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항의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 직원을 늘렸는데, 새로 구독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을 시작으로 그래도 비용을 차츰차츰 늘리면 자금이 회수될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열다섯 배나 된다는 가격에서 불만이 많이……”
“그래 봤자 얼마 안 되잖아!”
열다섯 배를 받아도 당분간은 적자인데, 그것조차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이미 영상석은 많이 만들어 놓은 후인데 말이다.
게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인건비가 장난 아니었다. 영상석을 관리하는 창고를 빌리는 비용은 어떻고?
“……하.”
문제들은 점점 더 덩치를 불려 나갔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이 문제부터 해결해 주십시오.”
“이것부터 먼저 서명을……”
하루가 지날수록 더 쌓여 가는 문제들. 골칫덩어리들. 밀려오는 대출의 압박들.
“조세핀. 우리 잘못 생각한 거 아닐까? 괜히 사업에 손대서……”
폴리우스는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징징거리기만 할 뿐, 하는 일이 없었다.
쏟아지는 고난 속에서 조세핀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렇다고 후작저에 돌아와서도 편하지는 않았다.
“<13번째 기사>가 그 꼴이 나고, 영상석 품질도 떨어진다는데 대안이 있는 거냐?”
조세핀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할 말이 없었다.
“그, 그건…… 죄송합니다. 아버지.”
“미안하다는 말 말고, 대안을 말해 보란 말이다. 네 지참금은 물론이고 가문의 이름으로 대출까지 받지 않았느냐!”
조세핀은 잉그다 후작의 날 선 말에도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그에게 가문의 이름으로 대출받자고 한 게 본인이었는데, 무슨 할 말이 있단 말인가.
“<13번째 기사>의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작정이냐?”
“…….”
“너희가 <13번째 기사> 이후에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게 몇 개나 되느냐?”
잉그다 후작이 하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옆에서 폴리우스가 확신 있게 말하고, 클라라가 하는 말을 자신도 듣다 보니 어영부영 설득된 게 없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 여태까지는 말할 일이 있을 때 자신이 나선 일은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모두 폴리우스와 클라라의 몫이었는데.
“어, 클로틸드 따위보다 저와 폴리우스의 안목이 훨씬 더……”
“그걸 지금 대답이라고 내놓는 거냐?”
“……그게요.”
조세핀은 아버지와 만날 때 사업 계획서까지 준비해 가며 철저하게 준비한 멜라니와는 달랐다.
애초에 사업에 대해 진지하게 배운 적도 없었다.
‘너무 <13번째 기사>에 모든 걸 걸었어.’
그저 멜라니가 하니 자신도 당연히 더 잘할 거라는 오만이 있었을 뿐.
“조세핀, 지금 이대로는 너의 지참금은 물론이고 잉그다 가문까지 날아갈지도 모르겠구나.”
“그,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제가 앞으로는 더 열심히 할 테니까!”
“열심히 한다고 성공하다니, 비열한 클로틸드를 상대로 그게 될까?”
조세핀은 당황스러움과 초조함에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잉그다 후작은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이 상황을 타개할 건 하나뿐이다. 일단 영상석 사업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니, 투자를 받아서 버티고 콘텐츠를 더 확보해야지.”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예습과 복습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하지만 잉그다 후작은 무슨 꿍꿍이가 있어 보였는데, 조세핀은 아버지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콘텐츠는 이미 검은 달 쪽이 독점 계약을 맺었고, 이미 붉은 해의 이미지도 안 좋아져서……”
“그렇다면 클로틸드를 건드려서 무너뜨려야지.”
“제가 열심히 해서 영상석 사업으로 무너뜨리……”
“아니, 선후가 바뀌었다.”
잉그다 후작이 어금니가 보이도록 비열하게 웃었다.
“먼저 클로틸드를 무너뜨리면 영상석 시장 자체가 너에게 올 거라는 이야기다.”
“예?”
“먼저 선점한 쪽이 있으니 불리해? 하지만 그건 역으로 말하자면…… 그 선점 업체가 자멸하면 오히려 이득이지. 그쪽이 넓힌 시장까지 가져올 수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그걸 어떻게……”
“내게 좋은 수가 떠올랐다. 영상석은 어떻게 만들고 있느냐?”
“마르티스 영애에게 소개받은 외국인 마법사에게 맡기고 있어요.”
“외국인이라니 더 좋구나, 아주 좋아.”
잉그다 후작은 조세핀의 이야기를 들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조세핀은 오늘 처음으로 보는 아버지의 기쁜 얼굴에 어안이 벙벙했다.
“외국인이라서 더 좋다니요? 여태까지는 불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어떤 영상을 만들 건, 그 위험성을 잘 모를 거 아니냐?”
조세핀은 멍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다가 물었다.
“클로틸드를 저희가 무너뜨리기 위해서, 영상 제작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흠, 네가 아주 멍청하지는 않구나.”
조세핀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클로틸드를 무너뜨린다면, 검은 달을 엉망으로 만든다면?
그러면 지금은 붉은 해에 쏠려 있던 이목이 다 그쪽으로 집중될 거고, 검은 달이 없어지면 독점 계약 또한 사라질 거다!
잉그다 후작의 말을 이해한 조세핀의 얼굴이 환해졌다. 곧 그녀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하지만 아버지. 그 일은 비밀스럽게 해야 할 텐데, 저와 일하는 마법사는 외국어만 할 줄 알아서 마르티스 영애 없이는 의사소통이……”
“쯧, 이렇게 순진해서야. 그래 가지고 어떻게 클로틸드를 상대하겠다는 거냐.”
잉그다 후작은 조세핀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제대로 된 사업의 기본은 서로 대화가 잘되어야지. 결국 너희도 마르티스 영애를 통해 이야기하다 보니 협상을 제대로 못 한 거 아니냐?”
“그야 그렇지만…… 클로틸드를 무너뜨릴 계략을 짜는 상황에서, 통역사가 배신을 한다면 어쩌죠?”
“쉬운 일이지. 그 새끼가 배신을 못 하도록 약점을 잡으면 될 것 아니냐.”
잉그다 후작의 얼굴에 저열한 미소가 짙게 떠올랐다. 그는 곧 오만한 자세로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영상석 사업이 무너지지 않게 대출을 받아? 이제는 가문의 가보와 저택을 담보로 걸어야겠지!”
쾅!
잉그다 후작은 테이블을 거세게 내리쳤다.
“고작 영상석 사업 하나 일으키겠다고 이런 부담을 지는 건 말도 안 되지만, 그게 클로틸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일이라면 손해가 아니야!”
순간 아버지의 분위기에 압도당했던 조세핀은 어쨌든 대출을 해 준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더더욱 위험한 일을 벌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지참금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다음에는 저번에 받은 대출이 물거품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가보와 저택까지……
‘하지만 여기서 그만두면, 정말로 클로틸드한테 지는 거잖아!’
짧은 망설임이 있었으나, 결국 조세핀과 잉그다 후작은 서로를 말리지 않았다.
“네, 그럼 당장 마법사와 통역사를 불러오겠어요!”
* * *
“그러니까…… 잉그다 영애가 ‘특별한 영상’을 만들어 달라고 했단 말이지?”
나는 마법사에게 건네받은 녹음기를 듣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내가 지금 녹음기를 통해 들은 내용을 다시금 되짚어 보았다.
-여기서 보고 들은 건 잊는 게 좋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오우, 나는 제국어 몰라. 지금 간식 시간? 빵 주세요.
-쓸데없는 걱정이었군. 어차피 아무것도 못 알아듣는데.
물론 클라라가 수배해 온 마법사는 정말 제국어를 모르는 게 아니었다.
폴리우스와 대화가 유려하게 흘러가는 걸 방지하고, 클라라의 통제하에 협상이 흘러가도록 내가 짜 놓은 장치였으니까.
그는 그저 제국어를 못 하는 척하면서 폴리우스에게 더 돈을 뜯어냈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외국인인 건 맞고, 후작을 만난다고 하니 외국인이 모를 법한 이야기가 오갈까 싶어…… 녹음기를 들고 가 달라 요청했다.
-조세핀, 이 영상만 있으면 클로틸드 공작가를 무너뜨릴 수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네, 아버지!
폴리우스가 나에게서 마력석을 가져오는 방법이 무산되었으니, 돈을 끌어오고자 조세핀이 잉그다 후작가에 요청하는 것도 예상 시나리오에 있었다.
하지만 잉그다 후작이 이번 일을 기회로 삼아 클로틸드 공작가를 무너뜨리려고 할 줄은 몰랐지.
‘황가를 건드리다니, 이건 내 사업을 공격하는 수준이 아니라 클로틸드 공작가가 몰락할 정도잖아.’
녹음을 통해 알게 된 잉그다 후작가의 계획은 이러했다.
1. 클로틸드 공작이 황제를 모욕하는 내용의 영상석을 제작한다.
2. 검은 달에서 대여해 주는 영상석과 1번 영상석을 바꿔치기한다.
3. 검은 달이 황실을 모욕했다는 명목으로 무너지면, 붉은 해가 그 이후 영상석 시장을 독점한다.
그걸 노리고 후작은 자신의 가보와 저택까지 담보로 잡아 돈을 빌린 거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통역사와 통역사의 가족을 겁박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내가 참지 못하는 건……
‘황가를 모욕하는 데에 아버지까지 끌어들이다니, 참을 수 없어.’