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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50화 (250/300)

[250화] 레벨의 복귀

“이거 맛이 꽤 괜찮은데? 구수하면서도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독특한 향이 있군. 물 대신 이걸 마셔도 꽤 괜찮을 거 같아.”

“느낌은 어떠세요?”

“글세? 아직은 잘 모르겠는걸. 그냥 따뜻한 차를 먹은 느낌 정도. 잠시만.”

손윤찬은 로바 차를 다 마시고 냉장고에서 마운틴 펀치를 꺼내 마셨다.

경일은 그 모습을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어떠세요?”

경일이 다급하게 물었다.

“확실히 마운틴 펀치의 맛이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지긴 하는데, 자네처럼 역겨워 토할 정도는 아니야. 아마 마운틴 펀치도 일정량 이상을 마셔야 독이 발작하는 것처럼 로바 차도 어느 정도는 먹어 줘야 할 거 같아. 그래도 다행인 게, 겨우 한 잔을 먹었을 뿐인데 마운틴 펀치의 맛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는 걸 봐선 효과가 좋은 듯하네. 확실히 마운틴 펀치를 먹고 싶은 생각이 줄어들고 로바 차가 끌리는 느낌이 있어.”

손윤찬의 나쁘지 않은 반응에 경일은 희망을 보았다.

이날부터 손유찬은 물 대신 로바 차를 마셨고, 부담 없는 맛이라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마시면 마실수록 은근히 땅기는 게 중독되는 맛이었다.

이 정도의 맛이 있었으니 스탄다비아 사람들에게 그토록 오래 사랑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과는 3일 정도 마셨을 때 나타났다.

“내려갔던 레벨이 올랐어. 그리고 자네가 느낀 마운틴 펀치의 맛을 이제야 알겠더군. 조금씩 역한 맛이 나길래 안 먹었는데, 레벨이 오르고 나서 먹어 보니 맛이 끔찍할 정도야. 이건 도저히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니었어. 이런 독을 어떻게 그렇게 맛있게 여겼는지 신기할 지경이야.”

“고생하셨습니다. 그동안 포션 연구도 못 했을 텐데 감사합니다.”

“하하하, 아니야. 이번에 별 도움이 안 돼서 오히려 내가 미안해.”

경일은 손윤찬이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전혀 티를 내지 않는 모습을 통해 그가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

로바 차를 먹은 이길호에게도 역시 같은 결과가 나왔다.

손윤찬보다 하루 늦게 결과가 나타났지만, 나쁘지 않았다.

이들이 마신 양을 계산해 보니 평균 5리터 정도였다.

마운틴 펀치에 비하면 오히려 무척 빠르게 효과가 나타난 편이었다.

‘됐다. 이제 사람들에게 이걸 먹이기만 하면 돼. 이건 우해수 부길드장님에게 부탁하면 되겠지?’

경일은 곧바로 전화를 걸어 우해수와 약속을 잡았다.

다음 날, 경일은 우해수와 함께 조용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바쁘실 건데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사장님이 부르시면 당연히 와야지요. 누구보다 중요한 거래처이자, 제 생명을 구해 주신 은인이신데요.”

우해수는 무등급 거대 던전 사건 이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워낙 많은 헌터가 죽었고, 죽음에 배후에 우성범과 해성 길드 1팀장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희생당한 헌터들의 보상도 보상이지만, 후계자 자리를 놓고 일어난 남매의 상잔에 해성 그룹의 명성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건이 일어난 지 꽤 지났지만, 아직 그 사건의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다.

그나마 그룹 명성에 도움이 된 건, 경일이 보내 주는 미스릴로 만든 무구와 커미네스로 만든 마나 포션의 인기였다.

“마운틴 펀치라고 아시죠?”

“그럼요. 해성 그룹의 주력 사업 중의 하나가 음료 사업인데, 마운틴 펀치를 모르면 말이 안 되죠. 안 그래도 요즘 마운틴 펀치 때문에 해성 음료의 매출이 떨어져 난리예요. 그런데 갑자기 마운틴 펀치는 왜……?”

“그 마운틴 펀치에 독이 들어 있습니다.”

“네? 독이라뇨?”

경일의 말은 그녀의 생각을 한 번에 정지시킬 만큼 뜬금없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코웃음 치며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겠지만, 말한 이가 경일이다 보니 긴가민가했다.

“당연히 황당하게 들릴 겁니다.”

경일은 그런 우해수의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을 이었다.

“요즘 헌터들의 레벨이 떨어지고 각성하는 사람이 줄어든 이야기는 들어 보셨죠?”

“네. 안 그래도 헌터 계가 그 일로 난리입니다.”

“그 모든 것이 마운틴 펀치에 든 독 때문입니다.”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대중에게 팔려 나가는 음료수에 독을 섞다니.

음료 제조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우해수에겐 특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들렸다.

그녀의 표정에 불신감이 서리는 것을 보고 경일은 로바 가루를 내밀었다.

“당장은 믿지 못하는 게 당연합니다. 이건 로바 식물의 가루입니다. 마운틴 펀치에 든 독을 해독하는 기능을 가졌습니다. 이걸 레벨이 떨어진 헌터에게 5일 정도 먹이면 그 효과가 나타날 겁니다. 떨어졌던 레벨이 원위치가 되고, 어느 시점부터는 마운틴 펀치의 맛이 역하게 느껴져 더 이상 먹지 못하게 될 겁니다.”

경일은 혹시 몰라 5일 정도의 유예를 두었다.

실험군이 겨우 손윤찬과 이길호 뿐이라 조금 넉넉하게 시일을 잡았다.

우해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순간 숨이 막힐 만큼 놀라운 이야기였다.

안 그래도 모두 이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레벨이 낮은 헌터가 1레벨이 떨어지는 건 그 여파가 적다고 쳐도 고레벨에게 1레벨이 떨어지는 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1레벨 때문에 기존에 공략할 수 있던 등급의 던전을 못 들어가는 일까지 생겼으니.

“일단 제 말을 믿고 해성 길드에 레벨이 떨어진 헌터에게 물 대신 이걸 탄 차를 마시게 하세요. 많이 마실수록 그 효과가 빨리 나타납니다. 몸에는 전혀 해로운 게 아니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맛도 나쁘지 않으니 마시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겁니다.”

경일은 우해수에게 로바 식물을 말려 낸 가루가 담긴 봉지를 내밀었다.

그녀는 확신에 가득 찬 경일의 태도에 자신도 모르게 로바 가루가 든 봉지를 소중히 챙겨 넣었다.

경일과 헤어진 우해수는 곧바로 해성 길드로 차를 몰았다.

“우리 길드원 중에 레벨이 떨어진 헌터 있지? 지금 당장 불러 줘.”

그녀의 곧바로 비서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컵에 물을 부어 로바 가루를 탔다.

로바 가루를 물에 섞자 투명한 물이 뿌옇게 변했다.

우해수는 잠깐 컵 속의 물을 한 번 바라보고는 경일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망설이지 않고 컵 속의 물을 마셨다.

탁한 색깔에 비해 그 맛은 나쁘지 않았다.

고소한 맛과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독특한 향이 났다.

‘이 정도면 충분히 물 대신 먹을 수 있겠는걸?’

빈 잔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 뒤, 두 명의 헌터가 우해수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앉으세요.”

두 명의 헌터가 그녀의 지시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두 분을 부른 건 다름이 아니고, 떨어진 레벨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았어요.”

우해수의 말의 두 헌터의 눈이 번쩍 뜨였다.

레벨이 떨어진 일로 크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터라 그들에겐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정말입니까?”

한 헌터가 확답을 원하는지 곧바로 되물었다.

“네. 믿을 수 있는 곳에서 전해 온 소식이라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 너무 큰 기대는 마시고요. 아 참, 혹시 두 분은 평상시 마운틴 펀치를 자주 마시나요?”

헌터들은 대답을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그들도 해성 길드에 속해 있는 만큼, 해성 음료가 마운틴 펀치 때문에 큰 곤란을 겪고 있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경쟁사의 음료를 물처럼 마신다고 말하기가 곤란했다.

우해수는 그들의 답을 듣지 않아도 그들의 행동에서 답을 얻었다.

“이걸 탄 차를 물 대신 마시면 됩니다. 제가 먹어 봤는데 맛은 나쁘지 않더군요. 아마 효과는 5일 정도 먹으면 나타난다고 하니 부지런히 먹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네.”

우해수의 말에 그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로바 가루를 챙기고 나갔다.

레벨이 떨어진 헌터보다 더 초조한 사람이 우해수였다.

만약 경일의 말대로만 된다면 이건 엄청난 일이었다.

해성 그룹으로서는 대한민국 음료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경쟁사의 음료수를 제거할 수도 있는 기회인 것이다.

하지만 로바 차가 가진 진정한 힘에 비하면 마운틴 펀치를 시장에서 쫓아내는 건 아무것도 아님을 그녀는 잘 알았다.

당장 거대 길드들뿐만 아니라 헌터 협회는 물론 정부까지 이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2레벨 이상 떨어진 헌터도 나오고 있었다.

2레벨이 떨어졌다면, 앞으로 3레벨, 4레벨도 떨어질 수가 있다는 소리였다.

이건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할 만큼 큰일이었다.

몬스터와 헌터의 전력은 비등하거나, 헌터가 약간 앞선 상태였다.

서로 팽팽한 줄다리기 중인데, 한쪽에 약간이라도 전력의 누수가 생긴다면 그대로 무너질 수도 있었다.

던전을 제시간에 폐쇄하지 못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다면, 엄청난 재산상의 피해뿐만이 아니라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한 번 몬스터가 점령한 필드를 뺏어 오려면 던전 폐쇄 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많은 전력이 투입되어야 했다.

이건 헌터의 전력을 급속도로 갉아먹는 악순환의 시발점이 될 것이었다.

만약 경일이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의 회사와 길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이 가능했다.

우해수는 얼마나 초조했는지 매일 헌터들을 찾아 로바 차를 잘 먹고 있는지, 몸에는 이상이 없는지 등을 체크했다.

이틀째 되는 날 두 헌터는 마운틴 펀치에서 느껴지는 역겨운 맛에 더 이상 마시지 못했다.

경일이 말한 대로였다.

그리고 3일째 한 명의 헌터의 레벨이 회복되고, 다음 날 나머지 한 명의 헌터의 레벨도 회복되었다.

“됐다!”

우해수는 너무 기쁜 나머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주위의 헌터들이 그녀답지 않은 행동에 의아하게 바라봤지만, 그런 건 아무렇지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경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됐어요! 정말 사장님 말씀대로 레벨이 돌아왔어요. 제가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네. 그럼 저번에 만난 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우해수는 곧바로 경일을 다시 만났다.

“사장님, 정말 사장님 말씀하신 대로 됐어요. 로바 식물도 던전 고유 식물인 건가요? 그리고 제가 따라 마운틴 펀치 성분을 조사했는데, 독이 검출된 건 없었어요. 정말 마운틴 펀치 때문에 헌터의 레벨이 내려간 건가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죠? 삼원 그룹에서 생산한 제품인데, 그쪽과도 관계가 있는 건가요?”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두서없이 질문을 쏟아 냈다.

궁금한 것이 정말 많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확인할 수 있는 건 로바 차를 마시고 헌터의 레벨이 회복된 것과 마운틴 펀치의 맛을 다르게 느낀 것뿐이었다.

“네. 부길드장님께 증명할 수는 없으나, 마운틴 펀치 때문에 이 사태가 일어난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삼원 그룹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우해수는 경일의 대답이 부족해 약간 실망했으나, 곧 표정을 풀었다.

로바의 등장만으로도 이건 굉장한 일이었다.

이 일이 끼칠 여파가 어느 정도인지 지금은 예상조차 힘들었으니.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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