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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286화 (286/300)

[286화] 무슨 몬스터가 이렇게 많아?

커다란 나무가 하늘 높이 자라 있었고, 나무 밑동을 칭칭 휘감은 덩굴식물이 보였다.

나무 사이에는 사람의 키만큼 높게 자란 풀들이 있어, 헌터들의 시야를 막았다.

그리고 높은 습도와 함께 바닥에 썩은 식물이 내뿜는 악취가 예고도 없이 ‘훅’ 하고 코를 찔러 왔다.

“이런…….”

한 발을 내디딘 우해수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생겼다.

그녀의 발이 반 쯤 바닥에 빠졌기 때문이다.

습도가 높은 날씨인데다가, 여러 식물이 썩은 상태라 땅바닥이 늪처럼 물컹거렸다.

우해수와 마찬가지로 헌터들의 표정 역시 좋지 못했다.

현대에서 생활하는 헌터들에게 악취와 시궁창처럼 질퍽거리는 바닥은 적응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몬스터와 싸우기 전부터 헌터들의 사기가 바닥을 기었다.

핑!

그 순간, 공기를 뚫고 들리는 가벼운 파공음.

날카로운 무언가가 헌터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뭐지?”

헌터는 소리를 인지했지만, 그의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무언가가 갑자기 눈앞에서 나타났다.

“헉!”

창이었다.

바로 자신의 코앞에 나타난 창에 헌터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두 눈을 꼭 감았다.

안타깝게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은 그것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헌터는 죽지 않았다.

순식간에 그의 옆으로 다가온 경일이 손을 뻗어 창대를 잡은 것이다.

“모두 방패 들어!”

경일이 외침에 헌터들은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

탕! 탕! 탕!

방패가 무언가가 무수히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이게 뭐야?”

방패로 온몸을 가린 헌터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건 바로 얇고 긴 창이었다.

나무가 가득한 밀림에서 구분하기 힘들게 녹색으로 만들어진 창.

이래서 방금 전에 보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모두 천천히 움직여. 원진을 짠다.”

경일의 지시에 헌터들이 조심히 움직여 하나의 원을 만들었다.

헌터들이 완벽한 방어진을 짜자 더 이상의 공격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창은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헌터들은 창을 던진 존재를 찾아보려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들에 눈에 보이는 건 울창한 숲뿐이었다.

“리자드맨이 틀림없어. 그것도 주변 환경에 따라 몸 색깔을 바꿀 수 있는 변종 리자드맨.”

경일의 말에 헌터들의 얼굴이 당혹스런 감정으로 물들었다.

변종 리자드맨은 누구나 기피하는 몬스터 중의 하나였다.

사실 리자드맨 한 마리는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A급 게이트를 처리하기 위해 여기 모인 헌터들의 실력이라면 가볍게 죽일 수 있는 수준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항상 무리를 이루어 다닌다는 점과, 주위 환경에 따라 피부 색깔이 바뀐다는 점이었다.

마치 수백 명의 은신한 닌자에게 공격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실제로 방금 전 원을 짜고 방어를 펼쳤지만, 아직 리자드맨의 실체를 본 헌터는 많지 않았다.

“골치 아픈데.”

경일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던전에 들어온 지 단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위험에 빠졌다.

아직 다친 이는 한 명도 없었지만, 전투가 벌어졌음에도 죽인 몬스터가 없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난다. 이동할 때도 원진을 흩뜨리지 말고 최대한 조심해서 이동하도록.”

경일의 말에 아홉 명의 헌터들이 원진을 짜고 천천히 뒤를 따랐다.

간간이 리자드맨의 공격이 있었지만, 헌터들의 두꺼운 방패를 뚫을 수는 없었다.

몇몇은 지휘관으로 보이는 경일을 집중적으로 노렸지만, 그는 작은 방패로 가볍게 모든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차원이 다른 강함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강할 수가 있는 거지?”

우해수가 그런 경일을 보고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중에서 가장 경일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게이트를 들어갈 때마다 헌터의 구성은 달라지지만, 그녀는 항상 경일과 함께 던전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경일은 정말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다.

아무리 몬스터를 많이 사냥한다고 해도, 이렇게 빠른 성장은 상식을 벗어난 모습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아직 경일이 실력을 숨기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큰 위험이 다가와도, 지금껏 경일이 당황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경일은 앞장서서 길을 만들었다.

사람 키 만한 풀이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싹둑 베어져 나갔다.

깡!

풀 속에 숨어 있던 리자드맨이 경일이 다가오기를 기다려 기습했지만, 그는 어렵지 않게 창을 막아 냈다.

서걱!

리자드맨의 머리가 잘려 질퍽한 바닥에 떨어져 박혔다.

그러나 누구도 리자드맨의 몸에서 마나석을 빼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약간의 틈이라도 보이면, 보이지 않는 리자드맨의 창에 살해당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거 완전 게릴라잖아.”

한 헌터의 불만 섞인 말처럼 리자드맨의 기습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경일이 열심히 풀을 베어 낸 덕분에 직접적인 습격은 없었지만, 멀리서 투창은 계속 이어졌다.

서걱! 서걱!

물론 그 공격은 경일에 의해 남김없이 막혔지만 말이다.

“우~ 완전 괴물이잖아. 나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실력인데, 길드장님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겠어.”

한 헌터가 경일의 실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나저나 우리가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걸. 이대로라면 던전을 폐쇄하는데 꽤 시간이 걸릴 거 같지 않아?”

“어쩔 수 없어. 변종 리자드맨만 아니면 어떻게 해 보겠는데…….”

“아, 진짜 불이라도 확 질러 버렸으면 좋겠다. 숲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녀석들인데.”

“참아. 그 불에 우리가 죽을 수도 있어.”

헌터들이 리자드맨의 공격을 방어하는데 전념하는 동안, 경일은 부지런히 시야를 가리는 풀을 베어 내고, 습격해 오는 리자드맨을 사냥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헌터들도 슬슬 리자드맨이 던지는 창이 눈에 익기 시작했다.

그들도 경일과 함께 던전을 다닐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길드장님, 저희도 공격에 참여하겠습니다.”

헌터들이 자신 있게 공세로 돌아서는 순간, 경일이 다급하게 외쳤다.

“피해!”

경일이 외침과 간발의 차이로 ‘쿵’ 하는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나뭇가지가 하나가 헌터들을 노렸던 것이다.

아니, 나무가 아니라 몬스터였다.

나무 몬스터는 헌터들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나무 몬스터의 공격은 그 커다란 가지의 무게 때문인지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피드보다 힘에 치중된 녀석 같았다.

나뭇가지의 묵직한 공격을 받은 땅이 길고 깊게 패였다.

경일의 빠른 경고 덕분에 헌터들이 직접적으로 입은 피해는 없었다.

“이건 또 뭐야?”

전혀 생각도 못 한 공격이었다.

“움직여!”

깜짝 놀라 멍청하게 서 있던 헌터들을 향해 경일이 소리쳤다.

그러자 헌터들도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공격 태세에 들어갔다.

습격에 실패한 나무 몬스터는 갑자기 땅바닥에서 3미터 높이 부근이 갈라지더니, 두 개의 눈을 떴다.

처음 보는 몬스터였다.

위잉!

거대한 나뭇가지가 헌터를 노리고 채찍처럼 휘어져 날아들었다.

공기를 가르는 커다란 파공음에 기가 죽을 정도였다.

제대로 맞으면 뼈 한두 개 나가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터.

차 타이어에 깔린 개구리 꼴이 될 게 뻔했다.

어느 누구도 정면으로 공격을 막으려고 하지 못했다.

헌터들은 재빨리 나뭇가지를 피해 여기저기로 몸을 날렸다.

쿠웅!

다시 한번 땅바닥에 커다란 고랑이 패였다.

다만, 나무 몬스터의 공격은 무겁고 강력하긴 했지만, 피하기 쉬웠고 맞지 않으면 별것 아니었다.

헌터들이 반격하려는 순간, 리자드맨의 창이 날아왔다.

“아악!”

미처 대비하지 못한 헌터의 복부에 창이 박혔다.

그나마 입고 있던 갑옷이 미스릴이라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관통하고도 남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헌터는 복부에 박힌 창을 빼내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나머지 헌터들이 방패를 들고 얼른 상처를 입은 헌터의 앞을 막아섰다.

잘 훈련된 모습이었으나, 지금은 상대가 나빴다.

나무 몬스터가 뭉친 헌터들을 향해 거대한 나뭇가지를 내려쳤다.

몬스터끼리의 완벽한 합격이었다.

서로의 장점을 살린 공격은 엄청난 시너지를 발생시켰다.

헌터들은 갈팡질팡했다.

이 공격을 막자니 자신들이 오징어 신세가 될 게 뻔했고, 피하자니 자신의 뒤에 있는 동료가 죽을 판.

하지만 몬스터들에게 합격이 있다면, 헌터들에겐 경일이 있었다.

기다란 검을 가볍게 휘두르자, 헌터들을 노리던 거대한 나뭇가지가 힘을 잃고 공중에서 잘려 나갔다.

“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헌터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그들의 눈에 나무 몬스터의 몸이 사선으로 잘려 미끄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나뭇가지를 잘라 낸 경일이 곧바로 나무 몬스터의 몸을 벤 것이다.

방금까지 난동 부리던 것이 거짓말처럼 놈의 몸이 두 동강 났다.

쿠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발에 진동이 전해져 왔다.

“여기는 우리가 덤빌 수준의 던전이 아니야.”

헌터 한 명이 읊조린 말에 나머지 헌터들 모두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리자드맨이 자연과 동화되어 공격할 때만 해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반격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나무 몬스터의 등장 때문에 그 자신감은 산산이 깨져 나갔다.

경일의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라면 헌터들이 위험해질 수밖에 없었다.

경일은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일단 헌터들을 안전한 곳에 머물게 하고, 혼자서 던전 핵을 깨러 갈 생각이었다.

“이거… 생각지도 못한 나무 몬스터의 등장 때문에 던전을 폐쇄하는데 시간이 꽤 많이 걸리겠는걸?”

경일이 헌터들을 데리고 간 곳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앞이었다.

“이 던전에서 여기가 제일 안전해 보입니다. 일단 절벽이 등 뒤에 있는 것만으로도 몬스터를 막는데 큰 도움이 되겠지요. 또 바닥이 암반이고 시야가 트여있으니, 리자드맨의 보호색도 통하지 않을 테고요. 문제는 나무 몬스터인데… 리자드맨의 공격이 눈에 보이기만 하면, 여러분들의 실력으로 충분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지고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우해수가 대표로 경일에게 대답했다.

“길드장님도 조심하세요.”

“네.”

경일은 인벤토리에서 식량과 필요할 만한 물품들을 이것저것 내어 주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제법인데.”

리자드맨의 공격은 제법 날카로웠다.

단순하게 창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경일이 강한 것을 눈치채고는 그가 피할 공간을 계산해 시간 차 공격을 했다.

아무리 경일이라도 가끔 창을 막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튼튼한 미스릴 갑옷을 입은 데다가, 마나로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경일에게 투척 무기로 큰 상처를 입히기는 힘들었다.

그나마 피해를 줄 수 있는 공격은 나무 몬스터의 나뭇가지 휘두르기 뿐이었는데, 그건 너무 느려서 맞지 않았다.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리자드맨이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몬스터라고 알려지긴 했지만, 이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단 한순간의 쉴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수십 개의 창이 경일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탕! 탕! 탕!

경일이 팔뚝에 찬 스몰 실드가 화려하게 움직이며 모든 창을 막아 냈다.

서걱!

경일은 그 틈을 타 공격해 오는 나뭇가지를 순식간에 잘라 냈다.

“안 통한다니까 그래.”

경일은 망설이지 않고 나무 몬스터의 몸통을 마저 잘라 내 버렸다.

“무슨 몬스터가 이렇게 많아? 이건 던전 몇 개를 합쳐 놓은 거 같은데? 젠장, 이렇게 많으면 두고 온 헌터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

그러나 그런 경일의 걱정은 기우였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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