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어장에서 탈출하겠습니다 (49)화 (49/90)

<49화>

저도 처음에 두 분을 보고는 많이 당황했습니다만……

나는 어디까지나 우연히 두 사람을 만난 것이라는 말을 재차 덧붙이고는 말했다.

“음, 나한테 피해가 될까 봐 사릴 필요는 없어요.”

“아닙니다. 이런 경우에 소송을 실제로 거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어차피 안 먹힐 것이 뻔하니까요.”

메이런 각본가는 쓰게 웃었다.

극단을 소유한 건 부유한 평민이나 귀족들. 일개 평민이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사실 저는 대표님께서 함께 일한다고 평민들인 제게도 존대를 써 주셔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하하, 제가 바쁜 분께 괜히 신경 쓰이게 해 드렸군요.”

메이런 각본가는 이내 대화를 적당히 마무리 지으려 했다.

고위 귀족인 내가 잘 모르는 세계라고 생각한 건지, 너무 시시콜콜 다 말했다고 생각한 건지 후회하는 표정이 일순 스쳤다.

“그러니 더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13번째 기사>를 두고 그렇게 대단한 양 굴더니 정작 연극을 만든 사람들은 다 무시하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물론 비꼬는 말이었다. 나는 메이런 각본가가 대화 주제를 바꾸기 전에 빠르게 입을 열었다.

“평민이 귀족 상대로 소송을 걸기 힘들다고요? 뭐, 내가 도와주면 문제될 거 없잖아요. 마침 이런 일 잘하는 변호사를 알아요.”

“네? 하지만……!”

“오히려 붉은 해 쪽이 자꾸 이쪽을 건들고 있어서 짜증 났는데…… 나야말로 한 방 먹여 주면 좋죠.”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여상하게 덧붙였다.

“그러니까 제가 그냥 두 분이 안타까워서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거 아닙니다. 저한테도 이득이 되니까 하는 말이에요.”

“대표님……”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감동해서, 나를 천사쯤 되는 인물로 바라보고 있었다.

으윽, 중년의 두 아저씨가 초롱초롱 젖은 눈으로 바라보다니. 부담스럽다.

나는 고개를 홱 돌렸지만, 두 뺨이 달아오르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괜히 내가 부끄러워서 시치미 떼는 것 같잖아!’

나는 부끄러움에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아무튼 저만 믿어요! 벨데르트? 잉그다? 크흠, 내가 다 무찔러 줄게요!”

* * *

붉은 해 쪽에 소송을 걸 준비를 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영상석의 후속 제품을 준비하는 것도 병행했다.

‘소설에서는 폴리우스의 집안에 마침 극단이 있었고. 연극에 관심이 있던 내 말을 듣고 영상석으로 사업이 이어졌지만……’

사실 마력석으로 굳이 영상석과 홈시어터만 만들 필요는 없다.

여러 분야에 진출해도 좋겠지만, 지금은 내가 출시한 마법 아티팩트들이 감성적인 이미지를 띠고 있으니 고급의 느낌을 미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해서, 내가 내놓은 마법 아티팩트란.

“마탑주님, 무드등과 스피커 기능을 겸한 제품을 출시하고 싶어요.”

무드등과 스피커였다.

내 짤막한 설명을 들은 다미안 마탑주는 고개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빛을 낸다는 말만 들으면 기존의 마력등과 어떤 점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스피커도 낯선 개념이고요.”

“무드등은 단순히 빛이 난다는 개념의 물건은 아니에요. 마력등보다는 차라리 극장에서 여러 분위기를 내는 무대 장치와 비슷하죠.”

나는 내가 그린 스케치를 짚으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온갖 오묘한 빛깔이 무지개와 노을, 밤하늘, 오로라 등을 모티브로 후보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무지개의 끝, 잔별이 남은 새벽하늘, 노을이 내린 언덕…… 영애가 지으신 이름입니까?”

“일단은 가제지만요. 감성을 건드리고 싶어서 색깔마다 이름을 붙였어요. 그럴듯한 단어들을 다 써 봤지요.”

나는 민망함에 헛기침을 했다.

“너무 멋 부린 듯한 느낌도 들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뇨, 잘 지으셨는데요.”

다미안 마탑주는 무드등 색깔의 테마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저는 절대 떠올릴 수 없는 이름이에요.”

“크흠,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담백한 칭찬이어서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 호들갑 떨었으면 민망했을 거다.

‘너무 오그라든다는 말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다 온 부작용이야.’

다미안 마탑주는 무언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민망해진 나는 다음 설명으로 얼른 넘어갔다.

“요즘 극장에서는 마탑과 연계된 무대 장치들이 이목을 끌고 있죠. 반응도 무척 좋고요. 극장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여러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어 하는 수요가 충분하다고 봐요.”

“극장의 무대 장치를 보고 사람들이 조명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뜻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을 찰떡같이 알아듣는구나.

“확실히 구매하고 싶다는 문의는 많이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방의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지죠. 어떻게 보면 온갖 인테리어보다 효과가 더 좋다고 볼 수 있어요.”

나는 이어서 다음 스케치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무드등의 색깔뿐만 아니라 디자인 역시 고려해야 할 대상이에요. 마력등처럼 무난한 기본 디자인과 함께 달 모양이나 꽃을 꽂은 화병 같은 느낌도 염두에 뒀어요.”

무드등은 소설에서 폴리우스가 출시하지 않았던, 오직 내가 생각해 낸 아이템이었다.

영상석은 어느 정도의 성공이 예상되어 있었다면 무드등은 확실한 보장이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실패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무드등은 자투리 마력석으로도 출시할 수 있으니 이익이 클 거예요. 무드등은 값싸게 팔되 동력원인 교체용 마력석을 비싸게 파는 것도 한 번 생각해 봤지만……”

“영애의 말씀을 들으니 무드등은 단가를 싸게 하는 것보다 사치품 느낌으로 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네, 그 건은 나중에 이야기해 보기로 하고요. 저는 무드등 자체에 그치지 않고 음악을 넣는 것도 생각해 봤는데요. 아까 말한 스피커요.”

나는 무드등의 감성과 어울리는 음악들을 선별한 목록들을 추려서 내밀었다.

“무드등의 테마마다 어울리는 음악이 다르겠지만, 대충 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좀 더 의견을 들어야 하겠지만요.”

“분위기 있는 연주곡 쪽이 대부분이군요.”

“감성이라는 단어를 제가 많이 쓰긴 했지만, 사실 자기 전 취침 등으로 실용성도 있어요. 시간대를 고려해서 너무 복잡한 음악은 고르지 않았어요.”

“확실히 극적인 음악은 자기 전에 들으면 수면에 방해가 될 테니까요.”

설명을 들은 다미안 마탑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십니다. 영상석과 홈시어터에 이어 출시하기 좋은 상품들이에요. 기존의 고객들에게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겠군요.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는 다른 타깃층의 관심도 끌 수 있을 거고요.”

그리하여 나는 스피커 기능이 있는 무드등 출시에 박차를 가했다.

“이 무드등의 홍보는……”

* * *

멜라니가 무드등을 출시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폴리우스가 생각보다 빨리 그녀의 신상품을 마주하리라는 사실이었다.

“뭐야, 내가 잘못 들렀나……?”

한 가게에 들른 폴리우스는 깜짝 놀랐다.

이른 아침부터 영상석을 녹화할 콘텐츠 계약을 맺느라 몸도 마음도 지친 상황.

오늘도 일정은 가득 차 있고, 그나마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건 식사 시간 정도.

요즘 뾰족한 분위기의 조세핀을 달래고, 어떻게든 클라라에게 사업적인 조언을 들으려고 간만에 분위기 있는 장소에 왔는데……

저번에 들렀을 때와는 느낌이 굉장히 달랐다.

폴리우스가 이 가게가 맞나 입구를 살펴보는 사이, 뒤따라온 조세핀이 말했다.

“아니, 여기가 맞아요. 저것 봐요, 저번에 우리가 앉았던 자리잖아요.”

“확실히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들은 그대로네…… 잘못 찾은 게 아니라니 다행이긴 한데, 왜 못 알아본 거지?”

폴리우스는 눈앞의 가게를 꼼꼼히 살폈다.

원래도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 타깃으로 주류를 파는 만큼 그다지 밝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전보다 더 나직한 분위기였다.

“마력등 색깔이 보라색으로 바뀌어서 처음에 놀란 거였어. 그런데 마력등 하나로 이렇게 다른 분위기가 나나?”

처음 보는 보랏빛 조명이 가게를 비추는데,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낭만적인 걸 좋아하는 조세핀은 홀딱 반한 눈치였다.

“폴리우스. 정말 좋지 않아요? 말로는 잘 설명하기 어렵지만 다른 가게들과는 다른 느낌인데. 기존에 마력등에서는 못 보던 색깔이라서 그런가 봐요……”

“오우. 정말 예쁘네요.”

그에 반해 옆에 있던 클라라는 마찬가지로 예쁘다고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어쩐지 덤덤한 얼굴이었다.

꼭 처음 보는 게 아니라는 것처럼.

“악단이 없는데 음악이 어디서 나오는 거지? 사람들이 숨어 있는 걸까요?”

조세핀은 요란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분위기 있는 음악이라며 계속해서 칭찬을 이어 갔다.

“여하튼 좋네. 가게에서 음악이 나오다니 신기……”

마찬가지로 바뀐 가게가 마음에 든 폴리우스는 조세핀의 말에 맞장구를 치려 했다.

“이 조명 말이야, 클로틸드 영애가 마탑주와 함께 개발한 거라면서?”

하지만 테이블 손님의 말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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