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화연가 (50)화 (50/126)

“정말 필연이긴 한가 봅니다.”

멍한 얼굴로 서 있는 나를 향해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어쩐지 즐거움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우리 사이에 겨우 한 발자국 거리만 남게 되었을 때, 겨우 입을 뗄 수 있었다.

“연회장 안에 계신 줄로 알았습니다.”

“공녀의 표정이 내내 흐리지 않았습니까. 분명 내가 아는 그대라면 딱딱한 연회들은 뒤로하고 바람을 쐬러 나올 것 같았거든요.”

“…왠지 행동을 읽힌 기분인데요.”

그의 말에 뾰로통한 얼굴을 지으며 입술을 부풀렸다. 어째서 부끄러울 때면 오히려 마음에 있는 말과 반대말이 나오는 건지.

정신없고 소란스러운 연회장에서 내 안색을 살펴 주었다는 게 기뻤다. 나를 만나려고 일부러 이곳을 서성거리고 있었을 그가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오지 않을 나를, 주이환은 또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퉁명스러운 답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가 내 볼을 살짝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짓궂게 웃었다.

“읽힌 게 아니라 읽으려고 부단히 애를 쓴 겁니다. 정인의 기분을 헤아리는 건 의무이자 권리거든요.”

“…하여튼 말씀은 참 잘하시지요.”

졌다는 듯 혀를 내두르니 주이환은 또 샐쭉 웃음을 머금었다. 연회장 안에서는 무에 가까웠던 정갈한 표정이, 둘이 함께 있는 공기 속에서는 형형색색으로 꽃피웠다.

“뭐, 공녀께서 오시지 않아도 이곳은 제게 특별한 곳이긴 합니다.”

주이환은 어딘가 그립다는 표정으로 주위 경관을 쭉 훑었다. 연못을 둘러싼 녹음들이 여름 햇빛을 받고 반짝거렸다. 중앙에는 섬처럼 꾸며놓은 공간에 노송과 야생화들이 아름답게 장식돼 있었고, 도담도담 엮어진 돌길 너머로는 연못 뒤편 대나무 죽림으로 길이 이어졌다.

‘분명 아름다운 곳이지만 주이환에게 있어 타국의, 그것도 궁궐의 정원이다. 특별할 게 뭐가 있담?’

궁금한 얼굴을 하고 바라본 금친왕의 눈동자에서는 그리움과 회한이 묻어났다. 서른도 채 되지 않은 남자가 짓기에는 지나치게 굴곡 많은 얼굴이었다.

그는 은밀한 비밀을 털어놓듯 허리를 살짝 숙여 귓가에 속삭였다. 마치 사랑을 고백하는 것처럼 애달픈 소리였다.

“6년 전 이곳에서 그대를 처음 만났거든요.”

진하게 미소하는 남자의 눈동자에서 어떤 과거의 흔적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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