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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58화 (258/300)

[258화] 내부 정리

사미르의 말이 끝나자 처음 치안에 대해 발언했던 윌커슨의 보고가 다시 이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은밀하게 들어온 종교들입니다. 가우스 교가 쫓겨난 걸 아는 터라 대놓고 활동은 하지 않지만, 음지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최대한 단속을 한다고는 하지만, 음지에서 활동하는 종교인들은 잡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자포리자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가우스 교가 부린 패악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케나베스에 인신 공양까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했다.

“하, 정말 끈질기군. 여기서 종교 활동을 하다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면서도 그런 짓을 하다니.”

“돈이 되면 무슨 짓이든 하는 놈들 아닙니까. 이번에도 케나베스를 뿌려 사람들을 중독을 시키고, 그런 뒤 비싼 값에 팔아 돈을 챙기고 있습니다. 거기다 새로운 인구가 늘어나다 보니 케나베스를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목표가 되고 있습니다.”

“일단 알겠네. 다른 건 또 없나?”

“다음 문제는 상인들입니다.”

“상인들은 또 왜?”

“상인들이 도박장을 열어 영지민들의 돈을 갈취하고 있습니다. 아직 증거는 없지만, 사기도박을 하고 있다는 정황이 뚜렷합니다. 그리고 돈을 잃은 사람에게 높은 이자로 사채를 제공해 재산을 갈취하고 있습니다.”

“도박장? 왜 도박장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지?”

“그들이 왕국 법에 도박장은 합법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습니다. 도박장이다 보니 용병들이 지키고 있어서 단속을 하면 큰 싸움이 벌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큰돈이 되는 만큼, 상인들이 똘똘 뭉쳐 죽기 살기로 대응할 것으로 보입니다.”

“유민들은 어떤가?”

자포리자는 일단 모든 문제를 듣기로 했다.

하나하나씩 대응책을 만들려면 밤을 새도 부족해 보였다.

“귀족들의 폭정을 이기지 못해 영지에서 탈출해 들어온 사람들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반면, 처음부터 유민으로 살아온 자들이나, 영지에서 문제를 일으켜 쫓겨난 자들은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흐음…….”

“여기서 한탕 하고 다른 곳에 갈 생각인지,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 조직을 결성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괴롭히고 일부러 시비를 걸어 돈을 뜯고, 폭행도 서슴지 않고 벌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만약 신고라도 한다면 철저하게 보복을 감행해 신고를 막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들이 가장 악질에 가깝습니다.”

윌커슨의 보고를 듣는 자포리자의 얼굴이 분노로 서서히 달아올랐다.

크게 분노했는지 말아 쥐는 주먹에서 으드득하는 소리가 났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치안대에서 더 열심히 활동을 했어야 하는데…….”

자포리자의 분노한 모습에 윌커슨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자네 잘못이 아닌 걸 잘 알고 있어. 사람들을 받아들일 때 충분히 예상한 문제이긴 한데… 막상 들으니 화가 나는군.”

자포리자가 건설해 나가는 스탄다비아는 평민들에게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들이 살 기반을 마련해 주고, 원하는 일거리를 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세금 또한 왕국 내에서 가장 적게 책정했다.

최대한의 자율성과 자유를 보장해 주었기 때문에 이곳을 제외하곤 세상에 이런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남의 것을 탐내고 강제로 뺏으려 하다니.

“종교인을 신고하는 자에게는 100골드의 포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한다.”

“네? 100골드요?”

엄청난 돈에 사미르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귀족인 그가 놀라 정도로, 100골드면 한순간에 팔자를 고치고도 남을 돈이었다.

“그래. 이 정도면 아주 종교인의 씨를 말려 버릴 수 있을 거야.”

자포리자가 두 눈이 활활 타올랐다.

이젠 종교의 종자만 들어도 지긋지긋할 정도였다.

“그렇기는 한데, 너무 많은 거 아닐까요?

사미르가 그런 자포리자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재정은 충분하지 않은가?”

“그렇기는 한데…….”

경일에게서 엄청난 물자가 들어오고 난 뒤, 스탄다비아는 따로 돈을 쓸 곳이 별로 없었다.

비누와 염색된 천, 이번에 종이까지.

성의 금고에는 엄청난 골드가 잠자고 있을 정도였다.

“이번 기회에 시중에 돈을 좀 푸는 것으로 하지. 돈이 너무 한 군데 고여 있어도 안 좋거든.”

“네?”

사미르가 자포리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이 시대의 사람이 경제 원리를 안다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기에 그의 의문은 당연했다.

“지금은 회의 중이니 다음에 설명해 주지. 그리고 도박장은 무조건 금지한다. 만약 이 일에 불복하는 자들은 모두 잡아들여.”

“저기, 영주님? 그건 왕국의 법을 어기는 일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자포리자의 강경한 태도에 카스만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왕국법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모든 기준은 스탄다비아의 자치법입니다.”

자포리자의 선언에 회의에 참가한 모든 이들이 흥분했다.

“허허허허.”

카스만이 너털웃음을 터트리고는 자포리자를 장하다는 듯한 인자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조금 전 자포리자의 말은 이 순간부터 스탄다비아는 베르아스 왕국에서 독립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엄청난 발언을 이곳에 모인 가신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이들은 자포리자가 스탄다비아라는 작은 영지에 얽매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진즉부터 느끼고 있었다.

은연중에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 생각해서인지 걱정보다는 기대에 부푼 모습이었다.

“병사들 중 절반은 임의로 치안대에 투입한다. 칼튼도 적극 협조해 주도록.”

“알겠습니다.”

병사들을 책임지는 칼튼이 흔쾌히 자포리자의 명령에 따랐다.

“종교와 관련된 모든 이를 잡아들이고, 도박장 역시 관련자들을 모두 잡아 와라. 반항하는 이는 모두 죽여라. 그리고 영지민의 삶을 해치는 것들도 모두 잡아들여라.”

“충!”

자포리자의 명에 기사들이 한 몸인 듯 경례를 했다.

그런 엄숙한 분위기에 말을 꺼내는 게 곤란했는지 사미르가 주눅이 든 목소리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영주님? 그들을 잡아넣을 감옥 시설이 부족합니다.”

“급한 대로 창고에 감금시켜 놓으면 내가 해결하지. 뒷일은 생각하지 말고 스탄다비아의 암적인 존재는 모두 잡아들이도록. 그리고 스탄다비아에 도박장을 연 상단들은 앞으로 우리와의 거래를 모두 중지한다.”

“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그들에게서 얻는 이득이 적지 않은데요.”

“상관없다. 당장은 거래량이 줄어들지 몰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상단에서 그만큼 거래량이 늘어날 테니. 게다가 그들도 약속된 만큼의 물량을 거래처에 공급해야 할 터인데, 우리의 제품이 없으면 신용에 문제가 생길 거야. 그럼 다른 상단에서 비싼 값에 구매해야겠지.”

자포리자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거래처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계속해서 비싼 값으로 물품을 구매할 테고, 그 손해가 나중에는 손쓰기 힘들 정도로 불어날 거야. 우리는 손해를 볼 게 전혀 없지만, 상단은 엄청난 손해를 보겠지.”

“아하, 정말 대단하십니다. 장사를 해 보신 적도 없을실 텐데, 장사에 대한 조예가 이렇게 깊을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사미르가 존경의 뜻이 담긴 반짝이는 눈빛으로 자포리자를 바라봤다.

“흠흠, 별거 아니야. 상인을 상대하다 보면 자연히 알아가는 것이지.”

자포리자가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미르가 부담스러운 듯 별거 아닌 투로 이야기했다.

“하, 저는 머리가 나쁜가 봅니다. 영주님 못지않게 상인을 상대했는데, 이런 걸 전혀 모르다니.”

“자네야 영지가 커지면서 신경 쓸 일이 워낙 많아 그런 거고.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말게나.”

자기 비하를 하는 사미르를 달래 주고,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이번에 종교 연합군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 것은 어떻게 됐는가?”

자포리자는 프라인과 아드리온과의 영지전이 끝나자마자 가우스 교의 움직임을 알아보기 위해 첩보장 블라도를 파견했다.

블라도는 가우스 교단이 있는 수도에서 곧바로 정보 수집에 들어갔다.

워낙에 대규모의 병력이 움직이는 터라 애초에 정보 규제가 불가능했던 만큼, 종교 연합군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블라도는 종교 연합군의 동태를 계속해서 살피기 위해 휘하 기사 몇 명을 두고 돌아왔다.

“현재 파악한 바로는 가우스 교를 중심으로 타르다스 교, 엘리시움 교가 연합해 군대를 조직하고 있습니다.”

“세 군데가 다인가?”

자포리자는 모든 종교가 똘똘 뭉쳐 올 거라는 예상이 빗나가자 의아해했다.

“네. 알아본 바로는 모든 종교가 참가하면 자신들에게 돌아올 이득이 줄어들 걸 염려해 베르아스 왕국의 3대 종교만이 참여하기로 했답니다.”

“이런 쓰레기 새끼들이 감히!”

기사장 칼튼이 신랄하게 욕설을 토해 냈다.

“음, 그럼 지금 영지에 여러 종교가 들어와 암암리에 활동하는 것도 그와 관계가 있는 것인가?”

자포리자는 조금 전 윌커슨의 보고가 생각나 물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그럴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우리가 염색된 천을 생산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다른 종교들도 참여를 원했으나 3대 종교는 이들의 요청을 모두 거부했습니다. 이에 다른 종교들이 전쟁이 나기 전에 미리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시도일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블라도의 의견에 사람들이 불쾌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하여간 종교라는 것들은 쥐새끼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진 않군요. 우리가 맛있는 먹이로 보이나 본데, 아주 곡소리가 나게 해 주겠습니다.”

윌커슨은 자포리자의 명도 떨어졌겠다, 이번에는 아주 제대로 본때를 보여 줄 생각이었다.

“흠흠, 보고를 이어 가겠습니다.’

블라도는 분위기를 한 번 정리하곤 보고를 이어 갔다.

“병력은 2만 정도로 파악되었습니다. 소문으로는 이번에 소드마스터로 알려진 용병도 참여한다고 합니다.”

“음…….”

자포리자가 턱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는 걱정보다는 오히려 흥미를 느낀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종교에 속해 있는 전투 마법사도 참여한다고 합니다.”

“전투 마법사라…….”

자포리자는 2만이라는 대군을 맞아 공성전을 벌일 생각이었다.

스탄다비아가 이번 영지전의 승리로 전력이 늘어났다고 해도 그들과 정면에서 맞부딪치는 건 무리였다.

공성전에서 가장 귀찮은 존재가 바로 전투 마법사였다.

그들은 마치 현대의 대포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들이 쏟아 내는 파이어 버스트는 방벽을 무너뜨릴 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강력한 불꽃의 구가 폭발하면서 주위에 타격을 주는 만큼 방벽뿐만 아니라 방벽 위 병사들에게까지 큰 타격을 주었다.

“하칸, 어떤가? 자신 있나?”

“자신 있습니다. 이 정도 지원을 받고 있는데, 그 정도도 못 하면 마법사이기를 포기해야죠.”

연구 마법사 하칸은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칸은 머리가 검다는 이유로 마탑에서 온갖 핍박을 받고 노예처럼 생활하다 자신과 결혼을 약속한 여자까지 비참하게 잃은 자였다.

마탑에 환멸을 느끼고 뛰쳐나왔으나, 그를 받아 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마탑과 마탑의 뒤에 있는 귀족의 눈 밖에 나는 것을 두려워한 덕에 그는 베르아스 왕국의 변방인 스탄다비아까지 온 게 된 것이었다.

자포리자는 망설임 없이 그를 받아들였고,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그의 머리카락 색이 검은 것은 오히려 자포리자에겐 호감이었다.

경일과 같은 머리카락 색이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는 돈이 없으면 실력을 올리기 힘든 직업이었다.

특히 연구 마법사 하칸은 더욱 그랬다.

그는 자포리자의 그늘 아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3써클에서 6써클로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지금 이곳만 봐도 그가 만든 마법 물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연구 마법사의 진정한 힘은 마법진과 스크롤이었고, 그는 전쟁을 대비해 수많은 스크롤과 마법진을 구축하고 있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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