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화연가 (4)화 (4/126)

손을 뻗는 남자의 팔 관절을 꽉 쥔 주먹으로 후려쳤다.

“아악!”

관절 부분이 투두둑 하고 꺾이자 순식간에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팔꿈치로 남자의 옆 목을 힘 있게 가격하자 그는 순간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맨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이…!”

그 광경을 본 또 다른 남자가 내 뒤를 껴안듯 덮쳤다. 깜짝 놀란 호안이 그를 제지하려 손을 뻗었지만 내 응수가 훨씬 빨랐다. 양팔을 접고 한순간 곧게 펴 남자의 팔을 풀어냈다. 틈이 빈 그의 안면을 팔꿈치로 걷어 올린 뒤,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그의 무릎 바깥쪽 관절을 짚어 발로 짓이겨 밟았다.

“악!”

남자는 고통의 찬 신음을 뱉으며 한쪽 다리를 움켜쥔 채로 지면 위에 꿇어앉듯 쓰러졌다. 이 모든 일이 삽시간에 벌어지고 마무리됐다.

“분수를 모르는 건 당신들이지. 없는 능력에 눈은 높아서.”

내 중얼거림을 들은 호안은 땅에 널브러진 남자들을 쓱 쳐다보고는 한 마디를 더 보탰다.

“많이 봐주셨네요, 갈비뼈까지는 안 부순 걸 보니.”

“이자들도 숨은 쉬어 가며 건달 짓 해야 하지 않겠니.”

아무렴 여인의 몸에다 상대가 남성이라지만, 나는 엄연히 무가의 계를 잇는 서문가의 사람이다. 아버지의 무공 중 힘과 용맹함은 오라버니가 물려받았지만, 기술과 섬세함을 체득한 건 나였다. 그러니 호신을 비롯한 방어술에 강할 수밖에.

“헌데 이상합니다. 공녀님.”

호안이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뭐가?”

“아직도 공녀님께 이런 허튼짓을 하는 자들이 남아 있나 싶어서요.”

말을 듣고 보니 이상했다. 내 수식어에는 제갈연조가 말한 ‘제후국의 비검’뿐만 아니라 제후국의 망아지, 복수의 화신 같은 꽤 부정적인 것들이 많았다. 떡이나 당과에 사족을 못 쓰는 터라 ‘당과 귀신’이라는 별명도 있지만, 뭐 아무튼.

한번 물리면 꼭 두 배로 물어 주고 일단 저지르는 성격이 화근이었다. 오죽하면 ‘우당탕탕 서문가’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겼을까. 그러니 제후국 사람이라면 ‘건들면 죽는다’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는 나에게, 허튼짓은커녕 알아서 피해 다닐 것이 분명했다. 저마다 자신들의 목숨은 아까운 법이니까.

가만히 살펴보니 이국적인 복장과 머리를 틀어 올린 각도가 눈에 띄었다. 생각해 보니 남자들의 말투에 서 나라 특유의 방언이 섞여 있던 것 같았다.

“아무래도 서 나라 사람인 것 같은데.”

“폐하의 탄신제를 기념하기 위해 입국한 타국의 사절단에 끼어 들어온 걸까요?”

“글쎄.”

호안의 물음에 미지근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탄신제까지는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벌써?’

큰 의문은 아니었지만 생선 잔가시가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의문을 계속 품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본래 목적인 포목점으로 향하기 위해 그대로 몸을 돌려 한 걸음 디디려는 순간. 살갗을 스치는 어떤 감각에 잠시 몸을 굳혔다.

상체를 완전히 돌리지 않은 채로 남자들이 뒹굴고 있는 쪽을 고갯짓으로만 살짝 돌아봤다.

‘일단은 지켜볼까.’

생각을 굳힌 다음 시선을 다시 정면으로 되돌렸다. 그때 처음 나동그라진 남자가 분노의 찬 신음을 뱉으며 품에서 단도 하나를 꺼냈다.

“으아아!”

단도를 꽉 쥐고서 일어나 나를 향해 달려들려는 바로 그때. 컥,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다시금 지면에 쓰러졌다. 그제야 다시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꽃바람과 함께 선이 곧고 단단한 몸을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것이 주이환과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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