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화연가 (58)화 (58/126)

탄은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찬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주인의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한 남자의 두 다리가 조금씩 장정들을 향해 긴박하게 움직였다.

한편 여림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갑자기 등장한 자의 말 하나만 믿고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는 우탄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는 가까스로 평정을 유지하며 운을 뗐다.

“중랑장. 설마 한낱 산에서 사는 비천한 자의 말 하나만 믿고 저에게 칼을 겨누려는 건 아니겠지요?”

그러자 탄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비천한 자가 아니라 소장의 여동생입니다.”

“예?”

순간 명여림은 자신이 무얼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가늘게 떴다. 우탄의 여동생은 소문난 별종으로, 귀족의 영애지만 산림 근처에 있는 별장에 기거하며 사교 모임에 거의 참석하지 않는….

“아앗…!”

여림은 우아하지 못한 탄성을 내지르고는 합, 하고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래. 오두막도 별장이긴 했다. 예상보다 좀 많이 허름한 별장이라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며 민은 비비 꼬인 미소를 지으며 실컷 빈정거렸다.

“여자가 산에 혼자 살면 험한 꼴도 많이 당하는 터라 기본은 이렇게 남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을 명심하셔야 할 것 같네요.”

“그… 그게….”

“아. 생각해 보니 그건 공녀가 제일 잘 알겠군요. 이리도 앞과 뒤가 다르시니.”

민이 잔뜩 빈정거리는 틈을 타 어느새 탄은 조금씩 걸음을 옮겨 오두막 문가 가까이 다가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검집에 얌전히 누워 있던 검은 장정들을 향해 날카로운 빛을 발했다. 그사이 여림은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제법 엄한 목소리로 탄에게 말했다.

“우 중랑장. 품계로 따지면 내가 그대보다 위에 있거늘, 어찌 칼을 겨누는 겁니까? 귀장은 군신의 예를 잊기라도 한 겁니까!”

“먼저 소장이 신하로서의 예를 맹세한 것은 금친왕 저하이시지 공녀가 아닙니다. 두 번째는….”

탄은 말을 조금씩 흘리면서 대치 자세를 유지했다. 이윽고 제 누이를 등 뒤로 밀며 문 앞을 막아섰다.

“이 안에 미래의 금친왕비께서 계시기에 비켜 드릴 수 없습니다.”

“그 무슨…!”

“게다가 또 압니까. 이 안에 계신 또 다른 분이 태자비, 아니. 황후가 되실지.”

황후라는 말에 여림의 이성이 완전히 끊어졌는지 그녀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곧 거만한 얼굴로 공녀가 빈정거렸다.

“여기 모인 장정들이 열은 넘습니다. 중랑장 하나로 과연 될까요?”

이제는 숨김없이 자신을 비웃는 여림을 보며 탄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전장에서도 수많은 목숨을 밟고 살아 돌아온 그다. 약간의 상처는 입겠지만 등 뒤에 자신이 지키고 있는 목숨들의 고귀함을 생각하면 물러설 수 없었다.

탄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허면 한 번 지켜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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