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찜찜한 기분에 입매를 굳게 다물었다. 지금은 물고기들이 약해지는 한겨울도 아니고 가을이다. 거기에다 집단 폐사도 아닌 뜬금없는 단 한 마리의 죽음이라니.
어찌 보면 물방울만큼 사소한 것이지만 세상은 본디 이런 작은 일들이 모여 거사가 되는 게 아니던가. 결심을 굳히고는 궁금하던 것을 묻기 시작했다.
“잉어가 죽은 이유는 알아냈느냐?”
“먹이는 아니옵니다. 그랬다면 한 마리가 아닌 다른 물고기들마저 모두 죽었을 것이옵니다.”
“별다른 특별한 정황은 없었느냐?”
“저어, 별것이 아닐 수도 있으나… 죽은 잉어의 배가 빨갛게 부풀어 올라 있었사옵니다. 마치 멍이라도 든 것처럼….”
연못을 관리하는 궁인이 확신이 없다는 듯 더듬더듬 말하자, 맨 처음 이 사건을 숨기려고 했던 또 다른 궁인이 그녀를 다그쳤다.
“지금 폐하께 무슨 말씀을 드리고 있는 거야? 물고기도 멍이 든다니 들어 보지도 못했네!”
“하지만 정말인걸! 그리고 또 안 될 건 뭐야? 물고기도 생명인데 무언가에 맞기라도 하면 멍도 들고 죽기도 하는 거지!”
서로 투덕거리는 두 궁인의 대화 사이에서 무언가가 뇌리를 스쳤다. 우연에 우연이 겹친 가정이었지만 확인해 볼 방법은 있었기에 서둘러 입을 뗐다.
“너희 둘은 지금 당장 사람을 불러와 비단잉어를 옮기고 연못 밑바닥을 샅샅이 뒤져라.”
뜬금없는 말에 두 궁인은 다툼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단은 왕명이기에 공손히 대답하고 바로 자리를 떠났지만 어딘지 의문이 남아 있는 모습이었다. 호안 역시 궁금한 듯 조용히 내게 물었다.
“폐하. 난데없이 연못 바닥은 어찌…?”
“누군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는 말도 있지 않으냐.”
“예. 허나 그 말은 일종의 관용어일 뿐, 정말 죽는지는….”
“그러니 한번 살펴보자는 거다. 정말 누군가가 연못에 무언가를 던졌다면, 헌데 운 나쁘게도 잉어 한 마리가 그걸 맞고 죽었다면?”
“‘누군가가’ 던진 ‘무언가’는 아직 이 밑바닥에 있겠군요.”
고개를 끄덕거리는 호안의 모습 끝으로 몇몇 사람들이 서둘러 연못 쪽으로 다가왔다. 잉어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연못 밑바닥을 수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결과가 밝혀졌다.
“뭔가 찾았습니다, 폐하!”
어전 시위가 연못에서 작업하던 사람에게서 찾은 물건을 수건으로 닦아 공손히 내게 내밀었다. 천 안에 숨겨진 것을 보자마자 옆에서 호안이 황급히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독고 가문의 문장이 담긴 쇠붙이였다. 허리띠나 머리띠의 중앙에 박아 장신구로 사용하는 용도의. 머리가 빛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연못 밑바닥에 장인의 수공품으로밖에 생산되지 않는 세가의 문장 장식이 가라앉아 있다는 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딱 하나. 함공왕을 시해한 범인이 사용한 후 증거 인멸을 위해 연못에 내다 버린 게 아니라면 말이지.’
분명히 이 일을 캐내다 보면 진범에게로 향하는 길이 나올 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사건을 부풀릴 수는 없었다.
궁에서의 소문은 바람보다 빠르게 전염된다. 단우결이 진범이라면 본인이 직접 장신구를 연못에 던져 버리지는 않았을 테고, 아마도 말단 궁인이 벌인 짓이겠지. 오늘의 일이 대군의 귀에 들어간다면 내가 그 말단 궁인을 잡기도 전에 먼저 그가 궁인을 제거할 게 뻔했다.
‘일단 사건을 이쯤에서 덮어야겠다.’
자연스럽게 쇠붙이를 챙기면서,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과연. 이런 쇳덩이가 난데없이 연못에 떨어졌다니 운 나쁜 물고기 한 마리는 죽고도 남겠구나.”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는 듯한 말투에 모든 궁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의 책임 소홀이 아닌 ‘운이 나쁜 물고기’로 치부한 것에 대해 모두가 안심하는 눈치였다.
‘어느 정도 말이 새 나가긴 할 테지만 함구령 정도는 내려놓아야겠지.’
쇠붙이 두 개를 호안에게 건네주며 엄한 목소리로 말을 덧댔다.
“오늘의 일은 누구의 실책을 따지지 않겠다만, 즉위식을 앞두고 상서로운 일은 아니니 모두들 목숨을 걸고 함구하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절을 하는 궁인들을 뒤로하고 호안을 향해 조용히 지시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어전 연못에 접근한 사람은 없었는지 알아 오렴. 은밀하게 움직여야 해.”
진범을 밝힐 수 있다는 생각에 호안은 굳은 얼굴로 깊숙이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