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저런 것이 존재할 줄이야
경일이 이를 악물었다.
그랜드 소드마스터가 최선을 다해 힘을 내니, 그 기세가 엄청났다.
무려 서른 마리의 장애물을 끌고 가면서도 힘과 속도는 전혀 줄지 않았다.
오우거 스켈레톤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대 망치를 휘둘렀다.
경일은 스켈레톤이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정면으로 맞서야만 했다.
“이야압!”
온 힘을 다해 휘두른 오른팔.
그러자 팔에 매달린 스켈레톤과 녀석을 잡고 있던 스켈레톤까지 총 다섯 마리가 궤적을 따라 그대로 날아갔다.
퍼억!
팔에 매달린 스켈레톤이 오우거 스켈레톤이 휘두른 망치와 부딪쳐 산산이 깨져 나갔다.
콰드득!
경일은 오른팔이 자유를 되찾자마자 등 뒤에서 허리를 잡고 있던 스켈레톤의 얼굴을 팔꿈치로 후려쳤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몽둥이를 꺼내 자신을 방해하는 나머지 스켈레톤의 머리도 후려쳐 박살 냈다.
그사이 오우거 스켈레톤도 자세를 다잡고 망치를 다시 휘둘렀다.
챙!
어느새 경일의 손에는 창이 잡혀 있었고, 둘의 무기가 허공에서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경일은 곧바로 창을 회수해 스켈레톤 오우거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서걱!
그리고 들려오는 깨끗한 절단음.
오우거 스켈레톤의 목이 잘려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제거한 경일은 방금까지 받은 화를 모두 쏟아 내듯 스켈레톤 무리로 뛰어들어 놈들을 모조리 도륙해 버렸다.
경일이 이 정도로 애를 먹을 정도이니, 기사들은 어떻겠는가.
시간이 흐를수록 간간이 들려오는 기사들의 비명이 점점 잦아졌다.
“무리하게 공격하지 마라. 스켈레톤은 선인님과 내가 모두 해치우겠다. 기사들은 체력을 아끼고 살아남는 데에만 집중하라!”
기사들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자, 자포리자가 즉시 명령을 내렸다.
“영주님, 네크로맨서를 제가 직접 노리겠습니다!”
경일도 이대로 가다가는 기사들이 전멸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무리하더라도 스켈레톤을 조정하는 네크로맨서를 직접 죽이기로 결정했다.
무려 1년이 넘도록 동고동락한 동료들의 희생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게 그의 속마음이었다.
결심을 끝낸 경일이 네크로맨서에게 달려 나갔다.
네크로맨서는 스켈레톤 무리의 가장 뒤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었다.
“끼에에에에엑!”
그런 경일을 향해 스켈레톤들이 다 같이 포효하자, 공기의 파동이 그의 얼굴을 때렸다.
굳은 얼굴을 한 경일의 손에서 창이 사라지고, 겉보기에도 튼튼해 보이는 방패와 검이 나타났다.
스켈레톤이 경일을 향해 몸을 사리지 않고 덤벼 들었다.
땅땅땅땅!
수십 개의 칼이 경일의 방패를 때렸다.
그런데 경일은 오히려 방패를 앞세우고 스켈레톤에게 파고들었다.
방패에 밀린 스켈레톤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경일은 굳이 하나하나 죽이지 않고, 그냥 뚫고 나가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네크로맨서는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내 주문을 외우던 바로 그놈이었다.
놈은 지금도 연신 주문을 읊어 해골을 일으키고 있었다.
번쩍!
경일이 가까이 다가오자, 지팡이에 달린 보석이 빛을 내더니 빛이 쏘아져 나왔다.
“윽!”
네크로맨서의 공격이 경일의 몸을 때렸다.
방패를 앞세워 방어해 봤지만, 방패를 타고 에너지가 들어왔다.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타는 듯한 고통과 함께 한순간 몸이 마비됐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방에서 스켈레톤의 공격이 들어왔다.
경일은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온몸의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이 밀려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몸의 옆과 뒤같이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 날아오는 공격이었다.
이대로라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경일은 오른손에 쥔 검을 휘두르며 정면의 스켈레톤을 부숴 버렸다.
그러고 나서 즉시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검에서 돋아난 오러가 사정없이 놈들을 베었다.
어느 정도의 공간을 확보하자, 경일이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그의 검이 현란한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녀석들의 몸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임팔라의 무리에 뛰어든 굶주린 한 마리의 사자 같았다.
급하게 오우거 스켈레톤 몇 마리가 경일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한 번 기세가 오른 경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일의 검은 일정한 공간을 점령하고 공간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베어 버렸다.
이건 신기였다.
하나의 선으로 구(球)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미 검의 끝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이 순간에도 발전하고 있었다.
검이 지나가는 자리에 스켈레톤의 잔해만이 남았다.
마치 바다가 갈라져 길이 생기는 것처럼 네크로맨서에게 향하는 길이 만들어졌다.
“이야아아압!”
목표가 보이자, 경일은 기합을 터뜨렸고, 검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는 무려 거의 500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스켈레톤 무리를 뚫고 네크로맨서의 앞에 도달했다.
놈은 위기에 처하자 급하게 주문을 외우며 막대기를 흔들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경일의 검이 네크로맨서의 목을 자른 것이다.
그와 함께 기세등등했던 스켈레톤들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뼈로 이루어진 평야가 생길 정도였다.
“휴~ 끝났나?”
경일은 흐르는 땀을 닦으며 기사들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죽지 않은 존재가 있었다.
바로 목이 잘린 네크로맨서였다.
쓰레기처럼 바닥에 내팽개쳐 있었지만, 네크로맨서의 머리는 분명 살아 있었다.
그리고 작게나마 무어라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이 정도 상처면 힐링 포션을 마시고 반나절 정도 쉬면은 회복이 될 거 같네요.”
“감사합니다.’
다행히 빠르게 네크로맨서를 노린 작전이 유효했는지, 죽은 기사는 아무도 없었다.
경일이 다친 기사 한 명에게 힐링 포션을 건네 준 순간이었다.
땅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어, 어, 이게 뭐지?”
몸이 휘청이며 몇몇 기사들이 쓰러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웅장한 소리.
쿠쿠쿠쿠쿠!
땅속에서 먼가가 떠올랐다.
“이런…….”
경일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이건 곤란했다.
노말 난이도로 하던 게임이 갑자기 베리 하드 모드가 된 것 같은 느낌.
아니, 지금까지의 여정도 매우 힘들었지만 이건 아예 의지를 꺾는 광경이었다.
“본, 본 드래곤…….”
누군가의 입에서 절망 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전설 속의 생명체인 드래곤이 죽은 뒤 네크로맨서에 의해 되살아난 극강의 언데드 몬스터.
이건 드래곤이 나타난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었다.
애초에 드래곤조차 이 세계에서 전설 속의 동물 같은 취급이 아닌가.
그런데 실물을 넘어 뼈로만 이루어진 드래곤이라니.
스탄다비아가 있는 이 세계에 드래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본 드래곤이 직접 증명한 셈이었다.
“드래곤이 진짜 존재했다고?”
그만큼 눈으로 보고서도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마 존재했다면 최소한 몇천 년 전의 일일 터.
수천 년간 영면에 들어가 있던 본 드래곤이 깨어났다.
놈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세포 하나하나가 전부 쪼그라드는 느낌.
범접할 수도, 범접해서도 안 되는 존재.
만약 신을 만나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자신을 하찮은 미물로 느끼게 만드는 절대적인 존재.
경일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이런 걸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도망갈까? 전부 흩어져서 도망가면 몇몇 사람이라도 살 수 있을 거 같은데…….’
위협적인 본 드래곤의 모습에 해서는 안 되는 생각까지 떠올랐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희생이 있었던가.
도망은 이 모든 것을 부정하는 최악의 굴종이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가장 먼저 나서도 부족한 판국에 이런 망상을 떠올리다니.’
이상했다.
아직 싸움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지고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혹시 이것도 본 드래곤의 힘인가?’
경일은 거칠게 머리를 흔들어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모두 떨쳐 냈다.
완전히 땅에서 나온 본 드래곤이 커다란 날개를 퍼덕였다.
쉬이익!
거대한 날개뼈 사이로 공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살아있을 때의 잠재된 본능적인 행동인 것 같은데, 상식적으로 뼈만 남은 몸이 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소리가 변했다.
펄럭펄럭!
새가 날갯짓할 때 나는 소리.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다들 경악으로 가득한 눈을 껌벅이는 게, 보고도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몸집이 50미터는 되어 보이는 본 드래곤은 보란 듯이 날고 있었다.
일당천의 싸움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사단이 몬스터 숲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겁을 먹었다.
안색이 잿빛으로 변하다 이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이들이 표정은 ‘이런 걸 어떻게 상대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겁을 먹었을망정 그 누구도 뒤돌아 도망가는 이는 없었다.
몬스터와 악전고투하며 이곳까지 온 기사단답게 본 드래곤의 위압에 온몸을 떨긴 했지만, 끝까지 두 발을 바닥에 붙이고 본 드래곤을 노려봤다.
“동요하지 마라! 일개 몬스터일 뿐이다. 우리는 더한 위기도 겪어 왔다. 이 정도로 기가 꺾이면, 우리의 위대한 행로는 초라하게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동료의 피를 밟고 여기까지 왔다. 나 자신의 명예뿐만 아니라 죽어간 동료들의 의지를 이대로 시궁창에 처박아버릴 셈인가? 이기지 못하는 건 치욕이 아니다. 하지만 싸워보기도 전에 전의를 잃고 포기하는 것은 치욕이다. 모두 힘을 내라!”
자포리자가 기사들을 향해 피 끓는 심정으로 연설했다.
그 자신도 이게 얼마나 무리한 요구인지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피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지 않는가.
그 순간, 자포리자의 마음을 잘 알겠다는 듯이 경일이 거대한 창으로 본 드래곤을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보십시오! 저놈, 자유롭게 날지 못합니다. 겨우 바닥에서 떠 있는 수준일 뿐입니다. 우리의 공격이 충분히 통할 겁니다. 그걸 제가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경일의 말대로 본 드래곤은 하늘로 날아오르려 열심히 날갯짓했지만, 뼈 사이로 새는 공기로 인해 겨우 떠 있는 게 다였다.
그렇다고 해서 본 드래곤의 위용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이야압!”
경일이 우렁찬 기합 소리를 내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하늘을 향해 있던 본 드래곤의 거대한 얼굴이 기합 소리에 반응하듯 아래로 내려와 텅 빈 동공으로 경일을 노려봤다.
그리고 나는 걸 포기하고 굵고 튼튼한 뼈로 된 발로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쿵! 쿵! 쿵! 쿵!
“선인님을 따르라! 우리는 명예를 아는 용감한 스탄다비아의 기사다!”
자포리자가 소리치며 경일의 뒤를 따라 달리자, 기사들도 곧바로 두 사람을 따라 달려갔다.
본 드래곤이 질주했다.
커다란 발이 한 걸음을 디딜 때마다 거리는 순식간에 줄어들었고, 경일에 눈에 비친 본 드래곤의 크기 역시 점점 커졌다.
땅이 흔들리고, 놈이 밟은 곳이 발자국 모양 그대로 깊게 파였다.
엄청난 박력이 느껴진다.
“이얍!”
첫 공격은 경일이 먼저였다.
기다란 장창이 본 드래곤을 향해 휘둘러졌다.
서걱!
본 드래곤을 구성하고 있는 얇은 뼈 하나가 잘려 나갔다.
하지만 본 드래곤은 아무런 데미지를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경일에게 기둥처럼 커 보였던 뼈도 본 드래곤에게 있어서는 몸을 이루는 몇 천 개의 뼈 중에서도 아주 작은 잔뼈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그 강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무슨 뼈가 이리 단단하지? 스켈레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르잖아. 세상에 이런 몬스터가 존재할 줄이야…….’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