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78화 (278/300)

[278화] 반격의 시작

계란으로 바위 치기.

이 자리에 모인 대부분의 기자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요즘 해성 그룹이 꽤 대단한 성과를 올린 것은 사실이나, 겨우 그 정도로 삼원 그룹과 싸우는 건 주제도 모르고 나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때, 우해수의 옆에 앉아 있는 경일의 모습이 보였다.

사이클롭스를 잡은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할지도 모르는 헌터.

그와 해성 그룹이 손을 잡았다?

일방적으로 기울어졌다고 생각한 승부의 추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대박이다!’

오늘 기자회견은 특종의 연속이었다.

대체 어떤 걸 헤드라인으로 삼아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였다.

발 빠른 기자는 이미 실시간으로 기사를 내보낼 정도였다.

“방금 전에 말씀하신 김경일 씨의 업적 말입니다만, 정말 저분이 모든 걸 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마음이 급했는지 한 기자가 손을 들지도 않고 곧바로 질문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따로 보도 자료가 나갈 겁니다.”

우해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또 다시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미디어 내일의 김유나 기자입니다. 이 모든 사실을 지금 밝히시는 이유가 뭡니까? 지금까지 말씀하신 내용을 볼 때 남모르게 하신 선행 같은데요.”

어찌 보면 무례함을 느낄 정도의 질문에 경일이 직접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이번에 사이클롭스와 싸우면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이클롭스가 나타난 장소가 다른 곳이었다면, 엄청난 재앙이 일어났을 겁니다. 이대로 가면 또 다른 사이클롭스가 나타났을 때,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할 거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그러고 나서 경일은 자신의 공격 대상을 명확하게 밝혔다.

“지금의 헌터 협회는 그저 막강한 권력만 휘두를 뿐,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형태입니다. 오로지 게이트 탐지 기술만 손에 쥐고 갑질을 하는 셈이지요. 이번 사이클롭스 사태만 해도 책임을 진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나요?”

그러자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지금 발언은 헌터 협회와 협회장 우선우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헌터 협회는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저를 협박하려 들더군요. 협회장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이 직접 찾아와서 자신들과 손을 잡지 않으면, 헌터 생활이 어려워질 거라고 하면서 말이죠. 국가 기관이 이런 짓을 벌이다니… 그나마 힘을 가진 저이기에 다행이지, 다른 평범한 이라면 분명 굴복했을 겁니다. 국민이 준 권력을 사사롭게 쓰는 작금의 사태에 경악한 것도 나서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 말, 증명할 수 있습니까?”

“네. 비서실장과의 만남에서 녹음한 것이 있습니다.”

기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녹취본이 가져올 파장이 얼마나 클지는 여기 있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기자회견은 끝이 났다.

경일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지금까지 자신이 한 일을 모두 밝혔고,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고등급 던전 해결에도 앞장서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것으로 대중은 경일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낼 터.

아무리 헌터 협회를 명지광이 비호한다지만, 이번에는 쉽게 넘어가지 못할 것이었다.

이대로 뒀다가는 앞으로의 일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게 뻔한 헌터 협회를 정상화시키는 일이 시작이었다.

이렇게 하나하나씩 명지광의 손발을 잘라 나가고, 마지막에는 그를 고립시킬 계획이었다.

* * *

다음 날, 대한민국은 경일과 우해수의 발언으로 들끓었다.

더불어 헌터 협회에 대한 국민의 성토가 쏟아져 내렸다.

그 누구도 건들지 못했던 헌터 협회가 동네북 신세로 전락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언론들은 헌터 협회의 비리를 파고들어 온갖 기사를 쏟아 냈다.

그와 함께 마운틴 펀치 사건도 재조명되어 다시 조사해야 한다는 고소, 고발이 이어졌다.

경일의 선제공격의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이른 아침부터 명지광에게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너, 이 새끼. 지금 이게 무슨 수작이지? 분명 내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게 경고한 것 같은데. 감히 나에게 맞서다니… 정말 죽고 싶어!”

명지광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더니, 마지막에는 거의 고함치듯 소리를 질렀다.

늘 여유로운 모습만 보이던 그가 화를 내는 모습에 경일은 속이 시원하면서도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명지광.

그 역시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하하! 자신 있으면 죽여 보든지. 그런 유치한 협박은 안 통해. 진짜로 하지도 못할 거면서 말이야. 애도 아니고, 이번 일로 화가 많이 났나 봐?”

“너, 너… 이 자식. 내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 같아!”

“가만히 안 있으면 어쩔 건데?”

“아아아악! 네가 진짜 미쳤구나!”

경일은 계속해서 명지광을 조롱했다.

명지광은 암던을 얻은 이후 이런 치욕은 처음 겪었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만을 즐겼는데, 몇십 년 만에 저항하는 놈이 나타났으니까.

“너, 내가 죽여 버린다. 운 좋게 겨우 사이클롭스를 이긴 놈 따위가 이런 짓을 벌이다니… 지금까지는 네놈이 필요해서 살려 뒀는데, 너같이 건방진 놈은 이제 필요 없어. 다시 한번 게이트가 열려도 이 따위로 굴 수 있을지 한 번 두고 보자!”

“그래. 할 수 있으면 해 봐. 내가 듣기로는 마음대로 게이트를 열고 원하는 몬스터를 내보내려면 꽤나 많은 힘이 든다고 하던데… 너한테 과연 그 정도 힘이 남아 있을까? 이렇게 큰소리치고 게이트를 바로 못 열면, 넌 머저리가 되는 거야. 큭큭큭.”

“이익……!”

명지광은 곧바로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경일의 말대로 당장 게이트를 열어 몬스터를 보내는 건 불가능했다.

지난번에 사이클롭스를 보낼 때, 그동안 모은 암던의 힘은 물론이고 수호신의 힘까지 소모했기 때문이다.

암던의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은 그가 여유분을 남겼을 리 없었다.

경일 역시 게이트가 다시 열린다고 해도 그리 겁나지 않았다.

자포리자와 그의 기사단이라는 숨겨진 한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몬스터가 나오면 지체 없이 그들을 부를 생각이었다.

사이클롭스와 싸우면서도 끝까지 자포리자와 그의 기사단을 보여 주지 않은 게 신의 한 수가 된 셈이었다.

“앞으로 기대해. 이건 시작일 뿐이야.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어 주지.”

경일은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를 끊어 버렸다.

언제나 명지광이 전화를 먼저 끊을 때마다 속이 뒤틀릴 것 같았는데, 막상 자신이 해 보니 속이 시원했다.

분명 지금쯤 명지광의 핸드폰은 박살이 나 있겠지.

그의 성격상 얼마나 분개할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크크크, 반응이 너무 좋으니 계속하고 싶잖아. 앞으로도 내가 최선을 다해 네 속을 뒤집어 주지.’

경일의 입가에 웃음기가 걸리고, 두 눈에서 독사 같은 독기가 일렁였다.

* * *

그 어떤 언론도 함부로 하지 못한 삼원 그룹이었는데, 한 번 물꼬가 트이자 수많은 기사가 쏟아졌다.

그동안 삼원 그룹의 힘에 억눌려 있던 사람들이 쌓인 서러움을 모두 풀어낸 것이다.

마치 거대한 댐에 작은 구멍이 생기자 수백 톤의 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철옹성 같던 삼원 그룹도 휘청이기 시작했다.

명지광은 열심히 상황을 수습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해성 그룹이 계속 언론사에 보도 자료를 뿌리는 바람에 허사가 되었다.

삼원 그룹이 이 정도로 힘든 상태인데, 헌터 협회는 어떻겠는가.

그야말로 폭탄을 온몸으로 맞은 꼴이었다.

명지광이라는 뒷배가 사라지자, 그동안 헌터 협회에서 일어난 온갖 비리에 대한 제보가 쏟아졌다.

신문의 한 면이 헌터 협회의 비리로 모두 채워질 정도였다.

그 와중에 우선우의 개인 비리가 터졌다.

일부 길드에게 게이트를 미끼로 엄청난 뇌물을 받아 온 것이 들통난 것이다.

당연히 우선우는 어떻게든 막으려 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운 상황.

결국 검찰이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그는 끝까지 발뺌했지만, 명백한 증거 앞에서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헌터 협회장에서 내려온 우선우는 곧바로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가 죄수복을 입고 수갑을 찬 모습이 뉴스에 그대로 보도되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건 우선우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우가 명지광의 중요한 심복이라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외부의 요인으로 그의 수족이 잘려 나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신격화된 존재가 땅에 추락한 것이었다.

그리고 경일이 노린 점도 바로 이것이었다.

‘아무리 절대적인 위치를 가진 사람이라도 한 번 타격을 입으면 달라 보이는 법이지.’

아직까지 명지광 본인을 공격하는 움직임은 없지만, 적어도 예전만큼의 위상은 찾기 어려우리라.

그와 반대로 해성 그룹은 눈부신 발전을 시작했다.

경일의 지원 덕분에 단번에 헌터 물품 회사 중 매출 1위에 등극한 건 물론이고, 해성 길드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로 거듭났다.

매일 뉴스 1면이 해성 길드의 활약상으로 도배될 정도였다.

게다가 해성 그룹은 헌터 협회의 협회장의 선출에도 관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신임 협회장은 명지광이 아닌 해성 길드와 더욱 친한 모습을 보였다.

헌터 협회를 빼앗긴 건 명지광에게 큰 손실일 수밖에 없었다.

개인의 무력은 제외하더라도, 헌터 사회에서 대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용한 도구를 잃은 셈이니 말이다.

완전히 쇄신한 헌터 협회는 경일을 괴롭히던 신화 길드나, 세보 길드처럼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길드들을 본격적으로 단속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하다고 여긴 일이 가능해진 이유는, 마의 구간을 벗어난 헌터들의 유입 덕분이었다.

예전에는 헌터 한 명, 한 명이 소중했기 때문에 웬만한 범죄는 눈 감아 주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헌터의 유입이 늘어나면서 그럴 이유가 사라졌다.

그 결과, 헌터들의 행동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수요가 많아진 만큼 예전처럼 기고만장하게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빌어먹을 놈… 내가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아!”

물론 천하의 명지광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헌터 사회에서의 영향력은 감소했지만, 삼원 그룹을 비롯해 지금까지 쌓아 온 힘은 막강했다.

그는 공격의 타깃을 경일이 아닌 해성 그룹으로 삼았다.

경일과 손잡기 이전의 해성 그룹은 결코 깨끗한 기업이라고 부르기 힘든 곳이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찰과 국세청 등 공권력에서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그런데 명지광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저희 해성 그룹 산하 모든 기업을 대표해서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저희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처벌을 받을 것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저희로 인해서 피해를 입은 분들이 계시다면 당연히 모두 보상하겠습니다.”

우해수가 직접 사과했지만, 헌터 협회의 잘못을 가장 먼저 성토한 곳이니 만큼 국민들의 실망은 컸다.

그러나 다른 기업들과 달리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에 여론이 다시 우호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해성 그룹이 이런 대처를 취한 이유는 당연히 경일 때문이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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