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비단잉어의 죽음 하나에 함공왕 시해의 실마리가 담겨 있는지. 또 추립은 알았을까. 자신이 살린 목숨이 곧 제 주군의 목을 조르리라는 걸. 복잡한 심경을 뒤로한 채 울며 엎드리고 있는 궁인을 향해 말했다.
“종이와 붓을 준비해 줄 테니 거기에 네가 행한 것을 남김없이 적어라. 본인임을 증명하는 지장도 잊지 말고.”
“예, 폐하.”
“호안은 이 궁녀가 증언서를 작성하는 대로 직접 서문가에 데리고 가서 생활할 처소를 마련해 주고 오너라.”
두 번째 주문은 무척이나 의외였는지 어린 궁인은 곧 눈물을 그치고 멀뚱히 나를 쳐다봤다.
“네가 편전에 왔다는 게 비장군의 귀에 들어가면 그땐 정말 네 목숨을 앗을 것이다. 하지만 서문가는 일종의 안전지대이지. 그곳에서 네 증언이 필요해지는 순간까지 기다리고 있어라.”
궁인은 두려움에 몸을 떨다가도 안전지대라는 얘기에 침착함을 되찾았다. 종이와 붓을 가져다주자 그녀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남김없이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주한 자의 이름을 쓸 때에는 주저함이 있었지만 끝내 비장군 추립이라는 단어를 빼놓지는 않았다. 종이에 채워지는 글자를 바라보며 나는 나대로 어떤 생각을 다지고 있었다.
‘추립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게 분명하다.’
원녕의 그림자로 불리던 게 비장군 추립이다. 대군의 명을 받들어 궁인들을 정리하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을 텐데, 왜 지금에 와서 어린 궁녀 한 명의 목숨을 살렸을까. 물증은 없었지만 두꺼웠던 충심에 균열이 생긴 게 확실했다. 궁녀에게 ‘마지막 양심’이라고 한 것도 그렇고.
증언서가 다 쓰일 즈음, 짐작은 명확한 방향성으로 가닥이 잡혔다.
‘추립을 회유해야겠다.’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한 편전 안에서 결의에 찬 눈동자만이 촛불처럼 빛을 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