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이길호
포탄을 맞은 듯 움푹 패여 커다란 구덩이가 생기고, 구덩이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균열이 퍼져 나갔다.
몇 채의 건물이 진동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무서움을 넘어서 두려운 힘이었다.
하지만 경일이 보기에만 대단해 보인 것이지, 사이클롭스 입장에선 가볍게 잽을 뻗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놈은 곧바로 보기만 해도 무거워 보이는 몽둥이를 가볍게 들어 경일을 향해 다시 한번 내려쳤다.
꽝!
꽝!
꽝!
마치 도망가는 쥐새끼를 향해 빗자루를 내려치듯 몸을 날려 피하는 경일의 머리 위로 몽둥이가 떨어졌다.
“크윽.”
경일의 손엔 들린 거대한 검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지금은 검을 들고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뿌연 먼지가 피어올라 앞이 보이지 않았다.
사이클롭스의 공격은 거세지는데, 먼지로 인해 피할 방향을 잡는 것도 점차 힘들어졌다.
더군다나 놈이 한 번 공격할 때마다 몽둥이에 맞은 땅에 생긴 커다란 구덩이까지 함께 피해야 했다.
경일은 오로지 자신의 감을 믿고 선불 맞은 멧돼지마냥 죽어라 여기저기로 몸을 날렸다.
그의 몸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몽둥이가 지나간다.
직접적으로 몽둥이를 맞지는 않았으나, 몽둥이로 인해 깨진 바닥의 파편에 맞아 몸은 이미 엉망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맞을 듯 안 맞는 경일 때문에 사이클롭스는 바짝 약이 올랐다.
“크아아아아아아!!”
크게 한 번 포효한 사이클롭스는 몽둥이질을 멈추었고, 화가 잔뜩 난 외눈으로 경일을 노려봤다.
“헉, 헉, 헉, 헉, 헉…….”
급하게 움직인 반작용으로 경일은 거친 숨을 토해 냈다.
사이클롭스는 그런 그에게 쉬는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다시 한번 몽둥이를 크게 휘둘렀다.
하지만 이건 지금까지의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공격이 아니었다.
바닥을 따라 횡으로 휘둘러져 왔고, 이건 피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몸을 뒤로 빼서 몽둥이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기엔 이미 늦은 상황.
그에게 남은 건 두 가지 선택뿐이었다.
‘밑으로? 아니면 점프?’
바닥에 납작 엎드려 피하자니 지면에 아슬아슬하게 붙어서 오는 몽둥이를 보자 불안해졌다.
그렇다고 점프를 하자니 이도 만만찮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고민은 좋지 않았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빠르게 피해야만 했다.
잠시 머뭇거린 결과는 결국, 두 가지 선택지 모두를 사라지게 했다.
“바보 같은…….”
자신의 행동을 탓하며 경인은 즉시 인벤토리에서 방패를 꺼내 들었다.
그의 몸을 다 가려 줄 정도로 크고 두꺼운 방패가 사이클롭스의 몽둥이에 맞섰다.
터엉!
마치 거대한 종을 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경일은 방패째로 날았다.
사이클롭스와 경일의 힘이 호각이라 할지라도 체중에서 오는 차이를 메꾸는 건 불가능했다.
놈의 큰 덩치에서 나오는 힘은 가볍게 경일을 날려 버렸다.
온몸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한 번도 의식해 본 적 없는 내장이 각자의 존재감을 발휘하며 고통을 호소했다.
입에서는 식도를 타고 올라온 피를 내뿜었고, 뇌가 흔들려 정신을 차리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충격은 또 한 번 남아 있었다.
이대로 날아간다면 경일의 몸은 건물에 부딪혀 멈출 게 틀림없었다.
충격에 대비에 등에 힘을 줘 보지만, 놀란 근육들은 그의 의지를 거부했다.
몸도 몸이지만 이대로 사이클롭스가 자유로워진다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대비할 시간이라도 있었지만, 여기는 자다가 날벼락을 받은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미친 새끼! 나 하나 괴롭히자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다니!’
모든 원망이 명지광에게 향했지만, 그건 쓸데없는 공염불이었다.
명지광은 아무리 큰 피해가 벌어져도 양심의 가책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존재였다.
오히려 자신의 결정으로 일어난 일을 보며 즐거워하면 했지.
경일은 충격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공중에서 몸을 비틀려고 했다.
방패가 먼저 건물과 부딪친다면 꽤 충격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그의 바람일 뿐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퍼억!
경일은 자신이 등이 무언가와 부딪쳤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충격은 생각보다, 아니, 생각 이상으로 약했다.
‘뭐지? 충격이 이렇게 약할 리가 없는데…….’
순간적으로 떠오른 의문은 곧바로 해소됐다.
“커헉!”
익숙한 목소리의 신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길호가 맨몸으로 자신을 받아 냈다는 걸.
둘은 같이 어우러져 벽을 뚫고 들어가 몇 바퀴를 굴렀다.
그리고 경일은 즉시 고개를 들어 이길호를 찾았다.
이길호는 자신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큰대자로 누워 있었다.
.
.
.
이길호는 사이클롭스 등장에 자신이 악몽을 꾸고 있다고 생각할 만큼,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이런 게 가능할 리가 없어…….”
자신이 아는 상식에선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급한 경일의 목소리에 그는 곧 현실을 받아들였다.
곧바로 경일의 지시대로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던전 브레이크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다! 피하세요! 모두 집에서 나와 빨리 피하세요!”
이길호는 미친 듯이 건물 사이를 돌아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그의 절박한 목소리가 전해졌는지 사람들이 집에서 황급히 나오는 것이 보였다.
집에서 나온 사람들의 숫자가 그다지 많지 않아 사람들은 빠르게 도망갈 수 있었다.
그나마 이 동네가 산과 닿아 있는 외진 곳이고, 평일 낮 시간이라 사람이 많이 없어 다행이었다.
더 이상 집에서 나오는 사람이 없자, 이길호는 사이클롭스와 경일이 싸우는 곳으로 다가갔다.
경일은 분명 자신에게 멀리 떨어지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자신이 끼어들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사이클롭스는 강해도 너무 강했다.
그리고 그런 놈의 공격을 피해 내는 경일도 경이롭긴 마찬가지였다.
경일이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강한 줄은 전혀 몰랐다.
한 번도 싸우는 걸 본 적이 없던 만큼, 충격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문제는 경일이 아무리 강해도 밀린다는 점이었다.
사이클롭스의 몽둥이가 경일을 후려칠 때마다 간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 무지막지한 몽둥이를 무슨 솜방망이처럼 다루는 놈의 공격에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특히 사이클롭스가 인간을 한입에 씹어 먹는 광경은 공포와 함께 살이 부들거릴 정도였다.
이길호는 어떡해서는 경일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았다.
길가에 널린 돌멩이라도 던져 볼까 했지만, 사이클롭스에겐 모기한테 물리는 정도일 것이었다.
“제길! 무기라도 있었으면 저놈의 외눈에 박아 주는 건데!”
그건 자신의 희망 사항인 걸 잘 알았다.
아까 경일이 던진 창에 명중당하고도 멀쩡한 눈을 봤으니까.
아픈 듯 눈을 몇 번 깜빡이던 사이클롭스는 곧 안정을 되찾았다.
생각보다 더한 괴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경일이 당하고 있을 때는 그마저도 간절했다.
상처를 입힐 수는 없어도 사이클롭스의 시선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경일에게 도움이 될 테니.
사이클롭스의 묵직한 몽둥이가 경일을 내리칠 때마다 ‘제발’이라는 말이 입술을 비집고 절로 나올 정도였다.
경일은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포탄이 떨어지는 도로를 달리는 것만 같았다.
“제발!”
그가 할 수 있는 건 간절한 기도뿐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사이클롭스의 공격 패턴이 바뀐 건.
그와 함께 보이는 경일의 머뭇거림.
“어, 어, 어, 저러면 안 되는데.”
이길호는 뛰었다.
본능적으로.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자신의 예상이 틀리기를 기도했으나, 나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다행히 경일은 자신이 예상한 쪽으로 날아왔다.
이길호는 망설이지 않았다.
경일의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날렸다.
.
.
.
경일은 곧바로 기다시피 옆으로 가서 이길호를 불렀다.
“형, 형님.”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모습에 혹시나 그가 잘못된 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에 목소리가 떨렸다.
“저, 저는 괜, 괜찮습니다.”
이길호는 전혀 괜찮지 않아 보이는 목소리로 힘들게 이야기했다.
경일은 눈망울에 눈물이 고였다.
자신이 걱정할까 봐 이길호는 억지로 괜찮은 척을 하는 걸 왜 모르겠는가.
경일은 급하게 인벤토리에서 힐링 포션을 꺼내 천천히 그의 입으로 부었다.
‘역시…….’
손윤찬이 만든 힐링 포션은 경일의 바람을 배반하지 않았다.
평소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쓸 일이 없다 보니 효능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길호의 창백한 얼굴에 빠르게 핏기가 돌아오는 걸 보고 손윤찬에게 다시 한번 감사했다.
몸속이 진탕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이길호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얼른 힐링 포션을 마셔요.”
“네. 일단 형님부터 한 병 더 드세요. 저도 마실게요.”
경일은 얼른 이길호의 손에 힐링 포션을 쥐여 주었다.
다행스러운 건, 사이클롭스는 자신들에게 관심을 주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대신 아까 인간을 쉽게 맛본 터라 건물을 부수며 숨어 있는 인간을 찾고 있었다.
코를 킁킁거리며 인간의 냄새를 추적하는 것이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이 괴물 새끼야!”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집에 숨어 있던 한 남자가 사이클롭스의 손에 잡힌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간이 통째로 으스러지는 소리.
그 소리를 끝으로 남자의 비명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러고 있을 틈이 없었다.
만약 이대로 놈이 시내로 나가기라도 한다면, 엄청난 재앙이 벌어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형님, 위험하니까, 멀리 떨어지세요.”
경일은 이길호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그리고는 힐링 포션과 체력 포션, 마나 포션까지 가리지 않고 입에 털어 넣었다.
그때, 사이클롭스에게 뛰쳐나가려는 경일을 이길호가 급하게 잡았다.
“잠깐만요! 사장님, 투척할 수 있는 무기가 있습니까?”
“형님! 여기 있으면 위험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멀리 있겠습니다. 그러니 던질 수 있는 무기가 있으면 나누어 주십시오. 저 정도의 큰 덩치니 멀리 있어도 충분히 맞지 않겠습니까?”
경일은 잠시 생각하다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 주기로 했다.
이길호의 단단한 눈을 보니 그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을 돕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사람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그의 말대로 무기를 주는 게 나았다.
대신 경일은 이길호에게 확실한 다짐을 받았다.
“절대 사이클롭스 근처에 오시면 안 됩니다. 형님이 다치면 수한이랑 누나가 얼마나 슬퍼하겠습니까? 아시겠지요?”
“저도 제 주제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경일은 고개를 한 번 끄떡이고는 인벤토리에서 각종 무기를 꺼냈다.
혹시 무기가 부족해 던진 무기를 다시 주우러 오는 경우가 생길까 봐 넉넉하게 무기를 풀었다.
이길호는 경일의 인벤토리에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무기를 보고 순간 놀랐지만, ‘사장님이니 이 정도는 당연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몰라 포션도 종류별로 놓고, 경일은 다시 사이클롭스와 싸우기 위해 나섰다.
이대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런 경일의 마음에 큰 힘이 되어 준 건, 이길호와 같이 자신을 믿어 주는 사람과 동네 아이들이 웃는 모습이었다.
이들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사이클롭스를 죽여야만 했다.
경일이 멀쩡하게 걸어 나오자 사이클롭스의 얼굴이 티가 나게 굳어졌다.
무슨 징그러운 벌레를 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 새끼야, 몬스터 주제에 감히 어디서 그따위 표정을 짓는 거야. 내가 오늘 너에게 하늘 위의 하늘을 보여 주마!”
경일은 온갖 허세를 부렸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이클롭스의 기세에 밀리기 싫은 마음이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