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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74화 (274/300)

[274화] 공성전의 시작

‘뭐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피츠는 분명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한 싸움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속 밀리자, 분함과 동시에 걷잡을 수 없는 의문을 느꼈다.

하지만 순간, 그는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자포리자가 갑자기 위로 뛰어오르더니 거대한 롱소드로 강하게 내리쳤기 때문이다.

원체 큰 몸집인데다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질 때 발생하는 가속 에너지, 그리고 검에 이글거리는 오러까지.

지금까지 공격 중 가장 강한 공격이었다.

꽈앙!

이미 피하기는 늦었다고 판단한 피츠는 급하게 검을 들어 올려 일격을 막아 냈다.

“이런 제길!”

단단하게 땅을 디딘 두 다리가 땅속으로 박혀 들어간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누구도 듣지 못했지만, 그의 귀에는 ‘쩡’ 하고 검이 지른 비명이 분명히 들렸다.

‘이럴 수가!’

피츠는 곧바로 데굴데굴 굴러 뒤로 물러선 뒤, 자포리자와의 거리를 벌렸다.

소드마스터의 행동이라기에는 매우 추한 모습이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얼른 검의 상태부터 살폈다.

이윽고 실금이 생긴 부분을 발견한 뒤, 어마어마한 분노에 휩싸였다.

신의 금속으로 된 이 검은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검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유명한 용병이고, 돈이 많더라도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이걸 얻기 위해서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짓을 벌였던가.

아무리 돈만 주면 모든 걸 다한다는 용병이라고 하지만, 그들도 지키는 선이라는 게 있었다.

하지만 피츠는 어느 한 귀족 가문이 신의 금속으로 된 검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 선을 넘었다.

그는 한밤중에 복면을 쓰고 침입해 저택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였다.

남자, 여자, 아이, 심지어는 갓난아이까지…….

게다가 혹시 검의 상흔으로 범인이 자신이라는 것이 특정될까 두려워 저택에 불을 질러 모든 증거를 지워 버렸다.

이 검 하나를 얻기 위한 그의 욕심 때문에 죽어 간 사람이 백 명이 넘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얻은 물건에 금이 가자 피눈물이 흐를 지경이었다.

그는 곧바로 등을 돌려 도망치듯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왔다.

자신은 용병이다.

이대로 계속 싸웠다가는 검은 물론이고 자신의 생명까지도 위험해질 게 뻔한데, 손해 보는 짓을 더 이상 할 이유가 없었다.

용병 소드마스터로 쌓아 온 명예는 떨어지겠지만, 그리 큰 타격을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검과 자신의 목숨에 비하면 명예 따위는 하찮은 것이니까.

그리고 변명할 거리도 남아 있었다.

“아니,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명색이 소드마스터란 작자가 싸움을 포기하고 용병으로서의 책무도 다하지 못하다니… 당신은 명예가 없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는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이데카른이 패잔병처럼 돌아오는 피츠를 보고 버럭 화를 냈다.

피츠가 싸움을 포기하는 바람에 자신의 체면이 크게 상한 것은 물론이고, 다른 대신관에게 내세운 명분까지도 사라진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그들은 이 일을 빌미로 더 많은 이익을 뜯어내려고 하리라.

이데카른이 자신의 사정도 알지 못하면서 대뜸 따지고 들자, 피츠는 눈이 돌아갔다.

안 그래도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는데, 활활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야, 이 새끼야! 네놈이 지금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 소드마스터의 존재를 왜 숨긴 거냐? 이건 계약 위반을 넘어 내 목숨을 노린 거나 마찬가지야. 당장이라도 네놈의 목을 베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는데, 모르고 있는 모양이군. 안 그래?”

머리꼭지가 돌아 버린 피츠는 가우스 교의 대신관인 이데카른에게 협박과 함께 막말을 쏟아부었다.

아무리 그가 소드마스터라는 높은 경지의 검사이더라도, 한 종교의 대신관에게 이런 무례한 행동을 저지르는 건 후폭풍이 심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뒷일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이데카른이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그저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릴 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피츠의 기세가 무섭기도 했지만, 사실 그의 말에 틀린 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계약서에는 상대가 소드마스터란 내용이 없었다.

만약 그런 내용이 계약에 포함되었다면, 지금 지급한 돈의 수십 배는 지급해야 했을 터.

아니, 그 많은 돈을 지급하더라도 피츠가 계약서에 서명을 할지도 미지수였다.

“아니, 그래도 소드마스터란 작자가 중간에 싸움을 포기하다니…….”

할 말이 없어진 이데카른은 피츠의 자존심을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돌아온 건 그의 무시무시한 눈빛 뿐이었다.

순식간에 느껴지는 숨 막힐 듯한 공기와 목을 조여 오는 살기.

이데카른은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번 전투가 끝나면 셈을 다시 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내가 진심으로 화가 날 거 같거든. 듣자 하니 스탄다비아에 뜯어먹을 게 많다던데, 그중 일부는 나에게 줘야 계산이 맞지 않겠어?”

이데카른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있다가는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강하게 지배했다.

피츠는 이데카른의 반응이 만족스러운지 그를 향해 차가운 미소를 한 번 지어 주고는 자신의 막사로 돌아갔다.

“이런 망할 새끼가…….”

이데카른은 피츠가 떠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작게나마 욕을 내뱉을 수 있었다.

이번 일로 자신의 몫이 줄어들 것은 명약관화했다.

다른 대신관들은 이 일의 책임을 모두 자신에게 미룰 게 뻔했고.

명분도 자신에게 있었고, 이 일을 계획한 것도 자신인데…….

결과적으로 자신의 몫으로 배정될 게 가장 적을 것 같은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아직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실질적으로는 전투 마법사 일곱 명과 화살에 당한 백여 명이 피해의 전부.

그런데… 벌써 지고 있는 듯한 기분은 왜일까.

이데카른은 머리를 강하게 흔들어 기분 나쁜 상상을 날려 버리려 애썼다.

조금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기는 하지만,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 만큼 무조건 이겨야 하는 전쟁이었다.

* * *

“우와아아아아아아!”

자포리자가 방벽으로 돌아오자, 병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비록 상대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이 싸움은 그가 이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피츠가 허겁지겁 등을 돌리고 도망가는 모습이 얼마나 통쾌하던지, 모두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영주님,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칼튼은 자포리자의 안위부터 물었다.

“크게 다친 곳은 없다.”

자포리자는 체력 포션과 마나 포션을 연달아 마셨다.

그러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것처럼 긴장으로 뭉쳤던 근육이 이완되며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격전을 치르느라 비어 버린 단전에서도 마나가 서서히 차오르는 느낌.

네로가 가르쳐 준 던전 고유 식물로 만든 새로운 포션들의 효능은 거의 사기라고 할 만큼 대단했다.

“이번 싸움이 꽤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그렇게 보이나?”

“네. 영주님 얼굴에 그렇게 써져 있습니다. 하긴, 그냥 지켜보는 저도 피가 끓을 정도였는데, 당사자이신 영주님은 어떻겠습니까.”

“자네도 얼른 소드마스터의 경지로 올라오게. 또 다른 세상이 열리는데, 이게 꽤 괜찮아.”

“알겠습니다. 영주님.”

이번 싸움으로 스탄다비아의 사기가 크게 올라간 것과 반대로 종교 연합군의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사실 그들은 3개월 간 행군하는 게 힘들었지, 도착하기만 하면 곧바로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기대하고 있던 짜릿한 약탈.

재산을 뺏고, 여자를 범하고, 가져갈 수 없는 것은 모두 때려 부순 뒤 불을 지르기까지, 그야말로 어떤 짓을 해도 괜찮은 본능 해방의 날.

이 정도로 쉬운 전투는 없을 거라 여겼는데…….

대부분의 병사들은 본격적으로 싸운 것도 아닌데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직은 단지 기분이 나쁜 정도이지만, 진짜 전투가 시작되면 미칠 영향은 작지 않으리라.

칼리스 역시 골치가 아팠다.

생각지도 못한 소드마스터의 등장으로 인해 자신이 세운 계획이 틀어졌다.

맞설 상대가 없을 거라 확신한 일기토에서 패배했고, 그 때문에 기세를 몰아 공격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사실 명백하게 자신들보다 약한 적이라 여겨 별다른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지금의 적은 마치 양파와도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전력이 계속해서 튀어나왔고, 이번에는 어떤 이변이 일어날지 걱정되었다.

스탄다비아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 그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 대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스탄다비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전쟁을 이어 가고 싶은데, 그러자니 시간이 없었다.

조그만 자작령 따위는 당연히 이길 줄 알고 보급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공성 병기를 만들기 위해 일주일을 소비해서 더더욱 문제가 컸다.

벌써 2만의 군세가 먹기 위해 준비한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이미 전쟁이 끝났어야 할 시점인데, 아직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당장 공격하자니, 또 걸리는 게 있었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군. 분명 성을 포위한 건 우리인데, 정작 꼼짝 못하고 굶을 처지가 된 것도 우리들이라니…….’

공성을 펼칠 때, 시간이 꽤 걸리지만 성을 포위해서 적의 보급을 끊음으로써 승리하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방법도 불가능한 것이, 스탄다비아는 강을 끼고 있어 자유로운 보급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연전을 펼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이니만큼, 칼리스가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결국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작정 공격하는 것뿐이었다.

대신관들이 병사의 희생에 대해서는 상관없다고 말했으니, 이제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뿌우우우우!

나팔이 한 번 울리고,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정렬하라!”

기사들이 말을 타고 다니며 대열을 짰다.

방패병들이 대열의 앞에 서서 적의 화살을 막으며 전진하면, 그 뒤를 병사들이 따랐다.

특이한 점은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각자 커다란 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는데, 화살에 맞을까 방패병의 뒤에 바짝 붙어서 전진했다.

자루에 든 건 모두 흙이었는데, 방벽 앞에 파여 있는 해자를 메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물 위에 사다리를 걸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단 해자를 메우는 게 우선이었다.

쐐애엑!

방벽에 가까이 가니, 약속이나 한 듯 화살 비가 쏟아져 내렸다.

“막아!”

“어, 어! 조심해!”

“이런 개자식들…….”

방패병은 재빨리 방패를 치켜들었고, 그 뒤를 따르는 병사들은 뒤에 몸을 바짝 붙이거나, 메고 있던 자루를 들어 화살을 막아 냈다.

퍽! 퍽! 퍽!

화살의 대부분은 방패에 가로막혔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방패가 없었다면 모두 명중했을 화살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이 사실이 병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자신들이 마치 살아 있는 과녁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것도 다 쇠뇌 덕분이었다.

스탄다비아에서 운용하고 있는 쇠뇌의 최대 장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활보다 배우기가 쉽다는 것이고, 둘째는 정확성이 활보다 높다는 점이었다.

“아아아아악!”

“커억!”

“제기랄…….”

결국 하나둘씩 화살에 명중해서 피해를 입는 병사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진열을 잘 짜고 방어하려고 하지만,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모두 막아 낼 수는 없었다.

병사들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비명 때문에 점점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쟁에서 동료가 죽는다고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는 법.

어느새 성문 앞에 도착한 병사들은 해자에 흙을 붓기 시작했다.

칼리스의 작전은 이러했다.

먼저 해자를 메워 다리를 만든다.

그렇게 길을 확보한 후 공성추를 사용해 성문에 구멍을 뚫고 안으로 진입한다.

고전적이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아아아아악!”

“살려 줘!”

방벽과 가까워질수록 병사들의 희생은 점점 커졌다.

그러나 2만이나 되는 군세이니만큼, 기어코 성문과 통하는 다리를 만들고 말았다.

잠시 후, 공성추가 등장했다.

높이가 낮은 마차에 텐트 모양으로 화살을 막을 수 있는 벽을 세우고, 거대한 나무를 연필처럼 뾰족하게 깎아 마차 위에 고정한 형태였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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