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희생
이길호 덕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던 싸움에서 약간의 숨구멍이 트였다.
사이클롭스는 약이 바짝 오른 상태였다.
중요한 순간마다 이길호가 던진 무기에 눈을 맞았다.
큰 상처를 입은 건 아니었지만, 따끔거리는 감각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깜빡이는 그 찰나의 순간 때문에 계속해서 손해를 보고 있었다.
이길호만 아니었으면 자신에게 덤벼드는 경일을 죽이고 진수성찬을 즐겼을 것이다.
처음 먹어 보는 인간은 맛있었다.
늘 질긴 몬스터를 배를 채웠는데, 야들한 인간의 살과 내장은 별미 중의 별미였다.
이빨에 걸리는 쫀득한 식감과 끝까지 씹었을 때 터져 나오는 고급스러운 육향은 생각만으로 입안에 군침이 고일 정도였다.
얼른 벌레 같은 것들을 죽이고 인간을 먹고 싶은데, 어찌 된 일인지 죽지를 않았다.
아니, 도리어 자신에게 공격까지 하고 있었다.
사이클롭스는 이렇게 된 이유가 이길호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길호를 죽이면 되는데, 그게 쉽게 되지 않았다.
그를 죽이려 몸을 돌리는 순간, 경일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사이클롭스는 슬슬 짜증이 솟구쳤다.
이대로 싸운다고 자신이 질 건 아니지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에 화가 난 것이다.
이놈만 없었다면 벌써 배가 터지게 맛있는 인간들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꽝! 꽝! 꽝! 꽝! 꽝! 꽝!
사이클롭스의 공격이 더욱 거세졌다.
더 빨라지고 더 강해졌다.
“윽…….”
악다문 이 사이로 절로 신음이 삐져나왔다.
그리스 신전의 거대한 기둥이 연신 자신을 노리는 느낌이었다.
어찌어찌 피하고는 있지만, 공포로 인해 목에서 신물이 올라오고 팔다리가 덜덜 떨렸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는 날에는 자동차 타이어에 깔린 개구리가 될 판이다.
심리적 압박까지 더해지자 피하는 게 더욱 힘들어졌다.
몽둥이에 실린 사이클롭스의 살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짙어져 갔고, 아마 이길호가 없었으면 당하고 말았을 터였다.
쎄엑!
적재적소에 날아온 이길호가 던진 창이 사이클롭스의 눈을 때렸다.
경일은 찬스를 살리려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려다 주춤했다.
사이클롭스가 눈을 감지 않고 버티는 게 보인 것이다.
눈이 따가운지 눈물이 살짝 맺혔지만, 놈은 끝까지 감지 않고 부릅뜬 눈으로 경일을 노려봤다.
‘이러면 곤란한데…….’
역습은 사이클롭스에 상처를 입히는 것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에 경일은 조금이나마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이길호는 눈을 감지 않는 사이클롭스를 보고 당황했다.
이러면 경일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다시 한번 창을 던졌지만, 놈은 고개를 살짝 돌리는 것만으로 창을 무력화시켰다.
눈 옆의 피부를 맞춘 창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눈동자를 맞추지 못하면 자신의 공격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자신이 던진 창의 위력만으로는 놈의 피부에 상처는 내는 건 불가능했다.
이길호는 재빨리 자리를 옮겼다.
사이클롭스 시야 안에서 하는 공격은 이번처럼 막히고 말 것이었다.
이길호가 사이클롭스의 사각으로 뛰어가는 동안, 경일을 향해 몽둥이가 작렬했다.
꽝! 꽝! 꽝! 꽝! 꽝! 꽝!
“저러다 큰일 나겠어.”
아슬아슬하게 사이클롭스의 공격을 피하는 경일을 헬기에서 촬영하여 상황을 중계 중인 기자가 발을 동동 굴렀다.
사이클롭스가 이길호의 공격에 눈을 감지 않고 버티자, 싸움의 양상이 순식간에 달라져 버린 것이다.
기자는 사색이 되었다.
이건 단순히 사이클롭스와 헌터의 싸움이 아니었다.
이건 몇만 아니 몇십만의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이대로 그가 당한다면… 그 뒤 벌어질 일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조종사님, 사이클롭스 근처로 갈 수 있을까요?”
“한 번 시도해 보지.”
노련한 조종사는 기자의 의도를 곧바로 알아차렸다.
이윽고 헬기가 낮게 비행해 사이클롭스 주위를 돌았다.
닷닷닷닷닷!
프로펠러의 회전음과 함께 이는 바람이 사이클롭스의 신경을 긁었다.
조종사는 혼신을 다해 곡예비행을 펼쳤다.
“꺄아아아아!”
기자와 촬영 감독은 헬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해 손잡이를 잡고 버텼다.
이 근처에 그나마 높은 건물이 없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이런 비행은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플로펠러가 일으킨 바람을 타고 잔돌들이 사이클롭스를 때렸다.
돌이 피부에 맞는 건 별 상관이 없었으나, 그와 함께 날아온 먼지가 자꾸 시야를 가렸다.
“쿠워워억!”
사이클롭스가 짜증이 잔뜩 섞인 포효를 내뱉었다.
순간, 기자와 조종사의 뇌가 흔들릴 만큼 일반인에겐 치명적이었다.
헬기가 순간적으로 휘청이고, 조종사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급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겨우 휘청거리건 헬기를 안정시키긴 했지만, 순간 철렁 내려앉은 심장에서 오는 고통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심장을 잡아 강하게 조이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조종사는 기수를 돌리지 않았다.
어떡해서든 경일에게 약간의 도움이라도 줘야 했기 때문이다.
“헌터 협회는 뭐 하는 거야? 군대는 뭐 하고 있고. 이 정도 시간이면 누군가가 나타나야 하잖아.”
홀로 고군분투하는 경일을 안쓰러워하던 기자가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방송 중인 걸 잊은 기자의 생생한 목소리는 날것 그대로 전국에 방영되어 국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오, 저 기자 대단한걸.”
명지광은 팝콘을 씹으며 달뜬 얼굴로 화면에 집중했다.
특히 헬기가 곡예비행으로 경일을 도와주는 장면에서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몸을 들썩였다.
“이야,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액션 영화보다 더 재밌잖아. 이렇게 즐겁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네. 온몸이 쩌릿쩌릿한 게, 아주 죽이는군. 다음에는 직접 현장에서 보는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명지광이 편하게 의자에 기대 영상을 즐기는 동안, 이길호는 창을 짊어지고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거대한 사이클롭스의 사각으로 가기 위해선 한참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놈의 몸이 조금만 움직여도 사각은 사라져 버렸다.
경일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어 위험한 걸 알지만, 최대한 피하는 반경을 줄여 사이큽롭스의 시야를 고정시켰다.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헉, 헉, 헉, 헉, 나보다 사장님이 몇천 배는 힘들 거야. 더 힘을 내야 해.”
이길호의 의지에 반응한 단전은 폭발적으로 마나를 뿜어냈다.
하지만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사이클롭스가 몸을 움직여 사각을 없애 버렸다.
“제길, 죽도록 뛰었는데.”
순간, 힘이 쭉 빠졌다.
창 한 번 던지지 못하고 다시 뛰어야 해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발걸음이 느려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힘들수록 사이클롭스 눈동자에 창을 꽂아 놓겠다는 의지는 더욱 불타올랐다.
겨우 사각에 자리를 잡아 창을 던졌지만, 이번에는 사이클롭스가 눈을 깜빡이지 않고 억지로 버텼다.
그 모습에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놈이 눈을 깜빡이지 않으면 자신의 공격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마 이번 한 번만 그런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놈의 사각을 점령해 창을 던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사이클롭스는 눈에 창을 맞고도 버텼다.
이런 일이 몇 번 더 이어지자, 이길호는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이거밖에 안 되는 헌터인가?’하는 자괴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다시 마의 구간에 갇힌 것 같은 절망감이 몰려들었다.
사이클롭스기 눈을 깜빡이지 않으면 자신의 공격은 아무 소용이 없어져 버린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갈피를 잡지 못할 때, 헬기 소리가 들렸다.
“됐다!”
힘이 빠졌던 주먹에 다시금 힘이 들어갔다.
헬기가 사이클롭스의 주의를 끌어 주면 경일이 공격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공격에도 눈을 깜빡일 확률 또한 높아질 것이고.
경일은 생각지도 못한 헬기의 난입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게 자신을 돕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고는 가슴 한 켠이 뭉글해졌다.
저 헬기에는 최소 세 명 이상의 사람이 타고 있을 것이다.
조종사, 기자, 촬영 감독.
일반인인 그들이 목숨을 걸고 사이클롭스와의 싸움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 순간, 이길호의 창이 먼지를 뚫고 사이클롭스의 눈동자를 정확히 맞혔다.
부지불식간에 맞은 이번 공격에는 사이클롭스도 눈을 감지 않고 버티기가 힘들었다.
“됐다!”
경일은 휘두르는 손엔 어느새 거대한 검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서걱!
“크아아아아아!”
피부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사이클롭스의 비명도 같이 터졌다.
워낙 거대한 덩치에 두껍고 단단한 가죽이라 경일이 최선을 다해 공격해도 큰 상처를 내긴 힘들었다.
하지만 공격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렇게 하나둘 공격이 쌓이면 언젠가는 사이클롭스를 죽일 수 있을 것이었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경일은 이런 끈질긴 싸움에는 자신이 있었다.
거기다 샤벨 타이거와 싸웠던 경험이 지금 큰 도움을 주었다.
헬기는 사이클롭스 주위를 돌며 신경을 분산시켰고, 그사이 이길호의 창이 사이클롭스의 눈동자를 노렸다.
경일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확 줄어든 걸 느꼈다.
이건 기회였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만들어 준 소중한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
그는 무리해서라도 공격을 감행했다.
몇 번의 공격이 연속으로 들어갔다.
경일이 노린 곳은 발목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사이클롭스의 아랫도리라도 잘라 버리고 싶었지만, 점프를 하는 건 너무 위험했다.
허공에 뜬 상태로는 놈의 공격을 피하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대신 집요하게 놈에 몸에 난 상처만을 노렸다.
워낙 표적이 커서 상처를 노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동굴을 파고들듯 계속된 공격에 상처는 차츰 깊어졌다.
절뚝!
처음으로 사이클롭스가 발을 절었다.
방심한 사이클롭스 발바닥에 창을 꽂아 넣었을 때만 해도 싸움이 이렇게 힘들어질 줄은 생각지 못했다.
놈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고통을 호소하며 창을 뽑으려 하는 행동에 어느 정도 타격을 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에 꽂힌 창을 뽑은 사이클롭스는 몇 번 다리를 저는 듯하더니, 이내 똑바로 걸었다.
거대한 덩치에 비해 창은 너무도 얇은 탓이었다.
엷은 창은 기껏해야 가시에 찔린 것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 정도로는 놈의 행동에 지장을 주긴 불가능했다.
싸운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진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승기를 잡았다.
경일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더욱 사이클롭스를 몰아붙였다.
그 순간이었다.
퍼엉!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멀어져 갔다.
“이럴 수가…….”
자신을 도와주던 헬기가 추락하고 있었다.
사이클롭스는 헬기의 난입으로 싸움이 불리해지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가장 먼저 헬기를 제거했다.
헬기의 움직임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경일의 공격을 몸으로 버티며 냅다 몽둥이를 던져 버린 것이다.
조종사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몽둥이를 보고 급하게 날아올랐으나, 몽둥이 끝이 헬기의 몸체를 때렸다.
4미터에 육박하며 360도 회전하는 몽둥이를 피하는 건, 헬기의 기동력으로는 불가능했다.
몽둥이에 맞은 헬기 바닥이 뜯겨 나가는 순간, 조종사의 귀에 단말마의 비명이 들렸다.
“제기랄!”
조정사의 일그러진 눈에 눈물이 고였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몽둥이는 헬기 바닥을 가볍게 뜯어냈고, 그 과정에서 기자와 촬영 감독이 휩싸였으리라.
그는 멋대로 움직이는 조종간을 진정시키려 온 힘을 다했다.
하지만 헬기는 그의 통제를 벗어난 듯 그의 의도는 단 일도 투영되지 않았다.
조종사의 얼굴에 창백한 쓴웃음이 걸렸다.
몇 초 후면 저들을 만날 수 있을 터라 굳이 명복을 빌지는 않았다.
쾅쾅쾅쾅!
추락한 헬기가 건물과 부딪치며 시커먼 연기를 내며 폭발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