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본 드래곤
경일은 이 얇은 뼈 하나를 잘라 내는 데 온몸의 힘을 다 써야 했다.
본 드래곤은 거대한 발을 들어 올려 그대로 경일을 내려찍었다.
3미터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크기의 발에 한 번 밟히면 끝장이리라.
쿠웅! 쩌저적!
거대한 발에 맞은 땅이 가느다랗게 울렸다.
“안 돼에!”
기사의 입에서 새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본 드래곤의 발이 그대로 경일을 밟아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경일은 상처 하나 없이 살아 있었다.
뼈로 이루어진 발은 사람 하나 정도는 피할 공간이 많았다.
경일은 잽싸게 발가락 사이로 이동해 본 드래곤의 공격을 피했다.
“모두 오지 마!”
경일이 자포리자와 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의 외침에 달려오던 자포리자와 기사들의 발이 멈췄다.
뼈 사이의 공간으로 피하기는 했지만, 본 드래곤의 공격은 위협적이었다.
자신도 힘들게 피한 이상 기사들이 놈의 공격을 버티기는 어려워 보였다.
“모두, 원거리에서 본 드래곤의 머리를 노려 주세요!”
경일의 지시에 기사들은 멀리 떨어져 자리를 잡았다.
워낙 덩치가 크니 맞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기사들과 경일의 공격이 한꺼번에 펼쳐졌다.
경일은 본 드래곤의 발을 피하며 놈의 뼈를 하나씩 잘라 냈다.
워낙 뼈의 수가 많아 싸움이 언제 끝날지 전혀 가늠되지 않았다.
본 드래곤은 단 한 번만 공격에 성공하면 승리할 테지만, 경일은 분명 수십… 아니, 수백 번의 공격을 성공시켜야 하리라.
쿠웅!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늦었어도 본 드래곤의 발에 깔릴 뻔했다.
본 드래곤이 지금까지와 다른 타이밍에 공격하는 바람에 경일은 공격 리듬을 놓쳐 버렸다.
분명 뼈만 남은 놈일 텐데 공격이 점점 날카로워지는 것을 보니, 학습 능력이 있는 듯했다.
피하면서 자세가 무너지는 바람에 이번에는 전혀 공격하지 못했다.
“죽어!”
“죽어라!”
“이야아아압!”
자포리자와 기사들 역시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검과 창을 던지며 본 드래곤에게 타격을 가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자포리자의 창은 위력적이었다.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자가 투창하자, 놈의 커다란 뼈가 그대로 관통된 것이다.
그 사이, 경일은 기회를 잡고 다시 본 드래곤의 뼈를 해체해 나갔다.
휘청!
아무리 뼈가 많은 본 드래곤이라도 계속해서 몸에 타격을 입자, 중심히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앙!”
본 드래곤의 짜증 섞인 포효가 튀어나왔다.
경일과 기사들의 유기적인 공격에 계속해서 당하자 화가 난 것이다.
그 순간, 본 드래곤이 날개를 쫙 펴고 모든 행동을 멈췄다.
그러고 나서 벌어지는 커다란 입.
갑작스런 행동에 주변의 사람들 모두 당황했다.
“브레스다! 브레스를 쏘려고 한다!”
자포리자가 본 드래곤이 무슨 짓을 벌이려는지 재빨리 눈치채고 경고했다.
본 드래곤이 목표로 한 건 멀리서 자신을 귀찮게 하는 자포리자와 그의 기사들이었다.
“흩어져!”
자포리자의 다급한 목소리에 기사들이 몸을 날려 뛰었다.
본 드래곤의 벌린 입안에서 작은 빛이 모여들더니, 그 빛은 순식간에 덩치를 키웠다.
거대한 본 드래곤의 입이 빛으로 꽉 차는 순간, 브레스가 터져 나왔다.
크롸라라라라!
거대한 빛기둥이 그대로 앞으로 쏘아져 나왔다.
빛기둥에 닿은 모든 것이 쓸려 나갔다.
나무, 바위, 풀 등등 숲의 모든 것이 브레스와 닿는 순간, 말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브레스는 한 발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놈은 지금껏 당한 분풀이를 하듯, 다시 한번 도망치는 기사를 노려 브레스를 쏘았고, 거대한 빛기둥에 직격당한 기사의 신체 일부가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커억!”
몸의 절반이 사라진 기사가 입에서 피를 토해 냈다.
본 드래곤은 편안한 죽음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계속해서 브레스를 쏘았고, 기사는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놈은 만족한 듯,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올리고 입을 크게 벌렸다.
마치 속이 시원하다는 듯이 크게 웃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기사의 죽음에 자포리자의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으아아아아아악!”
기사의 죽음에 분노한 자포리자가 울부짖으며 창을 내던졌다.
경일 역시 화가 나긴 마찬가지였다.
그의 검에 맺힌 오러가 더욱 진해지고 거침없이 본 드래곤의 발 뼈를 난자했다.
쿠웅!
발을 지지하는 가장 두꺼운 뼈가 잘려 나가며 본 드래곤의 거대한 몸이 휘청이더니,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 순간, 본 드래곤의 고개가 뒤로 꺾이면서 브레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 왔다.
경일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본 드래곤의 뼈를 밟고 위로 뛰어올라 갔다.
순식간에 놈의 등 위로 올라가 온몸의 신경이 지나가는 척추에 창을 깊숙이 박아 넣은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아!”
본 드래곤이 비명을 지르며 거칠게 몸을 흔들어 댔다.
그러나 경일은 깊숙이 박은 창을 잡고 끝까지 버텼다.
놈의 몸부림이 줄어들 때마다, 그는 꾸준히 척추와 척수 사이의 한 지점에 검을 내려쳤다.
본 드래곤은 발작적으로 움직이며 어떻게 해서든 경일을 떨쳐 내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리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언데드지만 지금의 공격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본 드래곤의 신경이 모두 경일에게 집중되자, 어느새 자포리자와 기사들 역시 놈의 몸에 올라탔다.
이로써 놈의 가장 강력한 공격인 브레스를 봉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전부 경일을 따라 본 드래곤의 척추에 검을 꽂아 넣고서는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몸을 고정시키고 공격을 감행했다.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놈은 자신이 몸에 달라붙은 기사들을 털어 내려 했고 기사들은 끈질기게 버텨 가며 척추를 자르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본 드래곤의 목이 돌아갔다.
몸을 흔드는 것만으로는 이들을 떨어트릴 수가 없으니, 직접 공격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끼기기기익!
목 관절이 움직일 수 있는 가동 범위를 넘어서자, 뼈가 마찰되며 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본 드래곤은 억지로 목을 돌려 기사들을 공격했다.
놈의 거대한 입이 기사를 직접 노리자, 기사는 어쩔 수 없이 잡고 있는 검을 놓고 바닥으로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악!”
높은 곳에서 떨어지며 지르는 비명이 가슴에 안타깝게 다가왔다.
아무리 마나를 익힌 기사라고 해도 높이가 높이인지라 아마 살아남긴 힘들어 보였다.
경일이 계속해서 검을 내려쳤다.
워낙 척추뼈가 굵고 단단해서 수백 번을 내려쳤는데도 십분의 일도 끊어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거대한 나무를 도끼질하듯 계속해서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본 드래곤은 몸을 털어 내거나 억지로 목을 돌려 공격하곤 했다.
가끔 분을 참지 못하고 브레스를 쏘려는 듯 입안에 빛의 공이 생겨나고는 했으나, 기사를 잡기 위해 자신에 몸에 직접 브레스를 쏘는 건 파리 잡는데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과 마찬가지인 듯 실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경일은 그 모습에 왠지 섬뜩함이 들었다.
지금이야 아직 본 드래곤 자신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공격하지 않지만, 만약 죽을 거라고 확신한다면 저 브레스를 망설이지 않고 쏘리라.
그런 예감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모두 철수하세요! 본 드래곤은 분명 죽는다는 것을 알면 우리를 죽이기 위해 자신의 몸이라도 상관없이 직접 브레스를 날릴 겁니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철수하세요. 그리고 최대한 멀리 떨어지세요!”
경일의 명령에 기사들이 기회를 틈타 한 명, 두 명 철수를 시작했다.
물러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워낙 거칠게 날뛰고 있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그 순간 끝이었다.
기사들은 미끄러운 뼈를 강하게 움켜쥐고 겨우 본 드래곤의 몸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본 드래곤은 자기 몸에서 떨어져 나온 기사들을 보고 기회다 싶었는지 브레스를 갈겨 댔다.
경일은 도망가는 기사들을 돕기 위해 브레스를 쏠 때마다 무리를 해서라도 가장 강한 공격을 넣었다.
놈이 신경에서 오는 강렬한 충격에 움찔거리며 브레스를 쏘는 방향이 틀어졌다.
하지만 모든 기사가 브레스를 피한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놈의 몸에서 내려온 기사는 브레스를 피하지 못했다.
바짝 약이 오른 본 드래곤이 억지로 충격을 참으며 정확하게 브레스를 날린 것이었다.
한 명의 기사가 죽을 때마다 마음 한 켠이 무너져 내렸다.
경일은 이를 악물고 본 드래곤의 척추를 잘라 냈다.
척추의 절반 이상이 잘려 나가자, 본 드래곤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기기기기기긱!
본 드래곤이 목뼈가 틀어지다시피 고개를 돌려 경일을 노려봤다.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는데 탈골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 번 금이 간 척추는 육중한 무게 때문에 계속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곧 부서질 게 분명했지만, 경일의 눈에는 긴장감이 서렸다.
이제 곧 본 드래곤의 입이 자신을 노릴 것이다.
지금이라도 피할까 생각했지만, 또다시 이런 기회가 올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 번 크게 당했으니 절대 접근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고, 거리를 벌려 브레스로만 공격할 것이다.
공격하기 위해서는 브레스의 폭격을 뚫고 접근해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할지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처음 등장에서 알 수 있듯이 저놈은 조금이나마 날 수 있지 않은가.
저공이라도 비행하는 몬스터는 더욱 잡기 힘들 게 뻔했다.
결국 경일은 끝까지 남아 벌어진 척수에 검을 내리치는 길을 택했다.
지금의 압박을 버텨 내는 것이 승부의 분수령을 가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척추뼈 사이 안쪽에 계속해서 칼질을 당하자, 본 드래곤은 충격이 심한지 검을 맞을 때마다 몸을 크게 움찔거렸다.
그때, 놈이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아아!
뼈의 움직임이 완전히 달라졌는데, 금이 가고 부서지는 것과 상관없이 마구 뒤틀렸다.
해골에 표정이 생길수가 없지만, 어쩐지 경일은 놈이 무섭도록 분노한다고 느꼈다.
몸의 감각이 사라져 가는 암울한 고통과, 한 번 부러지면 회복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몸을 파괴해야 하는 울분이 가득한 감정.
그 모든 분노를 담아 본 드래곤이 브레스를 쏟아부었다.
크라라라라락!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 브레스가 경일을 강타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경일이 들고 있는 방패를 강타했다.
브레스는 강렬했다.
경일이 그토록 힘들게 베어 낸 척추뼈를 빠르게 녹이고 있었다.
깊숙이 꽂아 넣었던 창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척추뼈가 녹아 그대로 창이 빠져나올 것이다.
“제길.”
경일은 창을 잡은 손을 떼고 두 손으로 방패를 잡았다.
그러자 온몸이 빠르게 뒤로 밀려나 그대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아무리 그랜드 소드마스터인 경일이라도 높이가 높이인 만큼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재빨리 검을 꺼내 옆에 있는 나무에 박아 넣었다.
검이 나무를 가르며 생긴 마찰력에 낙하하는 속도가 줄어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었다.
워낙 나무가 무성한 숲이어서 살았지, 만약 들판이었으면 큰 부상을 면치 못했으리라.
본 드래곤의 상태는 처절했다.
자신이 쏜 브레스를 맞은 척추는 끊어져 몸이 반 토막 나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도 놈은 목을 움직여 경일을 찾았다.
드디어 경일을 발견한 본 드래곤의 텅 빈 동공에서 광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뿜어져 나오는 브레스.
경일은 급하게 방패를 들어서 막았다.
브레스의 힘에 몸이 뒤로 밀리며 땅에 두 줄기의 고랑이 생겼다.
다 죽어 가는 몸임에도 파괴력은 굉장했다.
‘이것만 막으면 돼. 분명 최후의 힘을 담아 공격한 거겠지. 제발…….’
그러나 어찌나 열을 받았는지, 본 드래곤의 브레스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