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어장에서 탈출하겠습니다 (25)화 (25/90)

<25화>

“그렇다면야, 뭐……”

같이 있던 다른 영애도 관심을 보이며 레나이드에게 질문을 던졌다.

“영상석 엄청 비싼 거 아니에요? 마음대로 빌려줘도 괜찮은 거래요?”

영상석 같은 건 귀족이라고 해도 절대 간단하게 살 만한 게 아니다.

그런데 대여값은 저렴한 편에다가, 심지어 2주 무료라고?

그리하여 레나이드 영애의 영업에 의해 두 명이 2주 무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니, 이거 뭐야. 집 밖에 안 나가도 되니까 굉장히 편하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빠져들었다.

여기에 특별히 이번 달에 구독하면 서비스로 준다는 팝콘이라는 것도……

‘뭐야, 내가 이걸 언제 다 먹었지?’

그냥 봉지에 손만 가져다 댔을 뿐인데 어느새 다 먹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어안이 벙벙했다.

둘은 레나이드 영애처럼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영업을 했다.

“검은 달 서비스 신청하면 주는 팝콘이라는 거 드셔 보셨어요? 그거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아세요?”

“영상석 신청할 때 말하면 같이 살 수 있대요.”

“뭐야,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디저트라고요?”

연극에는 관심 없어도 새로운 디저트에는 관심이 있는 사람들까지 영상석 구독 서비스를 신청하기 시작했다.

“흠, 크흠. 그리고 이건 내가 친한 영애들이라서 알려 주는 건데…… 한 여자를 두고 네 남자가 싸우는 연극이 있거든요? 웃통을 벗고 격투를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어머나!”

귀족 영애가 이런 걸 왜 보냐는 소리를 들을까 봐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내용도 은근슬쩍 빌릴 수 있었다.

어차피 혼자 보는 거니까!

그렇게 처음에는 영상석에 시큰둥하던 사람들도 점차 빠져들었고.

“클로틸드 대표님, 사람들이 첫 주만 볼 것 같았는데 다음 주에도 구독자 수가 굉장합니다!”

영상석을 출범한 지 3주가 다 되어 가는 기간.

마탑 사무실에 있는 멜라니에게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기쁜 소식에 다미안 마탑주를 포함한 마법사, 직원들 모두 기뻐했다.

“처음 2주는 사용이 무료라고 하니까, 기존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호기심을 많이 가지게 된 모양입니다.”

“영상석을 낯설어하던 사람들도, 막상 보니까 헤어 나오지를 못하더라고요. 처음에는 2주만 보고 해지하려고 했다는데 말이죠.”

영상석으로 연극을 본다니, 너무 생경한 것이라 걱정했는데 다행히 반응이 생각 이상보다 좋았다.

“화면이 작아서 걱정했는데……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보기에는 충분한가 봅니다.”

자신의 취향인 영화를 추천해 준다는 설문 조사를 할 때 영상석 크기에 대한 의견도 함께 물어보았더니 그에 대한 반응 역시도 긍정적이었다.

‘그래, 작은 스마트폰으로도 사람들 영화 잘만 보더라.’

전생에서 겪은 경험이었기에 멜라니는 불안해하지 않던 요소였다.

거기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에 틈틈이 보는 등 오히려 휴대성이 좋아 이득인 부분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 정도 시작이면 생각보다 반응이 좋다.

물론 프린츠 마법사가 말하는 50만 명에는 아직 터무니없게 못 미치기는 한다.

대여라서 분실을 걱정하던 사람들의 걱정과 달리 영상석의 반납도 수월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영상석을 반납해야 다른 영상을 빌릴 수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내 주장대로였다.

‘아직 콘텐츠가 너무 부족해.’

초반에는 지출이 더 많을 거다. 하지만 나는 투자를 멈출 생각은 없었다.

‘당분간은 큰 수익을 거두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사업의 규모를 더 늘릴 때야.’

사업에 들어가는 자금이 만만치 않지만 아직은 큰 무리가 아니었다.

애초에 영상석을 직접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마력석을 내가 공급하고, 영상석 자체를 만드는 게 나여서 더 다행이지.’

거기다 다미안 마탑주가 기술을 연구해 자투리 마력석으로도 괜찮은 화질의 영상석을 만들 수 있었던 게 신의 한 수다.

이게 다른 사람의 생각보다 생산 단가가 높지 않단 말이지.

‘충분히 더 투자할 수 있겠어.’

나는 미소를 지었다.

“마탑주님, 저를 믿어 주셔서 감사해요.”

자투리 마력석을 사용하는 것도 월정액 구독 서비스도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었는데.

영상석을 개발하는 다미안이 밀어줘서 나도 끝까지 방침을 고수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영애는 항상 파격적이셨지만, 그게 틀린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다미안 마탑주는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처음부터 파격적이지 않은 게 없긴 했다.

“그럼 마탑주님이야말로 파격적인 거 좋아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건……”

“전부터 제 말에 대부분 동의하셨잖아요.”

나는 경쾌한 목소리로 다미안 마탑주에게 장난을 걸었다.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나를 희한하게……

아니, 경악과 충격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내가 너무 조심성이 없었나?’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직 회의가 끝난 것도 아닌데 소란스럽게 굴었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 마탑주님께…… 장난을……”

“네?”

음, 나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보다가 볼을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무도회에서 두 분, 파트너로 참석하셨다고 하셨죠?”

“굉장히…… 친해 보이시는데. 사업을 하시기 전에도 만나신 적이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러나 내게 질문이 쏟아지는 분위기는 이내 사그라들었다.

“시끄러워.”

다미안 마탑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 오는 질문들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내가 요즘 너무 풀어 줬지?”

“아, 아닙니다.”

다미안의 목소리는 크지도 않았고 단 한 마디였다.

어느 순간 풀어졌던 분위기가 갑자기 냉각되듯 식었다.

나는 갑자기 자세를 바르게 하는 사람들을 보며 얼떨떨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마탑이 꽤 자유분방한 분위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군기가 꽉 잡혔지 않나.

‘갑자기 왜 이런 분위기지……?’

대충 나랑 다미안 마탑주를 연인 쪽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럼 굳이 해명할 필요 없지 않나?’

폴리우스와 파혼하면서 어차피 약혼 상대를 바꾼다는 식으로 아버지께 얘기도 한 참이었다.

이미 건국제에서 파트너로 참석한 적도 있고.

‘그럼 딱히 거리를 두지 않아도 되잖아?’

그런 와중에 다미안 마탑주는 다시 한번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도, 클로틸드 대표님께 귀찮게 굴지 마. 그렇지 않아도 몸이 좋지 않은 분이다.”

“…….”

나는 느긋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 나랑 다미안 마탑주가 사이 좋다는 소문이 돌면 좋지. 내가 굳이 정정할 거 있나.

……다미안 마탑주가 지금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지 조금 신경 쓰이긴 하지만, 굳이 고개를 돌리지는 말자. 응, 그래.

* * *

처음 조세핀의 생각과는 다르게, 영상석 서비스는 너무 잘되고 있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만나기만 하면 검은 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 좀 더 고상한 이야기를 하는 게 어떨까요?”

한 사교 모임에 참석한 조세핀은 그런 이야기의 싹을 처음부터 자르려 했다.

“영상석, 품질도 조악하고 별로던……”

“그렇게 조악하지는 않던데요? 물론 극장에서 직접 보는 것도 훌륭하지만, 또 다른 느낌이 있었어요.”

하지만 분위기가 예전과는 달라졌다.

영상석을 본 사람들이 많으니 이제 반박하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오히려 영상석으로 녹화하니 더 잘 어울리는 작품도 있던걸요. 아무래도 극장에서 보는 것보다 배우의 표정이 더 섬세하게 보이니……”

“맞아요. 연극을 볼 때는 내가 지금 누굴 봐야 할지 모를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영상석으로 보면 모든 사람들의 표정을 그때그때 잘 잡아 주잖아요.”

“특히 <프리세니아의 봄>에서 여주인공이 남주인공 때문에 상처받는 순간에 둘의 얼굴 표정을 교대로 잡아 주는 게!”

조세핀은 그 영애의 말을 즉시 묻으려 했다.

하지만 그 옆에서 또 다른 영애가 끼어들었다.

“거기에 해외 작품은 또 어떻고요. 저는 네지렐 왕국의 연극은 처음 봤는데 굉장히 좋더라고요.”

거기다 검은 달은 제국에서 보기 힘들다는 외국의 연극도 제법 들여오고 있었다.

다행히 제국과 언어가 통해 이해하는 데엔 큰 문제가 없었다.

외국에서 유명한 콘텐츠는 어느 정도 퀄리티를 보장했다.

프하이젠 제국에서는 보기 힘들다는 외국의 연극은 사람들의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정말이지, 검은 달이 영상석 대여 서비스를 해 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조세핀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멍청이가 아니어서, 여기서 영상석에 대해 트집을 잡아 봤자 역효과가 날 거라는 걸 알았다.

그렇지만 애초에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주제를 돌린 것이 자신인데, 이러면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개 같지 않은가.

조세핀은 잠시 생각하다가 영상석이 아닌 멜라니에게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맞아요, 영상석이 그런 장점도 있지요.”

일단은 영상석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말과 함께 맞장구를 치고는.

“하지만 클로틸드 영애가 영상석 아이템을 잘 살려서 경영할 수 있을까 의문이네요. 금이 다 마른 광산을 거금을 들여서 샀다던데…… 그것도 사채를 끌어다가요.”

초점을 영상석 사업을 벌이는 멜라니에게 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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