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화연가 (51)화 (51/126)

또렷한 음색의 한 소녀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남자는 자신이 누군가의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혼란스러웠던 건가 당황한 한편, 여전히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입만 벙긋거릴 수밖에 없었다.

“에잇, 됐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소녀는 성질이 난 듯 얼굴을 구겼다. 그러면서도 몹시 다급했는지 더는 도움을 기다리지 않고 재빨리 강아지가 있는 쪽으로 내달렸다.

아이의 손에는 어디서 갖고 왔는지 큰 그물이 들려 있었다. 소녀는 연못 쪽으로 그물을 던져 조심스럽게 강아지를 건져 올렸다. 어린 새끼를 구하느라 옷은 잔뜩 구겨졌고 창고에서 그물을 가져왔는지 머리엔 먼지 뭉치가 묻어 있었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아 보였다.

소녀가 연못 쪽으로 그물을 던져 강아지를 건져 올릴 때까지 그는 여전히 가위라도 눌린 것처럼 쉽게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겨우 육지로 발을 디딘 강아지가 푸르르 몸을 떨며 제 몸에 흥건한 물을 튀겨 냈다. 맑게 튀는 물방울 사이로 여름 햇빛이 소녀의 얼굴을 사르르 감겨 왔다. 어디선가 들리는 매미 소리가 아득하게 멀면서도 가까웠다.

옷은 엉망이었지만 소녀의 눈은 여름철 별자리처럼 반짝거렸다. 계속된 악몽으로 한동안 잊고 있던 세상의 색이 여자를 중심으로 물감이 번지듯 서서히 빛나고 있었다.

“아아….”

입에서 신음 같은 찬탄이 흘러나왔다. 몇 번 눈을 깜빡거렸을 때 그의 눈에 가득 찬 것은 사랑스러울 정도로 푸른 초록과 그 속에서 새싹처럼 돋아 있는 소녀 하나였다. 그는 세계가 이다지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난생처음 깨달았다. 흑백으로 침잠했던 세상에 빛깔이 물드는 광경이란 정신이 홀리는 것과 비슷했다.

이윽고 청명함을 머금은 맑은 눈과 가까스로 마주했을 때. 그는 작게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게 서문산산과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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