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인터뷰
“…그놈이 사라진 게 사장님이랑 관련이 있는 건가요?”
그놈? 경일은 순간 의아했으나, 누구를 말하는지 곧 알아차렸다.
“네. 관계가 있습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조금 충격이긴 하네요.”
우해수는 경일의 대답에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잘게 떨리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그가 죽였다는 뜻이었으니까.
우성범은 죽어서까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부모님의 얼굴을 봐서라도 이제는 경일과 더 이상의 거래는 불가능했다.
이로써 해성 그룹은 이 시대에서 가장 최고의 헌터… 아니, 앞으로의 시대를 이끌어 갈 가장 강력한 우군을 잃었다.
“부길드장님, 무언가 착각하시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우성범은 살아 있습니다.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부길드장님이 원하시면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어요.”
경일은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네? 살아 있다고요?”
“네, 살아 있습니다. 다시 돌려놓을까요?”
“아, 아, 아니요…….”
우해수는 얼떨결에 본심을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우성범이 없는 세상이 그녀로서는 훨씬 더 좋았다.
“어디에 있는지 말해 줄 수 있을까요?”
“음…….”
경일은 잠시 고민하다 게이트를 열었다.
자신에겐 상대가 자신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있지 않은가.
“허억!”
그녀가 갑자기 나타난 게이트를 보고 자리에서 화들짝 일어났다.
얼마나 놀랐는지 전신에 경련이 일어난 게 눈에 훤히 보일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어제 헌터 협회에서 감지하지 못한 게이트가 열리고 사이클롭스가 튀어나오지 않았는가.
대경실색하는 그녀와 달리 경일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맺혔다.
그녀의 눈에 게이트가 보이는 것만으로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확실해졌다.
어찌 보면 우해수가 게이트를 볼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를 통해 받은 도움이 적지 않았고, 우성범까지 치워 주지 않았는가.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건, 생명의 은인이라는 점이었다.
경일은 확인할 것을 모두 확인했으니 게이트를 닫았다.
순식간에 사라진 게이트에 우해수는 자신이 헛것을 본 건 아닌지 어리둥절해했다.
“방금 게이트가 나타났는데… 이거, 나만 본 거 아니죠?”
그녀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경일에게 물었다.
“제가 할 이야기가 긴데, 오늘 시간 괜찮으세요?”
“네.”
경일의 진지한 태도에 우해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성범의 행방이 가장 궁금하시죠? 그는 지금 광산에 있습니다. 매달 해성 그룹에 보내는 미스릴 중 일부분은 그가 캔 거거든요.”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음, 제가 던전을 가지고 있는 건 짐작하고 있으시죠?”
“네.”
경일은 자신의 던전이 가진 이능에 대해 모두 이야기했다.
“호호호, 그러니까 그 인간이… 큭큭큭, 평생 남들을 부리기만 하고,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그런 인간이… 푸하하! 광부 일을 한다고요? 그것도 밥을 굶지 않기 위해서요?”
우해수는 통쾌하게 웃어 젖혔다.
얼마나 속 시원하게 웃는지 눈물까지 흘렸다.
“호호호, 죄송해요. 사장님… 큭큭큭.”
우해수는 눈물을 훔치며 경일에게 사과했다.
“제가 그 인간 때문에 평생 마음고생을 너무 많이 한 터라.”
경일은 그 웃음을 보고 마음이 조금 아팠다.
지금껏 얼마나 속을 끓였으면…….
그래서 조용히 그녀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감사합니다.”
우해수가 경일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우성범이 그의 목숨을 노린 이상, 사실 죽여도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우성범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처음에는 경일을 협박했을 테고, 그게 통하지 않자 자존심이 무척 상했을 것이다.
한번 자존심이 상한 그가 벌일 일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뻔했다.
학생 때는 일진을 사주해 보복 폭행을 했고, 사회로 나오자 깡패를 이용했다.
심지어 자신이 직접 차를 몰아 상대를 치기까지 했다.
오죽했으면 해성 그룹에 그의 사고를 뒤처리하는 전담 팀이 있었겠는가.
“이거 말고도 오늘 놀라운 이야기가 많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럼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컨디션이 좋은 걸요?”
“그럼 이야기하겠습니다.”
경일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녀의 표정은 다채롭게 변했다.
“네?”
“정말요?”
“그럴 수가…….”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런 일이?”
오늘 우해수는 평생 놀랄 것을 다 합친 것보다 더 크게 놀랐다.
“명지광이 나쁜 놈인 줄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그 정도로 쓰레기일 줄은 몰랐어요.”
그녀는 얼마나 놀라고 가슴이 답답했는지, 벌써 얼음물을 몇 잔이나 들이킨 상태였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요?”
우해수는 빠르게 이 사태를 이해했다.
지금은 해성 그룹의 이익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룹도 인류가 생존해야 존재할 수 있지, 인류가 망해 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니까.
결국 그녀는 경일이 내민 손을 잡았고, 그가 가장 필요로 한 부분을 얻게 되었다.
앞으로 해성 그룹은 명지광을 공격할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
“내일 인터뷰를 할 겁니다.”
경일은 자신이 세운 계획을 하나하나 설명했고, 우해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경일은 약속한 대로 MBS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반갑습니다. MBS 기자 최하윤입니다. 이렇게 단독 인터뷰를 수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할 도리를 하는 것뿐입니다. 사이클롭스와의 싸움에서 헬기 조종사분과 MBS 기자분, 그리고 촬영 감독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제가 없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그분들께 진정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경일은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일어서서 깊게 고개를 숙였다.
애도가 끝나고 기자의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되었다.
“일단 자기소개부터 해 주시겠어요?”
“네. 제 이름은 김경일입니다. 동네 분식이라는 조그마한 분식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헌터입니다.”
“이력이 매우 독특하신데요. 헌터보다 분식점 운영을 먼저 말씀하셨는데, 특별한 의미라도 있으신가요?”
“작은 식당을 여는 게 제 어릴 적 꿈이었습니다.”
경일의 대답이 끝나자 기자는 다음 질문을 이어 갔다.
“김경일 헌터님에 대해 국민이 무척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강한 겁니까?”
“하하하, 그 부분은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자신의 성장 과정을 밝힐 수는 없었다.
게다가 어차피 세상의 숨겨진 이야기를 해 봤자, 믿어 줄 사람들도 없을 터였다.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그리고 이 사실로 인해 오히려 사회에 분란만 일어날 게 뻔하고.’
“실례되는 질문입니다만… 혹시 레벨이 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음…….”
고위급 헌터들은 보통 자신의 레벨을 밝히는 것을 꺼렸다.
모두가 경쟁하는 관계이다 보니, 자신의 밑천을 드러내는 건 바보스러운 짓일 수밖에 없었다..
보통 들어가는 던전의 등급에 따라 어느 정도의 레벨인지 짐작할 뿐, 자기 입으로 정확하게 밝히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경일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앞으로 자신이 할 일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금의 레벨이 내일도 같으리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스탄다비아는 지금도 빠르게 발전 중이었으니까.
경일은 오래간만에 자신의 상태창을 불렀다.
<상태창>
레벨 109
힘 (4110/4110)
민첩 (4107/4107)
체력 (4107/4107)
마나 (7110/7130)
[스킬]
식물 찾기 (Lv. 5)
스탄다비아의 현황 관찰(Lv. 5)
인벤토리
사람 찾기 (Lv. 3)
광산 관리 (Lv. 3)
마나의 이해 (Lv. 5)
스탄다비아의 이동 (Lv. 2)
[특성]
스탄다비아와의 동조가 이루어짐
‘이거 참… 많이 오르긴 했네.’
경일은 상태창을 한 번 보고는 입을 열었다.
“109레벨입니다.”
“네, 네? 정, 정말인가요?”
인터뷰하는 기자가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을 더듬거리며 기자로서 부적절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이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하지만 시청자 중 그녀의 태도를 지적할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지금 생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매우 놀라긴 마찬가지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헌터의 레벨이 90대였다.
게다가 레벨이 올라갈수록 1레벨을 올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만큼, 경일이 말한 수치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잘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한계를 한참 넘은 그의 대답에 순간 의심이 먼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사람들은 사이클롭스와 싸우던 경일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자 경일의 레벨에 대해 다들 납득하게 되었다.
“대, 대단하시군요. 109레벨이면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는데요.”
“아닙니다. 저처럼 알려지지 않은 강자가 또 있지 않겠습니까?”
의미심장한 발언이었다.
경일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강자에 대한 여지를 남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말씀은 김경일 헌터님과 같은 강자가 더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기자는 촉이 좋은지 경일의 대답을 다시 한번 파고들었다.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 겁니다. 저와 같은 사람이 또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혹시 게이트가 나타날지 알고 계셨나요?”
“아닙니다. 우연이었습니다.”
“그럼 게이트에서 사이클롭스가 나왔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휴~ 눈앞이 깜깜하더군요.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아찔한 순간 중 하나였을 겁니다.”
순간, 기자의 눈이 번뜩였다.
“아찔한 순간 중 하나였다면, 사이클롭스와 같은 몬스터를 또 본 적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흠칫.
기자의 질문에 경일은 방금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뒷산에서 만난 게이트에서 던전 체인지가 일어나 트롤을 만난 일과 샤벨 타이거에게 죽을 뻔한 경험이 생각나서 자신도 모르게 말한 것이었다.
“그만큼 위험했던 순간이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레벨이 낮을 때는 고블린과의 싸움에서도 죽을 수 있는 거니까요.”
경일은 적당히 다른 예를 들어 질문을 넘겼다.
“지금 전 국민의 영웅이 되셨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영웅이라… 전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진짜 영웅은 일반인의 몸으로 사이클롭스와 맞선 사람들이겠지요.”
경일을 인터뷰하던 최하윤 기자는 그 대답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날 죽은 기자는 그녀의 직속 선배였고, 이런 대단한 사람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들을 치켜세우자 가슴에서 울컥하고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사이클롭스와의 싸움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이클롭스는 얼마나 강했는지, 또 그런 몬스터와 맞서는 기분은 어떠했는지, 마지막으로 싸움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음… 사이클롭스를 보고 처음 든 감정은 ‘거대하다’였습니다. 정말 크더군요. 생긴 것처럼 놈에게서 풍기는 위압감은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강했고요. 공격 하나하나가 정말 위험했습니다. 피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정도였으니까요. 그때 기회를 만들어 준 게 이길호 헌터였습니다. 형님 덕에 처음으로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었고, 또 헬기에 탄 분의 희생 덕분에 사이클롭스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사이클롭스와 거의 두 시간을 넘게 싸우셨는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외로움이었습니다.”
“네? 외로움이라니요?”
기자는 경일의 대답이 의외였는지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