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66화 (266/300)

[266화] 영웅의 탄생

경일은 눈물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헬기가 추락하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헌터도 아닌 이들이 자신을 돕다가 죽다니.

헬기 속에서 죽어 간 이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정신 차려요!”

그 순간, 이길호의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깨웠다.

화들짝 놀란 경일의 눈에 어둠이 보였다.

몽둥이를 대신해 사이클롭스가 선택한 건 자신의 발이었다.

거대한 그림자에 갇힌 경일은 재빨리 몸을 던졌다.

쿵!

경일의 바로 옆으로 발이 내려왔다.

아슬아슬하게 사이클롭스의 발을 피한 경일은 땅바닥을 몇 바퀴나 구르고 나서야 겨우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바닥에 긁혀 옷은 찢어지고 머리는 산발이 됐지만, 경일의 눈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이 새끼야, 이제부터는 내 시간이야! 너에게 죽어 간 사람들의 명복을 빌기에는 네 목숨으로는 한참 부족할 테지만, 이것으로나마 용서를 빌어!”

경일이 손을 뻗음과 동시에 거대한 검이 잡혔다.

사이클롭스는 그 모습을 보고 몸을 돌려 주위를 둘러봤지만, 몽둥이가 보이지 않았다.

헬기에 스쳐 맞는 바람에 몽둥이가 수백 미터를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야압!”

경일의 기합과 함께 검이 휘둘러졌다.

서걱!

경일의 검은 정확하게 상처 안의 속살을 갈랐다.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몽둥이가 없는 사이클롭스는 무섭지 않았다.

더군다나 다리 한쪽을 절고 있어서 놈은 움직임에 제한이 있었다.

경일을 공격하려면 한쪽 다리를 지지하고 나머지 다리를 올려야 하는데, 다친 다리로는 녀석의 체중을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처음으로 반격도 하지 못한 채 공격을 허용했다.

이를 악물고 숨을 참은 경일은 그 짧은 순간 수차례의 공격을 이어 갔다.

살이 갈라지고 녀석의 하얀 뼈가 드러났다.

경일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놈의 하얀 뼈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크어어어어어엉!”

워낙 두껍고 단단한 뼈라 잘려 나가진 않았지만, 엄청난 고통에 사이클롭스는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러 댔다.

놈은 고통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쿠웅!

육중한 사이클롭스 때문에 먼지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녀석은 상처 난 발목을 몸 쪽으로 당겨 보호하면서 경일을 살기 어린 눈으로 노려봤다.

놈은 몽둥이가 없다 보니 차라리 주저앉아 경일을 공격하는 게 더 편하겠다고 판단한 듯했다.

긴 두 팔을 마음껏 쓸 수 있으니까.

거대한 망치 같은 두 개의 주먹이 경일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쾅! 쾅! 쾅! 쾅! 쾅!

사이클롭스의 주먹이 연신 바닥을 강타했다.

하지만 몽둥이에 비하면 그 위력도, 속도도 훨씬 느렸다.

경일은 사이클롭스의 주먹을 피하며 한쪽으로만 계속 돌았다.

놈은 그런 경일을 공격하려면 허리를 틀 수밖에 없었고, 어느 순간 허리의 가동 범위를 넘어 버렸다.

순간, 사이클롭스의 시선에서 경일이 사라졌다.

경일의 눈앞에는 무방비한 상태의 사이클롭스 거대한 등이 보였다.

사이클롭스는 경일을 공격하기 위해 앉은 채로 몸을 돌리려 해 보지만, 이미 늦었다.

경일의 묵직한 검이 무자비하게 허리와 등이 만나는 곳을 헤집었다.

구부정한 등을 따라 튀어나온 척추를 덮고 있는 피부는 얇았고, 검은 순식간에 그 피부를 갈랐다.

“캬아아악아악!”

사이클롭스의 입에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고음의 비명을 토해 냈다.

그와 동시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거대한 사이클롭스의 몸이 앉은 채로 들썩거렸다.

놈의 척추는 거대한 덩치에 맞게 무지막지하게 컸으며, 그 형태가 피부 밖으로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경일은 정확하게 척추뼈와 척추뼈 사이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검은 정확하게 신경을 긁고 지나갔고, 사이클롭스는 벼락을 맞은 듯한 쩌릿함과 함께 생살이 불에 지져지는 듯한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와 함께 찾아오는 단절감.

두 번째 휘두른 검이 정확하게 신경을 끊어 버렸고, 그 순간 사이클롭스는 하반신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크엉어어엉엉엉!”

사이클롭스가 고통과 상실감이 섞인 비명을 질렀다.

경일을 향해 몸을 돌리려고 해도 이제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 새끼야 넌 끝났어. 지구가 만만해 보이디? 넌 고향에서 골목대장이나 하고 살았어야 했어. 후회되지? 그런데 어쩌냐? 이미 늦어 버린걸. 널 이곳에 보낸 명지광을 탓하라고.”

경일은 사이클롭스가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처럼 또박또박 말했다.

사이클롭스는 경일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진 모르지만, 확실한 건 그의 말을 들을수록 놈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는 것이다.

할 말을 마친 경일의 검이 춤을 추고.

척추뼈 사이를 완전히 베어 내자, 사이클롭스가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바닥에 누운 놈의 커다란 외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포식자에서 순식간에 피식자로 추락한 그는 이제 한 마리 커다란 벌레일 뿐이었다.

경일이 누워 있는 사이클롭스의 가슴으로 뛰어올랐다.

축 처진 외눈이 경일을 향해 뻔뻔하게 자비를 구걸하는 듯했다.

하지만 경일의 대답은 사이클롭스의 외눈에 검을 박아 넣는 것으로 대신했다.

푸욱!

무척이나 단단한 젤리를 뚫고 들어가던 검에서 푹신한 무언가가 닿는 느낌이 났다.

사이클롭스의 뇌였다.

경일은 망설이지 않고 더욱 깊숙이 찔러 넣었고, 사이클롭스가 물 밖에 나온 물고기가 날뛰듯 크게 경련을 일으켰다.

입에서 하얀 거품을 토해 내고, 생명력이 넘치던 외눈이 점점 굳어져 갔다.

어두운 회색으로 물든 외눈에서는 더 이상 생명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경일은 다리에 힘이 빠져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와 함께 대한민국에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영웅의 등장이었다.

그것도 사이클롭스와 단신으로 맞선 진정한 영웅의 탄생이었다.

경일은 사이클롭스의 죽음을 확인하고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일으켜 놈이 나온 던전으로 향했다.

사실 녀석과 싸울 때, 혹시나 던전에서 또 다른 몬스터 나오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

사이클롭스만으로도 벅찬데 여기서 또 다른 몬스터가 나오는 건 정말이지 사양하고 싶었다.

다행히 몬스터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를 또 다른 위험을 대비해 던전을 폐쇄하는 게 맞았다.

게이트를 지나 경일의 눈에 들어온 던전은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런 던전은 한 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이건 던전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감옥에 가까웠다.

던전은 너무도 작았다.

사이클롭스가 인간 정도의 크기라면, 던전은 세 평짜리 감옥 크기였다.

던전 브레이크가 왜 이렇게 빨리 일어났는지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좁은 곳에 갇혀 있다 게이트가 열리니, 앞뒤 재지 않고 튀어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게이트가 내뿜는 에너지가 왜 그렇게 약했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이런 게 가능한 건가요?”

경일의 물음에 어깨에서 네로가 나타났다.

“가능은 하지. 그런데 쉽지는 않았을 거야. 이 던전은 자연적으로 생겨난 게 아니라 필요로 만든 거 같거든. 이 정도면 모르긴 몰라도 꽤 많은 힘이 들어갔을 거야.”

“그게 어느 정도인가요?”

“음… 글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암던의 힘과 수호신의 힘까지 동원된 듯한데? 이렇게 정확한 좌표에 인공적으로 만든 던전, 그리고 원하는 몬스터로 던전 브레이크까지. 꽤 많은 힘이 들어갔을 거야.”

“그럼 상대가 없었던 명지광이 지금껏 모아 온 힘을 모두 여기에 투자했다고 보는 게 맞겠군요. 휴~ 이제 좀 안심이 되네요. 이런 괴물 같은 몬스터가 연속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하니, 엄청 끔찍했거든요.”

“암던이 아무리 빨리 나타났다고 해도 그 정도로 힘이 있지는 않지. 그건 신이 아니면 불가능해. 너도 알다시피 너랑 던전이 연결되고 그동안 모은 힘으로 샤벨 타이거의 공격을 아주 약간 늦추는데 모두 썼잖아. 그 힘이 열 배로 모인다고 해도 이런 짓을 꾸미기는 힘들어.”

“이번에는 정말 운이 좋았어요. 아까 그 방송국 분들이 아니었으면 아마 결과는 달라졌을 거예요.”

“뭐, 운도 실력 아니겠어? 일부의 인간들을 빼고 모두 네 편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렇긴 한데, 그 일부의 인간들이 가진 권력이 만만치가 않아서 문제지요.”

경일은 사이클롭스와 싸우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기자들도 현장에 올 정도로 시간이 있었는데, 군부대나 헌터 그 누구도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이클롭스가 얼마나 위험한 몬스터인 줄 아는 그들의 대응이 이렇게 늦다니.

모르긴 몰라도 명지광의 힘이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증거가 없어 의심이라고 말은 했지만, 확신이나 마찬가지였다.

경일은 던전의 구석에서 애처롭게 빛을 내는 던전의 핵을 곧바로 부숴 버렸다.

그러고는 더 이상 볼일이 없어진 던전에서 나왔다.

이제 게이트가 닫칠 것이고, 이 일은 이제 모두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경일이 던전에서 나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영화의 엔딩처럼 헌터 협회 사람들과 군인들이 현장에 들이닥쳤다.

그와 함께 몰려든 기자들.

엄청난 숫자의 기자들을 보니 대한민국의 언론사는 모두 온 듯했다.

호위 차량의 호위를 받은 고급 승용차에서 한 인물이 내렸다.

헌터 협회장 우선우였다.

그가 앞으로 걸어 나가자 옆에서 보좌하는 몇 명의 인물이 그 뒤로 따라붙었다.

그는 만연에 웃음을 띄우며 경일을 향해 곧장 걸어왔다.

그러고는 이길호의 부축을 받고 있는 경일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수고했네!”

경일은 그가 내미는 손을 가만히 쳐다보다 시선을 올려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손을 내미는 대신 우선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경일은 몸으로 ‘이 새끼는 뭐지?’하고 표현하고 있었다.

“뭐 하는 겁니까? 헌터 협회 협회장님 손을 내밀었는데. 얼른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이세요.”

경일이 머뭇거리자 우선우 옆에 있는 수행원이 웃는 얼굴로 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기자들은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 대느라 그 말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경일의 손은 여전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이는 분명 명지광의 입김이 닿았을 확률이 높은 자.

그리고 그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이들의 늦장 대응은 충분히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어야 했다.

이건 직무 유기나 마찬가지였다.

시민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데 이런 늦장 대응이라니.

안 그래도 기분이 나쁜데 자신을 내려다보는 눈초리며, 당연하다는 듯 대접받으려는 저 행동에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이들이 원하는 건 내가 협회장의 손을 공손히 잡는 사진이겠지. 아주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구나. 이런 것들이 헌터 협회를 움직이고 있다니.’

경일이 움직이지 않자 이에 당황한 건 헌터 협회 쪽이었다.

협회장이 내민 손이 무안해질수록 그들은 점점 애가 탔다.

“뭐 해요? 얼른 손을 잡지 않고.”

이제는 반 협박조였다.

그래도 경일이 움직이지 않자 우선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져 갔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그는 노기 띈 목소리로 경일에게 엄중히 경고했다.

“내가 왜 당신 손을 잡아야 하지? 그리고 당신이 뭔데 나에게 수고했다고 이야기하는 거지?”

경일의 목소리에는 우선우에 대한 존중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 차가워서 몸이 시릴 정도였다.

사실 그가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바로 자신을 도와주다 죽은 헬기 속에 있던 사람들 때문이었다.

이들 때문에 그런 애꿎은 시민이 대신 싸우다 희생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 이런 쓰레기를 대신해 죽은 것이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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