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화연가 (33)화 (33/126)

“독초에 해박하다고 알려진 독고 세녀가 민간요법에 관심이 있을 줄이야. 독고 가문과 약초라니, 너무 이질적이어서 말이지.”

태자의 목소리에는 어딘지 모르게 날이 서 있었다. 해완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곧 자신을 향한 비난임을 깨닫고 잠시 얼굴을 굳혔다.

여자는 자존심이 상한 얼굴로 반박하려 입을 열다 이내 다시 다물었다. 따져 보자면 주이록은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옆 나라 태자일 뿐이었다. 그에게 굳이 가문과는 다른 행보를 택한 자신의 인생철학을 논하고, 이해받을 필요는 없었다.

‘그럴 시간에 약초를 하나라도 더 캐서 연구하는 게 낫겠다.’

세녀는 생각을 갈무리하고는 무덤덤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풀은 쓰임에 따라 약초로 쓰이기도 하고 독초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질적일 것은 없습니다.”

말을 마친 뒤 여자는 태자를 그림자처럼 무시하고는 입을 꾹 다문 채 약초 캐기에 몰입했다.

본디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라, 한 명이 꼬리를 내리면 다른 한쪽의 흥은 깨지게 돼 있었다.

서로 할 말도 별로 없으니 알아서 걸음을 돌릴 줄 알았던 주이록은,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자리를 뜨지 않았다. 오히려 진득이 서서 공녀의 손짓을 가만히 쳐다보고 서 있었다.

‘내가 또 오해했군.’

태자는 깔끔하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독고해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약초를 대하는 여자의 태도는 몹시 진지했다. 한낱 풀포기 하나를 손이 더러워지는 것도 마다 않고 조심스레 취하는 손길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다. 마치 자기 뜻은 사람을 해하기보다 살리는 데에 있다는 듯이.

그것이 가문과 이질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신념을 꺾지 않으려는 몸짓 같아 보여서. 또한 미련할 정도로 의지를 굽히지 않는 제 아우와도 닮아 보인 까닭에. 태자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뗄 수밖에 없었다.

“혹시 공녀도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돌아서 가는 편이오?”

“예?”

뜬금없기가 귀신 뺨칠 정도로 이상한 말이었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은 말에 해완은 잠시 당황하다, 이내 태자의 얼굴에 더 냉소가 없다는 걸 깨닫고는 얼빠진 표정을 지웠다.

“…어려운 길에 의미가 있다면요.”

“그렇군.”

이상하게도 공녀와 만나기 전 복잡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금친왕이 그렇게도 잡고자 하는 의미라면, 바보 같은 제 아우를 위해 한 번 정도 져 주는 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안하오. 오해해서.”

“예?”

태자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당연히 사과 같은 건 받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해완은 그가 묵례까지 하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벌떡 일어났다. 적어도 함께 예는 갖추자 싶어 고개를 숙이려는 순간 또다시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 들렸다.

“그리고 고맙소. 덕분에 생각이 좀 정리됐거든.”

“예, 예에?”

숫제 바보 같은 얼굴로 눈만 깜빡이는 공녀를 앞에 두고 태자는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선이 굵고 강직한 남자의 미소에서 봄바람 닮은 온화함이 맴돌았다.

남자는 그대로 뒤를 돌아 자리를 떴다. 멀어지는 남자의 등을 바라보며 해완은 자신도 모르게 홀린 듯 중얼거렸다.

“뭐야, 쓸데없이 잘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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