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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82화 (282/300)

[282화] 너, 이러면 전화 끊어 버린다

“그럼 이데카른을 제외한 대신관들의 처분은 신인님께 맡기겠습니다.”

가우스 교가 끼친 해악 때문에 이데카른은 스탄다비에서 공개 처형하기로 결정되었다.

3일 뒤, 그는 영지민이 보는 앞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던져질 예정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평생 동안 혹독하게 굴리겠습니다. 더 이상 이곳에서 볼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생산한 모든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스탄다비아로 보내겠습니다.”

“그거 듣는 것만으로도 무척 통쾌해지는 이야기네요.”

자포리자의 선 굵은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앞으로의 계획은 세우셨습니까?”

“네. 이제 신경 쓰이는 모든 적을 처리했으니, 본격적으로 실력을 갈고닦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스탄다비아는 작은 영지에서 벗어나 몬스터 숲을 정복하는 최초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경일은 마음이 든든했다.

이런 이가 자신과 같은 편이라는 생각에 마음 한 켠이 든든했다.

스탄다비아가 몬스터 숲을 차지하는 건 대단히 큰 의미였다.

단순히 몬스터가 살 수 있는 땅이 작아지는 것을 넘어, 인간의 세력이 그만큼 커진다는 이야기였으니.

또한 자신이 더욱 강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말이다.

경일은 명지광과의 만남부터 사이클롭스와 싸운 이야기, 그리고 해성 길드장이 된 이야기 등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했다.

자포리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그냥 이렇게 그와 대화하는 것 자체가 좋았다.

지금까지 쌓인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동지애가 아니겠는가.

다음 날, 경일은 이데카른을 제외한 대신관들을 모두 광산으로 보냈다.

그들은 전쟁을 일으킨 전범이기에 식량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혹독한 작업량이 필요했다.

‘과연 저들이 지은 죄를 반성할까?’

경일은 저들이 아마 죽을 때까지 자포리자와 자신을 원망하고 욕할 거란 예감이 들었다.

* * *

요즘 뉴스는 온통 몬스터 이야기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헌터들 역시 예전보다 몬스터가 훨씬 더 강해졌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의 구간이 해결되면서 헌터의 유입이 늘어 하급 던전의 폐쇄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중급과 상급 던전이었다.

마의 구간에서 빠져나온 헌터들이 빨리 레벨 업을 해서 자리를 잡을 동안, 던전 폐쇄를 해 줄 헌터들이 필요했다.

여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바로 해성 길드였다.

새롭게 태어난 헌터 협회는 해성 길드에게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많았고, 경일은 항상 자진해서 나섰다.

경일의 명성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것과 달리, 명지광은 계속해서 추락하기만 했다.

그는 궁지에 몰리자 계속해서 암던의 식물을 이용한 제품을 출시했다.

지난번에 사이클롭스를 불러오느라 너무 많은 힘을 써 버리는 바람에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물론 자신이 예고한 대로 몬스터가 강해지고 있긴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분한 마음을 풀기에 부족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고, 지금껏 삼원 그룹의 성장에 가장 큰 역할을 해 온 암던의 자원을 이용한 제품 개발이었다.

삼원 그룹이 대외적으로 많은 타격을 입고 있는 지금, 위기를 돌파하기 가장 좋은 수단이 될 게 분명했다.

그의 예상대로 삼원 그룹에서 나온 제품들은 폭발적인 흥행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 흥행은 오래가지 않았다.

경일이 네로의 도움으로 암던의 식물이 들어간 제품을 파악했고, 치료할 수 있는 식물로 만든 제품을 곧이어 출시했기 때문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 나갈 때와 달리, 해성 그룹이라는 대기업을 끼고 있으니 안 좋은 증상을 치료할 수 있는 던전 고유 식물을 찾는 작업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었다.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부작용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제품도 금방 출시된 것이다.

일련의 사건은 명지광에게 커다란 실수였다.

한 번은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러 번의 의혹이 쌓이면 사실이나 마찬가지니까.

비록 지구의 과학으로 증명하지는 못해도 사람들은 삼원 그룹이 헌터들에게 큰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확신했다.

대중의 여론은 무서웠다.

마지막까지 그에게 줄을 대던 사람들마저 완전히 돌아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사실상 치외법권이던 삼원 그룹에 대놓고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런 개자식들이! 감히… 감히! 내 전화를 무시한 거야?”

명지광은 삼원 그룹의 자회사인 삼원 음료에 발행된 압수수색영장을 막으려 검찰 고위직은 물론, 여러 정치인에게 전화를 돌렸다.

하지만 누구 하나 전화를 받는 이가 없었다.

이미 그가 침몰하는 배라고 판단한 이들은 냉정하게 돌아섰다.

아니, 오히려 명지광과 줄을 댔던 흔적을 지우기에 바빴다.

도미노였다.

하나가 터지자 지금까지 저질러 왔던 온갖 불법적인 일이 드러났다.

아파트의 부실 공사부터 세금 포탈, 갑질, 도박, 문란한 여자관계, 기준치에 미달하는 헌터 용품 등등… 그 끝이 없을 정도였다.

결국, 명지광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수사관들이 급하게 그의 집을 찾아갔지만,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그를 찾기 위해 모든 수사력을 동원했음에도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경일은 뉴스를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드디어 명지광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껏 기울인 노력에 비하면 의미 없는 짓일지도 몰랐다.

명지광이 가진 배경을 없애는 것 따위, 몬스터와의 싸움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경일은 생각 이상으로 통쾌했다.

명지광이 그토록 사랑한 그의 인생을 말 그대로 개박살을 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이 개자식아!]

명지광은 이성을 잃은 듯, 경일이 전화를 받자마자 미치도록 소리치며 화를 냈다.

경일은 귀가 터져 나갈 것만 같은 고음에 인상을 찡그렸다.

“너, 이러면 전화 끊어 버린다?”

[이, 이, 이… 개자식이 죽고 싶……!]

명지광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는데, 경일이 곧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기 때문이다.

“으아아악!”

말하는 도중에 전화가 끊어지자, 명지광은 분을 참지 못하고 악을 썼다.

자존심이 상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런 애송이 놈이! 고작 사소한 승부에 이겼다고 이따위 건방진 짓을 해?”

명지광은 곧바로 전화를 다시 걸었지만, 신호음만이 들릴 뿐 그가 원하는 경일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런 개자식이… 내가 널 이대로 가만히 두고 볼 거 같아? 넌 내가 언젠가는 갈아 마셔 버릴 테다!”

명지광은 경일에게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혼잣말로 해야 했다.

“감히… 감히! 세상의 주인에게. 이런 허접한 새끼가… 아아아아아악!”

자신의 의도대로 부릴 수 있는 종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놈에게 제대로 한 방 맞았으니, 그 분함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콰드득!

손안의 핸드폰이 힘없이 으스러졌다.

불꽃이 튀고 전기가 흘렀지만, 명지광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꽝!

형편없이 구겨진 핸드폰이 벽을 강하게 때리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명지광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씨발. 이게 전부 벌레 같은 새끼들 때문이야.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잘해 줬는데, 이런 사소한 일에 내 명령을 거부해? 눈앞의 이익만 볼 줄 아는 멍청한 새끼들. 내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도 모르고 말이야. 내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 같아? 내 말을 거부한 새끼들도 모두 죽여 버리겠어!”

명지광이 있는 곳은 그의 비밀 별장 중의 하나였다.

수배가 떨어진 이상, 얼굴을 들고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수족처럼 따르던 사람들도 그가 어려워지자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순식간에 등을 돌려 버렸다.

그가 평소에 얼마나 주위 사람들을 깔보고 무시했으면,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정도였다.

그때, 저 멀리서 차 소리가 들렸다.

“이런… 또 어떤 개자식이 신고를 한 거야!”

명지광은 화를 참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집어 던지고 발로 걷어찼다.

분명 비밀스러운 별장일 텐데…….

그는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몰래 지은 별장에 숨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경찰들은 매번 귀신같이 장소를 알아내고 찾아왔다.

이것 역시 경일의 솜씨였다.

사람 찾기 스킬이 있는 이상, 이제 지구에서 명지광이 발을 붙이고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던전으로 들어갔다.

사실상 대한민국의 지배자나 다름없던 그가 자연밖에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 지내는 것 자체가 가혹한 형벌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까지 몰린 이유를 모르겠어. 사이클롭스를 보낸 게 실수였나?”

명지광은 아무 생각 없이 경일을 교육하고자 실행한 일이 이토록 커다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잔챙이에 불과한 상대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순식간에 거물로 커 버렸다.

“그래. 사이클롭스를 보내는 게 아니었어. 그냥 산동네의 분식점 사장으로 가만히 놔둬야 했어.”

아무리 약자여도 신중했어야 했다.

던전의 소유자이니 철저히 준비하고, 자신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고민했어야 했는데…….

던전을 만나고 수십 년, 인생을 너무나 편하게 살아오느라 안일해진 게 패인 같았다.

“아니야, 그게 아니야. 기껏해야 사이클롭스 하나였어. 유명해졌다고는 해도, 나와 비교하면 여전히 하찮은 벌레에 불과했지. 어째서 일이 이 지경까지 된 거지?”

그만큼 명지광이 가진 권력은 컸다.

아니, 지금은 과거형이 되어 버렸으니 컸었다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경일이 사이클롭스를 잡고 유명세를 얻었다고는 해도, 자신이 가진 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럼에도 사이클롭스를 보낸 건 실수가 맞았다.

죽일 수도 없는 상대를 위협하기 위해 무지막지한 힘을 낭비할 필요가 있었을까?

명지광의 머릿속에 순간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는 자신이 실수 따위 했을 리가 없다며 머리를 흔들어 날려 버렸다.

그는 전혀 반성을 하지 않았다.

지구를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힘을 가졌고, 사실상 신과 같은 존재인 자신이 실수할 리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실수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 지금껏 판단 미스를 한 적은 엄청나게 많았다.

명지광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그가 얻은 던전의 힘이 워낙 강력했기에 자신의 단점 정도는 가볍게 커버하고도 남았을 뿐.

설령 일이 꼬인다 하더라도 가볍게 뒤집을 힘이 있으니, 실수를 인정할 필요가 없던 것이다.

경일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또 자신이 던전을 만난 초창기와 비교하면 얼마나 강한 건지 따위는 그의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개구리가 올챙이 때를 생각 못하는 것처럼 지금 자신이 훨씬 강하다는 것만을 생각했다.

오래된 권력자들이 자제력을 잃는 경향이 많다는 건,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의 뜻대로 안되면 더욱 밀어붙였다.

지금까지의 삶에서는 승리의 연속이었으니, 더욱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만약 잠시 밀리더라도 감당할 자신이 있었고, 더 많은 지원을 통해서 상황을 뒤집을 자신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경일이 마운틴 펀치를 막은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비슷한 제품을 시중에 내보냈다.

해성 그룹과 경일이 손을 잡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것을 봤지만, 그저 모기가 귓가에 앵앵거리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단지 예상치 못하게 모기에게 피를 강하게 빨렸을 뿐.

아직도 경일은 자신보다 약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제거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한차례 자기 합리화를 끝낸 명지광은 겨우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

잃어버린 권력은 자신이 가진 힘과 비교하면 티끌보다 못했다.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그까짓 권력 따위를 잃은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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