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화연가 (99)화 (99/126)

가주는 산산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자신이 몸소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친 여식 아닌가. 중요한 것일수록 몸에 가까이 두라는 가르침을 그녀는 잊지 않고 있을 테다. 그때 다분히 염려스러운 목소리가 가주의 상념을 깨트렸다.

“헌데 선왕은 즉위 자체가 무효화됐습니다. 역모라고 보기엔 어려움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맞소. 또 역모를 빌미로 왕족을 사형에 처한 경우는 과거에도 몇 번 있지 않았소? 너무 약한 명분인 듯한데.”

우려 섞인 시선들이 교차하자 가주 뒤에 서 있던 서문일천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먼저, 역모는 거꾸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교지가 있었다면 왕을 시해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즉 대군부가 주장하는 칙서는 가짜라는 얘깁니다.”

“칙서가 진품일 확률도 있지 않소?”

“시점이 문제가 될 겁니다. 대군이 선왕을 시해한 건 왕위의 무효화를 공표하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새 칙서가 발견된 후 선왕을 단죄하기 위해 사형에 처한 게 아니라, 그전에 시해한 것이기에 역모죄가 성립된다는 거요?”

일천은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동시에 또 한 번 내실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고통스럽지만 이제는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왕좌를 갖기 위해 혈족을 살해하다 못해 즉위마저 무효로 만들어 버리는 대군의 잔혹함을. 원휘왕의 광증에 짓눌렸던 비운의 대군은 어느새 궐 안에서 괴물이 돼 버리고 말았다. 참담한 침묵 사이로 체념조의 목소리가 울렸다.

“허면 가주께서는 앞으로 어찌하실 겁니까.”

서문의곤은 작게 눈썹을 씰룩거렸다. 이제야 겨우 본론이라니 갈 길이 너무 멀지 않은가. 그러나 가주는 쓰디쓴 마음을 다잡았다. 날 서린 검보다 예리한 눈동자로 그는 입을 열었다.

“예로부터 서문가는 군권과 밀접하게 연결됐기에 다른 세가들보다 더 몸을 낮추길 자처했소. 허나 이번엔 다르오.”

“그렇다면….”

“모든 병력을 총동원하는 한이 있어도, 서문가를 적으로 돌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똑똑히 보여 줘야 하지 않겠소.”

겨울바람보다 매섭고도 빈틈없는 얼굴로, 서문의곤은 대군부에 선전포고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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