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49화 (249/300)

[249화] 찾았다

“음, 나도 고민을 많이 해 봤는데, 일단 제약 회사에 다닐 때의 인맥으로 마운틴 펀치를 다시 한번 성분 분석을 했으나 이상한 건 전혀 찾아내지 못했어. 그래서 생각한 게 직접 먹어 보는 거였어.”

“네?”

“마운틴 펀치의 독이 일정량 이상 쌓이면 마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했으니까, 그 상태에서 던전 고유 식물을 먹으면서 신체의 변화를 분석하기로 했어. 아마 시일이 꽤 많이 걸릴 거야. 나를 믿고 맡겨 주었을 텐데, 이 정도 방법밖에 생각해 내지 못해 미안해.”

“아닙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만큼이나 노력해 주셔서 제가 민망할 정도인데요, 뭐.”

경일은 손윤찬의 말에 크게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그가 더 절실하게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독인 줄 알면서도 본인이 직접 먹어 실험한다니.

그러면서도 연구가 오래 걸릴 거 같아 미안해하는 마음에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자신은 걱정만 할 뿐이었는데, 손윤찬은 느리더라도 확실히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부끄러우면서도 이런 사람이 나를 믿고 최선을 다해 준다는 사실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했다.

경일은 인사를 하고 포션 연구소를 나왔다.

던전으로 걸어가는 길에 많은 반성과 자책을 했다.

‘나를 믿고 소장님도 저렇게 노력하는데,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던전으로 가던 발길을 돌려 향한 곳은 동네 슈퍼였다.

대조군이 한 명이라도 더 늘면 실험 기간을 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몇 군데 슈퍼와 편의점을 돌아 겨우 마운틴 펀치를 구했다.

경일은 즉시 캔 뚜껑을 따고 크게 한 모금 들이켰다.

처음 느껴 보는 맛.

그리고 경일은 구토를 시작했다.

“우웩, 우웩!”

마치 몸속에 마운틴 펀치를 한 방울도 남겨 놓지 않겠다는 듯이 격렬하게 구토를 했다.

마운틴 펀치에 든 독이 겁나서가 아니었다.

“무슨 이런 거지 같은 맛이…….”

이건 인간이 먹을 맛이 아니었다.

역겹고, 비리고.

이건 구정물이 차라리 맛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길가의 구석진 곳에서 한참 구토를 하고 나서야 조금 살 것 같았다.

얼마나 격렬하게 구토를 했는지 위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그 짧은 시간 얼굴이 핼쑥해질 지경이었다.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자 그와 함께 강렬한 의문이 생겼다.

“이게 뭐지? 이런 게 없어서 못 마실 정도라고? 이게 말이 돼? 내 혀가 이상해진 건가?

경일은 다른 음료수를 몇 개 사서 전부 맛을 봤다.

모두 맛이 제대로 느껴졌다.

평소에 알던 그 맛이었다.

“뭐지? 혀는 정상인 거 같은데.”

꼭 귀신에 씐 거 같은 기분이었다.

혀가 정상이란 것을 알았으니, 다시 한번 마운틴 펀치를 먹어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조금 전 말도 안 되게 역겨운 맛에 마시기가 꺼려졌다.

“심한 스트레스로 내 혀가 잠시 맛이 간 게 틀림없어. 혀가 제대로 돌아왔으니 괜찮을 거야. 이건 전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일어난 잠깐의 현상일 뿐이야.”

얼마나 맛이 없었는지 경일은 자신에게 최면을 걸다시피 하며 다시 마운틴 펀치를 마셨다.

“우웩, 우웩!”

마운틴 펀치가 입속에 들어온 순간, 경일은 곧바로 뱉어 냈다.

혀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

마운틴 펀치의 맛이 엿 같은 거였다.

“이게 뭐야? 왜 이런 맛이 나는 거지?”

경일은 몇 번이나 생수로 혀를 헹구고 마셔 봤지만, 마운틴 펀치의 맛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다음 날, 사람들에게 마운틴 펀치의 맛을 물어봐도 자신처럼 역겨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맛있고 기분이 상쾌해진다고 얘기했다.

심지어 네로도 맛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경일은 마운틴 펀치의 맛이 자신에게만 역하게 느껴진다는 걸 확인했다.

“이상한데…….”

몇 번을 다시 맛을 봐도 역시 단 한 모금도 삼키기 힘든 맛이었다.

경일의 급한 마음과 달리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폭발적인 반응에 마운틴 펀치를 만드는 삼원 음료는 공장 라인을 늘려 생산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소식을 알려 왔다.

그리고 점점 헌터의 레벨이 내려가는 기현상이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성자의 숫자는 지난해 평균보다 계속해서 내려갔다.

경일은 답답했다.

암던의 공격임을 뻔히 알고 있는데, 막을 방법이 없었다.

손윤찬은 최선을 다해 자신을 몸을 이용해 해독할 수 있는 던전 고유 식물을 찾고 있지만, 아직 유의미한 성과는 없었다.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그의 레벨이 내려가기까지 했다.

이길호도 소식을 듣고 직접 실험체가 되어 손윤찬의 연구에 동참하고 있었다.

손윤찬과 이길호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이 일과 가장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쓰라렸다.

‘모든 던전병의 진행을 늦춰 주는 비후초 같은 식물이 발견되기라도 하면 시간이라도 벌 수 있을 텐데…….’

경일의 희망과는 반대로 아무런 성과 없이 시간만 지나갔다.

머릿속에서는 자신에게만 이상하게 느껴지는 마운틴 펀치의 맛에 대한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갈수록 의문은 더욱 커졌고, 어떤 날은 그 생각에 매몰되어 하루가 그냥 지나갈 지경이었다.

‘도대체 나에게만 이런 맛이 나는 이유가 뭘까?’

자신에게만 이상하게 느껴지는 마운틴 펀치의 맛이 이 사태와 관련된 큰 힌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의문은 차츰 확신으로 바뀌어 갔다.

그날부터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을 하나하나 짚어 갔다.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던전의 존재였다.

‘내가 암던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라 마운틴 펀치의 맛에 민감하게 반응한 건가?’

이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설정에는 한 가지 말이 되지 않는 게 있었다.

네로의 존재였다.

이 설정대로라면 네로도 마운틴 펀치의 맛을 이상하게 여겨야 했다.

‘이게 아니면 또 어떤 것이 있을까? 던전 작물? 과일? 혹시 사람들이 먹지 않은 나 혼자만 먹은 그런 식물이 있던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건 없었다.

네로로 인해 새롭게 발견한 던전 고유 식물도 모두 손유찬이나, 이길호도 먹고 있었다.

‘도대체 뭐지? 나만이 다른 점이? 혹시 스탄다비아? 그래, 이게 가장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야. 하지만 그저 내가 스탄다비아와 연결되어 있어서 맛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아닐 거야.’

경일은 일단 마운틴 펀치를 가지고 스탄다비아로 넘어갔다.

경일의 의지를 느낀 자포리자는 늘 그렇듯 공손한 모습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인이시요. 어서 오십시오.”

자포리자가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영주님, 제가 급해서 그런데, 이거 마시고 맛에 관해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경일이 마운틴 펀치를 내밀자 자포리자는 곧바로 마셔 버렸다.

그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영주님 맛이 이상하시면 뱉으세요. 하하…….”

자포리자는 컵에 입에 든 음료수를 뱉었다.

이상한 걸 먹이고 기쁜 듯 웃는 경일의 모습에 살짝 기분이 상했으나, 그는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진득하게 기다렸다.

경일은 그 모습에 자신이 실수한 것을 깨닫곤 얼른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음, 그러니까 이게 암던의 공격이라는 거죠? 단순히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런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 내다니, 적도 상당한 자인 듯합니다.”

경일이 사는 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낮을 수밖에 없으니, 자포리자에게 암던의 주인은 더 강한 존재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런 단서가 없는 상황에서도 해결책을 찾아 이곳까지 온 경일을 보자 안심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경일이 모두 해결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게 있었다.

경일은 자포리자 뿐만 아니라 스탄다비아의 여러 사람들에게 마운틴 펀치를 먹였다.

그들은 모두 마운틴 펀치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뱉었다.

어떤 이는 자신에게 독약을 먹인 거냐면서 화를 내기까지 했다.

이로써 경일은 어느 정도 실마리를 잡았다.

자신이 이곳에서 먹은 음식 중 하나가 마운틴 펀치에 든 독과 상극이라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그런데 그걸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일이 이곳에 올 때마다 자포리자는 성심성의를 다해 대접했고, 그러다 보니 먹은 것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한참 생각에 빠져 있던 차에 집사가 세르딘 도시에 있는 아베스 상단의 주인이 직접 찾아왔다고 알렸다.

자포리자를 만나기 위해 다른 도시에서 온 자였다.

‘아!”

경일은 집사의 말에 어떤 힌트가 생각났다.

“영주님, 이걸 상인에게 한 번 먹여 주세요. 제 생각이 맞으면, 상인은 아마 맛있다고 여길 겁니다.”

“알겠습니다.”

자포리자는 상인에게 마운틴 펀치를 대접했다.

그리고 마운틴 펀치를 먹은 상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주님, 이건 어떤 차입니까? 세상에, 이런 맛이 있을 수 있다니. 비누와 염색된 천을 거래하러 왔는데, 이 음료수도 꼭 거래하고 싶습니다. 어떤 조건이든 무조건 수용하겠습니다. 꼭 저희 상단과 거래해 주십시오!”

상인은 거의 체통을 잊고 자포리자에게 매달리다시피 했다.

자신에겐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음식이었는데, 상인이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신기하기까지 했다.

상인이 돌아가고 경일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로바 차 때문인 듯합니다.”

“로바 차요?”

로바 차는 로바 식물을 말려 가루를 내어 타 먹는 차였다.

로바는 스탄다비아에서만 자라는 식물로, 잡초보다 흔한 식물이라 오래전부터 영지민들이 물처럼 마셔 왔다.

이들은 몰랐지만 로바 식물은 사람에게 매우 이로운 식물이었다.

피를 맑게 하고 혈관을 튼튼하게 해 주는 것은 물론 몸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영양학적으로는 비타민, 미네랄, 칼슘도 섭취할 수 있어 먹을 게 없을 때는 이것만 마셔도 한동안 버틸 수 있을 정도였다.

영지민들에게 로바 차는 생명의 물이나 다름없었다.

자포리자도 경일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 로바 차를 잊지 않았다.

구수한 맛의 로바 차는 뜨겁게 혹은 차게 마셔도 좋은 차였다.

경일도 입맛에 맞아 스탄다비아에 올 때는 물 대신 마실 정도였다.

“영주님, 부탁이 있습니다. 로바 식물이 대량으로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자포리자는 경일의 부탁을 듣고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받기만 했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로바를 구하는 일은 너무도 쉽게 해결이 되었다.

산이나 들에 널린 게 로바라 영지민을 동원하니 하루 만에 엄청난 양을 모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던전에 없는 게 다행이네. 이 많은 양을 캐려면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렸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경일은 곧바로 인벤토리에 로바를 넣고 지구로 넘어왔다.

그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포션 연구소였다.

“소장님, 찾았어요! 이게 우리가 찾던 겁니다!”

경일은 손윤찬에게 로바를 보여 주었다.

“찾아서 정말 다행이야. 안 그래도 뉴스에 매일 헌터들 레벨이 떨어진 이야기랑 각성자가 줄어든 이야기가 나와 사람들이 많이 불안해하던 차였거든. 그건 그렇고, 이 식물 이름은 뭔가?”

“로바라는 식물입니다. 이게 마운틴 펀치에 든 독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마나가 오염되거나, 친화력이 떨어진 것에도 효과가 있을지는 실험을 해 봐야 하지만, 일단 확실한 건 이걸 먹고 마운틴 펀치를 먹으면 그 맛이 역겨워진다는 겁니다.”

“자네처럼 말이지?”

“네. 그리고 제 생각이 맞다면 소장님의 내려간 레벨도 원상 복구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경일이 로바 가루를 우려 만든 차를 손윤찬에 권했다.

손윤찬은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로바 차를 마셨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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