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화연가 (53)화 (53/126)

그의 말에 끄덕이고 있던 고개가 멈췄다. 워낙 경쟁률이 치열했기에 간택에서 떨어지는 일은 빈번했고 명예가 크게 훼손될 일도 없었다. 그 때문에 귀족 여식이라면 예상 못 한 변고가 있지 않은 이상 처녀 단자에 이름을 올리는 게 상식이었다.

‘그 귀족의 선봉이 바로 세가인데, 내가 빠져도 되는 건가?’

오라버니만큼은 아니지만 아버지 역시 주책계의 샛별이다. 딸을 생각하는 마음이 충의보다 앞서, 가문의 위신을 떨어뜨릴까 염려스러웠다.

“세가로서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는 소리가 들릴 텐데요.”

“그랬다가 덜컥 간택이라도 된다면 어찌할 것이냐. 금상에게 내 딸을 보낼 마음은 추호도 없는데.”

“소녀가 모든 귀족 여식 중에 뛰어난 것도 아닌데 꼭 간택되라는 법이 있나요, 뭐.”

“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지. 이런 사안들은 더욱 신중해야 하는 법이다.”

엄한 말투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다른 의미로 읽혔을까. 아버지는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내게 되물었다.

“설마 왕비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냐.”

“그럴 리가요. 다만….”

머릿속에 평우찬의 얼굴이 스쳤다. 세상 모든 삭막함을 끌어안은 것 같은 얼굴, 살짝 떨리던 눈꺼풀과 그를 위로했을 때 ‘충분하다’라며 말한 젖은 미소까지. 안쓰러운 마음으로 말을 덧이어 나갔다.

“폐하께서는 지지와 애정이 필요한 분이시기에, 다른 현명한 여인이 그 역할을 잘 해내 주었으면 하는 것뿐입니다.”

“…어째 그 여인이 딱 산이 너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이상한 촉이 발동한 아버지를 두고 나는 손사래를 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딸 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아버지라지만 이번만은 좀 도가 지나쳤다.

“에이, 아버님도 참. 폐하께서는 이미 제가 어떤 자인지 다 아시는데 어찌 소녀가 비의 그릇을 채울 수 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웃는데도, 그의 표정은 시종일관 근심스러웠다.

“아니. 오히려 네가 어떤 아이인지 알기에 더 욕심을 내실 수도 있지.”

그럴 리 없다며 몇 번이나 안심시키려 했지만, 그의 시름은 여전히 깊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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