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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75화 (275/300)

[275화] 부서지지 않는 성문

드르르르륵!

수십 명의 병사들이 공성추에 달라붙어 온 힘을 다해 빠르게 밀었다.

무조건 한 번에 뚫어야만 했다.

만약 실패한다면 공성추를 후퇴시킨 뒤에 밀어야 하는데, 화살 비가 쏟아지는 길을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터엉!

공성추와 성문이 부딪치며 큰 종을 치듯 엄청난 소리가 났다.

성문 역시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굉음을 낼 정도로 강하게 부딪쳤음에도 성문은 뚫리지 않았다.

“씨발, 이게 왜 안 뚫려? 이 정도로 세게 부딪쳤으면 당연히 뚫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경험 많은 병사가 억울한 듯 소리쳤다.

그러나 소리친다고 상황이 바뀌지는 않는 법.

어쩔 수 없이 공성추를 다시 뒤로 밀 수밖에 없었다.

“끄응…….”

“힘을 내!”

“제기랄…….”

성문과 밀착되어 있는 공성추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흙으로 메웠다지만, 원래 물로 가득 차 있던 해자는 질퍽거렸다.

바퀴가 땅에 자꾸 처박히니, 그냥 앞으로 미는 것보다 몇 배나 더 힘들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은 젖 먹던 힘을 다해 공성추를 밀어 겨우 성문과의 거리를 벌렸다.

물론 그 와중에도 쏟아지는 화살에 수많은 동료들이 계속해서 죽어 나갔다.

“저놈들은 화살이 왜 이리 많아? 이 정도로 쏴 댔으면 다 떨어질 때가 되지 않았어? 아무리 돈이 많은 영지라도 저렇게 많은 화살을 만들 수는 없을 텐데…….”

공성추는 이미 고슴도치가 되어 있었다.

화살을 막기 위해 세운 벽에는 빼곡하게 화살이 박혀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병사들은 완전히 질린 상태였다.

그러나 이들도 물러설 곳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꾸물거리는 이 시간에도 주변의 동료들은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죽어 갔다.

살아남을 확률이 가장 높은 방법은 성문을 깨부수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

병사들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다시 한번 공성추를 밀며 앞으로 뛰었다.

무거운 공성추는 한 번 앞으로 움직이고 나면, 그 뒤로는 밀기가 수월했다.

이를 악문 병사들이 더욱 힘차게 밀자, 가속도가 붙어 날아가듯 앞으로 쏘아졌다.

처음 부딪쳤을 때보다 두 배는 더 빠른 속도였다.

“됐다!”

병사들은 이번에는 확실히 성문을 뚫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힘껏 미느라 공성추와 성문이 부딪칠 때 충격을 해소할 수 있을 거리를 두지 못했다.

지금의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당연히 체감하지 못했고 말이다.

콰앙!

두 번째로 엄청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생긴 충격과 반동으로 인해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공성추의 연결된 나무에 얻어맞고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하지만 이곳은 전쟁터.

쓰러지지 않은 병사들은 희망을 품은 눈으로 성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뾰족하게 깎은 나무 앞부분이 짓이겨져 뭉툭해졌음에도 그 결과는 너무나 허무했다.

성문은 철벽의 위용을 자랑하듯 멀쩡한 모습이었다.

“이런 개 같은 일이! 문이 무슨 철로 만들어지기라도 했대? 왜 안 부서지는 건데!”

공성추를 밀던 병사 중 하나는 고통스러운 가슴을 움켜쥐고 입가에 피를 흘리며 울분을 토해 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부르짖어 봤자 결과는 변하지 않는 법.

스탄다비아의 성문은 아주 크고 웅장했다.

평상시에는 이런 큰 성문이 영주의 권위를 나타낼지 모르지만, 공성전에서는 커다란 표적에 불과했다.

보통 한 번만 세게 때려도 나무로 된 문은 부러지거나 구멍이 뚫렸다.

그러나 공성추를 두 번이나 얻어맞고도 너무도 멀쩡해 보였다.

사실 그 비밀은 이중 구조에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나무로 보였지만, 문 안쪽은 5㎝ 두께의 철판이 덧대어져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공성추를 박아 본들 겉의 나무만 짓이겨질 뿐, 성문이 뚫릴 턱이 없었다.

두 번째 공격도 실패하자 병사들의 사기가 급속도로 떨어졌다.

“안 돼. 우리 힘으로는 성문을 뚫을 수가 없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공성추를 밀었던 병사의 얼굴에 짙은 패배감이 생겨났다.

“뭐 하는 거지? 죽고 싶나? 움직여, 움직이라고! 다시 공격해. 성문이 뚫릴 때까지 공격하란 말이다!”

공성추를 담당하는 기사가 방패 뒤에 숨어서 소리쳤다.

“개새끼. 자기가 한 번 해 보라지. 안전하게 방패 뒤에 숨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입만 나불거리는 주제에…….”

병사 한 명이 기사 쪽을 향해 침을 뱉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공성추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세상 그 어디보다 규율이 엄격한 곳이 전쟁터였고, 기사에게 반항하다가는 적이 아니라 아군의 칼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콰앙! 쾅! 쿵! 쿵! 쿵!

연신 묵직한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칼리스는 공성추에만 모든 일을 맡긴 게 아니었다.

다른 쪽에서는 성벽 자체를 무너뜨리기 위한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투석기에서 발사된 돌덩이가 연신 방벽을 때렸다.

돌덩이가 방벽에 부딪칠 때마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해자로 떨어졌다.

“얼른 장전해! 뭐 하는 거야?”

투석기마다 기사들이 붙어 병사들을 독촉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 몸뚱이보다 큰 돌을 인력으로 장전하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화살이 빗발치는 와중이니, 신경 쓸 부분이 더 많았다.

방패병들이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 주곤 있으나, 애초에 완벽한 방어는 없는 법.

날아오는 화살들은 방패병을 비웃듯 뒤에 있는 무방비한 병사들을 노렸다.

“크아아아아악!”

그때, 엄청난 비명이 들렸다.

여러 명의 병사가 달라붙어 사람 몸뚱이보다 큰 돌덩이를 운반하던 중, 한 명의 병사가 화살에 맞은 것이다.

화살을 맞은 상처는 크지 않았으나, 넘어지면서 들고 있던 돌덩이에 다리가 깔려 버렸다.

함께 돌을 나르던 병사들이 급하게 달려와 구조했으나, 이미 다리가 부러져 뼈가 튀어나온 상태였다.

“도, 도와줘…….”

병사는 떨리는 손을 내밀었지만, 그 손을 잡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전장.

세상 그 어디보다도 비정한 곳.

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떠들던 동료가 바로 눈앞에서 등을 돌렸다.

병사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기어서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어느새 날아온 화살 하나가 그의 등을 꿰뚫었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눈물 젖은 얼굴이 땅에 처박히며 하나의 생명이 꺼졌다.

그야말로 비정한 생지옥의 현장이었다.

* * *

투석기는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돌덩이를 날려 보냈다.

결국 그 노력이 하나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방벽에는 연구 마법사가 설치한 마법진이 있었지만, 연속된 투석기 공격에 마법진이 파괴되거나 마정석의 에너지가 다해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병사들은 이 사실에 고무됐다.

이제 한 꺼풀을 벗겼으니, 속살이 드러난 방벽을 때리기만 하면 된다고 여긴 것이다.

“영차, 영차, 영차!”

“모두 힘내자고. 이제 곧 방벽이 무너질 테니까!”

투석기를 장전하기 위해 수십 명의 병사가 밧줄을 잡아당겼다.

쐐애액!

쿵! 쿵! 꽝! 쿠웅!

수십 개의 돌덩이가 연속으로 방벽을 때렸다.

병사들은 기쁨에 넘쳐 힘든지도 모른 채 투석기를 발사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으윽. 뭔가 이상한데?”

경험이 많은 병사 한 명이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었다.

어느새 땀으로 물든 그의 손은 피가 새어 나와 붉게 변해 있었다.

다른 병사들도 곧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꽤나 많은 양의 돌덩이를 준비해 두었고, 그것이 모두 떨어져 가는데도 방벽은 멀쩡했다.

마법진이 파괴된 것을 분명 그들의 눈으로 확인한 상황.

이 정도면 방벽이 무너지고도 남아야 했다.

“왜 안 무너지는 거지?”

병사들의 얼굴에 커다란 물음표가 생겼다.

스탄다비아의 군대는 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하! 이것들아, 백날 열심히 때려 봐라. 방벽이 무너지나. 이 벽의 두께만 해도 2미터가 넘는다는 말씀이야. 고작 투석기 정도로는 절대 무너뜨리지 못할 거다!”

공사를 총지휘한 행정관 사미르가 기분 좋게 웃었다.

이 모든 것은 경일의 엄청난 지원 덕분이었다.

경일은 웬만한 신도시를 건설할 수 있을 정도의 시멘트와 벽돌을 지원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무식하게 두꺼운 방벽이었다.

사미르의 통쾌한 웃음과 반대로 전장을 지켜보던 대신관들은 초조함을 숨기지 못했다.

전투가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그들이 올린 성과는 없었다.

고작 마법진을 파괴한 게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종교 연합군이 피해는 적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병사들이 죽어 가고 있었다.

“칼리스 경,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분명 이 정도 병력이면 스탄다비아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 하지 않았나!”

이데카른의 날이 선 목소리에 칼리스는 당황했다.

사실 황당하기는 그가 더 황당했다.

이 정도로 공격했으면 분명 성문은 뚫려야 했고, 수백 개의 돌덩이를 맞았다면 방벽이 아무리 두껍더라도 무너져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성문과 방벽은 건재했고, 병사들만 계속 죽어 나갔다.

게다가 그의 신경을 또 긁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화살이었다.

스탄다비아는 그야말로 무한정으로 화살을 쏘아 댔다.

방패병들의 방패는 고슴도치가 된 지 오래였다.

몇몇 방패는 화살을 막다 부서져 기능을 상실할 정도였다.

“아니, 대체 화살이 어떻게 저렇게나 많은 거지? 이 정도 물량이면 왕국 간의 전투에서나 동원 가능한 수치인데…….”

그를 더욱 좌절하게 만든 것은 적이 사용한 화살을 재활용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화살촉이 멀쩡하더라도, 스탄다비아가 사용하는 화살은 일반 화살보다 짧아 기존의 활로는 도저히 쏠 수가 없던 것이다.

억지로 사용하려고 해도 활시위를 제대로 당기지 못해 사람을 죽일 만한 위력이 생기지 않았다.

시간이라도 넉넉하면 후방으로 화살을 보내 재가공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사실 칼리스는 진작부터 후퇴하고 싶었다.

투석기에 쓸 돌덩이가 떨어졌고, 성문은 아무리 때려도 뚫리지 않는 상황.

그가 억지로 버티고 있는 이유는 지금도 옆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대신관들의 눈초리와 보급 때문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식량을 모두 소모하기 전에 스탄다비아를 정복해야 했다.

한 번의 공격이 너무나 소중해진 지금, 기회가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큰 피해를 줘야 했다.

‘저놈의 성문이 철로 만들어진 게 아닌 이상, 계속 때리다 보면 열리겠지.’

칼리스는 두 눈을 부릅뜨고 공성추가 성문을 때리는 모습을 바라봤다.

제발 성문이 부서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뿌우우우! 뿌우우우!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직전, 퇴각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지친 병사들은 겨우 진지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그들의 모습은 처참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출발하기 전의 당당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겨우 한 번의 전투를 치렀을 뿐인데, 마치 한 달 동안 악전고투를 거친 사람들처럼 지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투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으니 정신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게다가 퇴각한 병사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휴식이 아닌 노동이었다.

내일 전투에 쓸 흙과 돌덩이를 준비하기 위해 칼리스는 병사들을 마구 부렸다.

스탄다비아의 견고한 방벽을 제대로 맛봤으니, 오늘 준비한 것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의 돌덩이가 필요했다.

그리고 공성추 역시 여러 대를 더 만들어 성문을 연달아 공격할 수 있게 했다.

“제길, 이게 뭐야? 전투가 끝났으면 최소한 쉬게는 해 줘야 하잖아.”

병사들의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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