포션을 팔기 위해 성분 검사를 했을 때 나온 물질은 아주 단순했다.
이런 물질로 던전병을 치료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건 지구의 기술로는 던전 고유 식물의 성분을 밝혀 낼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아~”
경일은 순간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야 네로가 한 말이 이해되었다.
“그럼, 음료수에 암던 고유 식물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네요.”
“그래. 아주 지독한 걸 넣었어. 틸란드시라는 식물인데, 식물이 가진 독이 일정량 이상 몸속에 쌓이면 몸속의 마나를 변형시키고, 마나의 친화력을 저해시켜. 헌터는 마나가 변형되니 힘을 잃을 수도 있고, 일반인들은 각성을 방해받게 되는 거지. 음료수라는 이 간단한 방법으로 헌터들의 전력을 엄청나게 깎을 수 있다는 거야.”
순간,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의 이야기였다.
몬스터의 침공만 생각했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공격이라니.
이대로라면 헌터들은 엄청난 타격을 받는 것이었다.
“이건 또 하나의 마의 구간이네요.”
“아니, 이건 마의 구간보다 더 강력한 공격이야. 마의 구간은 일부 헌터들의 성장을 막은 거지만, 이건 모든 헌터들뿐 아니라 각성할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친다고. 이대로 흘러간다면 인류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을지도 몰라.”
정신이 아득해지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다니.
이 일은 자신이 책임지고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하지만 이런 큰일을 개인인 자신이 어떻게 막아 내란 말인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경일이 당장 의지할 수 있는 이는 네로밖에 없었다.
그는 네로의 답을 기다리며 긴장한 듯 목젖이 크게 울렁거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번 질문의 답에 따라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질 것이다.
“글세, 나도 잘 모르겠다. 이런 건 나도 처음 보니까.”
최악의 답이 나와 버렸다.
네로도 모르는 문제라니.
그런 게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경일은 던전의 수호신인 네로는 모든 걸 알고 있을 거라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그 충격이 더욱 컸다.
그가 세상에 숨겨진 비밀을 안 뒤 처음으로 맞이하는 암던의 공격이었다.
이런 식일지는 네로도 경일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믿었던 네로까지 특별한 해결 방법을 내놓지 못하자 경일은 똥줄이 탔다.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경일은 무거운 마음으로 던전으로 향했다.
이길호가 경일의 걱정 가득한 얼굴을 보고는 무슨 일인지 물었으나, 경일은 적당히 얼버무렸다.
굳이 이길호에게 걱정을 넘겨 주긴 싫었기 때문이다.
스탄다비아처럼 확실한 문제의 답이 보인다든지, 던전을 폐쇄한다든지 하는 게 아니라 더욱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일단 차분히 생각해 보자.’
경일은 조용한 곳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에게 무언가가 떠올랐다.
경일은 곧바로 네로를 찾아가 물었다.
“틸란드시가 독이라면, 해독할 수 있는 식물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겠죠?”
“글, 글쎄? 아마 그렇지 않을까?”
네로의 자신 없는 대답에 절망의 먹구름이 몰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설마 해독할 수 있는 식물을 모른다는 건가요?”
“…….”
깊은 절망의 늪에 머릿속까지 푹 담겨진 것 같았다.
움직이려 해도 중력은 그를 당기고 진흙이 몸에 압착되어 손가락질하나 까딱하기 힘든 그런 느낌.
이건 자신이 손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눈앞에 집이 활활 타고 있는데,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경일은 우울감에 빠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던전에 있는 동안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런 해결책도 찾지 못한 채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마음속에 커다란 바위가 들어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도 하루하루 그 크기가 점점 커지는 바위.
‘내가 뭐라도 해야 하는데…….’
머릿속에 이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해결하는 성격이라 가만히 있는 게 더 고역이었다.
‘그래, 이대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 시도라도 하다 보면 실마리가 잡힐 거야.’
정신을 차린 경일이 찾은 곳은 손윤찬의 포션 연구소였다.
“소장님, 제가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부탁이라니. 지시만 하면 최선을 다해 돕겠네.”
경일의 부탁에 오히려 손윤찬이 더 적극적으로 나왔다.
은인이 처음 하는 부탁일이다 보니, 그는 하는 일을 제쳐 두더라도 이 일에 매달릴 생각이었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손윤찬은 머리가 혼란스러워 과할 정도로 침을 꿀꺽 삼켰다.
대기업이 출시한 음료수에 마나에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다니.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절대 믿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일이 보여 준 능력을 생각하면 이 말이 거짓일 리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본 뉴스가 생각났다.
어떤 헌터의 레벨이 내려갔다는.
처음 뉴스를 봤을 땐 그냥 웃어넘겼다.
헌터가 생긴 이래 레벨이 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방송국이 가십거리로 다룬 기사라 생각했다.
실제로 레벨이 내려갔다고는 하지만, 그걸 증명할 방법은 없었다.
남는 건 헌터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경일의 이야기와 그 일이 겹치자, 이게 보통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게이트는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는데, 헌터가 약해진다니.
더군다나 헌터의 각성에도 영향을 끼친다니.
“제가 생각한 것은 이렇습니다. 일단 음료수에 들어간 독을 해독할 수 있는 성분부터 찾아야 할 거 같습니다. 제가 파악하기로 음료수에 들어간 독은 지구에 있는 물질이 아닌 걸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는 것은 던전의 모든 식물에서 찾아내야 하는 거군요.”
손윤찬은 경일이 의도한 바를 연구자답게 빠르게 캐치 했다.
그도 경일의 게이트가 보였고, 던전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 터라 던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경일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 포션 연구소를 나왔다.
사실 뭐라도 시도해 봐야 할 거 같아서 한 것이지만,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손윤찬의 전직이 제약 회사 연구원이라도 해도 지구의 기술로 성분조차 알아낼 수 없는 독을 어떻게 연구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던전에 자라는 식물이 한두 가지도 아니고 수십, 수백 가지도 넘을 텐데, 이걸 일일이 대조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이건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거보다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름은 점점 늘어만 갔다.
며칠 뒤,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지 궁금한 마음에 포션 연구소를 들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에서 띈 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마운틴 펀치 상자였다.
‘아직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딸린다던데, 용케도 이렇게 많은 양을 구했네.’
“어~ 어서 와.”
손윤찬은 가족을 대하듯 살갑게 경일을 맞이해 주었다.
“마운틴 펀치를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고생하셨네요.”
“아니야. 요즘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겠어. 그리고 우리 연구소의 위상도 만만치 않아 저 정도 구하는 건 일도 아니야.”
“그렇군요.”
경일은 독에 관한 연구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물으려고 했으나,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미룬 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런 경일의 마음을 잘 안다는 듯이 손윤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