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화연가 (78)화 (78/126)

가을 낙엽만큼이나 그늘진 목소리였다. 조금이라도 힘을 쥐면 가루가 되어 부서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세상의 모든 고독을 등에 업고, 그러나 주이환은 평정을 유지한 채 말을 이었다.

“이제 두 번 다시 그대를 이렇게 부를 수 없겠지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의 이름을, 그것도 줄여서 부르는 것은 중죄이기에. 남자는 조금 주저하듯, 그러나 마지막 염원을 담아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 봐도 되겠습니까.”

가슴이 쿵 떨어졌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이라는 말이 가슴의 막바지까지 다다른 것 같았다. 막연하게만 생각해 오던 이별이 정말로 코앞에 다가오자 그 뚜렷함에 베일 것만 같았다.

‘악수 정도가 적당할 텐데.’

머릿속 어딘가에서 이성이 소리치고 있었다. 여지를 주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하지만 언제나 연모란 이성을 배반하는 존재이기에, 한 걸음을 주이환에게 가까이 다가가 양팔을 벌렸다.

이윽고 남자의 다부진 몸이 내 안에 가득 찼다. 양 손바닥을 벌려 그의 등을 감싸 안고 부드럽게 토닥였다. 입으로는 담지 못한 마음을 깃털 같은 손짓에 전했다. 다 괜찮을 거다. 우리는 연정에 겨워도 같은 마음으로 아플 것이기에.

서로 맞댄 몸에서 그의 숨결이 조금 떨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뜨겁고 애틋한 호흡이었다. 순간을 잘게 쪼개 몸 속에 새기려는 듯, 주이환은 절절히 나를 끌어안았다.

이윽고 조금씩 그에게서 힘이 풀렸다. 천천히 몸을 뗀 금친왕의 동공에는 오로지 나만이 가득 들어찼다. 이 순간이 더 없는 보물인 것처럼, 남자는 느리고도 애틋한 발음으로 입을 뗐다.

“잘 있어요, 내 사랑.”

주이환이 햇살처럼 미소 지었다. 어떤 햇빛은 바라보면 차마 눈이 부셔 눈물이 나기도 하는 법이라,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어떤 물기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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