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85화 (285/300)

[285화] 달라진 일상

“사미르, 도시를 넓히는 일은 잘 되고 있나?”

“네.”

행정관 사미르는 자포리자의 뜻에 따라 도시를 하나의 나라로 키워 가고 있었다.

왕위를 노리는 자들과 달리, 이들이 원하는 땅은 베르아스 왕국이 아니라 몬스터 숲이었다.

몬스터 숲의 땅을 정복해 몬스터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인간의 세력을 강화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였다.

아직은 강의 안쪽 땅만 차지한 상태지만, 조만간 강 너머의 땅을 정복할 계획이었다.

“이미 강을 오갈 배의 건조가 모두 끝나 가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강 너머에 거점을 만들 계획입니다.”

“유민의 유입은 어떤가?”

지금 스탄다비아에 가장 필요한 건 인구였다.

땅을 넓혀도 그곳에 머무를 사람이 없다면 땅을 지킬 수가 없었다.

“이번에 종교 연합군에게 대승한 것이 알려지면서 엄청난 수의 유민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베르아스 왕국의 유민들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에서 발생한 유민들까지 몰리는 상태입니다.”

“좋군. 사람 한 명, 한 명이 우리에겐 힘이나 다름없다는 건 모두 잘 알고 있겠지. 기존의 영지민들과 차별 없이 대하고, 만약 이에 불만을 품는 자들이 생긴다면 모두 잡아들여 엄벌에 처하도록.”

어느 곳이나 텃세라는 것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스탄다비아가 잘살고 있는 만큼, 더욱더 심할 게 분명했다.

자포리자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이런 일이었다.

그냥 가만히 놔둔다면, 영지민들 사이에 새로운 계급이 탄생하게 될 터.

모두가 단합해도 모자랄 판인데,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사태였다.

그러니 처음부터 엄격히 단속해서 미연에 방지할 생각이었다.

“탄두스, 상단의 운영은 잘 되고 있나?”

용병에서 알리사의 병사를 거쳐 스탄다비아의 병사가 되고, 지금은 어느새 상단주의 자리까지 오른 탄두스였다.

“네. 상품이 좋으니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지금은 다른 나라 상인들까지 들어와서 물건을 달라고 난립니다.”

“그렇다고 지금에 머물러서는 안 되네.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네, 영주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연구 중입니다. 조만간에 더 성능이 좋은 비누가 나올 예정입니다. 게다가 이번 비누는 꽃향기가 첨가된 만큼, 큰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됩니다.”

“좋아.”

자포리자는 제품의 개량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경일에게 말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노력하지 않는 사회는 발전이 없었다.

이제부터는 늦더라도 한 발, 한 발 영지민의 힘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만약 몬스터의 싸움에서 진다면 이 모든 것이 허사가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는 건 바보짓이었다.

그는 자신이 배운 지구와 문화와 지식을 자연스럽게 사회에 녹여 내, 이것을 바탕으로 미개한 문명을 벗어날 기반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이 세계의 미래가 경일이 사는 지구처럼 인권이 보장받는 사회가 되길 원했다.

또한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미개한 문명으로 인해 몬스터의 공장으로 전락하는 건 더 이상 사양하고 싶었다.

* * *

스탄다비아는 적이 사라지자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다.

자포리자가 앞장서서 모든 것을 지시하고, 그의 가신들이 뒤를 받쳤다.

강을 오갈 배가 완성되자, 자포리자는 그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이끌고 강의 반대편으로 진출했다.

그들은 강 건너편을 지배하고 있는 몬스터와 치열하게 싸웠고, 모두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새로 개척한 땅에는 몬스터를 막을 튼튼한 성벽이 세워졌고, 스탄다비아의 영토는 더욱 넓어졌다.

그동안 왕위를 노리는 세력들이 끊임없이 스탄다비아에 협력을 요청했지만, 자포리자는 모두 거절했다.

스탄다비아를 얕보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카스만의 예상대로 이것은 전부 허풍으로 끝이 났다.

지금의 스탄다비아를 건드린다는 것은 애써 구축한 자신의 세력을 전부 잃을 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스탄다비아의 존재감은 인간들에게만 커진 것이 아니었다.

강 건너편의 개척지가 점점 커지자, 몬스터의 침공이 시작됐다.

몬스터 숲의 외곽이라 쳐들어오는 몬스터의 종류는 대부분 오크였지만, 숫자가 많은 만큼 녀석들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옛날 같으면 상대도 못할 만큼 강한 적이었지만, 스탄다비아는 튼튼한 방벽을 쌓고 마나 연공법으로 강해진 병력 덕분에 물러서지 않고 이들과 맞설 수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죽어 나갔고 병사들은 더욱 빠르게 강해졌다.

몬스터와의 전쟁이 일상생활처럼 느껴질 만큼 많은 공격이 있었으나, 스탄다비아는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오히려 꾸준히 몬스터 숲을 정복해 나갔다.

강의 반대쪽에 거점을 만든 지도 벌써 5년이 지나갔다.

이제 자포리자는 처음 경일과 만났을 때의 풋풋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완숙한 중년의 모습이었다.

이제 스탄다비아는 변방의 작은 영지에서 벗어나 하나의 왕국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스탄다비아의 발전에 한 축을 담당한 건 역시 농사의 발전이었다.

기존의 농법보다 단위 대비 수확량이 늘어나며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우선 먹고살 걱정이 줄어들자, 인구가 늘어났다.

마을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여유가 생기면서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엄청난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자포리자의 교육을 통해 사람들은 똑똑해졌고, 그 기반을 바탕으로 사회를 더욱 발전시켰다.

스탄다비아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경일 또한 무섭도록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 * *

스탄다비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지구에서도 시간이 흘렀다.

명지광이 던전으로 사라지고, 어느새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마나 연공법을 열심히 수련한 헌터들은 이제 레벨을 넘어서는 강함을 손에 넣게 되었고, 사회는 더욱 안전해졌다.

“앞으로도 요즘 같으면 소원이 없겠네요. 꼭 몬스터가 나타나기 전의 사회 같아요.”

이길호가 웃으며 경일에게 이야기했다.

“진짜 그런 세상이 오게 만들어야죠. 앞으로 자랄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에요.”

경일은 누구보다 바쁜 일 년을 보냈다.

고등급 던전 폐쇄를 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헌터들이 강해진 덕분에 저등급 던전 폐쇄는 무리 없이 진행되었지만, 고등급 던전은 그렇지 않았다.

마나 연공법으로 강해졌음에도 고등급 헌터들은 적극적으로 던전 폐쇄에 나서지 않았다.

이미 많은 돈을 벌었는데, 굳이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던전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한 것이다.

작은 실수에도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고등급 던전의 위험도는 저등급 던전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또한 자연환경 역시 더욱 열악했고, 던전 체인지 같은 이변이 일어날 확률도 훨씬 높았다.

게다가 A급 몬스터 중 힘을 숨기고 있던 강한 개체가 나타나서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잦았다.

그러다 보니, 고등급 던전이 나타나면 헌터 협회는 언제나 해성 길드로 연락했고, 경일이 헌터들을 이끌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일까, 험난한 격전을 통해 경일은 소드마스터의 경지를 넘어 그랜드 소드마스터 초급에 들어섰다.

이제 투척 무기에 오러를 실어 던질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길드장님이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아마 대한민국의 4분의 1 정도는 던전 브레이크를 막지 못해 몬스터에게 점령당하지 않았을까요?”

“하하하, 설마 그 정도까지야 가겠습니까?”

경일은 부인했지만, 이길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던전 브레이크의 발생 빈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황.

특히 미국, 중국, 러시아 등 땅이 넓은 국가는 더욱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경일도 외국에서 도움을 요청받아 나간 경우가 여럿 있었다.

그는 지금 헌터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마나 연공법을 깊게 수련할 수만 있다면, 인류는 몬스터에게 지지 않을 것이다.

몬스터들은 차원을 넘어가면서 받던 페널티가 이미 사라진 상태이니 만큼, 갑작스럽게 더 강해질 확률은 희박했다.

하지만 인류는 개인의 노력에 따라 더 강해질 여지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의 대기에는 원래 마나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게이트가 열리고 던전에서 나온 마나가 대기에 섞여 들어가긴 했으나, 처음부터 마나가 존재하던 스탄다비아와 비교하면 아주 적은 양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시간을 수련해도 스탄다비아보다 발전이 느렸다.

경일은 이 사태를 예견했기에 마나 포션을 열심히 만들었으나, 아무리 던전이 비옥하더라도 전 세계에 있는 모든 헌터에게 공급할 수는 없었다.

“분식점은 어때요? 아이들은 잘 있고요?”

경일은 잠시라도 헌터의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안 그래도 동네 아이들이 사장님 보고 싶다고 난립니다. 정이 깊었는지, 매일 사장님 언제 오느냐고 묻는 애들도 있고요.”

“하~ 저도 보고 싶어 미치겠습니다. 애들도 많이 컸겠지요?”

“그럼요. 다들 던전 농작물을 먹었서 그런지 흔한 병치레도 없이 아주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우리 동네에 소아과가 없을 정도라니까요.”

“아무리 돈이 많고 유명해져도, 저는 분식점에서 생활하던 때가 가장 행복했던 거 같아요. 처음에 던전을 만나고 정말 큰 행운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공짜는 없었어요.”

“그래도 길드장님 덕분에 저희 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 은혜를 입지 않았습니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에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

경일은 민망한지 얼굴을 긁적거렸다.

아이들을 보러 갈 시간이 없어 답답했는데, 그나마 이길호랑 대화라도 하니 기분이 풀렸다.

사실 그는 사이클롭스 사건 이후, 급속도로 바뀐 인생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물론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기는 했지만, 단순히 몬스터와 싸우던 사람이 주변에서 여러 가지 압박과 부탁을 받으니 견디기 힘들었다.

우해수가 알아서 정리해 주지 않았다면, 몬스터고 뭐고 도망을 쳤을 것이다.

한참 이길호와 수다를 떨고 있는데, 눈치 없이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길드장님, 저 우해수예요.”

“아, 네. 무슨 일이세요?”

“다름이 아니라… 헌터 협회에서 협조 공문이 왔는데, 이번에 A급 게이트가 열린다고 합니다. 게이트 에너지 파장이 높은 걸로 봐서는 A급 게이트 중에서도 상위 게이트라고 하는데, 우리가 맡아 주길 원하고 있어요.”

“알겠습니다. 참석하는 걸로 하고, 같이 들어갈 인원을 짜 주세요.”

“네, 길드장님.”

경일이 핸드폰을 내려놓자 이길호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이 너무 사장님에게만 의지하는 거 같아요.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뭐, 별수 없죠. 제가 한 말도 있고 하니…….”

경일은 해성 길드의 길드장을 맡으며 앞으로 고등급 던전의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설 거라고 약속했다.

“형님, 나중에 봐요.”

“네. 아무리 바빠도 식사는 꼭 챙겨 드세요.”

“알겠습니다.”

경일은 이길호와 헤어지고 길드로 돌아갔다.

A급 던전 게이트는 3일 뒤에 열렸다.

경일은 자신과 우해수를 포함해서 총 열 명의 헌터들을 이끌고 게이트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의 밀림이었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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