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장롱에 게이트가 열렸다-300화 (300/300)

[300화] 돌아왔어요

“누가 던전의 주인이 되든 솔직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어.”

경일의 어깨 위에서 네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계속된 패배로 이미 극복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벌어졌고, 이제 영원히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네로의 얼굴은 감격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것이 내 운명이며 계속 어둠 속에 잠들어 있어야 한다고 포기하고 있었거늘… 경일아, 넌 대단한 사람이야…….”

울먹이다시피 말하는 수호신의 모습에 그 또한 이 가혹한 운명에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가 전해져 왔다.

“맞아요. 난 대단한 사람이에요.”

경일이 처음으로 네로 앞에서 허세를 부렸다.

그 모습에 네로가 울다가 웃었다.

“이제 돌아가요.”

경일은 완전히 무너진 던전 핵을 뒤로 하고 게이트를 나왔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던전은 자연 소멸할 것이었다.

그 직후, 게이트를 열 수 있는 힘이 돌아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경일은 곧바로 게이트를 열어 자포리자와 살아남은 기사들을 데리고 던전을 거쳐 스탄다비아에 이들을 데려다 주었다.

“감사합니다, 선인님.”

자포리자가 경일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벨크스를 죽이고 던전을 폐쇄했으니, 이게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 될 터.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영주님은 제 인생의 스승이었습니다.”

경일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 사람은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그 속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그들의 진심이 그대로 녹아 있었고, 두 사람은 그렇게 마지막 안녕을 고했다.

이제 벨크스가 사라진 이상, 몬스터가 이전처럼 폭발적으로 늘어나진 않을 것이었다.

부지런히 몬스터를 사냥한다면 언젠가는 이곳도 몬스터가 없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 * *

경일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이제 지구에 몬스터가 사라졌으니, 아이들은 좀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곧바로 산산이 부서져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게이트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네로 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이런… 지구에 존재하는 암던은 하나가 아니었어.”

그러고 보니, 경일은 예전에 네로와 나누었던 대화가 기억이 났다.

[지구에 던전과 암던은 단 하나씩만 존재하는 겁니까?]

[그건 나도 몰라. 하나일 수도 있고, 여러 개일 수도 있고. 일단 여기까지 하고 밥부터 먹자. 지금 배가 너무 고프거든. 그리고 음식은 웬만하면 지구의 음식이 좋겠어. 던전의 음식은 이미 많이 먹어봤으니.]

스쳐 지나가듯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나도 잘 모르겠어. 너도 알다시피 지금까지 이긴 적이 없어서 그 이후는 미지수거든. 하지만 걱정하지 마. 분명 이런 경우를 대비한 신의 안배도 있을 테니까.”

“휴…….”

경일의 입에서 커다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온몸의 힘이 쫙 빠져 나가고, 화도 났지만 한편으로는 허탈했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 설마 지금까지 내가 한 일들이 전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은 아니겠지?’

“그래, 충분히 화가 날 만해. 하지만 너의 노력까지 폄훼하진 마. 지구에서 던전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분명한 건 스탄다비아가 있던 세상의 몬스터가 차단된 만큼 몬스터의 숫자는 분명히 줄어들었어. 지금까지도 인류는 아슬아슬하게 몬스터와 잘 싸워 왔잖아? 이젠 훨씬 더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된 거지. 그리고…….”

네로의 말에 경일의 터질 것 같던 가슴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그의 말대로 자신이 한 노력은 전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지구는 많이 변해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많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경일이 떠나고 명지광은 예상한대로 던전과의 유대가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활동했다.

하지만 이미 차원을 통과하면서 소실되는 힘이 없어진 몬스터는 강했고, 게이트가 늘어나면서 폐쇄해야 할 던전이 늘어 갔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균형의 추가 몬스터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한 번 기울어진 추는 더욱 빠른 속도로 기울어졌고,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사라진 경일을 찾았다.

이미 해성 그룹은 기득권의 공격으로 너덜너덜해진 상태였고, 해성 길드 역시 이름만 남아 있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우해수에게 경일의 행방을 물었지만, 그녀라고 그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리가.

곳곳에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로 몬스터에게 빼앗긴 땅이 늘어났으며, 인류에게 희망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그나마 경일이 몬스터 숲의 던전을 폐쇄한 날, 게이트의 발생 빈도가 확연히 줄어들어 이제 겨우 숨통이 트인 상태였다.

경일은 곧바로 명지광을 찾아 나섰다.

지금의 좋지 않은 기분을 풀 수 있는 건 오직 그놈 뿐이었다.

명지광은 벨크스와의 연결이 끊어진 순간, 이미 자신의 운명을 예측하였다.

그래서 경일을 피해 보고자 산속 깊숙이 숨어 있었지만, 스킬이 있는 경일이 그를 못 찾을 리가 없었다.

“살, 살려 줘…….”

그는 경일을 보자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강함을 믿었기에 경일이 나타나더라도 한번 싸워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경일과 마주하자마자 거대한 장벽과 맞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포기했다.

고작 2년 만에 자신보다 몇 백… 아니,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것이다.

“어, 어, 어떻게 그렇게 강해질 수가 있는 거지?”

명지광은 이 상황을 인정하기 싫다는 듯이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짜내면서 물었다.

그 질문을 받자 경일은 피식하고 웃었다.

지구에서는 2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자신은 스탄다비아에서 1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몬스터와 싸워 오지 않았는가.

네크로맨서, 본 드래곤, 벨크스까지 강적도 정말 많았다.

이걸 모르는 명지광으로서는 날벼락을 맞은 기분일 것이다.

굳이 설명할 의무도 없고, 말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 경일은 천천히 검을 들었다.

“살, 살, 살, 살려 줘. 내가 잘못했어. 살려만 주면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살겠어. 아니, 내 죄를 모두 인정하고 교도소로 들어갈 테니 제발 살려 줘!”

“하… 살려 달라고?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 하나 잘 먹고 잘살자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몰라서 그래?”

“그게 왜 내 잘못이야? 내가 던전을 포기했다고 다른 놈이 안 나타날 것 같아? 지금도 봐. 벨크스를 죽였다고 해서 몬스터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잖아. 결국엔 내가 하지 않았어도 던전의 주인은 다시 나타나게 되어 있던 거지. 오히려 내가 던전의 주인이 되었기에 네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거야. 물론 잘못도 크지만, 그만큼 나의 성과도 인정해 줘야 해.”

명지광은 마치 자신은 억울하다는 듯이 열변을 토해 냈다.

“어디서 말도 안 되는 괴변을.”

경일은 굳이 그와 말싸움하고 싶지 않았다.

명지광과 자신은 한 하늘 아래에서 공존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리고 경일은 그 운명을 충실히 실행할 뿐이었다.

“잘 가라… 아니지. 잘 가면 안 되지. 너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겠지. 이 세계의 이면에는 인간이 모르는 거대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네가 등장하자 반대편에서 내가 등장했듯이, 네놈이 한 짓이 언젠가는 그대로… 아니, 몇 배로 돌아올 거라고 나는 믿어. 이제 꺼져라.”

“잠, 잠깐만. 나를 살려 두면 분명 도움이 될 거야. 너도 알다시피 몬스터와 이어진 던전의 주인들이 있어. 내가 그들을 잡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명지광은 죽음을 피해 가고자 이 순간 정말 최선을 다했다.

“네가 다른 던전의 주인을 알고 있다고?”

명지광의 말에 경일의 검이 순간 멈췄다.

“아니, 아는 것은 아니고…….”

멈췄던 검이 다시 움직이려 하자, 명지광이 절박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잠, 잠깐!”

하지만 경일의 검은 더 이상 멈추지 않았다.

서걱!

그의 목이 잘리고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명지광은 자신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억울한 표정이었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아직 또 다른 암전의 주인이 남아 있어 앞으로 어떤 일로 엮이게 될지는 몰랐지만, 이것으로 자신이 맡은 일은 완수했다.

“이제 네로 님과도 헤어져야 하는 건가요?”

“나도 모르겠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분명 상대방도 던전의 수호자가 있을 테니, 저는 앞으로도 네로 님과 같이 가고 싶다는 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나도 조금 그래. 던전의 수호신으로서 미련을 가지면 안 되는데… 나도 아직 못 먹어 본 게 너무 많아 이곳에 더 있고 싶기는 해.”

네로의 말에 경일의 얼굴에 커다란 미소가 걸렸다.

그는 곧바로 오랫동안 비워 놓았던 분식점으로 돌아갔다.

분식점은 그가 떠나기 전날과 똑같았다.

경일을 가장 먼저 맞이해 준 건 역시 동네 아이들이었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자 그를 본 아이들이 뛰어왔다.

“어, 조심해! 그러다가 다쳐.”

“와, 아저씨다! 아저씨가 돌아왔다!”

경일에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이 달려와 안겼다.

거의 2년 가까이 만나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마치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새 아이들은 많이 자라 있었다.

“아저씨, 어디 갔다 왔어요? 많이 보고 싶었는데.”

“나도 우리 해성이 많이 보고 싶었어.”

“엄마가 그러는데, 아저씨는 영웅이래요. 난 아저씨 친구니까 영웅의 친구고요.”

“하하하하하!”

해성이의 말에 마음이 울컥했다.

동네 사람들이 자신을 믿고 있었다는 이야기에 가슴속에 따뜻함이 감돌았다.

경일은 비로소 자신이 한 일이 실감이 났다.

‘그때 포기하지 않기를 정말 잘했어.’

벨크스와 싸울 때 너무 힘들고 괴로워 싸움을 포기하려고 했었다.

자신을 미워하고 쫓아낸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처절한 싸움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안아 드는 순간, 그때 포기하지 않고 싸운 것이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명이라도 구할 수 있었다면, 자신이 한 일은 가치가 있었으리라.

그것을 아이들이 깨우쳐 주었다.

“아저씨, 아저씨가 해 주는 떡볶이 먹고 싶어요. 아저씨가 없으니까 이상하게 옛날처럼 맛있지 않았어요.”

“난 만두요.”

“난 튀김.”

“하하하하, 그래. 아저씨가 맛있게 만들어 줄게.”

똑같은 레시피로 만들어도 손주아가 만든 것이 더 맛있었다.

실제 손님들도 그녀가 요리해 주기를 원했고.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이 만든 것이 더 맛있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이건 음식 맛만이 아니라, 아이들과의 깊은 유대에서 나오는 힘일 게 틀림없었다.

아이들을 만난 지 이제 겨우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간의 힘들었던 기억이 모두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경일이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동네 아이들을 이끌고 분식점으로 돌아왔다.

이미 입구에는 그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을 믿어 주고, 끝까지 응원해 준 사람들.

이길호, 선호연, 손주아, 손윤찬, 우해수가 밝은 얼굴로 경일을 환영해 주었다.

이들에겐 2년 만의 만남이지만, 경일은 십 년 만의 만남이었다.

괜히 코끝이 찡해지고, 눈이 붉어졌다.

“사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이길호가 경일을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아저씨, 보고 싶었어요.”

이제는 제법 자란 자신의 1호 단골인 수한이가 해맑은 얼굴로 경일을 향해 웃어 주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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