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화연가 (41)화 (41/126)

연조는 또다시 신경질적으로 내게 되물었다. 무슨 억지를 써서라도 나를 죄인으로 만들고 싶은 건지 온몸에서 짜증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쟤는 춤으로 몸만 굴릴 게 아니라 머리랑 표정 굴리는 법도 좀 배워야겠다.’

일그러진 연조의 표정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차며 못다 한 말을 이었다.

“홍종대제께서는 전쟁에 대한 다섯 권의 책을 쓰셨습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대작을 집필하셨으나 워낙 겸손하신 탓에 책에는 존함을 적지 않으셨고요.”

“설마…!”

“폐하께서는 승하하시기 전에 손수 지으신 책을 모두 불태우셨지요. 자손들에게 되레 화가 될 수 있는 사상이라고 하시면서요. 하지만 한 권만큼은 소재가 묘연한 까닭에 미처 없애지 못하셨습니다.”

“공녀는 대륙평책이 홍종대제께서 불태우지 못한 마지막 서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태사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필체가 몹시 눈에 익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제갈연조는 끝까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듯 대쪽 같이 반발했다.

“어림없는 소리! 증좌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책도 불탄 마당에!”

“예. 그것이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지요. 하지만 어려서부터 궐에 있는 서고에 드나들었던 접니다. 절대 폐하의 서체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대감, 이건 필시 서문 공녀가 일각의 위기를 벗어나려고 근거가 없는 말들을 지어내는 것입니다!”

작전을 바꾸기로 했는지 그녀는 원녕 대군 쪽을 바라보며 억울하다는 듯 울먹였다. 흉악스러운 얼굴을 거두고 세상 간곡한 표정을 짓자 귀의는 그녀를 안쓰러운 듯 쳐다봤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비웃듯 제갈연조의 표정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뗐다.

“베풀 설(設) 자나 권세 권(權) 자에서 부수자인 언(言)과 목(木)을 작게 쓰는 습관은 어찌 설명할 겁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왕실의 문서를 가장 많이 봐 오신 태사령께서는 아시겠지요.”

태사령은 깜짝 놀라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서문 공녀의 말이 맞소. 그리고 열(熱)이나 연(然) 자를 쓰실 때엔….”

“부수자의 마지막 점을 조금 멀리 찍으셨습니다.”

조금의 지체함도 없이 빠르게 대답하자 태사령은 졌다는 듯 눈을 꽉 감았다. 태사령이 완전히 내 쪽으로 의견을 돌아선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려 원녕 대군을 쳐다봤다.

그는 보여 주기식으로 어정쩡하게 내보였던 분노를 이미 접은 상태였다. 오히려 하나씩 반박해 나가는 모습이 즐거웠는지 조금 웃음을 머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오늘의 일화를 제대로 마무리 지으려면 대륙평책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의 힘이 필요했다. 내 의견에 동조해 달라는 뜻으로 조용히 그를 쳐다보자 단우결은 조금 어딘지 조금 힘 빠진 웃음을 지었다.

“공녀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의 한 마디로 장내의 모든 수군거림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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