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61화 (261/300)

[261화] 미친

“곧 게이트가 열릴 거야.”

“게, 게, 게이트라고요?”

경일이 말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가 다급히 물었다.

게이트가 나타났는데 헌터 협회에서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 게이트가 틀림없어.”

네로는 경일의 의심에 일말의 값어치도 없다는 듯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그런데 기존의 게이트와는 달라. 기존의 게이트가 내는 에너지 파장에 비해 많이 약해. 나도 게이트가 맞는지 한참 헷갈릴 정도였어.”

경일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명지광의 깜짝 선물이 절대 게이트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현대 게이트 탐지 기술을 너무 믿은 나머지 가장 확률이 높은 방법을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스탄다비아와 연결된 것처럼, 명지광이 몬스터와 연결된 걸 뻔히 알면서도 편견에 사로잡혀 가장 가능성이 큰 방법을 외면해 버린 것이다.

“언제쯤 열리는 건가요?”

경일이 다급하게 물었다.

“앞으로 한 시간 정도.”

“이런, 제기랄!”

경일은 초조한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러다 명지광에 대해 조사하다 알게 된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삼원 건설이 짓는 아파트 일정 거리 안에서는 게이트가 열린 적이 없었다는 걸.

경일의 옆에 서 있던 이길호는 온몸에 경련이 인 것처럼 부르르 떨고 있었다.

“사, 사장님, 지금이라도 헌터 협회에 신고해야 합니다.”

“늦었어요. 그리고 믿어 주지도 않을 겁니다.”

“그래도 시도라도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경일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이길호는 곧바로 헌터 협회에 게이트 생성에 관해 신고했다.

하지만 경일의 예상대로 헌터 협회는 장난 전화 취급했다.

이길호는 암담한 현실에 눈을 질끈 감았다.

“네로님. 게이트의 등급은 알 수 있습니까?”

“아니. 에너지 파장이 너무 약해서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어.”

“그럼, 결국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겠군요. 하아, 제가 게이트가 안으로 들어갈 테니 형님이 신고해 주세요. 게이트가 생기고 나서 신고를 하면 그들도 곧바로 헌터를 파견할 테니, 그 편이 나을 겁니다.”

“아닙니다. 저도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게이트 신고는 1분도 안 걸립니다. 그러니 저도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이길호는 최소한 경일의 짐이 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누구보다 많은 던전을 경험했고, 마나 연공법을 익혀 레벨을 뛰어넘는 강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확실한 일에 형님까지 끼어드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그리고 저는 던전 안이 더 편합니다. 거긴 보는 눈이 없거든요.”

잠시 경일의 눈빛이 반짝하고 빛이 났다.

‘내 모든 기량을 펼치기엔 보는 눈이 없는 게 오히려 더 편해. 네가 제법 놀라운 일을 벌였지만, 나도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 주지.’

이길호는 경일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뒤로 물러섰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게이트가 열릴 텐데, 이런 문제로 옥신각신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경일을 믿기도 했고.

그는 게이트가 열리면 곧바로 사진을 찍어 신고하기 위해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이들은 옥탑방을 내려와 게이트가 생길 거라고 예상되는 곳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간이 일렁이더니 하나의 원이 만들어졌다.

게이트가 등장한 것이다.

파란색을 기반으로 여러 색깔이 섞여 있어 눈으로는 게이트의 등급을 알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형님, 신고해 주시고 누구도 게이트에 못 들어오게 막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경일이 게이트로 들어가려는 순간, 네로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뇌리에 울렸다.

[물러서. 뭔가가 나온다.]

화들짝 놀란 경일이 뒷걸음질 치는 순간, 게이트가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했다.

가로세로 2미터 정도였던 게이트가 점점 더 커져 갔다.

“제기랄.”

이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게이트가 커진다는 건, 던전 안에 그만큼 거대한 몬스터가 있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게이트는 순식간에 그 크기를 늘렸다.

거의 3층 건물 정도의 높이만큼 커지더니, 이내 거대한 발이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이게 뭐지?”

경일은 순간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을 이해하지 못했다.

게이트가 생성되자마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다니…….

명지광이 가진 힘조차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으면서 그를 너무 제멋대로 평가한 자신의 실수였다.

그가 설마 이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의 성향을 봤으면 이렇게 쉽게 나올 리가 없었는데.

이러면 피해가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이트의 에너지 파장이 약한 게 이런 의미였어? 게이트가 던전 안의 몬스터를 잡아 놓을 힘이 없다는 뜻이었구나.”

놀란 건 네로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1미터에 육박하는 발.

몸이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도 주위를 압도하고 있었다.

“형님, 주변에 사람들을 대피시켜 주세요. 그리고 형님도 멀리 떨어지시고요.”

혼이 나가 있던 이길호에게 경일이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

그의 다급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이길호가 주변을 뛰어다니며 경고했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어요! 모두 피하세요!”

던전 브레이크는 현대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단어.

단어는 이길호의 다급함을 알리는 목소리와 합쳐져 곧바로 그 효과를 발휘했다.

던전 브레이크라는 소리에 자던 사람들도 깜짝 놀라 주변을 살피게 만들었다.

거대한 게이트에 일대에 소동이 일어났다.

워낙 외진 곳이고, 다들 일하러 나간 시간이라 그나마 사람의 수가 적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거기다 옥탑방 근처에 생겨서 다행이지, 분식점 근처에 이런 게이트가 생겼으면 그 피해는 가늠하기 힘들었으리라.

발 다음으로 다리가 나올 거라는 예상을 깨고 밖으로 나온 건 왼손이었다.

그걸 본 경일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손이 먼저 나왔다는 것은 게이트의 크기보다 더 큰 몬스터가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경일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거대한 손이 허공을 몇 번 휘젓더니, 게이트 링을 잡았다.

링을 잡은 손을 당기면서 이내 몬스터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리고 녀석은 그 커다란 게이트가 좁다는 듯이 몸을 구겨가면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사이클롭스…….”

몬스터의 정체는 이길호의 입에서 밝혀졌다.

“이런 미친놈…….”

사이클롭스는 A급 던전의 몬스터로 지금까지 딱 한 번 등장했다.

미국에서 열린 A급 던전에서 들어온 모든 헌터들을 죽이고, 결국 게이트를 넘어 지구를 침공하기까지 했다.

A급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것이다.

놈은 지구에 나타난 몬스터 중 가장 강했고, 가장 큰 피해를 입혔다.

사이클롭스의 출현에 미국은 놈이 나타난 곳이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화력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현대의 무기는 사이클롭스에게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처 대비하지 못한 민간인의 목숨만 거두어 갈 뿐이었다.

그렇다고 현대의 무기가 아예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이클롭스에게 큰 데미지를 주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시간을 버는 데에는 성공한 것이다.

미국 헌터 협회는 재빨리 국가급 헌터들을 동원했고, 겨우 녀석을 죽이는데 성공했다.

피해는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던전에 들어갔던 헌터 스무 명을 시작으로 민간인 수천 명, 그리고 국가급 헌터 두 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

사이클롭스와 헌터가 싸운 반경 1㎞ 일대는 미사일에 폭격당한 듯 도시는 반파되었다.

이건 명지광이 말한 경일의 뻣뻣한 목을 부드럽게 할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예 목을 꺾어 버리겠다는 의미였다.

만약 이걸 교육의 의미로 생각하고 보냈으면, 명지광은 한마디로 미친놈이었다.

아예 보통 사람과 생각의 기준이 다른 움직이는 폭탄과도 같은 놈이라 봐야 했다.

경일은 아마 후자에 가까울 거라 생각했다.

자신이 상대해야 할 놈이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놈이라니…….

잠시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사이클롭스가 게이트 밖으로 완전히 머리를 내밀었다.

녀석은 두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커다란 눈 하나가 박혀 있었다.

거대한 눈동자는 새롭게 맞이한 세계를 음미하듯 크게 원을 그리곤 천천히 돌아갔다.

이윽고 게이트를 완전히 빠져나온 사이클롭스는 거대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지경이었다.

5층 건물의 높이 정도의 키에 몸과 비교하면 유독 커다란 머리를 가지고 있어 기괴한 모습을 자아냈다

짧은 다리에 비해 긴 팔을 가지고 있었고, 투박해 보이는 손에는 거대한 쇠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크어어어어억!”

게이트를 나온 게 기쁜 듯 고개를 뒤로 젖혀 동네가 떠나갈 듯 포효했다.

“시끄러워, 이 새끼야!”

경일이 고막을 찢는 듯한 소리에 항의하듯 사이클롭스의 커다란 눈을 향해 인벤토리에서 꺼낸 창을 던졌다.

쐐액!

공기를 찢는 파공음과 함께 창은 정확히 사이클롭스의 눈에 도달했다.

하지만 경일의 기대와 다르게 창은 사이클롭스의 눈에 박히지 못하고 튕겨 나와 바닥으로 추락했다.

창이 경일을 손을 떠나는 순간 몸속 마나와 단절이 일어나 위력이 약해지긴 했으나, 그렇다고 그 위력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경일이 가진 힘이라면 가볍게 바위에 창을 꽂아 놓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힘이 담긴 창이 눈꺼풀도 아니고, 연약한 눈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크아아아아아!”

하지만 아예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창에 맞은 눈동자가 아픈지 사이클롭스는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지르며 계속해서 눈을 깜박거렸다.

“형님, 사람들을 대비시켜 주세요!”

사이클롭스의 위력에 눌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던 이길호에게 경일이 마나를 담아 소리쳤다.

“아, 네네!”

경일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이길호가 사이클롭스와 떨어지며 큰 소리로 외치며 건물 사이를 뛰어다녔다.

덕분에 사이클롭스의 등장에 얼어 있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이길호의 안내에 따라 급하게 대피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사이클롭스는 아직 고통이 가시지 않았는지 눈을 깜박일 뿐,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싸움이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건만, 경일의 등은 흘러내린 식은땀으로 인해 축축하게 젖을 정도였다.

땅을 단단히 디디고 서 있는 커다란 발과 이어지는 워낙 두꺼워서 짧아 보이는 근육질 종아리.

그리고 종아리보다 훨씬 더 두꺼운 허벅지, 그 위로 불룩 튀어나온 배는 언뜻언뜻 근육이 비쳐 보였다.

스모 선수와 같이 단단한 근육을 여러 겹 쌓아 올린 것이리라.

역시 가장 위협적인 건 몸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긴 팔이었다.

단단한 근육질의 긴 팔은 휘두르는 순간 원심력까지 더해져 엄청난 위력이 나올 건 불 보듯 뻔했다.

그리고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4미터에 이르는 뭉뚝한 몽둥이.

손잡이에서 끝으로 갈수록 굵어지는 몽둥이는 그 끝의 지름이 거의 1미터가 훌쩍 넘어 보였다.

4미터 길이의 몽둥이가 사이클롭스의 손에 들려 있으니, 옛날 포졸이 들고 다니던 짧은 육모 방망이 같은 느낌이 났다.

‘이런 괴물과 싸워야 한다고?’

가슴에서 밀려오는 막막함에 눈앞이 깜깜해져 왔다.

이길호가 사람들을 급히 대피시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현실이라고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때, 사이클롭스의 깜빡이던 눈꺼풀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리고 커다란 눈동자가 돌아 자신에게 고통을 준 경일을 똑바로 노려봤다.

경일의 존재를 확인한 사이클롭스가 벌레같이 작은 그의 모습에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고는 곧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저렇게 작고 연약해 보이는 존재가 조금 전 자신에게 창을 던진 게 맞는지 의심이 든 듯했다.

그 순간이었다.

“이 새끼야! 이거나 먹어!”

아무것도 없던 경일의 손에 다시 한번 창이 쥐어지고, 곧바로 등을 활처럼 휘어 온 힘을 다해 사이클롭스 눈을 향해 창을 던졌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너무도 손쉽게 막혔다.

사이클롭스가 눈을 한 번 감자 눈꺼풀에 막힌 창은 허무하리만큼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와 함께 사이클롭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몽둥이가 하늘로 치솟더니 그대로 경일을 향해 내리꽂혔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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