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반격
“중요한 것은 떨어진 레벨이 돌아왔다는 거 아니겠어요. 사장님도 알고 계신지는 모르지만, 2레벨이 떨어진 헌터도 나오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걸 해결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성과입니다. 사장님이 저를 부르신 건 미스릴과 커미네스처럼 거래하기 위해서죠? 해성 그룹은 어떠한 돈을 지불해서라도 로바 식물을 구매할 의사가 있습니다. 아니,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해수의 얼굴이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이건 무등급 거대 던전의 일로 떨어진 해성 그룹의 위상을 단번에 찾을 수 있는 기회였다.
아니, 떨어진 위상을 넘어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을 건 물론이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입지를 구축할 수 있을 터였다.
레벨이 떨어진 헌터들은 모두 로바에 목을 맬 수밖에 없을 것이고, 고레벨 헌터일수록 더 안달이 날수밖에 없었다.
로바 식물이 있으면 해성 길드가 대한민국 제1의 길드로 올라서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그녀는 로바 식물이 가져올 효과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찌릿해질 정도였다.
이건 천금을 들여서라도 꼭 사야 했다.
“아닙니다. 로바 식물을 팔기 위해서 부길드장님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경일의 단호한 거절에 우해수의 들뜬 얼굴에 어둠이 밀려들었다.
웬만한 일에는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녀일지라도 밀려드는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한순간 쪼그라든 듯한 모습이었다.
꼿꼿했던 허리에 힘이 빠지고, 소파에 온몸의 체중을 의지했다.
“부길드장님을 만난 건 로바 식물을 이용한 음료수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음료수요? 음료수는 왜……?”
우해수는 경일의 의외의 말에 놀란 듯 즉시 되물었다.
“저는 이 사태를 일으킨 마운틴 펀치를 이 사회에서 쫓아낼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 생각한 방법이 마운틴 펀치처럼 음료수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마실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사장님의 숭고한 뜻은 잘 알겠으나, 음료수로 팔면 그 효과가 미비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레벨이 떨어진 헌터들에게 집중적으로 공급하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요? 수익 면에서도 타격이 클 거고요. 저희에게 맡겨 주시면 사장님께 최대의 이익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저희에게 올 이익까지 모두 사장님께 돌리겠습니다.”
우해수는 이 기회가 쉽게 포기되지 않았다.
만약 로바 식물을 독점할 수 있다면,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경일이 마운틴 펀치를 시장에서 몰아내길 원하지만, 이건 겨우 그런데 쓸 카드가 아니었다.
소 잡는 칼로 닭, 아니, 벌레의 목을 베는 것과 같았다.
이건 헌터 계를 손에 쥐고 흔들 수도 있을 만큼의 막강한 카드였다.
그런 카드가 눈앞에 있는데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이것을 이용해 올릴 유의미한 성과를 생각하면 해성 그룹의 후계자로서 욕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일은 그녀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우해수는 단순히 떨어진 레벨을 복구한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헌터의 각성을 방해한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건 딱히 증명할 방법이 없어 우해수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다.
레벨을 복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구미가 당길 이야기였으니까.
“제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닙니다. 만약 돈을 벌려고 했으면 대한민국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부를 축척할 수 있었을 겁니다.”
누군가 들었다면 대단히 오만하다고 느낄 수 있을 테지만, 그러다 보니 우해수에겐 저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무등급 거대 던전을 가뿐히 공략할 수 있을 정도의 강한 헌터인 그의 몸값은 부르는 것이 값일 것이고, 매달 공급하는 미스릴과 커미네스로 엄청난 돈을 벌고 있었다.
평소 경일의 능력이 저게 다가 아닐 거라고 직감하고 있던 차에 지금 헌터 사회에 거대한 해악을 끼치는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로바 식물을 가지고 나타났다.
우해수는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로바 식물을 욕심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만약 경일과의 선이 끊어진다면 로바 식물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성 그룹에게 경일은 절대 놓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였지만, 경일에게 해성 그룹은 많은 기업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경일이 손을 내미는 즉시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이, 아니, 전 세계의 모든 기업이 달려들 것이었다.
그녀는 얼굴에 깃든 조급함을 버리고, 허리에 힘을 줘 자세를 똑바로 세웠다.
그런 우해수의 모습에 경일의 얼굴에 알듯 모를 듯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해성 그룹에서 로바 식물을 이용한 음료수를 만들어 시중에 유통해 주십시오. 그리고 음료수에는 로바 식물뿐만 아니라 마의 구간을 넘을 수 있는 영인초로 만든 포션도 섞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는 따로 돈을 받을 생각이 없으니, 음료수에서 나오는 수익만으로도 해성 그룹은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겁니다.”
경일은 네로에게 들은 헌터들이 겪고 있는 마의 구간이 일종의 질병이며, 전부 암던의 주인이 부린 수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번 기회에 마운틴 펀치를 무력화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마의 구간까지 없애 암던의 주인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생각이었다.
마의 구간에 갇힌 헌터들이 제대로 레벨 업을 할 수 있게 된다면 헌터들의 전력이 올라갈 건 당연한 얘기였다.
경일은 네로에게 마의 구간에 이야기를 듣고 영인초의 재배를 집중적으로 늘였다.
이길호의 도움으로 거대한 비닐하우스가 끊임없이 늘어났으며, 생육 환경을 맞춰 주면 던전의 비옥한 땅 덕에 영인초는 알아서 번식하며 혼자서도 잘 자랐다.
손윤찬은 던전병 치료 포션을 만들면서 마의 구간을 치료할 영인초 포션 개발은 물론이고, 생산 시설도 갖추어 놓은 상태였다.
영인초를 직접 섭취하는 것보다 적은 양으로 몇 배의 효과를 끌어낼 수 있으니 충분히 공급할 수 있었다.
우해수는 지금 들은 게 무엇인지 헤아려보려는 듯 가만히 눈을 깜박거렸다.
로바로 음료수를 만드는 것만 해도 대단한데 영인초까지…….
정신을 차린 그녀는 자신이 들은 게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정말요? 로바 식물뿐만 아니라 영인초도 넣은 음료수를 만든다고요? 아니, 영인초로 만든 포션이라고 하셨어요? 어쨌든 그걸 전부 공짜로요? 전국에 팔려 나가는 음료수에 넣으려면 엄청난 양의 로바와 영인초가 필요할 텐데, 그렇게 많이 공급할 수 있으세요?”
“네. 로바는 원물 그대로 원하시는 양만큼 공급하겠습니다. 그리고 영인초 포션도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최고의 연금술사님을 한 분 알고 있거든요. 그분이 만든 영인초 포션이 워낙 효과가 좋아서요. 기존의 양보다 아주 조금만 넣어 줘도 같은 효과가 있으니, 충분히 가능할 거 같습니다.”
“사장님 의도는 잘 알겠는데, 차라리 마의 구간에 갇힌 헌터용으로 따로 만들어 파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요? 일반인들이 먹어 봐야 효과도 없을 텐데요."
“음…….”
경일은 우해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운틴 펀치 때문에 마음이 급했고, 암던의 주인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덤벼든 것이다.
우해수의 말대로 확실히 낭비였다.
그녀의 말대로 타깃을 지정해 영인초 포션의 양을 늘린 음료수를 만들어 파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렇네요. 그럼 영인초 포션이 들어갈 음료수도 같이 개발해 주세요. 말씀드린 대로 저는 이것으로 수익을 올릴 생각이 없으니, 최대한 싸게 공급해 주세요.”
“지금까지 본 사장님 성격상 앞으로 나설 거 같지는 않을 거 같은데… 그럼 모든 공이 해성 그룹으로 돌아올 텐데, 괜찮으세요?”
우해수는 조금 전 재빨리 정신을 차린 게 다행이었다.
로바를 독점하지 못했지만, 음료수로 만들어 팔 것이니 사실 독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설마 로바를 그렇게 많이 공급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독점하려고 욕심을 부렸다.
하지만 음료수를 만들 수 있을 만큼 공급이 가능하다고 했으니, 오히려 수입적인 면에서도 이게 나을 수 있었다.
레벨이 떨어진 헌터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내도 대중이 마시는 음료수가 벌어들일 수익이 훨씬 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마의 구간을 해결할 수 있는 음료수를 해성의 이름을 걸고 출시할 수 있게 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득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추락한 기업 이미지를 한 방에 끌어올리고도 남을 만큼의 대단한 일이었다.
이 일은 해성 그룹 전체의 명예뿐만 아니라, 그룹이 출시하는 모든 제품의 판매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지금의 거래로 해성 그룹은 수천억, 아니, 수조를 벌어들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네. 저는 지금도 그렇고 나중에도 얼굴을 알릴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경일은 애초에 자신을 내세울 생각도 없었지만, 암던의 주인이 나타난 이상 더더욱 앞으로 나설 수 없었다.
‘영인초로 만든 음료수가 해성 그룹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사장님이 모를 리가 없어. 이 일로 해성 그룹이 가져갈 유무형의 이익을 정확한 액수로 가히 짐작도 하기 힘들어. 절대 경거망동해서는 안 돼. 앞으로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무조건 투명하게 나가야 해.’
헌터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마의 구간을 해결한다는 것은 이 시대의 영웅으로 떠오를 수도 있는 대단한 업적이었다.
아무리 명예욕이 없다고 해도 이런 대단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을 전혀 내세우지 않는 경일에게 경외감까지 들 정도였다.
“사장님의 훌륭한 뜻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 하실 필요까지 있을까요? 솔직히 영인초 포션이 들어간 음료수를 해성 그룹의 이름으로 출시하게 해 주신 것만 해도 우리는 엄청난 이득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로바가 들어간 음료수와 영인초가 들어간 음료수의 수익 전액을 드리겠습니다.”
우해수는 굳이 음료수의 수익에 목을 맬 이유가 없었다.
그 돈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해성 그룹에 돌아올 무형의 이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뇨, 저는 마의 구간에 갇힌 헌터들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 차라리 그만큼 더 싸게 판매해 주세요. 그리고 이왕이면 두 음료수 다 마운틴 펀치보다 훨씬 더 맛있게 만들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사장님의 의견대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해수는 길드의 일을 제쳐 두고 곧바로 해성 음료로 가 음료수 개발을 시작했다.
해성 그룹의 후계자가 직접 나서자 모든 일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로바와 영인초는 지구에 없는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어 맛있는 음료수를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대중에게 익숙한 맛이면서도 독특한 향이 있는 음료수가 만들어졌다.
영인초 포션이 들어간 음료수는 굳이 광고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입소문으로 퍼져 마의 구간에 갇힌 헌터들은 출시일만 기다리고 있었다.
로바가 들어가 음료수의 이름도 로바라고 지어졌다.
로바 음료수는 출시와 동시에 대대적인 광고가 실행되었다.
최고의 스타를 내세웠으며 경품 행사, 포스터 등 돈을 아끼지 않고 할 수 있는 마케팅은 모두 동원되었다.
그리고 은밀하게 레벨이 회복된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레벨이 떨어진 헌터들은 물론 레벨이 떨어질 것을 걱정한 헌터들이 물처럼 로바를 마셔 댔다.
일반 사람들도 대대적인 광고에 누구나 할 것 없이 로바를 먹었고, 우해수가 신경 쓴 만큼 뛰어난 맛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