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저 헌터는 누구지?
꽝! 꽝! 꽝! 꽝! 꽝! 꽝!
사이클롭스의 단순하고 무식한 공격이 다시금 시작되었다.
놈이 두꺼운 몽둥이를 망치질하듯 내려치자, 반격을 할 수 있는 겨를이 없었다.
당장 몸을 날려 피하기에도 바빴다.
하다못해 사이클롭스의 체력이라도 뺐고 싶었지만, 경일을 향해 몽둥이를 내려치는 가벼운 행동만으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던 중 변화가 생겼다.
사이클롭스의 사각에서 날아온 창이 놈의 큰 눈동자를 때린 것이다.
이길호였다.
절묘한 타이밍에 창을 던진 것이었다.
그도 마나 연공법을 익힌 헌터인 만큼, 창에 실린 위력이 약할 리 없었다.
그러나 그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상처를 입히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놈의 연약한 눈을 자극하기엔 충분했으니까.
사이클롭스는 따끔한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자신에게 떨어지던 몽둥이가 멈춘 순간, 사이클롭스의 시야에서 사라질 수 있었다.
“이야아아아!”
경일은 순식간에 사이클롭스와의 거리를 좁히고는 인벤토리에서 잠자고 있던 4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검을 꺼냈다.
단전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마나는 순식간에 검에 스며들어 오러의를 만들었다.
양손으로 손잡이를 부서져라 움켜지며 온몸의 힘을 다해 휘둘렀다.
경일이 노린 건, 창에 찔린 발의 발목이었다.
서걱!
깊게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분명 사이클롭스의 단단한 피부를 가르고 들어갔다.
“크허허허허헉!”
갑자기 느껴지는 불에 댄 듯한 화끈한 고통에 사이클롭스는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경일과 거리를 벌린 놈이 황당한 표정으로 발목의 상처와 경일을 번갈아 쳐다보였다.
경일은 공격의 활로를 열어 준 이길호에게 엄지를 치켜 올렸다.
.
.
.
경찰서와 헌터 협회의 전화기는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사이클롭스의 거대한 덩치는 멀리서도 잘 보였기에, 많은 시민들이 신고했기 때문이다.
가장 소란스러워진 건 역시 헌터 협회였다.
“협회장님! 큰, 큰일이 났습니다!”
부협회장 서진호는 협회장실 문을 부수듯이 열면서 소리쳤다.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단정했던 머리가 흐트러지고 숨까지 헐떡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는데, 부협회장이란 직책을 맡은 자가 이 정도로 충격을 받을 정도로 사이클롭스의 출현은 충격적이었다.
“사, 사이클롭스가 나타났습니다.”
“뭐라고?”
협회장 우선우가 깜짝 놀라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의자가 그의 다리에 밀려 뒤로 넘어졌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서진호는 진심으로 놀라고 있는 반면, 우선우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조금 어색했다.
분명 놀라는 표정을 짓고는 있으나, 흔히 말하는 발 연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큰일이 일어날 걸 알고 있던 것처럼.
“사이클롭스가 나타나다니, 정말인가?”
우선우는 어색한 말투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질문을 했다.
부협회장이라는 사람이 설마 이런 걸로 장난을 칠 리는 만무했으니까.
“네. 지금 신고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그럼 당장 협의회를 열고 정부 주요 인사들과 조직장들을 모두 부르게.”
“지금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사이클롭스가 나타났다니까요! 당장이라도 군에 협조 요청부터 보내야 합니다!”
“이봐, 부협회장. 이게 보통 큰일인가? 이럴 때일수록 매뉴얼에 따라야 하는 거야. 그래야 뒤탈이 없어.”
서진호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이클롭스는 사람들을 해치고, 도시를 파괴하고 있을 텐데 한가롭게 협의회를 소집하다니.
“매뉴얼이라니요. 이렇게 급박한 상황인데! 그리고 사이클롭스 대응 매뉴얼이 어디 있습니까?”
“왜 없어? 위기관리 매뉴얼이 바로 지금 같은 상황에서 쓰라고 있는 거야.”
“안 됩니다!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당장 군에 협조 요청하고 근처에 있는 고위급 헌터들을 모두 현장으로 보내야 합니다!”
“어허, 급할수록 매뉴얼을 따라야지. 그리고 군부대를 보낸다고 사이클롭스를 처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사이클롭스에게 먹이를 갖다 바치는 꼴이 될 수도 있어. 이미 미국에서 증명이 되지 않았나.”
“그럼 헌터들이라도 보내야죠!”
서진호는 매뉴얼 타령만 하며 손을 놓고 있는 우선우가 답답해 악을 쓰다시피 고함을 질렀다.
“허 참. 사이클롭스와 비벼 보려면 최소 60 레벨 이상은 돼야 하는데, 아무 작전도 없이 무작정 현장에 보내자는 건가? 그러다 모두 죽기라도 한다면 어쩔 건가? 우리가 미국처럼 헌터풀이 넓은 것도 아니고, 그들이 잃기라도 한다면 우리에게 그나마 남아 있던 기회도 없어지는 거야.”
서진호는 다시 입을 열려고 했으나, 우선우의 말에 다시 다물 수밖에 없었다.
벽에게 이야기해도 이렇게 답답하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니.
그렇다고 무작정 따질 수도 없는 게,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때 서진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대화 중이라 무시를 하려다가 액정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고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뭐? 확실한 거야? 그래, 알았어.”
통화를 하던 서진호의 눈이 커졌고, 이내 창백했던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지금 소식이 들어왔는데, 헌터 한 명이 사이클롭스를 막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헌터를 보좌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고위급 헌터들을 현장으로 보내야 합니다. 이건 하늘이 내려 준 기회입니다.”
서진호는 희망을 잡은 듯 기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우선우의 반응은 그의 기대와 달리 여전히 서늘하기만 했다.
“바뀐 건 없네. 헌터 한 명이 사이클롭스를 얼마나 잡아 놓을 수 있을 거 같나? 미국에서 무려 열 명의 고위급 헌터가 동원된 걸 모르나? 지금 자네가 말하는 사이에 그 헌터가 죽었을 수도 있네. 그리고 고위급 헌터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소중한 줄 모르나? 우리에게 기회가 많지 않은 이상, 완벽한 작전을 세워 한 명의 희생도 없이 사이클롭스를 잡아내야 해.”
“그럼 이대로 시민들을 외면하자는 이야기입니까?”
서진호가 화를 참지 못하고 책상을 내려쳤다.
“어쩔 수 없는 희생도 있는 법일세. 그리고 이러는 동안 그 희생이 더 커져 가고 있다는 걸 왜 모르나. 당장 회의부터 소집하게.”
결국 서진호는 우선우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경일을 위한 지원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야 했다.
.
.
.
닷닷닷닷닷!
경일의 머리 위로 헬리콥터 몇 대가 내는 프로펠러의 회전음이 들려왔다.
사이클롭스가 나타났다는 제보를 받은 방송국들이 취재를 위해 헬기를 띄운 것이었다.
“특종이다!”
기자는 경일이 사이클롭스와 싸우는 모습을 보곤 흥분했다.
뉴스는 긴급 속보로 나갔고, 정규 방송이 모두 중단되고 사이클롭스와 경일이 싸우는 모습이 생방송으로 전 국민에게 전달됐다.
대한민국은 난리가 났다.
아니, 전 세계가 난리가 났다.
사이클롭스의 등장만으로도 놀라운데, 한 명의 헌터가 홀로 맞서는 모습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저 헌터가 누구지 아는 사람?”
헌터의 정체를 알기 위해 기자들이 머리를 굴려 보지만, 아무도 경일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대한민국의 고위급 헌터들을 모두 알고 있는 기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보도국장이 다시 한번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헌터가 튀어나온 거지?”
사이클롭스와 맞설 수 있는 무명의 헌터라니.
방송국은 경일의 정체를 파악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가 용감하게 싸우는 모습에 모든 사람이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을 보냈다.
의외로 누구보다 응원을 보는 낸 이 중에 하나가 명지광이었다.
그는 대지 면적 6백 평에 이르는 땅에 지어진 저택에 설치된 개인 영화관에서 경일이 싸우는 모습을 실감나게 보고 있었다.
“어라? 저게 왜 저리 강한 거지?”
경일이 만약 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당장에라도 명지광의 목을 뽑아 버리기 위해 달려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보낸 몬스터가 얼마나 강한지도 모르다니.
상대 선수의 역량을 전혀 파악하지 않고 프로모터가 경기를 성사시킨 것과도 같았다.
화면에서는 경일이 악전고투하는 장면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설마… 죽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나름 던전의 주인인데, 기껏해야 몬스터 하나 이기지 못하겠어? 그나저나 사이클롭스가 세긴 세구나.”
팝콘을 집어 먹으면서 그는 남의 일처럼 말하고 있었다.
이 일을 꾸미고 실행한 건 자신이었으면서.
사실 명지광이 각성을 한 건 맞지만, 그는 헌터로서 활동하지 않았다.
몬스터와 이어진 암던의 주인이 몬스터를 잡는다는 게 애당초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으니까.
그저 자신의 인생을 즐기고, 세상을 비웃으며 장막 뒤에 앉아 마음껏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다 보니 명지광은 몬스터니 하는 이야기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세상에서 몬스터에게서 가장 안전한 게 자신인데, 관심이 있을 리가.
그래서 사이클롭스의 존재를 알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강한지는 몰랐다.
이번에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보여 줄 겸, 경일의 버릇을 고치고 싶은 와중에 암던의 수호신이 그에게 바람을 넣었다.
이번 일에 아주 적당한 몬스터가 있다고.
암던의 수호신의 입장에선 명지광은 지금껏 만나 던전의 주인 중에 최악의 인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좋은 조건에 암던과 연결이 됐다.
이대로라면 상대 던전이 나타나기 전에 인류를 멸망시키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명지광은 그의 바람을 산산이 부셔 버렸다.
그는 던전과의 유대가 끊어지지 않을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활동만 했다.
자신에게 내려진 사명이니, 그런 건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관심 있는 건 오로지 자신의 영달뿐.
의무는 외면하고, 자신의 권리만 찾는 지금껏 만난 최악의 던전 주인이었다.
암던의 수호신은 이번 기회를 이용해 얄미운 명지광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 주고 경일까지 제거하려 했다.
그동안 명지광이 제대로 활동을 하지 않아 암던엔 많은 에너지가 쌓여 있었고, 그 에너지에 자신이 능력까지 보태 무리긴 했지만 사이클롭스를 불러내는데 성공했다.
네로가 경일이 죽을 위기에 자신의 에너지를 썼듯이 암던의 수호신도 능력을 쓰고 나면 한동안 암던의 발전이 멈출 것이었다.
하지만 경일을 죽일 수 있다면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다.
그가 죽는 순간, 자신의 사명을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야, 잘하네. 저걸 피하다니. 제법인데? 어휴, 위험했어.”
명지광이 감탄을 하며 팝콘을 입안으로 던져 넣었다.
“던전과 만난 지 얼마 안 된 걸로 아는데, 아주 잘 자랐어. 뭐, 그러니 마운틴 펀치랑 마의 구간도 해결했겠지. 앞으로 몬스터들이 확 강해질 텐데, 저 정도면 걱정 없겠어. 그나저나 싸움이 시작된 지 꽤 됐을 텐데, 헌터 협회는 왜 이리 조용하지? 아 참! 내가 시간을 끌라고 했었지?”
놀라운 이야기였다.
헌터 협회가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이 명지광의 지시로 이루어진 일이라니.
무려 사이클롭스라는 최악의 몬스터가 나타났고, 국가의 힘이 신속하게 총동원돼도 모자랄 판국에 그 시기를 조율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니.
“저러다 죽는 건 아니겠지? 에이, 모르겠다. 죽으면 저놈 운명인거지. 하여간 간만에 재미있는 구경하네.”
명지광은 복잡한 생각은 곧바로 떨쳐내 버렸다.
“우와, 저절 피하네. 잘했어. 역시 던전의 주인이야. 파이팅!”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사이클롭스와 경일의 싸움을 숨죽이고 바라보고 있건만, 그는 무슨 월드컵 축구 보듯 구경하고 있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